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모할 만한 것이 하나 없는 내 주님 같은 마을이여

by 무익한 종 posted Jun 02,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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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점심 먹는 시간이면 공용공간은 시끌벅적합니다.
꼭 시골장터 같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 대로 자기들 만의 이야기 꺼리들을 나누며 웃어 대고
어른들은 어른들 대로 각기 재미있는 이야기로,
앉아 있노라면 밥만 먹는 것이 아닙니다.
좁은 공간에 몇 안되는 반찬이지만
웃음도 먹고 기쁨도 먹고 평안도 함께 먹게 됩니다.

요즘 버섯 출하하느라 옥천 농협까지 매일 출퇴근하는
성근 형제가 오늘 신기한 것을 봤다고 눈이 휘둥그래져서 말을 합니다.
자매들까지 다들 귀를 쫑긋 기울이는데
고추밭에 말목을 세우는데 망치로 박는 것이 아니라
그냥 손으로 쑥쑥 꼽고만 다니더라며 너무 신기해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마을 논이나 밭은 온통 돌투성이인지라
같은 고추대를 세워도 망치로도 여간 박지 않으면 제대로 박히지도 않거든요.
다들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는 죽는다고 웃었습니다.

처음, 이곳에 들어와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형제들이 '여기가 아닌게비여' 라며 다들 혀를 끌끌 찼습니다.
산에 둘러쌓여 일조량도 너무짧고 논이라는게 손바닥만해서
우스개 소리로 한 말이었어요.

오늘도 흠모할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는 논과 밭에서
비를 맞으며 일을 했습니다.
논에 들어가서 어기적 어기적 걸어다니며 손으로
풀을 헤집고 다니니 풀도 풀이지만
미꾸라지, 우렁이, 소금쟁이, 거머리 등 이거 뭐 없는게 없습니다.
흠모할 것은 없어도 품은 넓어 그에 기대어 살아가는 것이 참 많습니다.
그러고 보면 저도 이렇게 여기서 살잖아요.
느린 걸음으로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흙을 밟고 서서 하늘을 보니
여기가 주님의 품인 것만 같아 빙그레 웃습니다.

사실 우리 마을 지도를 펴놓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두 팔 벌리신 십자가의 예수님같이 생겼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