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에너지 없이는 살 수 없다


에너지가 없으면 인류문명은 유지될 수 없다. 특히 현대문명은 에너지 중독에 가깝다. 에너지가 투여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현대 문명이다. 뉴욕에서 정전사태가 발생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생각해보라. 한 번은 야간에 시 전체가 약탈의 무법천지로 탈바꿈했고, 낮에는 모든 업무가 중단되고 사람들이 건물을 탈출해 거리로 쏟아져나오는 사태가 벌어졌다. 마약을 빼앗긴 마약중독자가 금단현상으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것처럼 사회 전체가 휘청거렸던 것이다.

대도시에서 정전이 일어나면 조명을 담당하는 전선망,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통신망, 전철, 전차, 비행기 같은 교통망이 모두 맥없이 무너져버린다. 말단을 구성하는 모든 개별 장치들도 쓰레기 더미로 변해버린다. 컴퓨터, 라디오, 텔레비전, 전화기가 모두 전기가 다시 공급될 때까지 고철로 바뀌는 것이다. 세계 제국 미국의 중심부 뉴욕도 정전 앞에서는 이렇게 속수무책이었다.

1977년 7월 13일 뉴욕에는 25 시간 동안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밤이 되자 시는 암흑천지로 변했고, 캄캄한 밤을 이용해서 사람들은 상점과 건물을 무차별적으로 약탈했다. 시 전체가 극심한 혼란에 휩싸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2003년 8월 15일에도 뉴욕은 정전에 휩싸였다. 지하철, 전차, 전화 그리고 세 개의 공항이 완전히 마비되었고, 고층건물의 기능이 마비되었다. 사람들은 지하철이나 엘리베이터 속에 수시간씩 갇혀 있어야 했고, 유선전화가 불통되어 무선전화 통화가 폭주하는 바람에 무선전화망도 마비되었다. 통신이 두절된 것이다. 신호등도 모두 꺼졌는데, 도로에는 귀가 차량이 몰려들어 극심한 혼잡을 빚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건물로부터 쏟아져나와 거리를 메웠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건물에서는 업무를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들이 거리로 나온 이유는 집에 가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전기가 나간 고층건물에 머무르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던 것이다. 창문도 없고 환기능력도 사라진 밀폐된 찜통 공간에서 어느 누가 오래 견딜 수 있겠는가?

2001년 1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도 2차대전 후 처음으로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했다.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 같은 대도시는 물론, 최고의 두뇌와 최고의 육체가 몰려있다는 실리콘 밸리와 헐리우드에서도 불이 나갔다. 정전은 캘리포니아의 모든 분야를 혼란에 빠뜨렸다. 실리콘 밸리에서는 첨단 기기들이 갑작스런 정전으로 고장나거나 생산을 못하는 바람에, 한시간에 수천억원의 돈이 공중으로 증발했다. 현금자동출금기와 신용카드 단말기가 정지했고, 상거래가 뒤죽박죽이 되었다. 야간대학에서는 촛불을 켠 채 강의를 듣고 시험을 보는 웃지못할 일도 발생했다. 냉장시설이 정지된 채소 도매시장에는 짓무른 채소들이 넘쳐났고, 낙농업자들은 뜨거운 냉장고 속에서 썩어가는 우유를 버리느라 정신을 못차렸다. 2003년 가을에는 한국에서도 꽤 큰 규모의 정전사태가 벌어졌다. 태풍 매미가 휩쓸고 지나간 거제도에서는 며칠 동안 전기 없이 지내야 했다. 업무가 중단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고층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생활 자체가 고역이었다. 물도 안나오고, 엘리베이터도 움직이지 않는 20층짜리 아파트에서 사는 일을 상상해보라. 밥을 해먹고, 세수하고, 용변보고, 지상으로 내려갔다 올라오는 일이 대단한 과업을 수행하는 일보다 더 어렵지 않겠는가? 이런 일이 만일 겨울에 일어났다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꽁꽁 얼어붙은 아파트에서 극심한 고생을 해야만 했을 것이다.

에너지가 이토록 중요하지만 인류가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 이용하는 자원은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가 얻는 에너지는 대부분 석유, 천연가스, 석탄, 우라늄으로부터 나온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처럼 에너지를 쓰면 석유는 40년, 천연가스는 60년 쯤 지나면 없어진다. 석탄은 200년 가까이 쓸 것이 남아 있지만, 편리하게 쓸 수도 없고 오염물질을 너무 많이 내놓는다. 우라늄의 핵을 분열시켜서 얻는 원자력도 화석연료와 다를 바 없다. 한국에는 아직도 원자력을 구세주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우라늄도 50년 정도 지나면 고갈되고 만다. 이에 반해서 인류의 에너지 소비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1990년에 인류가 소비한 에너지의 양은 1971년과 비교할 때 60%나 늘어났다. 이런 추세는 앞으로도 계속되어 2010년에는 1990년에 비해서 50%, 2020년에는 80% 가까이 늘어날 것이다. 한국의 에너지 소비는 세계 평균보다 훨씬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1991년부터 2001년까지 10년 동안 세계의 에너지 소비는 15% 가량 증가했다. 반면에 한국은 200%나 늘어났다. 증가 속도가 세계평균보다 14배나 빨랐던 것이다. 앞으로 20년은 이러한 증가 추세가 계속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늘어나는 에너지를 앞으로도 큰 어려움 없이 얻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