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에 물을 대면서

by 무익한 종 posted May 04, 200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올해 초에 마을 어르신들의 요청으로
수 십 년을 농사만 지으며 살아오신 분들 앞에서
저희 공동체가 하고 있는 농업에 대한 강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밖에 나가서 제가 농업에 대해
강의를 했다고 우쭐해 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주에 올해 빌린 논에 물을 대기 위해
삽과 호스를 한 다발 들고 논으로 나갔습니다.
작년에 빌렸던 논은 물을 대기 힘들어 정말 애를 먹었거든요.
작년 생각하며 물이 많은 높은 곳에서 호스를 이용해서
논까지 물을 끌어드릴려고 그렇게 한 것이지요.
그래서 물이 많은 곳을 찾아서 호스를 막 설치하려고 하는데
멀리서 장씨 어르신이 '어이~'라고 손짓까지 하시며 저를 부르시는 거예요.
그래서 하던 일을 멈추고 어르신 앞으로 가니까
아, 목사님이셨어요. 하시며
그 논에 물을 대려면 그래서는 안돼요
하시며 논에 물을 대는 법을 아주 상세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호스를 거두어 드리고
어르신이 시키신 대로 물고를 찾아 뚫어주고
막힌 물길을 다시 뚫어주면서 논에 물이 들어가게 만들었습니다.
젖은 흙을 삽으로 퍼내는 일은 정말 진땀나는 일입니다.
팔이 후들거리고, 다리도 후들거릴 정도로 힘들었는데
그래도 논에 물이 들어가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얼마나 흐뭇하고 좋은지 모릅니다.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과 제 논에 물들어가는 것보다
더 보기 좋은 것이 없다시던 어르신들 말씀이 딱 맞는 것 같습니다.

일 마치고 장씨 어르신 앞으로 지나오며 크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드리며 다시 감사를 표했습니다.
삽을 어깨에 지고 하늘 보며 오다가
빙그레 웃었습니다. 우쭐대던 제 모습이 부끄러워서 말입니다.
아무 말 없이 제 말이 귀를 기울여 주시던
어르신들이 얼마나 귀한 분들이고, 겸손한 분들이신지
온 대지를 감싸 안으면서도 아무 말도 없는
저 하늘만 같아서 오늘은 나도 우리 어르신들을 닮아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