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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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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중국은 폭동의 시대!


지난해 9월부터 대규모 시위와 파업 연달아 발생… 부패 관료들에 대한 분노, 정치적 폭동으로 번질까

2004년 11월10일을 전후해 중국 내 인터넷 사이트 곳곳에서는 ‘현 정세에 관한 긴급 호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그 내용은 이랬다. 외신 보도와 인터넷 매체 그리고 중국관방 매체 보도에 따르면, 올(2004년) 9월부터 국내 각지에서는 연달아 대규모 시위와 파업 등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이들 사건은 (사건) 처리가 부당했거나 정부와 민중간 폭력 충돌로 인해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예를 들어 2004년 10월4일 산시성 위린 지역의 샨차완 경찰이 고무탄과 최루탄, 경찰봉 등을 이용해 다수의 촌민들에게 중상을 입히고 30명 이상을 체포했던 ‘샨차완 유혈 사건’과 10월18일 충칭 완저우에서 수만명의 민중과 경찰의 폭력 충돌이 일어난 ‘완저우 폭동 사건’, 10월28일 쓰촨성 한위안센의 10만 민중과 수천명의 경찰이 충돌해 다수의 사상자를 낸 ‘한위안센 사건’, 10월29일 허난성 중머우에서 한족과 회족이 충돌해 다수의 사상자를 낸 민족충돌 사건 등 잇달아 큰 사건들이 일어났다.


“공무원이면 사람을 패도 되느냐”
이 외에도 지난해 9월부터 시작해 전국 각 성·시에서 대규모 평화적인 파업과 시위 사건이 빈발하고 있다. 9월부터 시장티베트자치구와 톈진 두 지방을 빼고 전국 각 지방에서는 각종 집단 파업과 시위, 탄원 사건 등이 80여만 차례나 일어났고 여기에 31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참가했다. 호소문 끝에는 장주화, 류샤오보, 장쯔쭈 등 39명의 중국 내 대표적인 자유주의 지식인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다.

이들은 중국 정부를 향해 소요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 조사와 참가자들에 대한 석방과 치료, 권력 남용을 일삼는 관리들에 대한 엄중한 처벌과 민중들의 권리 보장, 정치 체제 개혁 등 네 가지 사항을 ‘호소’했다. 이들의 ‘긴급 호소문’이 발표된 이후 2004년 12월과 2005년 새해에도 중국 각지에서는 각종 시위와 소요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04년 10월22일 중국 충칭시 완저우취에서 시민 후씨와 그의 아내가 길을 가던 중 등짐을 진 한 운반공과 부딪쳐서 후씨의 아내가 길에 넘어졌다. 부부는 운반공의 뺨을 때리고 욕을 하며 그에게 분풀이를 해댔다. 그러던 중 남편인 후씨가 “나는 공무원이라서 무슨 일이든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며 자신의 권력을 은연중에 과시하는 듯한 말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장면을 지켜보았던 수많은 시민들이 그들 부부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공무원이면 함부로 사람을 패도 되느냐”며 분노한 시민들이 모여들어 그 주변 일대는 순식간에 교통이 마비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 소식을 들은 현지 정부는 수천명의 경찰을 현장에 파견하고 돌발사건 처리방지책을 가동해 대대적인 진압에 나섰다. 약 1만명의 시민과 수천명의 경찰이 대치한 거리는 격렬한 ‘전투장’이 되고 말았다. 나중에야 운방공을 폭행한 후씨가 공무원을 사칭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해 12월25일 중국 광저우시 뚱관에서도 약 5만명의 시민과 현지 경찰이 충돌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 역시 사소한 교통사고가 발단이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12월22일, 뚱관에서 세 명의 외지 노동자가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한명이 오토바이 위에서 떨어져 부상을 입었다. 이들은 오토바이 기사에게 보상을 요구했고, 그 기사는 당장 돈이 없다며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리러 가던 도중 길거리에서 치안대 차량을 발견하고 “어떤 사람이 내 차를 훔치려 한다”며 큰소리로 ‘거짓말’.을 했다. 그 뒤 치안대에 붙잡힌 이들은 심한 구타를 당한 끝에 한명이 사망했다. 이 소식을 들은 유족과 고향 주민들 150명 정도가 치안대 앞으로 몰려와 관련자 처벌과 보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고, 이를 지켜보던 부근의 농민공(농촌에서 올라온 노동자)들이 합세해 불과 몇 시간 만에 시위 군중은 5만명으로 불어났다. 경찰과 시위대들 사이에 ‘격전’이 붙은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광저우에서 또다시 대규모 유혈 관민 충돌이 발생한 다음날인 12월26일, 중국 공안부장 저우융캉은 전국 공안기관에 폭동과 시위활동에 대한 대책을 강화하라는 긴급 지시를 내려보냈다. <인민공안보> 보도에 따르면 저우융캉은 26일 베이징에서 전국의 공안 간부들에게 “지금 중국은 사회 안정을 유지하는 데 있어 난국에 처했다”면서 이와 같은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수력발전소 주변 농민들, 유혈 충돌
2004년 10월27일 밤. 쓰촨성 한위안 따두허 푸뿌꺼우 수력발전소 주변으로 수만명의 인근 주민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대대로 농사를 짓던 땅이 국가의 중요 수력발전소 건설 터로 선정되면서 얼마 뒤 강제 이주를 당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런데 현 정부에서 이들에게 제시한 보상 금액은 터무니없이 낮았다. 이에 불만을 품은 주민들이 발전소 물막이 공사 현장으로 몰려들면서 공사가 중단됐다. 곧바로 무장 경찰이 출동했고, 이 과정에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유혈 충돌이 벌어졌다.

다음날인 10월28일, 일부 주민들이 전날 충돌 과정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주검을 들고 현 정부 청사로 가 시위를 벌였고, 소식을 들은 인근 주민들이 집결하면서 시위 군중은 10만명 가까이로 늘어났다. 분노한 농민과 학생들은 주검을 들고 현 정부 앞에서 격렬한 시위를 벌였고, 무장 경찰과의 충돌이 벌어졌다. 결국 한위안 지역에는 계엄령이 선포되고 모든 마을은 봉쇄가 되었다. 마을이 봉쇄되기 전에 이탈한 한 학생은 인터넷에 당시 상황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마치 이라크와 같았다. 다른 점은 분노한 군중들에게 총이 없었다는 것뿐!” 사건 발생 뒤 후진타오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는 ‘한위안 사건’의 사회적 파장을 우려해 관련 당국에 긴급 대책회의를 지시했고, 당분간 주민들의 이주 문제와 요구 조건이 해결되기 전까지 수력발전소 공사를 중단하라는 긴급 지침을 내렸다. 사건이 발생하기 전인 10월4일에는 2만명의 주민이 ‘후진타오 주석에게 드리는 긴급 호소문’을 작성해 ‘탄원’한 바 있다.

이 사건 뒤에도 11월12일 광시성에서 토지 강제 수용에 항의하는 수백명의 농민 시위대가 경찰을 공격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11월4일 푸젠성 푸안시에서 2천명 이상의 사람들이 체포된 동료 시위가담자를 풀어달라고 요구하는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들 역시 토지 강제 수용에 따른 보상책에 불만을 품고 항의를 해왔던 농민이다. 도시에서는 도시개발을 둘러싸고 철거민들과 개발업자들 사이에 잦은 마찰이 빚어지고 있고, 아파트 입주자와 개발업체 사이에 각종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베이징 시내 국토자원부나 노동사회보장부 등 공공기관 앞에는 전국 각지에서 ‘탄원서’를 들고 올라온 민원인들이나 이들의 연좌 시위가 넘쳐난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 한해 동안 중국에서는 5만8천여건 정도의 크고 작은 시위가 발생했다. 한 외신 기사의 표현대로 과연 중국에서 ‘시위 봇물’이 터진 것일까?

전환기 이익 분화가 원인인가
중국 칭화대학교 사회학과 쑨리핑 교수는 “지금 중국 사회는 이익 충돌의 시대를 맞고 있다”고 분석했다. 항저우 당교의 리이핑 교수도 각종 시위 사태의 원인을 분석한 보고서에서 “사회 전환기의 모순이 이러한 돌발성 시위 사건의 근원이다.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사회 구조에 변화가 오고 다양한 계층들의 출현으로 이익 분화가 나타나게 되었다. 다원화된 이익집단들 사이의 상호 경쟁과 충돌이 불가피하게 된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충돌의 도화선은 ‘경제적 이익’이나 시위 참가자들의 분노를 부채질하고 있는 ‘정치적 요인’이 더 위험한 변수로 꼽히고 있다. 충칭 완저우 사건이나 광저우 뚱관 사건에서처럼 사소한 사건이 대형 시위로 변하고 있다다. 이들 사건의 공통점은 모두 ‘관료들에 대한 혐오감’이다. 시위 과정에서 이들 부패 관료들에 대한 분노가 함께 표출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가 근본적 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적 ‘통로’를 마련하지 못하면 경제적 이익 충돌이 곧바로 정치적 폭동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리이핑 교수의 보고서에서 최근 시위가 점점 정치적 색깔을 가진 시위로 변해가고 있다는 분석은 눈여겨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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