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를 둘러싼 전쟁: 부시의 이라크 침공


석유는 인류문명의 혈액 역할을 하지만 고갈될 운명이기 때문에, 이것들을 확보하려는 경쟁이나 음모는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전쟁도 많이 일어났다. 러시아가 인구가 수백만도 안되는 체첸을 놓아주지 않는 이유는 카스피해의 석유 때문이다. 카스피해에서 생산되는 석유가 러시아로 가려면 체첸을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체첸의 수도 그로즈니 한가운데로 송유관이 지나가기 때문이다. 그러니 체첸이 독립하면 러시아는 자기네 석유 수송로의 길목을 적대국에게 점령당하는 셈이니, 러시아로서는 체첸의 독립이란 결코 허용할 수 없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도 카스피해 석유와 가스를 파키스탄과 인도양으로 수송하려 할 때 통로 역할을 하는 요충지이다. 미국이 탈레반과 빈 라덴을 소탕한다는 명목을 내걸고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한 중요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아프가니스탄은 미국 석유회사들이 카스피해 석유를 인도양으로 수송할 수 있는 안전한 통로 구실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원래 탈레반은 반군 시절에 미국 석유회사의 지원을 크게 받았다. 그 대가로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안에 가스 파이프라인을 건설할 수 있는 권리를 미국 회사에게 주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정권을 잡고 난 후 탈레반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미국과 탈레반, 미국 석유회사와 탈레반 사이의 갈등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9.11 테러 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다음에 아프가니스탄의 대통령이 된 카르자이는 그곳에서 활동하던 유노칼이라는 미국 석유회사에서 자문역으로 일하던 사람이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것도 석유를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미국 정부는 이라크 침공 이유를 대량살상무기로 세계평화를 위협하는 후세인을 제거하고 이라크 국민을 해방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없다는 것은 분명하게 밝혀졌다. 미국이 노렸던 것은 바로 이라크의 석유였던 것이다. 미국의 석유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기에, 또는 석유사업이 얼마나 남는 장사이기에 부시와 그의 측근들이 인적, 물적으로 막대한 대가를 치르면서 이라크를 장악하려 했을까?



중앙아시아의 석유,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 http://worldpress.org/specials/pp/front.htm


2003년 현재 미국에서 하루에 소비하는 석유의 양은 약 2천만 배럴이다. 1년이면 72억 배럴이 된다. 그 중에서 40%도 안되는 28억 배럴이 미국 내에서 생산되는 석유로 충당되고, 나머지 60% 이상은 외국에서 들어온다. 연간 44억 배럴을 수입하는 것이다. 전세계에서 일년에 생산되는 석유는 270억 배럴이다. 미국이 세계 석유 생산량의 25%를 소비하고, 15%를 수입하는 셈이다. 이렇게 많은 석유를 수입하는 이유는, 미국의 산유량은 해마다 감소하는 반면에 미국의 석유 소비는 점점 늘어가기 때문이다. 미국의 석유소비는 지난 10년간 17%나 증가했다. 미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석유를 쓰고 있지만, 그들의 석유 갈증은 아직도 채워지지 않은 것이다.

미국이 그렇게 석유를 많이 수입하는 데는 다른 이유도 있겠지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사실 많은 사람이 미국땅에 석유가 풍부하다는 소문을 믿는다. 이들은 미국에서 석유를 수입하는 이유가 자기네 것은 남겨 두었다가 나중에 사태가 심각해졌을 때 꺼내쓰기 위해서라는 소문의 내용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미국 땅 속에는 정말 얼마나 많은 석유가 묻혀있을까? 소문이 믿을 만하다면 미국인들이 수십년 이상 쓸 수 있는 많은 양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질분석 자료들은 유감스럽게도 소문이 거의 신빙성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의 유전은 알래스카와 멕시코만 유전을 제외하면 대부분 20세기 초부터 석유를 쏟아낸 노쇠한 것들이다. 이들 유전 속에는 석유가 얼마 남아 있지 않다. 거기에서 퍼올려지는 석유의 양은 1970년에 최대값에 도달했다. 그 후로는 지금까지 계속 감소 중이다. 1991년부터 2001년까지 10년 동안만 보면 전체 산유량은 33억배럴에서 28억 배럴로 15%나 감소했다. 물론 새로운 유전도 발견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유전을 통해서 보충되는 석유는 감소분을 채우기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당연히 수입이 꾸준히 늘어났고, 수입석유의 비중이 전체 소비의 60%를 넘었다. 이런 추세면, 앞으로 수요가 더 이상 늘지 않는다 해도 2020년이 되면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90%를 넘게 된다. 필요한 석유의 10분의 9를 외국에서 들여와야 한다는 사실 앞에서 미국 지배층의 마음이 편안할까?



미국 석유생산곡선




미국 석유수입 곡선


미국에서 앞으로 퍼낼 수 있는 석유의 양, 즉 석유 매장량은 얼마나 될까? 석유 전문가들은 300억 배럴 쯤 될 것으로 추정한다. 300억 배럴은 물론 꽤 많은 양이다. 한국에서 일년에 소비하는 8억 배럴과 비교하면 40년은 쓸 수 있는 양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일년동안 소비하는 72억 배럴로 나누면 4-5년만 지나면 없어지는 양이다. 그렇다면 미국 내에서 생산되는 석유는 앞으로 더욱 줄어들 것이다. 반면에 미국의 석유 소비량은 감소하지 않는다. 석유는 미국사회를 유지하는 교통 네트워크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교통량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당연히 필요한 석유의 절대량도 계속 증가한다. 미국은 석유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 무언가 행동을 개시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면 미국이 침공한 이라크에는 석유가 얼마나 묻혀 있을까? 영국석유(BP)는 이곳에서 퍼올릴 수 있는 석유의 양이 1100억 배럴 가량 될 것으로 추정한다. 전세계에서 퍼낼 수 있는 석유의 양이 1조 1000억 배럴 정도니까 이라크에 10% 이상 묻혀 있는 셈이다. 그것도 대부분 질이 좋고 아주 쉽게 퍼올릴 수 있는 것이라는데, 미국이 눈독을 들이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1100억 배럴이면 미국 매장량의 4배이고, 연간 소비량의 15배이다. 미국으로서는 이라크 석유만 확보하면 20년 가량은 석유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 이 정도의 이득이 돌아오는데, 후세인도 제거하고 석유도 얻을 수 있는 이라크 침공을 부시와 그 측근들이 마다할 리 없다. 더욱이 미국 석유의 15% 가량을 공급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내정세가 불안한 마당에, 이라크를 확실하게 점령하는 것은 미국으로서는 정말 긴급한 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