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백성으로서의 구별된 삶(신14:1-29)

by 무익한 종 posted Sep 21,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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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onacom.or.kr/sermon/2003_9_21_2.mp3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니"(1).
이스라엘이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할 이유이다. 즉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성별한 민족이자 그 분의 자녀이니,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을 따라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레11: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14장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거룩하고 구별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주시는 규례를 기록한 것이다.

1. 자해 행위 금지(1)

"죽은 자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베지 말며"(레19:28 "죽은 자를 위하여 너희는 살을 베지 말며 몸에 무늬를 놓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  
죽은 자를 위해 자기 몸을 자해하던행위는 고대 이방인들의 고행적인 풍습이었다. 즉 당시 이교도들은 장례식 때 죽은 자의 넋을 위로하고 음부의 신들을 달래기 위해 자기 몸에 상처를 내고 피를 흘리는 자해 행위를 자행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이방 우상 종교의 그릇된 고행주의(苦行主義), 곧 자학과 고행을 통해서 자신들의 섬기는 신의 마음을 움직이며, 그리하여 동정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미신적인 행위였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로 거룩히 구별받은 이스라엘은 결단코 그러한 우상 숭배적인 이방인들의 장례 풍습을 본받지 말아야 했다.

"눈썹 사이 이마 위의 털을 밀지 말라"
히브리인들은 관습상 머리털을 밀지 않았다. 그렇지만 예외적으로 하나님의 심판과 조국의 멸망 등에 임해서는 머리털을 깍음으로서 종교적인 애도와 통회를 나타내었는데, 그것은 어디가지나 상징적인 행위였을 뿐이다(사15:2,렘16:6).
  그러므로 본절의 의미는 죽은 자에 대한 합당한 애도 외에는 지나친 호상 행위를 하지 말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한편 본절은 진정 생의 궁극적 소망과 가치를 하나님께 둔 자는 비록 사랑하는 부모 형제 친척의 상을 당했다 할지라도 결코 극단적인 좌절상태에 빠져들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교훈해 주고 있다. 왜냐하면 성도에 있어서 죽음이란 도리어 이 땅에서의 수고로운 삶을 끝내고 하나님 나라에서 안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살전4:13-18).

결국 이 자해 행위를 금지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이방의 우상들 앞에서 행하던 이방의 관습과 풍습을 따르지 말 것을 말씀해 주고 있다.

또한 자해 행위를 금해야 할 것은 성도는 그리스도께서 값주고 사신 그 분의 지체란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고전12:27). 따라서 우리는 자신의 몸을 사사로이 다룰 수 없다. 몸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다.
  고전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눙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2. 성민의 근거(2)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하여 자기의 기업의 백성을 삼으셨느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거룩한 기업의 백성이 된 것은 그들에게 어떠한 자격이나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신7:7), 전적으로 하나님이 당신의 기쁘신 뜻을 좇아 그들을 만민 중에서 구별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뜻을 따라 구원의 은혜를 입은 성도들도 예외일 수는 없다.
엡1:4-5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부름 받았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롬8: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3. 음식 규정(3-21)

이미 레11장에서 자세히 언급한 바 있는 음식의 정(淨). 부정(不淨)에 관한 규례이다.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소중한 몸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식생활에 있어서조차 이방인들과는 달리 성결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서 크게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크게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1) 짐승(포유류)(3-8절) :
* <정결한 동물 (4-6)> - 2가지 필수 조건 [ 1)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된 것, 2) 새김질 하는 것(반추동물)] 예> 소, 양, 염소, 사슴, 노루 등.

* <부정한 동물 (7-8)> - 모든 육식 동물 및 2가지 정결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지 않은 동물들.
예> 1)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않은 것 - 약대, 사반(바위 너구리), 토끼 등.
2) 굽은 갈라져 쪽발이지만 새김질을 하지 않는 것 - 돼지.
(2) 물고기(어류)(9-10) :
* <정결한 동물 (9)> - 1) 지느러미가 있는 것, 2) 비늘이 있는 것.
* <부정한 동물 (10)> - 2가지 정결한 조건 중 한 가지 만이라도 결한 것들.

(3) 날짐승(조류)(11-20) :
* <정결한 동물 (11)> - 구체적인 기준이 언급디어 있지 않음(금지된 것이 아닌 모든 것).
  * <부정한 동물 (12-20)> - 맹금류, 혹은 썩은 고기를 먹는 새. 예> 독수리, 솔개, 어응(흰꼬리수리), 매의종류, 까마귀 종류, 타조, 다호마스(올빼미 또는 밤매), 갈매기, 올빼미, 부엉이, 따오기, 당아(사다새), 올응(새끼 독수리), 노자(가마우지), 학, 황새 종류, 대승(오디새 또는 댕기물떼새), 박쥐(실상은 포유 동물이나 고대인들은 조률 분류) 등.

(4) 곤충류(레11:21-22)
* <정결한 것> -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다니되 발에 뛰는 다리가 있는 것. 예> 메뚜기, 베짱이, 기뚜라미 등.
  * <부정한 것>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다니되 발에 뛰는 다리가 없는 것들(레11:20,23).

(5) 땅에 기는 것들(파행류)(레11:29-30)
* <정결한 것> - 없음
* <부정한 것> - 땅에 기는 것, 배로 밀고 다니는 것, 네 발로 기는 것, 여러 개의 발을 가진 것(레11:29-30). 예> 족제비, 쥐 도마뱀, 악어 등.

(6) 죽은 짐승의 고기는 먹어서는 안된다(21).
여기서는 우선 죽기 전에 피가 쏟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며 또 위생적인 측면의 고려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규정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적용되는 것이고 성안에 사는 객이나 이방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7) 염소 새끼를 어미 젖에 삶지 말지니라(21).
이교도의 관습에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에 삶음으로써 풍작을 기원하는 주술적 풍습이 있었다. 이는 생명의 공급원인 어미의 젖에다가 새끼를 삶음으로써 생명의 존엄성을 경멸하는 지독히 야만적인 풍습으로써 이스라엘이 결코 답습해서는 안될 것이다(출23:19).

<정결 음식 규례를 주신 목적>
첫째, 위생상의 이유 : 돼지나 죽은 고기를 파먹는 날짐승을 금지한 것은 위생적인 이유일 것이다.
둘째, 이방종교의 상징인 동물 : 뱀은 풍요의 여신과 관련되었기에 금지. 매는 이집트에서 숭상하는 새였다. 박쥐는 어두운 동굴이나 무덤 벽에 살기 때문에 신비한 새로 보기도 했다. 이방(특히 가나안) 제의와 구별짖기 위한 방안으로 채택되었을 것이다.
세째,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유는이방 풍습(문화)에 물들지 않고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게 하려는데 있었다(성별된 생활을 하기 위한 수단).  
아마도 혐오식품, 미신적 요소, 또는 질병을 야기시키는 음식등은 피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성민이 된 것은 그들이 무엇을 먹고 안먹고에 달린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계명에 충실하며 순종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음식 규정을 지킴으로 이방인들과 완전히 구별된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즉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구분하는 것이 곧 하나님 백성의 표시가 되는 것이다.

신약시대(기독교)에 와서 이 법은 폐지 되었다.
예> 예수님은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그를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더럽힌다고 말씀했던 것이다(막7:15).
예> 베드로가 속되고 깨끗하지 않은 물건을 먹지 않겠다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사람이 속되다 하지 말라는 음성이 그에게 임했던 것이다(행10:15).

그러나 오늘날에도 그 정신과 목적은 살아있어야 한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구별되고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한다.

4. 십일조 규례(22-29)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구별된 삶을 위한 정결 규례에 관해 언급한 모세는 이제 백성들의 종교적 의무에 해당하는 십일조에 관해 언급한다.
물론 십일조 규례는 이미 레27:30-34, 민18:21-32에서 언급하였다.
그러나 본문은 그 가운데서도 일명 제2. 3의 십일조라 불리우는 십일조에 대한 규례이다.

성경에 나타난 십일조는 크게 세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그 첫번째는 레위인과 제사장의 생계를 유지하는 데 사용하였다. 이 십일조는 한 해의 추수가 끝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소득 중 십분의 일을 기업이 없는 레위 지파에게 떼어 주는 것으로서(민18:21-24), 이때 레위인은 다시 그 십일조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거제로 바쳐야 했는데, 이것은 제사장들의 몫이 되었다(민18:26-29). 이것을 소위 '제1의 십일조'라고 한다.

두번째는 축제와 감사의 잔치에 사용된 십일조이다. 이 십일조는 첫째 십일조를 바친 백성들이 그 나머지 소출 가운데서(9/10) 다시 1/10을 구별하여 드리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들이 직접 중앙 성소로 가지고 올라가는데, 한 해 동안 풍성한 축복을 내려 주신 하나님께 감사 축제를 드리는 비용으로 사용되었다(12:5-19). 이 때 중앙 성소가 너무 멀면, 현물 대신 일단 현금으로 바꾸어 가지고 갔다가 성소 근처에서 다시 잔치에 필요한 예물들을 구입할 수 있었다(24-26절). 이것이 '제 2의 십일조'이다.

세번째는 안식년(제 7년째인 이때에는 토지를 경작하지 않기 때문에 십일조를 바치지 않았다)을 기준으로 제3년과 제6년째에는 위의 '둘째 십일조'로 잔치를 베푸는 대신 각 처소에서 그 비용을 다 모아 들여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 나그네, 가난한 자, 고아, 과부 등을 위한 구제비로 사용하였다(28-29절, 26:12). 이것이 '제 3의 십일조'이다.
그런데 이 '세째 십일조'는 따로 구별된 십일조가 아니라, '둘째 십일조'와 동일한 것인데 다만 용도에 있어서 다를 뿐이다. 즉 '둘째 십일조'는 안식년을 기준으로 매 1년과 2년 그리고 4년과 5년째에 쓰는 '감사 축제용'이었고, '셋째 십일조'는 안식년을 기준으로 매3년가 6년째에 쓰는 '이웃 구제용'이었다.

이상에서 우리는 십일조란 근본적으로 1) 우주 만물 모든 것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며, 2) 그분께로부터 받은 바 은혜에 감사하며, 3) 이웃 사랑의 도리를 실천케 하는 규례임을 알았다.
  이러한 십일조의 제도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여 하나님께 대한 은혜를 감사하는 표식으로 여겨지고 있다. 또한 이는 복음 사역자들의 생계를 유지하고 교회를 관리하며 이웃을 구제하는 등 하나님의 일에 귀중하게 사용되고 있다.
  
궁극적으로 십일조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을 다시 돌려드리는 것이다. 다윗은 이 정신을 잘 나타내고 있다.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29:14).

신약에서는 우리를 맡은 재산을 관리하는 청지기로 보고 있다. 청지기는 그가 쓴 모든 것에 대해 주인에게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것에 대한 인정일 뿐만 아니라 그 나머지 조차도 내 것이 아님을 나타내는 것이다.
  특히 말라기 선지자는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라고 했다(말3:8). 또한 십일조는 성도의 본분이자 축복의 창구임도 말씀하였다.
  말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것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그러나 동시에 십일조가 모든 종교적 의무를 다하는 것이 아님도 경고하고 있다.
눅18:9-14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11-12절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나오는 말 : 하나님 앞에서의 거룩한 삶>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 자녀답게 구별된 생활을 하여야 함. 자해행위를 금지하고, 정결 음식 규례를 주고,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결한 삶을 살기 위한 방법이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날마다 거룩하고 성별된 생활을 하여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