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빌린 밭에서

by 무익한 종 posted Apr 24,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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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부터 단호한 어조로 밭을 돌려 달라시던
노씨 아주머니를 달래고 달래서 드디어 올해도 밭을 다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아직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빌리는 사람이 생떼를 써서 밭을 빌리다 보니
아주머니는 밭을 빌려주는 비용인 도지를 터무니없게도
다른 밭들의 배를 요구하셔서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하나 고민하는 중입니다.
그냥 기분 같아서는 확 돌려주고 싶은데 마땅히 사용할 다른 밭도 없고
몇 년 동안 밭에 심혈을 기울인 탓에 토질이 정말 좋아져서
돌려주기가 사실 너무 아까운 밭이기도 하거든요.

며칠에 걸쳐서 틈나는 대로 가서 밭에서 돌을 골라내다가
오늘 저녁에는 드디어 성근 형제님의 도움을 받아
거름을 뿌려둔 밭을 갈았습니다.
내일이면 드디어 두둑을 만들고 멀칭을 할 계획입니다.
트랙터를 따라 다니며 숨겨져 있다가 튀어나오는 돌들을 골라내며
연신 코를 벌름거리며 흙냄새를 맡기도 하고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만져보다가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맛을 봅니다.
오랫동안 사랑을 받은 흙은 어디가 달라도 다릅니다.
사랑을 받으면 변하는 것은 사람만이 아닙니다.
사랑을 받은 흙은 떼알구조라고 서로 사이좋게 손을 맞잡은 모습으로
향기 또한 얼마나 향긋하고 좋은지 모릅니다.
맛을 보면 구수하고 달콤하기까지 합니다.
(물론 내입에만 그렇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주머니는 이 밭이 자기 것이라고 하시지만
이 또한 내 아버지의 밭이니 누구의 이름으로 된 밭이든지
열심히 땅을 만들고 가꾸어 좋은 밭으로 만들어
하나님의 명령하신 대로 선한 열매를 맺는 좋은 땅이 되기를 소망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