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bonacom.or.kr/xe/files/attach/images/162551/b643c655310c8caf02909277b3d24e77.jpg
종의노래
2003.09.07 22:36

비 내리는 오후에

조회 수 2712 추천 수 285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살아 있는 것들 중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움직임은 동물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식물의 소리없는 움직임은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새벽녘 동터오름을 따라 자신의 몸에서
남는 물들을 토해냅니다.
이른 아침에 풀잎에 맺히는 물방울은 이슬만이 아닙니다.
이렇게 토해내는 물들이 모여 이슬처럼
맺히기도 합니다.

햇빛이 뜨거우면 뜨거운 대로
흐린 날에는 흐린 날 대로
잎사귀가 하고 있는 모습은 각기 다릅니다.
비료를 너무 많이 받아들여 살이 찐 잎사귀와
굶주린 잎사귀의 모양새가 다릅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날에도
지쳐서 흐느적거리는지
감사와 평강으로 춤추듯 흔들거리는지
아는 사람은 압니다.

땅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로만 가득하지 아니하고
모래로만 가득하지 아니한
좋은 흙은 숨을 쉽니다.
발로 밟으면 한없는 대지의 부드러움과 여유를 느끼게 합니다.
조금 가져다 입에 넣으면 침과 뒤섞이며
부끄러운 몸짓으로 녹아들어
구수한 내음을 느끼게 합니다.
땅은 움직이지 않는 딱딱한 덩어리가 아닙니다.
살아 숨쉬고 감정을 표현하는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비갠 오후에 밭에 나가
옷이 젖으면 젖는 대로 가만히 앉아
신을 벗고 대지를 밟습니다.
젖은 장갑을 벗고 맨 손으로 젖은 흙을 만집니다.
비가 멎으며 드러나는 흙은
긴 잠수 끝에 떠오른 사람이 가쁜 숨을 몰아쉬듯
그렇게 창공의 기운을 빨아 드리는 듯 합니다.
사람이 젖은 옷 입기를 싫어하듯
땅도 젖은 몸으로 서 있기를 싫어합니다.
뽀송뽀송하여 만지면 기분 좋은 피부를
사람만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가 너무 많이 그리고 너무 자주 내리는 날에
밭에 나가 손도 발도 온 몸도 젖은 상태로
젖어 있는 대지에 앉아 있으려니
나만 오돌오돌 떨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지와 나를 떨게 하는 것은 비의 눅눅함만은 아니었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70 동진아 고맙다 무익한 종 2006.05.03 3011
169 병아리 한 마리 무익한 종 2006.05.16 3096
168 올해 논농사 무익한 종 2006.05.21 3072
167 동역자들 무익한 종 2006.06.07 3041
166 불꽃같은 눈동자로 저를.... 무익한 종 2006.06.30 3292
165 추비를 주고 나오며 무익한 종 2006.07.07 3154
164 지렁이 한 바구니 무익한 종 2006.07.10 3101
163 태풍 중에도 무익한 종 2006.07.12 2977
162 와당탕쿵탕 거리며 흘러가는 시냇물 무익한 종 2006.07.18 3087
161 환우라고 들어보셨나요? 1 무익한 종 2006.08.01 3208
160 더운날 땀흘리는 일들 무익한 종 2006.08.15 3127
159 어린 배추잎처럼 무익한 종 2006.08.29 3083
158 가을 푸르른 하늘처럼 무익한 종 2006.09.02 3145
157 오직 어미만이 모유를 먹일 수 있습니다. 1 무익한 종 2006.09.04 3212
156 신실하신 나의 주님 1 무익한 종 2006.09.13 3333
155 차오와 홍웨이 무익한 종 2006.09.16 3218
154 내 앞에서 똥 쌀 때 무익한 종 2006.09.27 3575
153 나이가 들면 무익한 종 2006.10.14 3082
152 오직 믿음으로 무익한 종 2006.10.27 3984
151 포근한 10월 그리고 11월 초순 무익한 종 2006.11.02 3123
Board Pagination Prev 1 ... 4 5 6 7 8 9 10 11 12 13 ... 17 Next
/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