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내리는 밤

by 무익한 종 posted May 11,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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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동안의 집회를 인도하고 다시 보은으로 늦은 밤에 돌아왔습니다.
오는 길에는 마주치는 차 한 대도 없이 삼 십분 가량을 달리는 동안
혹시라도 동물들에게 위협을 줄까 조심스럽게 운전을 했습니다.
차를 달리는 동안 맑은 날이면 앞 유리창에는
평화롭게 날아가던 곤충들이 부딪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서 차창에 선혈이 얼룩을 남기게 되면
가슴이 서늘해집니다. 죽어가는 많은 것들에게 많이 미안합니다.
과도한 속도가 애매한 생물들의 진로를 방해할 뿐 아니라
목숨까지도 앗아가니 말입니다.

전에 한 번은 고개를 돌아오다 갑자기 고라니를 만났는데
속도를 줄이면서 전조등을 껐음에도 불구하고
이 얘가 도망가질 않고 제 자리에 우뚝 서 있다가
제 차에 가볍게 부딪힌 적이 있었습니다.
깜짝 놀라서 차를 세우고 내려보니
바로 옆 수풀에 앉아 있었고 다행이 피는 흘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가가 손을 내밀어 등을 만져주니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다가 일어나 제 길로 천천히 사라져갔습니다.
저는 그곳에 그 아이가 멀리까지 갈 때까지 서 있으면서
미안하다...라며 중얼거리다 돌아왔던 적이 있습니다.

사람의 속도, 인류의 속도, 문명의 속도가
얼마나 많은 생명들을 앗아가는지 생각할수록 가슴이 아픕니다.
바쁜 농사철이 시작되면서 논둑이며 밭둑이 노랗게 변해가는 모습 역시
더 많은 것을 얻으려는 수리에 밝은 인간의  손에 의해
자행되는 만행의 결과들입니다.
연초록 보드라운 풀잎사귀들이 제초제에 의해
말라죽어가는 모습들 말입니다.

비가 내리는군요.
일정한 속도로 내리며 땅의 것들과 부딪히며 내는
아름다운 비의 파열음이 주님의 속도일까요?
아니면 오랫동안 가물었던 대지를 적시시는
주님의 손길일까요?
비 소리가 정겹기만 한 늦은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