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의 성경적 근거

by 무익한 종 posted May 07,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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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의 성경적 근거



성경의 대명령은 사랑의 대계명과 선교의 대사명으로 구분 지을 수 있다. 성경 전반에 걸쳐서 하나님은 선교에 대한 것을 말씀하셨다. 사 66:18에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열방과 열국을 모으시겠다"고 하셨다. 이것은 선교를 위한 말씀이다. 사49:6에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고 했다. 이방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이 이스라엘을 선택해서 그들을 통해서 이방으로 전파되는 것을 보여준다. 성경 전체에 흐르고 있는 내용이 선교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 선교를 반대자들이 있다. 그 이유는 첫째는 자기 지역 우선주의를 주장하기 때문이며 둘째로는 내가 안해도 누군가가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는 계속되어져야 한다.

선교는 처음부터 교회의 활동이었지만 이것이 조직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아크스타의 "인도 사람의 구원 획득에 관하여"와 카르멜회의 수도사인 제수의 "온 인류의 구원 획득에 관하여"에서부터였다. 신교에서도 이와 비슷한 연구가 화란의 보에티우스에 의하여 시작되었으나 선교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학문적 연구는 19세기의 바르넥의 "복음적 선교론"을 들 수 있다. 그 후로 선교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제각기 이론들을 정립하였다.

그러나 완전한 선교 전략은 성경과 일치해야 한다. 구원의 하나님은 선교의 하나님이시기에 성경에서 선교를 빼놓고는 아무 것도 설명할 수 없다. 지금은 많은 신학자들이 성경적 선교의 원리를 찾으려고 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맥가브란 교수가 있으며 풀러신학교의 공헌도 크다. 선교는 성경에서 시작해야 바로 된다. 성경에 근거한 선교는 한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으나 그렇지 않을 때는 선교 자체가 큰 문제가 된다. 잘못된 성경적 근거에서 시작되는 선교도 문제가 된다. 선교의 근거는 분명히 성경이 되어야 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선교는 어떤 것이며, 성경 속에서 말하는 선교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가?


             구약에 나타난 선교

구원사적 관점에서 구약은 선교와 연결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화란의 선교학자 블라우는 구원사적 관점에서 구약 성경은 세계적이요, 동시에 선교적이라고 하였다. 독일의 바르넥은 구약을 선교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그 중심사상을 세계주의로 설명하였다. H. H. Rowley는 말하기를 "모세는 우리들이 알고 있는 최초의 선교사였다"라고 했다. 이 말은 구약이 선교를 언급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구약에서 말하는 선교의 의미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으며 그 특징은 무엇인가?

1. 하나님의 보편성과 통치

구약에서는 선교의 동기를 하나님의 보편성과 그의 통치에서 찾을 수 있다. 성경은 전 세계가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지적하고 있다. 창1:1은 마28:19,20의 필수적 기초다. 행17:26은 인간을 한 혈통으로 만드셨다고 했다. 하나님이 전 세계의 창조주라는 사실은 필연적으로 그가 전 세계의 통치자인 것을 시사한다. 시24:1에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라고 했다. 시24:1,2에서 볼 수 있는데로 야웨 하나님은 지방신이나 어느 한 국가에만 국한된 분이 아니시다.

인류는 하나이었으나 바벨탑 사건으로 흩어지게 되었고 그 결과로 나라가 갈라지게 된 것이다. 원래는 한 혈통으로 지으셨다. 그러므로 열방으로 흩어져 있으나 그 나라들 모두는 하나님의 영향력 하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의 통치권 하에 있다. 사람이 사람됨은 하나님의 통치권 하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성립될 때 이루어지는 것인데 하나님이 유대인만의 하나님이라면 어찌 사람이 필요하겠으며 그리스도의 중보의 사역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선교는 하나님의 보편성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2. 우주적 동기

이것은 하나님의 보편성과도 연관이 된다. 구약의 몇 족장에게 나타난 사건은 단지 이스라엘만 위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의 지평선을 포함하는 우주적 경험으로 확장되어져 나간데서 찾을 수 있다. 물리적 우주의 창조주이며 보존자이신 하나님, 천지를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은 그가 지으신 만물을 통하여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을 계시하신다. 이것이 선교의 근거가 된다.

선교에 대한 우주적 동기는 제 2의 출애굽 때 더 확실히 나타난다. 이스라엘이 포로를 경험하는 동안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의 운명이 다른 나라들의 역사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므로 모든 나라들이 이제 하나님의 약속 가운데로 서서히 들어오고 있음을 증거해 왔던 것이다.

포로 후에 묵시신학이 형성되면서 우주적 표현은 더욱 더 구체화 되었다. 예를 들어 다니엘의 묵시적 환상은 인자의 도래를 예언하는데 그의 왕국이 이 세상의 야만적인 왕국들을 폐하고 모든 백성들을 통치하게 될 것을 기록했다(단7:1-29). 이런 것들은 하나님의 모든 노력은 한 나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주적 목적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해 주는 말들이다.

시편에 기록되어 있는  '온 땅', '열방', '만물', '이교도인들', '만민', '숨쉬는 모든 것', '땅 위에 있는 모든 것', '만인의 눈들'이라는 표현은 모두 여호와의 우주적인 목적을 이해시키는데 도움을 주는 말들이다.

3. 이스라엘과 이방과의 구속사적 관계

구약에서 선교를 다루는데 있어서 이스라엘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되기까지는 이스라엘의 역할이 중요하기 대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구별은 만민에 대한 관심을 배제한 것이 아니고 그 일시적 사건은 이방 구원에 관한 예언들의 씨앗이 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언약 구조 속에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은 타 국가들도 장차 그 언약 안에 포함시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스라엘의 구원의 표본은 그의 구원을 만방에 알리기를 원하고 있다.

시67:2에 "주의 구원을 만방 중에 알리소서"라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역사적 사건들 속에서 그의 팔을 온 세계에 펴셨다. 모든 사건들을 이스라엘은 하나님 중심적으로 체험하게 하였다. 열방도 이런 것들을 보면서 오직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인 것을 알리기를 원헸다(시9:19). 만민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원했다(시99:1). 만민들이 하나님을 손뼉치며 즐거운 소리로 외치기를 원했다(시47:1).

구약 선지자들은 이방인들이 자발적으로 돌아올 것을 강조하면서도 이스라엘을 통하여 이방이 그 빛으로 나아오기를 구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중요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부르신 것은 이방을 위한 빛을 삼기 위한 것이다.

에스겔 5:5,6에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것이 곧 예루살렘이라 내가 그를 이방인 가운데 두어 열방으로 둘러 있게 하였거늘"이라고 했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뽑아내어서 이방의 한 가운데 세우신 것은 이방에 선교하기 위한 목적임을 보여준다. 사42:6에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사49:6에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본존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오히려 경한 일이라.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고 하였다.

창12:3에는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고 했다. 이것은 이스라엘과 이방과의 구속자적 관계를 말해주는 것이다. 이 말씀은 몇 가지를 보여준다. 첫째는 아브라함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 이방 사람이라는 것, 둘째는 아브라함과의 계약은 이스라엘 뿐 아니라 온 인류와의 계약이라는 것, 셋째는 아브라함 가족의 할례는 계약의 표식으로서 하나님의 특별관계를 가짐을 뜻하는 표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출애굽을 통해서 선교의 사명을 부여받기 시작한 것이다. 열방의 빛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성경의 구속론적인 주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다른 백성을 구원하시는 사역에 대해서 세계주의의 주제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음을 말한다. 하나님은 나라들을 구원시키시는 분이셨다. 예언자들도 깨닫기를 이스라엘만이 하나님의 구속 행위에 참여하시도록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점점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계의 나라들에게 자유케 하는 그의 주권을 회복시키실 것이다.

선교는 이기적 특권에 의해서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명이요 의무가 된다. 이스라엘을 사용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선교를 위해서 교회를 선택하신다. 교회라는 수단이 없이는 선교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사용하시기를 원하신다. 우리라고 하는 매체가 없이 어찌 선교가 가능하겠는가? 택자를 예정하신 하나님은 예정된 사업을 완수하시기 위하여 선교도 예정하셨다. 선교 과업을 수행하는 일은 기독교인의 존재 방법의 하나가 된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의 강제적 요인이 되어서 수동적으로 행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존재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직접 증거하는 사명을 수행해야 한다.

창10장에 나타난 나라들은 역사에 부수적으로 나타난 장식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나라들이 바로 역사 자체의 일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요, 이들도 하나님의 사역과 활동에 포함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한 것은 이방에 대한 관심과 함께 이루어진 것임을 알아야 한다. 창12장에서 아브라함을 불러서 보내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 선포에 있어서 문을 여는 시작인 것임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서 다른 나라들과 분리시킨 것은 잠시 뿐이다(출19:3). 그러나 그것도 하나님께서 온 세계를 포함하는 그의 구원 계획을 성취하는 길을 마련하기 위한 방편으로 삼기 위해서 그렇게 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은 전체를 위한 부분이었고 다수를 섬기기 위해 부름받은 소수였음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이사야, 에례미야, 아모스 같은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이 자기 중심적으로만 살려고 할 때 그들의 자만을 책망하며 그들이 하나님의 의를 뒤집어 놓았다고 지적했다(암7:9-10).

구원을 성취시키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사40-50장에 나타나는 종의 노래들에서 볼 수 있다. 종은 구원의 사역을 땅 끝까지 수행해 나갈 것임을 보여준다(사49:6). 사42:4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도 공의가 온 세계에 편만할 때까지 종은 그의 사역을 계속할 것임을 보여준다. 사53장의 네번째 종의 노래는 주의 종이 그의 사명을 수행할 방법의 비밀까지 보여주고 있다. 종이 희생물이 되어서 이스라엘 백성과 온 세계 백성들이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 짊어지는 대속의 과업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종은 모든 백성에게 구속과 치유를 가져오는 일을 완성하게 될 것이다.

4. 적대적 동기

하나님께서 전 세계의 통치자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숭배하지 않고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철저하게 금지되었다. 신4:39에 다른 신은 없다고 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적대하는 능력들 및 세력들과 대항해서 싸우시는 하나님이 선교의 중요한 동기가 된다는 말이다. 구약 성경을 통해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은 인간들이 만들어내고 우상화하고 그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이용하는 거짓 신들과 싸우신다. 바알과 아스다롯과 싸우시고 자연 숭배자들과 싸우신다. 또한 요술과 점성술과 싸우신다. 하나님의 본래 의도와 어긋난 것들과 싸우신다. 이러한 적대 세력들과 싸우는 것이 바로 선교다. 이런 것들과 싸움이 없이는 선교에 참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5. 요나서

요나서는 구약의 선교의 근거를 알려주는데 매우 의미가 깊은 책이다. 요나서는 선교를 위해서 계몽하고 교육하는 좋은 훈련의 내용들을 전해 준다. 요나서는 특수한 목적을 두고 기록된 책이다. 구약 학자들은 요나서가 특수한 이유 때문에 쓰여진 이야기를 설교적으로 적용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요나서는 사건의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메시지가 담긴 이야기다. 요나서에서는 편협한 종족 중심주의, 교회중심주의를 탈피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세계를 향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를 알려주고 있다. 요나의 회피 노력은 주님의 메시지를 세계에 전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여러가지 모양으로 피하려는 신약 교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주님은 이런 교회들이 서둘러서 선교에 동참하기를 원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내용들은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가 분명히 선교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구약을 통해서 제사하신 하나님은 때가 되므로 이방인도 구원하심이 분명하다. 선교는 한 시대에 한 민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한 모든 백성이 구원받기까지 이루어져야 할 과제다.

6. 포로 이전 이스라엘의 선교적 역할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이방과 구별되는 생활을 해야 하며, 그들의 신을 섬겨서는 안된다(신11:16). 그들의 자녀들과 결혼할 수도 없다(신7:3).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구원이 땅끝까지 이르게 해야 하며(사49:6) 이방의 빛이 되어야 했다(사42:6). 이것은 모순되는 두 가지 의무 수행이었으며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대부분 이방이 이스라엘에게로 돌아오는 방법이 취해졌다. 허다한 잡족이 돌아온 것이 그러한 경우다(출12:38). 요나의 경우는 제외다.

7. 포로 시대 이스라엘의 선교적 역할

남북 왕조는 각기 앗수르에 의해서 바벨론에 의해서 망했다. 그러나 그들의 선교는 그치지 않았다. 이 시기에는 회당 제도를 통해서 선교가 이루어졌다. 열명의 남자 지도자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유대교 공동체는 회당을 세웠고 이 회당은 유대인의 생활에 있어서 종교적, 사회적 생활의 중심이 되었다. 바벨론 포로 이후에는 성전 중심에서 회당 중심으로 가면서 선교적 사명을 감당할 기회를 더욱 더 많이 갖고 있었다. 포로시대에는 다니엘을 통해서라도 복음을 바벨론과 페르샤에 전하도록 하셨다(왕하5:1-3). 또한 이 시기에는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하였으며 디아스포라를 비롯하여 당시 코이네 헬라어 영향권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큰 역할을 감당했다.

선지 시대에 이스라엘은 풍전등화와 같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방의 침입 속에서 위태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때마다 걱정이 되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끊어짐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고 영광스런 이름이 포로의 먹구름 속에서 끊어지지 않는가 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체가 하나의 생명 있는 세력이 됨으로써 타국가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구원의 빛으로 오기를 원하고 있었다. 이것은 그만큼 선교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또한 구약의 선지자들은 누차에 걸쳐서 미래상을 보이면서 동시에 열국들의 구원을 묘사하고 있다. 사2:2-3의 경우로 그렇다.


7. 선교를 제시시는 성경 구절들

1) 창세기와 모세 오경에 나타난 선교

창3:15, 여인의 후손이 뱀의 후손을 밟을 것을 말함
창12:1-3,  아브라함을 보내심
창22:16-18,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창28:14, 땅의 모든 조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창32:12,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롯, 라합등도 이방 선교에 관계된 사람들이요, 엘리야나 사렙다 과부같은 사람들도 이방 선교를 위해서 일했던 것을 볼 수 있다.

2) 시편에 나타난 선교의 노래

시2:8,16, 세상의 군왕들과 관원들은 하나님의 교회가 찾아갈 모든 사람을 말한다.
시22:1-22, 27-31,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열방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서 경배하리니"라고 했다.
시47:7-9, "열방의 방백들이 모임이여"라고 한 것 역시 세계 선교를 보인다.
시67:1-7, "주의 구원을 만방 중에 알게 하소서......땅의 모든 끝이 하나님을 경외하리로다"라고 하였다.
시96:1-6, "그 기이한 행적을 만방 중에 선포할지어다"
시117:1,2, 모든 백성이 나올 것을 권고하고 있다.
시145:1-21, 여호와께서 모든 자를 붙들어 주신다.
시150:1,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3) 히브리 선지자들의 선교에 대한 메시지

사52:13-15, 열방에 구속의 피를 뿌리심
사54:1-5, 이방인들에게서 하나님으 자녀를 수용할 수 있도록 그들은 온 땅에서 무수히 몰려오리라
사42:1-10, 사람들의 빛, 이방의 빛
사49:6-12, 이방의 빛, 열방과 방백이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경배하기 위해 나올 것이라고 함
사59:16-60:5,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네 아들들은 원방에서 오겠고,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리라
사66:18 - 때가 이르면 하나님께서 열방과 열국을 모으시리라고 했다.

4) 소선지서에 나타난 선교 메시지

소선지서에서도 하나님의 선교는 기록되어 있다.    
욜2:28-32,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라고 했는데 만민은 한 민족이나 국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를 의미하는 것이다.
요나서는 전체가 선교에 대한 서신이다. 요나서는 선교에 관한한 하나님의 관심이 가장 잘 나타난 곳이라 할 수 있다. 비록 교회가 원하지 않는 곳이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가야할 것을 말씀하는 부분이다.
욘1:2, 너는 일어나 ...... 가서......외치라
3:2, 일어나 ...... 가서......선포하라
믹4:1-5, 5:1-8,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 갈 것이라, 많은 이방이 가며, 많은 민족, 남은자
말1:11,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 보나콤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5-29 19: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