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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선교

21

2012-Jan

[희년의 사람들] 나중석 선생과 제2의 토지개혁

작성자: 박창수 IP ADRESS: *.204.59.163 조회 수: 2041

희년의 사람들

나중석 선생과 제2의 토지개혁

박창수

 

제2의 토지개혁이 필요한 시대이다. 1960년대 이후 토지 소유는 심각하게 불평등해져서, 상위 1% 지주가 전국 민유지의 절반 이상을 소유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토지 가격은 가파르게 상승했으며, 그에 따라 토지 불로소득도 엄청난 규모로 증가했다. 이와 같은 시대에 지난 1949년에 입법된 농지개혁을 회고해 보려고 한다. 당시에 지주 세력은 민국당을 결성하고, 국회에서 지주에 대한 농민의 토지보상 수준을 농림부가 제안한 것보다 대폭 강화함으로써, 농지개혁을 사실상 무력화하려고 시도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농지개혁이 성공한 이유 가운데에는, 조봉암 농림부 장관과 같이 농민을 위한 농지개혁을 성취하기 위해 힘쓴 정치인들도 있었지만, 자발적으로 자신의 땅을 농민에게 나누어줌으로써 국회의 지주 세력을 도덕적으로 압박한 나중석(羅重錫; 1878~1970) 선생의 선한 영향도 있었다.

 

수원의 나중석(羅重錫), 농지 26정보를 소작농에게 무상분배

 

작년 말 농지개혁법 농림부안이 신문지상에 보도되자 각 지방의 악질 지주들은 소작권을 떼느니, 지금 내 땅을 사지 않으면 농지개혁할 때에는 전재민들에게 분배되느니 하고 갖은 모략과 협박을 가하여 토지강매에 광분하여 농촌의 혼란을 조장하고 있는 이 때 수일 전 수원군 봉담면(峰潭面) 분천리(汾川里)의 나중석 옹(71)이 조(曺)농림부장관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땅 26정보를 60호의 소작인에게 무상으로 분급(分給)하고자 하오니 협조하여 주기를 바란다는 서한을 보내어 농지개혁을 앞두고 사리사욕만을 위하여 날뛰는 반민족적 지주들에게 커다란 자극을 주고 있다. 그리고 농림부에서는 나중석 옹의 요청에 의하여 오는 19일 강(姜)농지국장이 수원으로 출장키로 되었다는데 나(羅)옹이 조농림부장관에게 보낸 서한 내용 전문은 다음과 같다.

 

“재작년 본 동네에 있는 본인 소유의 토지를 소작인에게 매도하려고 하려던 바 매수능력이 있는 자는 불과 2할이고 나머지 8할의 빈농은 돈이 없어서 땅을 살 생각을 못하고 세상을 비관하며 탄식하고 있었다. 나는 목불인견의 그 정경을 보고 이 세상에 空手로 왔다가 공수로 가는 것이 인생이건만 어찌 자기의 자녀들만을 위하고 많은 소작인들을 박대할 수 있을 것인가 하고 절실히 느끼는 바 있었다. 그리하여 본인은 자손들의 동의를 얻어 가지고 전 소유 畓 30정보 중 4정보는 家作으로 제외하고 답 26정보와 家垈 52處 1만 여 평을 60호 소작인에게 균일히 무상으로 분급하고 모범부락을 건설하고자 하오니 농림부 당국에서 선도하여 주심을 바라와 서한을 드리나이다.” - <서울신문> 1949년 2월 16일자

 

당시 다른 신문들도 이를 적극 취재하고 보도하였다. 그 가운데 나중석 선생을 인터뷰한 기사들이 있는데, 이 기사에 농지 분배의 동기와 진심이 잘 나타나 있다.

 

강진국(姜辰國) 농림부 농지국장, 소작인에 농토를 자진 분배한 수원의 나중석(羅重錫)을 방문하여 좌담

 

강국장이 내방의 뜻을 고하니 옹은 담담유수(淡淡流水) 아래와 같이 자기 농지를 무상분배한 소신을 피력하였다.

 

“농토는 하루빨리 농민에게로 분배해야 되오. 그들은 완전히 자기 땅이 되면 달밤에도 논·밭(흙)과 상대하는 것을 게을리지 않소”하고 70을 너머선 옹은 어디까지나 장명하여 숭고한 모습을 인상 주며 이야기를 계속한다.

 

“재작년 본 동리에 있는 나의 소유 토지를 매도(賣渡)하려고 하였소. 당시 매수능력이 있는 소작인은 불과 1할이고 나머지는 적수공권(赤手空拳)이었소. 그리하여 자기가 소작하는 땅이 타인에게 매도되는 것을 비관한 나머지 곡성(哭聲)까지 전 동리를 진동하게 될 때 나는 차마 그 정경을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이 세상에 공수(空手)로 왔다가 공수로’ 라는 철리(哲理)에 어찌 나의 자녀들만을 위하고 많은 소작인들을 박대할 수 있을 것인가 하고 깊이 느낀 바 있었고, 그리하여 자손들의 동의를 얻어 전 소유 답 9만 4,400평을 최고 3,000평, 최하 800평씩을 58호에, 합계 7만 3,600평과 41호의 가대(家垈) 1만 4,050평을 무상으로 분급하고 또 동리 공유로 7,100평을 기부하고 1만 2,900평을 자작하려고 남기었소.”

 

(중략) 20일 오전은 분천리 공회당에 옹과 더불어 농지의 분배를 받은 부락민 50명을 소집하고 강(姜)농지국장은 요지 “이 동리는 벌써 옹과 같은 독지가가 있어 농지개혁이 끝났으며 앞으로 서로서로의 마음과 힘을 다하여 농촌경제 부흥을 꾀하여 유일한 이상 농촌을 건설하라”의 훈시를 한 다음 정오 수원을 향하여 이곳을 떠났다.

 

(문) 토지개혁에 대한 소감은?

(답) 토지개혁은 필연적 현실로 알고 있으나 왜 이렇게 지연되는지 국가 경제의 손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농민은 자기 땅이 되어야 비료도 많이 하고 증산에 매진하는 것이다. 나의 심경으로서는 하루 바삐 농민을 경제적 해방을 주고 부강한 나라를 건립하지 아니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며 아직도 지주들의 농민을 압박하려는 데는 통한을 금키 난(難)하다. ‘농지는 응당 경작인의 것이다’하고 솔선 내어 놓은 것이다.

 

(문) 앞으로 닥치는 경제면의 타개책은 다른 방도가 있는가?

(답) 나는 노령이나 자식들이 부양하리라고 믿으오.

 

(문) 농지분배 전후의 소작인의 근면태도와 생산량의 비율은?

(답) 외관으로만도 비료를 훨씬 많이 주며 농토를 아끼는 것이 마치 자기 자식을 귀여워하는 것 같았다. 약 3할은 증수되었다.

 

(문) 분배하고 난 후 소감은?

(답) 퍽 마음이 상쾌하였다. 한 동리에서 다 같이 일하고 더구나 대중과 함께 산다는 것이 좋았다. 소작인이 진력하던 것이 현저히 내 눈에 나타날 때 더욱 기뻤었다. 단 다 분배를 받고 땅을 자기가 경작치 않고 팔아먹은 주위의 소작인이 있었다는 것은 그들을 위하여 불쾌하였다. 나는 농지개혁법안이 속한 시일에 국회에 상정 통과되어 국가의 8할 농민이 생기있게 일하고 국가건설에 박차를 가하게 되기를 염원하고 있다. - <독립신문> 1949년 2월 22일자

 

선생의 농지 분배 동기 가운데 특별한 점은, 해방된 새로운 시대에 대한 강조이다. 민주주의라는 새 시대는 대중을 위하는 시대이므로, 땅이 자기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의 것이 되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나락도 땅도 다같이 - 소작인(小作人)에 농토분여(農土分與) 수원(水原) 나중석옹(羅重錫翁)의 쾌거(快擧)

 

“나는 민주주의가 여하한 것인지는 잘 모르나 동양철학의 정신과 인도 상으로 보아 또는 우리나라의 현 농촌 경제 상태로 보아 해방이후부터 농토를 분배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데 (중략) 농토를 분배한 것은 나 자신이 한 것이 아니고 시대가 그리한 것이올시다.

 

제국주의나 독재주의 하에서는 한 사람의 힘으로써 나라도 지배할 수 있고 많은 농토를 소유할 수 있으나 새로운 시대의 정치는 대중을 위하여 하는 정치이니만큼 여러 대중이 모다 같이 즐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제도가 필요한 것이니 나는 다만 나 개인의 토지라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의 것이 됨을 원하는 새 시대의 이념에 따랐을 뿐이니까 미련은 조금도 없습니다.” - <동아일보> 1949년 2월 22일자.

 

선생은 일제강점기에도 선행을 많이 하였다.

 

나중석씨(羅重錫氏) 특지(特志)

 

“수원군 봉담면 방천리 나중석씨는 면내 빈곤자의 세금 삼십여원을 대납하여 주었다더라.”(<동아일보> 1927년 5월 11일자).

 

가뭄 때문에 흉년이 들어 가난한 사람들이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을 때, 선생은 면내 빈궁자를 위해 44원 60전을 내놓기도 하였다(“수원유지의 빈민구제열, 구력정초에”, <중외일보> 1929년 2월 16일자).

 

또한 선생은 교육구국운동에 매진한 단체인 기호흥학회의 회원으로서, 학교를 설립하기 위해 많은 기부를 하였는데, 대표적인 학교가 바로 삼일학당이다. 삼일학당은 나중석 선생을 비롯하여 8인이 1903년에 수원북감리교회에서 개교하였다. 선생은 1906년에 학생들이 운동장이 없어 뛰어놀지 못하는 것을 애석히 여겨 학교 운동장으로 토지 900평을 기부하기도 하였다.

 

선생은 경자유전(耕者有田)이라는 말씀을 자주 했다고 한다. 농사짓는 사람이 땅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선생은 땅을 분배해 줄 때 오직 경자유전의 원칙에 따라서, 자손 중에서도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만 땅을 주고 농사짓지 않는 자손에게는 땅을 주지 않았다. 그 결과 땅을 분배받은 사람은 자손 가운데 단 두 사람뿐이었는데,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한 사람당 한 마지기 반씩 계산해서 가족 수에 따라서 받았다.

 

선생은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란 말을 자손들에게 자주 하였는데, 그 뜻은 “선한 일을 많이 한 집안에는 반드시 (후손이 받는) 남는 경사가 있다.”는 뜻으로서, 주역(周易)에 나오는 말이다. 그런데 실제로 한국전쟁이 일어나, 인민군이 마을로 들어왔을 때, 주민들이 이구동성으로 선생의 토지 분배 이야기를 했고, 그 결과 전쟁 기간에 주민 가운데 죽은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선생은 비록 기독교인은 아니었지만, 기독교의 정수인 희년 정신을 실천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희년 경제법에는 ‘빈민 무이자 대부 및 탕감’, ‘(가족 수에 따른) 토지 평균 분배 및 회복’이 있는데, 선생은 가난한 농민들에게 이자를 받지 않고 양식을 꾸어주었으며, 극빈하여 갚을 수 없는 사람은 탕감하여 주었고, 소작료도 그렇게 했다. 특히 선생은 농지개혁 문제가 최대 이슈가 된 상황에서, 땅 자체를 소작농민에게 그 가족 수에 따라 공평하게 나누어 주는 농지개혁을 스스로 먼저 실천함으로써 농지개혁법이 통과되는 데 큰 도덕적 영향을 주었다.

 

우리 시대에도 선생과 같은 사람들이 나타나야 제2의 토지개혁이 가능하다. 나중석 선생이 해방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여 시대정신에 따라 땅을 나누어 준 것처럼, 통일이라는 새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선생과 같은 사람들의 실천이 다른 어느 때보다 더 절실하다. 현재 우리 사회의 심각한 토지 문제가 통일된 나라에서도 되풀이된다면 통일의 의미는 크게 훼손되고 말 것이다. 남북 동시 개혁을 요구하는 통일의 역사적 요청 앞에서 우리 사회는 반드시 개혁되어야 하며, 그 제1과제는 바로 토지 개혁이다. 역사는 제2의 토지개혁을 선도할 수 있는 나중석 선생과 같은 사람들의 출현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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