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석유가 줄어든다


에너지 자원은 점점 줄어드는데, 에너지 소비가 자꾸 늘어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에너지 부족 사태가 닥치리라는 것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다. 40년 쓸 것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하는 석유가 가장 먼저 모자라게 될 것이고, 이로 인한 고통을 견디는 일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닐 것이다. 자가용을 굴리는 것이 너무 비싸질 것이고, 대중교통 요금도 크게 오를 것이고, 추운 겨울에 불때는 일도 마음대로 안될 것이다. 사실 인류는 석유로부터 가장 많은 에너지를 얻는다. 석유는 전세계 에너지의 35% 가량을 공급한다. 인류문명은 석유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석유가 여러 에너지 자원 중에서 가장 먼저 바닥난다. 그러니 우리가 아무 대비도 하지 않고 있으면, 석유 부족으로 인해서 닥치는 고통스러운 시기를 맞게 되는 것이다.

석유가 없어진다고 해서 땅속에서 올라오던 석유가 갑자기 끊어지는 것은 아니다. 석유는 19세기 말경부터 사용되기 시작했고, 그후 소비가 늘어남에 따라 생산량도 서서히 늘어왔다. 마찬가지로 석유 생산도 갑자기 끊어지는 것이 아니다. 생산량의 감소도 서서히 이루어진다. 석유 생산량이 증가할 때와 감소할 때가 있다면, 증가와 감소를 갈라주는 지점이 있을 것이다.이 지점이 석유가 가장 많이 생산될 때이다. 석유 생산량은 이 지점을 지나면 감소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생산량의 변화를 그래프로 나타내면 종모양 곡선이 된다. 그런데 석유 생산이 종의 정점을 지나면서부터는 생산되는 석유가 늘어나는 석유 소비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말할것도 없이 인류 문명은 이때부터 어려움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석유 가격은 치솟을 것이고,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인 석유를 차지하기 위해서 각 나라들은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이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국가들 간의 커다란 갈등과 분쟁이 일어날 것이다.

그렇다면 석유 생산량이 최대값에 도달하는 시점은 언제 쯤일까? 그 시점은 지금까지 인류가 쓴 석유의 양과 땅속에 남아 있는 양이 똑같아질 때이다. 그러니까 전체 석유 매장량 중에서 절반이 없어진 시점이 되는 것이다. 석유의 매장량은 지금까지 발견된 석유의 양을 추적해서 만든 그래프를 가지고 계산할 수 있다. 이 그래프도 전체적으로 종모양 곡선을 그린다. 석유탐사 초기에는 작은 유전들이 발견된다. 시간이 지나면 점점 거대한 유전들이 집중적으로 발견되고 발견량이 최대에 도달한다. 그 다음에는 유전의 크기와 발견량이 서서히 줄어들어가는 것이 석유발견이 그리는 곡선이다.



ASPO 2004 시나리오


물론 아직 발견되지 않은 유전도 있다. 그러므로 석유의 전체 매장량은 지금까지 발견된 유전과 앞으로 발견될 유전의 매장량을 모두 더한 것이다. 석유 지질학자들은 이 양이 대체로 2조 1천억 배럴 정도 될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니까 인류가 써버린 석유의 양이 1조 500억 배럴이 되면 석유 생산량은 최대값에 도달하고, 그때부터는 생산량이 줄어드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석유가격이 올라가면 지금은 비용이 많이 들어서 캐내지 못하거나 발견 못하는 석유가 나타날 것이고, 이에 따라 석유의 매장량도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석유는 중생대의 특정 시기에 생성된 것으로, 땅 속에 한정된 양만 묻혀 있을 뿐이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늘릴 수 없는 것이다.

석유의 발견량은 이미 1960년대에 최대값에 도달했다. 지금도 석유탐사는 계속되고 유전도 발견되지만, 이들 유전의 크기는 1960년대에 발견된 커다란 유전에 비하면 아주 작다. 1960년대에는 해마다 발견되는 석유의 양이 400억 배럴이나 되었다. 이에 비해서 지금은 일년에 60-70억 배럴밖에 발견되지 않는다. 미국에서 일년에 소비하는 석유의 양이 72억 배럴인데, 여기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해가 갈수록 발견되는 석유의 양은 크게 줄어들어 가지만 전세계의 석유 소비량은 급속하게 증가하여, 1980년 경부터는 석유의 발견량이 전세계의 석유 소비량을 따라가지 못하게 되었다.

19세기 말부터 2003년까지 생산된 석유의 양은 모두 1조 배럴 가까이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매장량이 2조1000억 배럴이므로 2003년 현재 매장되어 있는 석유의 양은 1조1000억 배럴 쯤 된다. 거의 절반 가까운 양을 퍼낸 셈이니, 인류는 석유 생산이 최대값에 도달하는 시점, 그리고 동시에 석유 생산이 줄어드는 시점에 가까이 다가와 있는 것이다. 석유자원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계산한 바에 따르면 이 시점은 2010년 즈음에 닥치리라고 한다. 그 다음부터는 석유 생산량이 줄어드는데, 매년 2-3%씩 감소한다.

석유는 생산량이 2%만 감소해도 가격이 크게 올라간다. 국제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산유량을 감소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면, 이들 국가 전체에서 생산하는 석유의 양은 하루 100만 배럴에서 200만 배럴 정도 줄어든다. 전세계에서 하루에 생산되는 석유의 양이 7500만 배럴이니 100만 배럴이면 1.4%, 200만 배럴이면 2.8%밖에 안된다. 그런데도 OPEC에서 산유량을 줄인다는 결정을 내리면 국제 석유가격은 즉각 올라간다. 2000년에 OPEC에서 산유량을 200만 배럴 정도 줄이겠다고 발표했을 때는 1배럴에 18달러였던 석유가격이 한달 만에 35달러로 뛰었다. 그런데 석유 생산량이 최대값에 도달한 후에 정말 해마다 2-3%씩 줄어든다고 생각해보자. 석유는 점점 더 모자라게 되고, 석유를 차지하려는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일 터인데, 석유가격이 끝없이 올라갈 것은 자명한 일이다. 석유가 모자라면 천연가스를 쓰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가스도 사정이 석유와 크게 다르지 않다. 땅 속에 묻혀있고, 석유와 마찬가지로 생산량이 늘어나다가 최대값에 도달하면 감소하기 시작한다. 더군다나 가스는 석유가 끈적끈적하고 무거운 액체상태인 데 비해 아주 가벼운 기체이기 때문에, 생산량이 감소 추세로 돌아서면 그 속도가 석유의 경우보다 훨씬 빠르다. 물론 가스는 석유보다 더 오래 쓸 것이 남아있으므로 석유 부족분을 얼마 동안은 채워줄 수 있다. 그러나 가스가 채워줄 수 있는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그후에는 가스도 급격히 줄어든다. 오히려 가스만 믿고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가는 더 심각한 에너지 위기를 맞을 수 있다. 더 큰 재난을 맞게 되는 것이다.

메탄 하이드레이트(메탄 수화물)라는 고체로 된 메탄가스가 깊은 바다에 대단히 많이 묻혀 있는데, 이것을 캐내서 쓰면 에너지 걱정은 안해도 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메탄 하이드레이트가 꽤 많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도 인류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해줄 정도로 많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 바다 깊숙한 곳에서 캐내는 일도 쉽지 않다. 그뿐 아니라 고체상태로 바다물 속에 꽁꽁 묶여 있는 메탄가스를 섣불리 캐낸다고 잘못 건드렸다가는 대기 중으로 많은 양의 메탄가스가 방출될 가능성도 있다. 메탄가스는 이산화탄소보다 수십배나 더 강한 온실가스인데, 이렇게 되면 기후변화가 더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