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선 선교사-선교에 대한 글 퍼옴

by 정미진 posted Oct 21,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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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과거 기독교전파의 가장 큰 장애물이었던 구 소련공산권이 무너지면서 현재 남은 선교대상은 이슬람 문화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곳 이슬람문화권 선교현장에서 느끼는 가장 중요한 장애물을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이곳에 있는 분들이 기독교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반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분들이 이러한 반감을 가지게 된 데에는 기독교 역사에서 나타나는 이슬람문화권에 대한 잘못된 일들이 하나의 이유겠고 다른 이유는 한국을 포함하는 서구 기독교문화의 세속화라고 생각합니다. 이곳의 지식인들을 만나면서 그분들이 우리나라나 서구 여러 기독교국가의 경제적인 발전은 부러워하면서도 막상 도덕적인 면에 있어서는 본인들의 종교가 더 우월하다는 생각을 일반적으로 하고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한 기독교의 대표적인 국가인 미국의 주도하에 이라크를 침공하고 그곳에서 이라크인들의 해방을 위해서 하고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을 보면서 이슬람국가의 여러 사람들이 보는 기독교의 시각이 어떠한가 하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슬람문화권에서의 기독교선교는 일반적으로 무슬렘들 사이에서 기독교는 악한 즉 사탄의 종교로 인식 되며 기독교을 믿는 것은 매국적인 행위를 하는 것으로 인식이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곳에서는 기독교를 직접적으로 전하는 것은 반감을 증가시키게 되고 사람들의 마음의 문을 더욱 걸어 잠그게 되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현재에는 기독교국가에서의 비기독교적인 가치관은 위험수준을 넘어서고, 오히려 교회의 수는 줄어가고 있고 사라져버린 교회의 자리에 새로운 이슬람사원이 세워지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은 기독교인의 수가 20%를 넘어 서고 있지만 아직 정직과 공의, 사랑과 이타 정신 등의 기독교 문화가 사회 구석 구석에 자리잡아가질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많은 경우 많은 사람의 비난을 받는 경제적 사회적인 큰 스캔들의 중심에는 교회의 지도자들이 있는 것이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많은 비 기독교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그러한 사람들이 믿는 종교라면 믿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또한 기독교인들은 말만 잘하고 행동은 따르지 않으며 기독동호회는 직장에서 가장 힘이 없고 자신 없는 사람들이 서로 위로나 하려고 모여있는 단체라고 인식되는 경우가 많으며 이러한 사람들이 믿는 종교를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와 전 세계의 여러 종교사회적인 상황이 많이 변하였기 때문에 새로운 개념의 전인적인 선교의 구도를 다시 짜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러한 새로운 개념의 선교에 대해 기초부터 생각을 다시 해나가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일
선교를 생각하기 전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한 사람의 남편이 되고 한 아이의 아빠가 되고 나서 사랑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조금씩 더 알아가게 됩니다. 사랑이 어떤 것인지 조금씩 알아가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는 경험해 본 분들이라면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결혼 전에 집사람과 사귈 때 내가 우리 집사람에게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는데 정말 내가 사랑한다면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단지 그냥 집사람이 내 곁에 있어주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고 이 글을 쓰는 이순간에도 집사람이 내 곁에 있는 것이 내겐 얼마나 기쁨인지 모릅니다. 같이 있는 시간이 너무 많아서 집사람이 음식을 준비할 시간이 없어서 음식 반찬이 적어도 이것으로 저희 마음이 불편하지 않은 것은 제가 한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내가 집사람을 사랑하는 것 처럼 아니 그보다 더 나를 사랑하신다는 (당연한?) 사실에 대해 가슴 벅차하며 잠을 자지 못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도 동일하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곁에 있기를 원하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에녹을 너무 사랑하셔서 그분이 죽음을 맞보기전에 당신 곁으로 데려가셨습니다. 에녹은 죽음을 맞보지 않는 몇이 안되는 사람입니다. 에녹은 정말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렸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었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에녹이 일을 많이 하고 잘하여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는 구절이 없습니다. 동행하는 것은 하나님곁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정말로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진정으로 찾으시는 사람은 예배하는 사람입니다. 진정한 예배는 의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하나님곁에 있는 것이라는 사실에 여러분 모두 동의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분을 위해 일을 하는 것 보다 우리가 그냥 하나님 곁에 앉아 있는 것을 즐거워하시고 기뻐하십니다. 예수님이 마리아와 마르다의 집에 방문하게 되셨을 때 마르다는 우리 시각에서 보면 정말 좋은 사람이어서 예수님께서 오시는 것을 보고 그분에게 먹을 것을 좀 드리고 싶어서 부엌으로 가서 그분이 먹을 것을 준비하였습니다. 마리아는 마르다를 도울 생각을 하지 않고 예수님곁에 앉아서 아무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도 그러시겠지만 마르다는 화가 났습니다. 그런데 마르다는 예수님이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는 지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진정으로 원하신 것은 음식이 아니라 마르다 였습니다. 그분은 정말 자신이 사랑하는 마르다와 같이 있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정말로 사랑하신다면 그분이 정말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그냥 우리이고 그냥 그분 곁에 있어드리는 것입니다. 그분이 정말로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신 그런 분이시라면 우리를 도구로 사용하셔서 그분의 이익을 챙기는 그러한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이 전도하는 것보다 그분과 같이 앉아서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선교의 열매
성경에 보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불에 던지어진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세상에 살면서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가 어떠한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통적인 입장에서 보면 선교의 열매는 신자수의 증가와 새로 새워진 교회의 수로 대변된다고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아프리카의 일부국가에서는 기독교인의 수가 80%를 넘지만 에이즈의 유병률이 비공식적으로 30%에 육박한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전도로 많은 사람이 교회를 다니게 되었지만 진정으로 삶이 변화된 사람이 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통계라고 생각이 됩니다. 또한 부끄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아주 극히 일부 선교사들이 자신들을 통해 하나님을 믿게 된 현지 그리스도인에 의해서 배척당하는 일이 있습니다. 자신의 힘과 노력을 다해 이루어놓은 교회의 교인들에 의해 배척을 당하는 아주 중요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에 한가지 이유는 자신들을 가르친 선교사님들의 말과 행동이 다른 것으로 인한 상처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선교지에서 보면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고 현지분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는 선교사님들과 교회를 많이 세우신 선교사님이 일치하지 아니하는 경우를 종 종보는 것은 흥미롭지만 드문일이 아닙니다. 비록 전통적인 의미에서 교회를 세우진 않았지만 여전히 선교지에서 혹은 본국에서 어떤 선교사님들은 현지분들에 의해 존경을 받으며 어떤 선교사님들은 교회를 많이 세우고 많은 새로운 교인들을 얻었지만 여전히 현지 기독교인에 의해 배척을 받는 일이 일어나는 일은 슬픈일이지만 선교가 어떠 해야하는 지 가르쳐주는 일례라고 할 수있습니다.
만일 열매가 교회와 교인의 수라고 한정을 한다면 우리가 따라야 할 예수님은 어떻게 보면 한번의 설교만으로 수천 명을 전도했던 베드로보다 더 열매가 많지 않은 분일지도 모른 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12명의 제자 중에서 1명은 실패하고 11명만을 제자화하는데 그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여전이 그분의 영향력이 살아서 움직이며 많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숫자이상의 그 무엇이 있습니다. 또한 성경 어느 곳에도 우리가 전도한 사람의 숫자가 혹은 우리가 세운교회의 수가 열매라고 나와있는 것을 저는 보지 못하였습니다.
에베소서 4장 11절 12절에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직분을 주셨습니다. 어떤 분은 교사로, 어떤 분은 사도로, 선지자로, 혹은 복음을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직분을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갔을 때 우리의 열매가 전도한 사람의 명단이라면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가장 많은 상급을 받을 것이며 다른 이름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은 상급이 적을 것입니다. 만일 이렇다면 공평하신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또한 우리가 전도를 하는 것은 잘 알고 보면 한번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이슬람문화에서는 기독교가 사탄의 종교라는 생각에서, '기독교인도 좋은 일을 할 수있구나' 하는 생각을 으로 변하게 되고 이후에 '기독교인들 중에는 좋은 사람이 많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고 '저런사람들이 믿는 종교는 믿어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진행되며 '저 사람들이 믿는 종교에는 내가 모르는 어떤 것이 있구나, 나의 문제가 해결 받을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을 한 이후에야 우리가 전도를 하면 영접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도라는 것은 한번에 되는 것이 아니며 이전에 많은 기독교인들의 삶의 모범을 보인 결과입니다.
성경에 열매에 대해 언급한 것은 바로 성령의 열매에 라고 생각합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자비와 양성과 온유와 절제와 충성과 오래 참음과 화평으로 이는 하나님의 성품과 일치합니다. 바로 우리가 성령안에서 생활하면서 얻게 되는 우리의 성품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닮아가는 우리의 성품인 것입니다. 이러한 성품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며 선교지에서 현지분들에게 하나님을 전할 수 있게 하고 이분들을 변화시키며 삶을 변화시키게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우리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오직 성령님을 우리가 삶가운데 초청할 때 저절로 맺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포도나무가지로서 포도나무가지에 붙어 있을 때 저절로 맺게되는 열매인 것입니다.

선교사의 영향력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께 해드린 일이라고는 아무 일도 없는 것 같아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선교지로 간 누구처럼 선교사로도 헌신하지 않았고, 주님의 종인 목사님으로 헌신하지도 않았고 특별이 하나님을 위해 한일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하나님 앞에 서게 된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 31-46절).
정말 죄송하지만 하나님, 저는 당신께 해드린 일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많은 열매를 요구하셨지만 하나님 저는 당신께 드릴 열매가 없습니다. 그냥 빈손으로 당신께 나아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다르게 이 분에게 이야기 하셨습니다.  아니야 착하고 충성된 종아, 나는 네게 정말 고마워 하고 있단다. 왜냐하면 너는 내가 주릴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마를 때 물을 주었고, 내가 위로가 필요할 때 위로해 주었단다. 하나님 언제 제가 그런 일을 했나요? 하나님 언제 당신께서 저에게 오셨었죠? 그런데 주님은 이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작은 자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란다.
또 다른 한사람이 하나님앞에 서게 되었습니다(마태복음 7장 15-23). 이분은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한일들을 생각해보며 아주 자신이 자랑스러웠습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을 인정을 했고 자신도 자신을 통해서 행하여진 많은 일들에 대해 아주 자신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이분도 하나님앞에 서게 되었는데 자신이 한일들을 생각해보며 하나님께서 하실 칭찬에 대해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반응은 전혀 예상치 못하게 나는 너를 알지 못한다라는 반응이었습니다. 이분은 너무 당황스러웠습니다. 하나님 제가 한일들을 기억하지 못하시나요? 제가 주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말씀도 전하고 귀신도 내어 쫒아 내고 많은 이적과 기사도 행하였는데요 라고 하나님께 항변하였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반응은 너무도 냉담하게 나는 너라는 사람을 기억하지 못한다, 나에게서 떠나가라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분들의 이야기처럼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방법과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으로부터 평가를 받게 될지 모릅니다. 제가 확신하는 것은 우리는 우리가 전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작은 일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들을 것이고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님으로부터 칭찬받을 일 하나님은 전혀 기억하지도 못하실지도 모릅니다. 진정한 우리의 영향력은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작은 일들로 인한 것입니다.
선교지에서 있었던일입니다. 어느 선교사 한분이 10년가까이 선교지에 있었는데, 본인이 생각하시기에 눈에 보이는 열매가 적어서 고민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쓰임받지 않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들로 인해 깊은 우울감에 빠져들었습니다. 사실 이분은 여러 현지분들을 비롯한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끼치는 분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분가운데 있는 하나님으로 인해 많은 영향력을 끼치는 그러한 분이었습니다. 이분이 너무 어려워하고 있어서 저희가 기도를 같이 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러자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너희 대부분의 이땅을 변화시키는 영향력은 네가 지금 나를 위해서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의해서가 아니라 네가 알지 못하는 네가 기억하지도 못한 조그마한 일로 인해서란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분은 내가 보기에도 선교지에서 많은 영향력이 있는 그러한 분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점점 알아가고 사랑하게 되기까지 많은 저에게 많은 영향력을 준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성경 속의 인물들이고 어떤 분들은 책을 통해 만난 분들이고, 어떤 분들은 실제적을 제 삶에서 만난 분들 입니다. 얼마 전 이곳 선교지에서 저에게 큰 영향력을 준 한 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저는 학생시절에 이분을 여러 번 만난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이분관 만났던 순간을 하나도 잊지 않고 기억을 하는데 이분은 저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영향력이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으로 한정하실 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그분의 진정한 영향력은 그분이 기억조차 못하는 저와 같이 잠깐 그분의 생애의 아주 짧은 부분을 그냥 스치고 지났던, 본인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다른 사람의 생애속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도바울이 히브리서에 우리의 믿음의 선조들이 아직도 살아계셔서 우리에게 영향력을 주고 있습니다 라고 이야기 한 것 처럼 우리의 진정한 영향력은 우리가 미처 기억 조차하지 못하는 우리의 작은 행동을 통해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 우리가 죽은 후에도 지속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러한 영향력들은 우리가 맺어야 할 선교의 열매가 아닌가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나귀도 사용하셔서 일을 하시기도 하시지만 성경 어디에도 나귀가 하나님의 자녀로 그분의 나라에 들어갔다는 말이 없습니다.

영향력들의 근원
우리가족은 선교사가 되려는 생각을 애초부터 하지 않았습니다. 선교사에 적당하지 않은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는 (적어도 나는) 사람들과 사귀는 것을 즐겨 하는 성격이 아닙니다. 나는 혼자서 책을 보며 음악을 듣는 등 혼자 하는 활동들이 더 좋아하며 사람을 사귀고 전도하는 것은 제가 제일 자신이 없어하고 귀찮고 싫어하는 영역입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내가 선교사로 나가는 것이 하나님 뜻일 수 있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많이 당황하였습니다. 하나님, 저는 그러한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도 아시다시피 저는 선교사 체질이 아닙니다. 저 같은 사람은 선교사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제 성격을 고치는 것이 얼마나 힘 든 일인지 아시잖아요? 설마 저에게 선교사로 나가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니지요? 라고 하나님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내 마음가운데 한가지 음성이 들어왔습니다. 남선아, 내가 너에게 요구하는 것은 전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너의 생애를 통해서 나와 동행하고 가족을 잘 돌보는 것이 내가 너에게 요구하는 전부란다. 그리고 남선아 선교사는 네가 생각하듯이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그냥 좀 멀리 이사를 가는 사람이란다 라고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또 물어보았습니다. 하나님, 정말 그래도 되나요? 그냥 하나님과 동행만 하면 되나요? 하고 물어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네가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영향력은 네가 하는 말에 있지 않고 네가 가르치는 성경에 만 있지 않단다. 그것은 내가 나와 동행하면서 생기는 향기에 있단다. 너는 단지 포도나무가 가지에 붙어 있으면 저절로 열매를 맺게 되는 것 같이 내 곁에 나와 동행하면 된단다 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에스겔서 47장에 성소에서 물이 흘러나와 점점 깊이가 깊어지고 넓이가 넓어져 주변의 나무들을 적시고 궁극적으로는 강으로 흘러 들어가 물고기들이 소생하는 에스겔의 환상이 나옵니다. 여기에서 성소가 나타내는 곳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입니다. 성소는 또한 하나님과의 교제가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다른 말로는 하나님의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배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통해서 선교지가 변화하며 죽은 나무들이 살아나고 죽은 고기들이 새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전도를 하지 않아도 가끔 재미있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곳에서 만난 아주 기독교를 극렬이 반대했던 사람의 이야기 입니다. 이분은 나와 기독의사회 모임을 같이하는 의대생의 어머니인데 이 학생을 교회에 나가지 못하게 심하게 박해를 하고 교회에 나간다고 집에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이 분을 위해 여러 번 기도하였는데 이학생의 어머님은 여전히 전혀 변화하시는 기미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학생의 어머니가 몸이 아파 저를 찾아왔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해서 치료를 해주었습니다. 특별히 이분에게 잘해주어야겠다고 생각을 했지만 다른 분과 특별이 다르게 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수개월을 저에게 다니신 후 이 학생이 저에게 너무 기쁜 목소리로 전화를 하였습니다. 백선생님 우리어머니가 오늘 하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저도 너무 기뻤습니다. 제가 이분에게 정성을 다해 치료해 드린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제가 정성을 다해 치료를 해드린 것이 조금은 영향을 미쳤을 거라고 생각을 하니 마음이 많이 기뻤습니다.
어떤 대학을 갓 졸업한 의사는 저에게 제가 신앙의 아버지라고 이야기를 할 때 제가 많이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한번도 개인적으로 그 학생에게 성경을 가르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나에게 가장 영향력을 많이 주신 분들은 재미있게도 그분들은 저를 가르치신다고 생각하신 분들이 아닙니다. 그냥 그분들의 삶 가운데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그분과 같이 성경공부를 하지 않았어도 그냥 저에게 전달이 되었고 그래서 그분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나라의 확장
이곳 선교지에 오면서 저의 주변에 분들이 특별히 저희가 사랑하는 분들이 많은 어려움가운데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중에 제가 사랑하는 두 분이 계셨는데 한 분은 대학교 때 은사로 저희 가정이 하나님을 한마음으로 바라보는데 많은 도움을 주셨던 분이십니다. 이선생님의 사모님이 뇌종양으로 수년 째 투병하고 계신데 옆에서 잠잠히 사모님을 사랑하고 그러한 여건을 오히려 감사하시는 선생님을 보고 있으면 저희에게 많은 도전이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그 두 분을 학생 때부터 알아왔고 두 분의 신실하심으로 인해 많이 배워왔지만 제가 이 두 분에게서 진정으로 많이 배우고 영향을 받은 것은 학생 때부터 이 분과 같이 했던 성경공부가 아니라, 사모님의 병으로 인한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바라보시며 감사하시는 이 두 분의 모습을 통해서 입니다. 또 다른 제가 최근에 가장 많이 배운 분은 동료의사이면서 후배인 선생님입니다. 저희가 선교지로 나오고 1년이 채 안되어서 이분이 위암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직 나이도 젊은 분이어서 우리가 느낀 충격이 컸었는데 정작 본인이 느끼고 가족이 느끼는 충격은 상상을 하지 못하는 것이 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때 그 선생님을 위해서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께 하나님 왜 이렇게 아름다운 분들에게 어려움을 주시는 것인가요 하고 물어보았습니다.
이러한 질문을 하면서 제가 욥기를 읽게 되었습니다. 욥은 정말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도 인정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욥기의 배후에 하나님과 사탄이 서로 만나 서로 누가 옳은 가 이야기하는 장면이 숨어져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이해하는 말로 하면 영적인 전쟁입니다. 엄밀히 이야기해서 하나님과 사탄 사이는 영적인 전쟁이라는 말을 쓸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탄은 타락한 천사로 피조물에 불과하기 때문에 감히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전쟁을 할 수 없습니다. 여하튼 사탄은 하나님에게 ꡒ하나님, 욥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은 하나님이 욥에게 많은 복을 주셔서 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욥에게 주셨던 복들을 가져가신다면 욥은 하나님을 모른다고 할 것입니다.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허락하셨습니다. 사탄은 곧 욥에게 가서 그 가가진 재산과 자녀와 아내와 건강을 빼앗아가 버렸습니다. 사실 이러한 하나님과 사탄의 만남을 모르는 욥은 견딜 수 없는 어려움이 닥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기 때문에 그렇지 만일 우리가 사탄과 하나님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모르는 상태의 욥이라고 한다면 욥이 당한 고난은 하나님 일을 하다가 당한 고난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자녀가 사고로 죽은 것이며, 자신의 사업이 부도가 난 것이고 자신의 아내가 자신을 버리고 도망을 간 것이고 자신의 건강이 나빠진 것입니다. 어느 것도 선교를 하다가 장렬히 순교한 것이 아니며, 어느 것도 전도를 하다가 핍박을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두 자신의 개인적인 일로 당한 어려움들이었습니다. 욥이 이러한 지극히 개인적인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욥이 한 위대한 일은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서 왜 이러한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게 되었는지 자신은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살아계시다'고 믿기로 작정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하면서 왜 자신에게 이러한 일이 일어났는지 자신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하신다'고 믿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욥이 이러한 일을 하였을 때 이 배경 뒤에 하늘에서는 사탄이 욥에게서 아니 하나님에게서 떠나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승리한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주권이 계속해서 욥과 그의 권위에 있는 모든 것에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한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욥의 권위 하에 있는 곳에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나라가 임하게 하는 일은 우리가 매일 주기도문으로 기도하며 선교사들이 이 땅 가운데 이루어야 할 아니 우리 모두가 이 땅 가운데 이루어야 할 일들인 것입니다.
영적인 전쟁은 귀신을 내어 쫓는 아주 단순한 일에만 있지 아니합니다. 진정한 의미의 영적인 전쟁은 우리가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면 도저히 일어날수 없을 것 같은 상황가운데 처해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인정하는 것'이며, 영적인 전쟁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면 도저히 일어나서는 안 되는 상황가운데 내가 처해 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고 믿기로 작정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이러한 욥기를 묵상하면서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당하고 계시는 두 분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고맙구나 내가 얼마나 너희들을 고맙게 여기는 줄 아니? 너희 때문에 사탄이 떠나가게 되었고 너희 때문에 나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임하게 되었단다. 사실 이 두 분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십니다' 라고 고백하는 고백이 나를 변화시킨 것이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임을 나는 압니다. 이러한 분들의 이러한 고백으로 나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알았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말로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복음을 듣는 데는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것일 수는 있지만 이것은 인격도 없고 잠시 사용되는 당나귀도 할 수 했었던 일입니다.  어쩌면 진정한 복음은 개인적인 일로 고난가운데 있는 많은 사람들 특히 현지 분들이 당하는 고난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는 고백 안에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저는 진정한 복음전도는 선교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현지분들이 주님으로 인하여 당하는 고난으로 인해 일어나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러한 일을 하는 데는 선교지와 본국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 많은 힘을 주었던 위 두분이 그리고 현재에도 의료소송으로 어려운 가운데 있는 후배선생님들이 선교지에서 많은 일을 하는 어떤 분 보다 더 귀한 일을 하시는 것이라고 나는 확신을 합니다. 우리가 생활하는 처소에서 이 두 분들처럼 이러한 삶을 살게 될 때 우리는 우리주변을 변화시키고 우리주변을 제자화하는 것입니다. 저는 가서 제자 삶으라는 말과 세상의 빛과 소금이되어라는 말은 동일한 말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진정한 제자 삶는 일들은 말이나 글에 있지 아니하고 우리의 삶을 통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교지인 우리주변을 변화시키고자 할 때 다시 말해 선교사로의 삶을 살려고 할 때 우리에게 어려운일이 일어날 때 이것을 이상하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선교사가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나라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셨을 때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은 하나님나라가 가까웠다는 말이셨습니다. 또한 공생애 기간 동안에 하나님나라에 대해 여러 번에 걸쳐서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해를 받으신 후 하늘에 오르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모아 가르치신 것도 하나님나라였습니다. 사실 하늘에 오르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다시 가르치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에 대해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셨다는 이야기 입니다. 하나님나라가 무엇이길래 이렇게 예수님께서 그의 모든 생애 동안 가르치신 것도 모자라서 하늘에 올리워 가시기 직전까지 가르치셨을 까요?
하늘나라는 예수님이 말씀하셨던 것 같이 세상의 나라와 다른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임하는 나라로 국민은 하나님의 주권자 이심을 인정하고 그 주권에 자신의 삶을 드리는 사람들이고 영토는 이분들이 살아가는 생활현장입니다. 이곳은 가정이며, 교회이고, 우리가 생활하는 일터입니다. 하나님나라에도 정치계가 있으며 교육계가 있고, 의료계가 있으며 문화 예술계, 언론계, 학계가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하는 것이 선교사가 해야 할 일이며 우리 기독교인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저는 선교지에와서 의료계의 하나님나라가 어떨까 생각을 해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가장 많은 시간을 환자를 보면서 환자를 생각하면서 보내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나를 통해서 의료계에 하나님나라가 임하시는 것을 원하신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계속 하나님께 물어보고 생각하고 있지만 의료계의 하나님나라는 세가지 요소가 있는 것같습니다. 제일 중요한 하나는 하나님이 치료자이신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잘아는 바와 같이 진정한 치료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부분은 하나님도움이 없이도 의사가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이 되지만 약을 발견 혹은 발명한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항생제의 발견을 비롯한 의학 발전의 중요한 전기는 세상시각에서 보면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지만 우리는 이것이 하나님의 긍휼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가장 간단한 감기조차 아직 사람의 힘으로 치료할 수 있다고 우리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감기는 치료약이 없기 때문입니다. 간단한 급성 충수염 수술조차 사람이 모두 치료하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라곤 단지 염증이 생긴 충수돌기를 제거하는 것일 뿐 자른 자리가 아무는 것을 비롯한 중요한 치료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가 치료하지 못하는 간단한 감기부터 제가 한국에 있을 때 관여했던 간이식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매일 대하는 환자를 보며 하나님이 치료자이신 것을 인정하고 겸손히 그분의 도우심을 기도하며 환자를 대하고 치료하는 일이 진정으로 중요한 일이고 이러한 일이 의료계에 하나님나라가 임하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다른 한 요소는 의료계의 하나님나라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은 받은 귀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모든 사람은 귀하게 지음을 받았고 하나님의 시각에서 보면 동일하게 중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환자들을 그분들의 교양의 정도에 따라, 교육의 정도에 따라 경제적인 수입의 정도에 따라, 인종에 따라, 사회적인 지위에 따라 차별해서 치료를 하기도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환자를 사람으로 대하지 아니하고 질환으로 여기는 경우도 있고 어떠한 경우는 사람으로 여기기 보다는 나에게 경제적인 이득을 주는 사람이 아닌 어떠한 것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다른 의료계의 하늘나라의 중요한 요소는 긍휼을 가지고 환자를 보는 것입니다. 단지 인격적인 존재로 보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픈 분들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그분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긍휼의 마음으로 바라보고 치료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 의사는 하나님나라가 이 땅 가운데 임하게 하는 의사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 의사는 하나님이 만물의 주인이심을 인정하고 그분의 권위아래 복종하는 분입니다. 하나님나라가 이땅의 의료계가운데 임하도록 하는 의사는 하나님만이 우리의 영혼과 마음과 육체 모두를 치료하실 수 있는 치료자 이신 것을 인정하고 자신을 치료자의 위치에 놓지 아니하고 그분을 진정한 치료자로 간단한 감기서부터 그분의 도우심을 구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삶에서 모든 환자들을 귀한 사람으로 환자분들의 외적인 상황에 의해 차별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으신 귀한 사람으로 여기고 긍휼을 가지 환자를 이해하고 치료하는 사람입니다. 이러할 때 하나님나라가 우리의 일터에 임할 것이고 이러한 생활이 빛과 소금으로 사는 일이며 또한 세상을 제자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선교의 장소
과거에 선교사님들은 선교지에 나올 때 수개월이상 어떤 경우는 수년에 걸쳐 배를 타고 선교지에 나오는 경우가 일반적이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분들은 선교지에 나오기 전에 배에서 돌아가신 분도 계시고 어떤 분은 선교지에 발을 디디기도 전에 사고로 사망을 하신 분들도 계십니다.
현재는 인터넷과 교통의 발달로 언제든지 본국의 여러분들과 연락을 할 수 있으며 목소리를 들으면서 교제를 나눌 수도 있고 또 보고 싶을 땐 적어도 3일 이내면 세계 어디서나 모국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제는 안식년이 아니더라도 휴가를 본국의 친지들과 보내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이제는 선교사가 선교지에 있지만 선교사와 교제하는 교제 권으로 인한 영향력은 선교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한국의 의과대학에 근무할 당시에 제가 만나던 교제 권의 사람들보다 이곳에서 이메일로 교제하는 사람들의 더 많습니다.
제가 이곳으로 들어오기전 한국의 의료계에 대해 생각해보면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자꾸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곳으로 오기전에 한국에서 집으로 차를 몰고 오는 길에 하나님께 물어보았습니다. 하나님 한국에도 할 일이 많은데 왜 제가 굳이 그곳에 가야 하나요. 하나님 저는 K국을 사랑하지만 사실 한국을 더 사랑합니다. 그 때 하나님이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남선아 걱정하지 말아, 네가 그곳에 있더라도 너의 영향력의 50%이상은 한국의 의료계에 있단다. 계속 해서 너를 통해 한국의 의료계를 변화 시킬 거야. 저는 어떻게 나를 통해 한국의 의료계가 변화될 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이곳에 있어도 제기도의 50%는 한국의 의료계를 위한 기도입니다. 왜냐하면 저의 사역의 50%는 한국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선교의 장소도 자신이 있는 곳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곳에 사는 외국인 선교사들에게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선교에서 하나님의 복음이 들어가기 힘들게 하는 제일 중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아세요? 우리들의 조국의 도덕적인 해이와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우리의 선교의 50%는 우리의 조국이 되어야 합니다
선교사는 아주 쉬운 직업입니다. 사회 경제적인 환경은 본국보다 못하지만 주변에 아름다운 동료 선교사들이 있어 주님안에서의 교제가 가능하고 보고 배울 수 있는 아름답고 성숙된 선배 선교사들이 있기 때문이고 제일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있는 시간이 훨씬 많아서 입니다. 오히려 힘든 일은 한국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주변을 변화시키며 주변에 영향을 주는 삶을 사는 것이고 이것이 우리나라를 변화시키는 것이고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가서 제자 삼으라
사도행전 2장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이 말씀은 항상 우리에게 부담을 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나는 선교사로 나가야만 하나님 일을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종종 구절은 우리가 잘못 해석하는 구절이기도 합니다. 성경에서는 확실하게 증인이 되는 것은 오직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셔야만 가능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증인으로 삶을 사는 것은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경은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증인이 (저절로)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다시 말해 성령에 이끌리어 사는 사람은 자신이 되고 싶지 않아도, 자신이 의도하지 않아도 저절로 증인의 삶을 살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증인으로서 혹은 선교사로서 사는 삶은 우리의 노력에 의해 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자기도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 다른 사람을 제자 삼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선교지에 와서 느끼는 것은 다시 강조하지만 제자 삼는 일은 말에 있지 아니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은 그분들이 하는 말에만 있지 아니합니다. 어떤 분의 말을 들을 수 있지만 그분의 말이 나에게 와서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그분이 말한 대로 사시는 모습을 우리가 볼 때만 가능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삶을 12명의 제자에게 모두 보이셨고 그분이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사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들을 기억하는 것은 그분이 말한 것이 아니라 그분이 행동한 것입니다. 종종 말로만 제자를 삼을 때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는 일이 있습니다. 저는 전혀 말을 하지 않고도 주님 안에서 주님을 의뢰하는 삶을 사는 것을 보여주는 것 만으로 제자를 삶은 사람들의 예를 많이 보아왔습니다. 중국에서 있었던 서양선교사의 이야기 입니다 이분은 나이가 많아서 중국말을 배우는 것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간신히 생활하는 말은 하였지만 전도를 하거나 양육할 수 있는 정도의 말은 한마디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분은 현지인 마을에서 수년간 생활을 하였지만 한분도 전도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너무 실망한 마음과 자괴감으로 본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분의 뒤를 이어 다른 선교사님이 이 마을에 들어갔습니다. 이분은 열심히 중국어를 배워서 아주 잘하게 되었습니다. 이분이 예수님에 대해 전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당신이 이야기하는 예수님이 저희도 정말 계시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당신 말이 정말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말한 예수라는 분이 우리마을에 살았었거든요 그런데 정말 안타깝게도 본인의 나라로 돌아갔습니다. 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어쩌면 제자 삼는 일은 우리의 삶을 보여주며 혹시 필요한 경우에 말을 할 수도 있는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삶을 보여주시며 12사람의 제자중에 11분을 제자삼는데 성공하셨고 이분들을 통해 세상을 변화 시키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해 한사람의 제자를 얻을 수있다면 선교지에서 아니 우리의 삶의현장에서 아주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감히 이야기 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결론
우리는 하나님께 열매를 드려야 합니다. 저도 하나님께 제가 하나님앞에 섰을 때 제가 맺은 아름다운 열매들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분 앞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싶습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제가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해서 이 열매들을 맺었습니다. 정말 당신께 제가 저의 삶을 통해 마련한 이 열매를 선물로 드리고 싶습니다. 제 선물입니다.
저는 이 열매의 선물이 전도자의 명단이나 제가 세운 교회 만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제가 정말 하나님께 드리고 싶은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자비와 양선과 온유와 절제와 충성과 화평과 오래 참음의 성령의 열매인 저의 성품입니다.
우리가 선교지에서 아니 엄밀히 이야기하면 우리의 일터에서 우리가 얻게 되는 혹은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게 되는 사람은 우리가 말로 전한 복음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 분안에 거하게 되면서 나오는 우리의 향기의 의해서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러한 일들은 선교지뿐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온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이 우리가 버린 우리의 일터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선교사입니다. 선교지는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곳 뿐아니라 우리의 일터도 아주 중요한 선교지 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일터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중 하나님께서 좀 멀리이사가라고 이야기하시는 음성을 들은 사람이 하나님을 모르는 분들이 조금 더 많은 외국으로 조금 멀리 이사를 간 다면 이분을 우리가 말하는 좁은 의미의 선교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와 집사람과 윤기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우리가 이곳에서 하는 일은 이상하게 들리실 지 모르겠지만 그냥 좋은 그리스도인 의사로, 남편으로 아내로 아들로 이분들의 친구로 그냥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