콤바인

by 무익한 종 posted Oct 22,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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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원리는 바람이 참 많이도 붑니다.
사방이 골짜기라서 그런지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서서 바람을 흩어주던
작물들이 다 사라진 까닭인지
약한 지붕들은 날려버릴 정도로
억센 바람들이 사방에서 불어댑니다.
바람이 불면 연약하신 할머님들은 거동하기를 꺼려합니다.
휘청거리시다 몸이 상할 수도 있으니까요
아직 일을 못다 끝낸 분들만 겨우겨우 밭으로 나와
조금씩 조금씩 손을 움직이며 알곡들을 골라냅니다.
겨울은 그렇게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마을 논들 타작이 끝났지만 아직도 타작을 못한 집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콤바인 때문이지요.
옛날에야 다 일일이 손으로 작업을 했으니 이런 일이 없었겠지만
지금은 나이도 나이려니와 콤바인이라는 기계가 워낙
편리하고 좋은 기계인지라 기계로 하는 버릇에 중독이 되어
콤바인이 들어오질 않으면 타작을 아예할 엄두를 못냅니다.
그런데 우리 마을에는 그 흔하디 흔한 콤바인이 한 대도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마을 타작하다가 어쩌다 짬을 내서
콤바인 한 대가 마을에 들어서면 마을 집집마다
한 두 분씩 나와서는 기계를 만지는 사람 주변을 둘러싸고는
제발, 제발 우리 논 좀.... 부탁을 하십니다.
오늘도 한 대가 들어왔는데 마을 분들의 애처로운 눈빛을
뒤로 하고 자기 논만 쑥닥쑥닥 잘라서 나가버리자
헛물을 켠 어르신들은 삼삼오오 둘러 앉아
연신 담배만 뻑뻑 빠십니다.
그러다 옆에 있는 저를 보시고는
목사님, 콤바인 한 대만 사시우
마을을 위해서라도 제발 사요
라고 하십니다.

자전거를 타고 고추밭 말목 모으러 나가면서
하늘, 바람을 따라 나뭇잎들이 흩날리는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주님 저분들 위해서라도 제발 내년에는 콤바인 사게 해주세요
그래서 어르신들 내년 가을에는 환히 웃게 하소서 주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