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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노래
2003.11.06 23:38

벼 수확

조회 수 2370 추천 수 18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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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을 다른 논들은 벌써 한 주간 전에 수확이 다 끝났는데
유독 우리 논들과 송씨 어르신 논만 타작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드디어 어제, 수요일에 콤바인이 멀리 원평에서 출동하여
벼 타작을 했습니다.
먼저, 송씨 어르신 논을 수확하는데 마을 어르신들 누구도
거들어 주지 않으려고 하셔서 제가 가서 서툰 솜씨로 일은 거들고 있으니
마음 약한 성철이도 와서 도와 주었습니다.
송씨 어르신은 지난번 저수지 사건으로
어르신 땅이 보상을 받을 뻔 했다가 저희가 반대하여
손해를 봤다고 생각하셔서 우리를 싫어하시고
여러가지 이유로 마을 분들과 사이가 좋지 않으시거든요.
이렇게 라도 함께 일을 하니 어르신 마음이 한결 누그러지시는지
농담도 건네시고 고맙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리농법으로 지은 논을 어렵게 다 하고
다음으로 쌀겨로 농사지은 제 논으로 들어갔는데
들어가서 한바퀴 도는 동안에 뒷쪽 웅덩이에 콤바인이 빠지더니
영 나올 생각을 못하는 것이 아닙니까?
급기야 성철이가 포크레인을 끌고와서 어렵게 끌어냈는데
콤바인 주인은 영 못하겠다고 엄살을 뜨셨습니다.
하는 수 없이 한쪽, 땅이 괜찮은 곳만 살살 콤바인으로 작업을 하고는
사람들이 총 출동하여 일일이 낫으로 벼를 배어 냈습니다.
그런데 밤이 늦어지자 이일도 영 어려워
결국 하룻밤을 자고 오늘에야 벼를 다 배어 냈습니다.

논 바닥이 고르지 않아서 모내기 하기 전부터 여러 사람 고생을 시키고
지난 봄에 성철이랑 둘이서 무거운 쌀겨를 뿌리며 애를 먹었는데
급기야 마지막 타작하는 순간까지 애를 먹이는군요.
오늘은 논 주인이신 보안관 할머니를 만났는데
이미 소문을 다 들으셨는지 겸연쩍게 웃으시며 하시는 말이
'그 논이 원래 그려'라고 하시네요
옆에 있던 현기 형은 동네에서 제일 못난이 논을 맡아서
고생이라고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그래도, 벼를 수확하러 왔던 콤바인 주인이
비료 한줌, 농약 한번 하지  않고 기른 벼라고 말하니
입을 딱벌리며 믿지 못하겠다고 하더라구요.
나중에 다 수확하고 빻아서 밥을 해먹어보면
그 진가를 알수 있겠지요.

오늘 맑은 하늘 아래서 무릎까지 빠지는 수렁에서 일일이
낫으로 배고, 자매들까지 나서서 볏단을 마른 땅으로 드러내면서
생명을 얻는 일이 돌보는 일이 거두는 일이
참으로  쉽지 않는 일임을 절감하였습니다.
콤바인 지나간 바퀴 아래 깔려 무참하게 짖이겨진 낱알들을 보며
가슴이 애려왔습니다.

내년에는 더 좋은 농부가 되어 더 잘 가꾸겠노라고
속절없는 다짐만 한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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