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내리시는 날 논에서

by 무익한 종 posted Jun 01,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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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일에서 제일 힘든 것이 풀을 잡는 일일 것입니다.
작년엔 집짓느라 농사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
공동체 식구들에게 타박을 많이 당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아무리 바빠도 내 본분인 농사일은
제대로 하리라 마음을 먹고 일을 하는데
요즘은 너무 열심을 낸다고 형제들에게 잔소리를 자주 듣습니다.^^;

올해, 논의 풀들을 어떻게 잡을꼬 고민하다
작년처럼 쌀겨를 뿌리는데 모를 심기 전에 뿌리기로 하고
몇 백 킬로를 낑낑거리며 넓은 논바닥을 쓸고 다니며 다 뿌렸습니다.
쌀겨를 뿌리게 되면 발효하면서 유기산이라는 물질이 나와
잡초들의 싹을 죽여버리거든요.
게다가 쌀겨가 그대로 거름이 되어 밥맛이 게중 제일 낫습니다.
그런데 쌀겨로는 논에서 자라는 피는 결코 잡을 수가 없습니다.
이건 다른 길이 없습니다.
논둑을 높이 만들어 물을 약 10~15cm정도로 깊이 대서 잡는 길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쌀겨와 물로 풀을 제거하듯
물과 성령으로 나를 거듭나게 하신 주님

쌀겨가 뿌려져도 그 틈을 비집고 뿌리를 내리는 잡초들
그 연하고 하얀 실뿌리들을 조심스럽게 뽑아 올리며
빗물처럼 아픔이 내 가슴을 따라 흐릅니다.
그래도 뽑혀져야 벼들이 제대로 자랄 수 있기에
내 심령 깊숙한 곳에 뿌리박은 어둠들을 제거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사모하며
아픈 허리를 펴고 비를 내리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