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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선교

16

2009-Apr

고난의 역사와 성서 조선의 거친 꿈

작성자: 박창수 IP ADRESS: *.8.66.133 조회 수: 2800

고난의 역사와 성서 조선의 거친 꿈


박창수


주: 이 글은 월간 <복음과 상황> 2001년 6월호에 기고했던 글을 조금 수정한 것이다.


2001년 올해는 김교신(1901-1945)과 함석헌(1901-1989), 이 두 분이 태어난 지 백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최근에 개혁을 주제로 한, 어느 방송사의 심야토론을 지켜보면서, 지금은 개혁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임을 다시 한 번 절감하였습니다. 토론자들이 주로 말한 경제개혁 외에도, 정치개혁과 언론개혁 등 제반 사회개혁과 교회 개혁이 엄중히 요구되는 시대이며, 통일도 남북동시 변혁통일로서 준비해야 할 중차대한 시대입니다. 이러한 대개혁의 시대에 저는 김교신과 함석헌 두 분을 추억하고 싶습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이 두 분의 글은 제 인생과 사상에 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제가 함석헌 선생의 책 가운데 가장 먼저 접한 것은 『뜻으로 본 한국 역사』로서, 고등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그 1년 전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마태복음부터 1장씩 날마다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심비(心碑)에 새기던 때였습니다. 또한 전두환 정권의 폭압적 통치가 극에 달하여, 돌멩이와 화염병, 최루탄이 온 광주 시내를 덮던 1987년이었습니다. 당시 박종철 군 고문치사사건 직후인 봄날의 어느 주일 오후, 광주 전남 지역의 교회들은 보수와 진보를 넘어 전교회 연합 구국 기도회를 광주 금남로 YMCA에서 갖기로 하였고, 저희 교회는 성가대를 섬기기로 하여 어른부터 고등부까지 모두 성가대복을 입고 갔었습니다. 그러나 전투경찰은 입장을 봉쇄하였고 최루탄을 터뜨렸습니다. 결국 그 앞 최루탄이 가득한 금남로의 도로 위에서, 2만 명의 성도들이 엎드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눈물의 탄원을 드렸습니다. 그 탄원을 하나님은 들으셨고, 이 집회는 광주에서 1980년 5.18 이후 가장 큰 집회였고, 광주에서는 이후 6월 항쟁으로 가는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다음날 학교에 가보니 불신자인 담임선생님마저 어제 시내에서 기독교인들의 집회를 보고 매우 감명 깊었다는 말씀을 하셨던 게 기억납니다. 보수적 신앙을 가진 교회였지만, 어른들이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부르며 공의를 위해 기도할 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책 때문이었습니다.


반도의 좁은 가슴을 버리고 대륙의 넓은 가슴을 품자!


이 책에서 제 가슴에 온 것은 선생의 탄식이었습니다. 고구려가 망하고 대륙에서 반도에 갇히더니 민족의 기상과 정신마저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들어 대아(大我)는 사라지고 소아(小我)만을 위해 서로 시기하고 죽이기에 바빴던 슬픈 역사. 포로가 되어 청 태종 앞에 끌려갔음에도 불구하고 날렵하게 옆 병사의 칼을 빼어 청 태종을 향해 ‘네 목숨이 내 몇 걸음 안에 있다!’ 호통 쳤던 임경업 장군 같은 이를, 청 태종도 호걸인지라 그 담력과 기상을 아껴, 살려 주어 다시 조선으로 보내 준 장군을 조선의 집권층이 모함하여 고문 끝에 죽여 버린 어처구니없는 역사... 기독 운동을 하면서 발견하게 된 것 역시, 우리 안에 있는, 대아적인 인물과 운동을 만나면 격려하지는 못할망정 견제하며 시기하는 좁은 마음이었습니다. 반도의 좁은 가슴을 버리고 대륙의 넓은 가슴을 품자는 선생의 절규는 교회와 기독인들의 분열상 앞에서 대연합을 위해 참으로 나누고 싶은 말입니다.


간디와 비폭력


선생이 번역한 『간디 자서전』에서, 간디의 ‘사티아그라하’(진리파지 眞理把知)와 아힘사(불살생 不殺生)란 말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 비폭력운동은 진리운동이요 생명운동이어야 함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비록 간디가 힌두교를 배경으로 비폭력을 주창했지만, 간디가 남아공에 세운 농장이름이 바로 톨스토이 농장이며, 나중에 톨스토이가 그의 만년에 간디에게 비폭력을 격려하며 보낸 편지를 읽으면서, 간디가 비폭력을 톨스토이에게 배웠고 톨스토이는 예수님의 산상수훈에서 배웠음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힌두교도인 간디가 비폭력을 실천했다면 자기희생과 원수 사랑의 십자가를 통해 예수님을 믿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는 기독인인 우리는 응당 더욱 비폭력의 삶을 살 수 있고, 비폭력의 운동을 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의인(義人)아, 두려워 말고 외치라!


선생의 『두려워 말고 외치라』는 기독인의 선지자적 사명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오래전에 제가 전철에서 선생의 책을 읽고 있는데, 술 한 잔 드신 어느 아저씨가 함석헌 선생의 책을 읽는 청년이 있다고 반가와 하며 선생이 말한 것 중 의(義)라는 말이 자신에게는 가장 남는데, 지금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어 부끄럽다고 하였습니다. 사실 의를 위해서는 자기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와 사회가 잃어버리고 있는 중요한 것이 바로 희생적 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대다수가 사익을 좇아가는 시대요, 의를 위해 일어서는 의인을 보기 힘든 시대입니다. 의인이 그리운 이 시대에,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로 의롭다 여김을 받은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 자기희생적 의로, 이 교회와 사회의 개혁을 위해 일어나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민족의 복의 근원이 되면 좋겠습니다.


영원의 뱃길과 생각하는 백성


선생은 『영원의 뱃길』에서 죄수가 되어 로마로 끌려가는 사도바울의 뱃길여행을 담은 사도행전을 인용하여, 우리 인생이 바로 영원을 향한 뱃길이며 인간은 종교적 존재임을 말했습니다. 우리 기독인은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나라라는 영원한 가치를 위해 사는 존재입니다. 이 세상의 삶은 영원의 뱃길에서 지나가는 짧은 여정으로 알고, 이 현세의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인으로서 영원한 가치를 위해 사는 사람이 바로 기독인입니다. 그리고 선생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에서 새로운 나라는 오직 생각하는 백성에게만 주어지는 것임을 힘주어 말했습니다. 지난 역사를 반성하고 그 교훈을 미래에 적용할  줄 아는 생각하는 백성만이 산다는 말씀이 오늘날과 같은 총체적 부패의 시대에 더욱 가슴에 저미어 옵니다.


자아 변혁과 사회 변혁을 함께


『인간혁명의 철학』에서 자아 변혁과 사회(제도) 변혁은 모두 중요하며, 이 두 가지는 상호 깊은 영향을 미치며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 기독인들이, 전도를 통해 예수님을 영접하여 자아가 변혁되는 것과, 운동을 통해 교회와 사회의 불의한 제도가 의롭게 되어 개혁되는 것은 모두 중요하며 이 두 가지는 상호 영향을 미치는 긴밀한 연관관계에 있음을 통찰하고 어느 하나만을  배타적으로 강조하는 미성숙함은 이제 버리면 좋겠습니다.


종교다원주의의 독소


그러나 선생의 글을 읽으며 결코 동의할 수 없었던 것은 종교다원주의였습니다. 선생의 책을 읽은 교회 후배가 구원관의 혼란으로 고민하는 것을 볼 때 이것은 독소임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뜻으로 본 한국 역사』의 1960년대 판 서문에서 선생은, 원제인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 역사』에서 ‘성서적 입장’이란 말을 버리고 ‘뜻’이라는 말로 바꿔 기독교의 제한된 울타리를 떠나겠다며 종교다원주의를 천명했습니다. 저는 선생이 결국 예수님을 따르는 좁은 길 대신 지식인들에게 영합하는 넓은 길로 갔고, 이후 남한 지식인들에게 종교다원주의의 원조가 되어 그 해악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


성서를 조선에 주어, 성서 위에 조선을!


함석헌 선생을 통해 배운 것 이상으로 김교신 선생에게서 저는 소중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김교신 선생은 『성서 조선』머리말에서, “사람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기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주고자 하는 것은 인지상정인데, 나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조선에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성서를 주고자 한다. 성서를 조선에 주어, 성서 위에 조선을! 그러므로 성서 조선!”이라는 요지를 글로 쓰셨는데, 선생이 벅찬 가슴으로 쓰신 그 ‘성서 조선’이라는 단어는 앞으로도 제 가슴에서 잊혀 지지 않을 것입니다.


불사이자사(不思而自思)


김교신 선생이 『성서 조선』에 쓴 글 중 잊히지 않는 글들이 있습니다. 그 하나가 바로 이 글입니다. 김교신 선생은 평소에, ‘깨어있을 때는 예수님을 생각할 수 있는데, 잠이 들면 예수님을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천추의 한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이른 새벽 평소처럼 맑은 시냇물가의 바위 위에 기도하러 가기 위해 잠이 깨었을 때, 자신이 잠을 자면서 예수님을 생각한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감격을 이기지 못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글을 썼습니다. 불사이자사(不思而自思:(예수님을) 억지로 생각하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예수님을) 생각하게 되었다)! 깨어 있을 때도 예수님을 생각하지 못했던 저는 이 글을 부끄러움가운데 충격으로 읽었습니다. 김교신 선생을 본받아 깨어 있을 때나 잠 들 때나 예수님을 생각할 만큼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를 저는 간절히 원합니다.


심령이 부요한 선비와 진주 찾는 사람들


그리고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말씀을 해석하면서, 조선의 선비는 청빈을 덕목으로 삼아 물질적 가난을 추구했지만, 그 마음이 너무 부하고 교만하여 예수님을 영접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 글을 읽다가 저와 같은 소위 먹물 든 사람들, 또 입신영달을 포기하고 가난을 선택해 운동하는 활동가들조차도 비록 물질적으로 가난하지만 그 마음이 자긍하고 다른 사상들로 너무 부요해서 예수님을 모셔 들일 수 없는 고루한 조선의 선비들과 같지는 않는지 심각하게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에 반하여 ‘진주 찾는 사람들’이라는 글에서는 자기 소유를 다 팔아 하나님의 나라의 보화를 사는 것이 기독인의 마땅한 바라는 선생의 글을 읽으면서 큰 도전을 받았습니다.


조와(弔蛙)


선생의 ‘조와(弔蛙:개구리를 애도함)’라는 글은, 일제에 의해 조선의 독립을 의도했다는 이유로 『성서조선』이 폐간당하고 선생을 비롯하여 많은 이들이 옥고를 치르게 된 글입니다. 봄이 가까운 어느 겨울날, 추위로 죽은 개구리들이 연못에 떠 있어 선생이 연못 바닥을 살펴보니 개구리들이 움직이지 않아 ‘모두 죽었구나!’ 탄식할 때, 저기 한 쪽에서 개구리 한 마리가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고, 자세히 살펴보니 죽지 않은 개구리들이 있어 ‘아, 살아 있구나!’ 감사하였다는 내용입니다. 혹한에 모두 죽은 줄로만 알았는데, 죽지 않은 개구리들이 꿈틀거렸던 것처럼, 죽지 않은 민족정신이 있어 조선의 독립을 나타냈다는 것이 일제의 핍박 이유였습니다.


고난의 역사, 수난의 여왕


김교신 선생이 혹한 중에도 살아 꿈틀거리는 개구리에게서 민족의 희망을 발견하였다면, 함석헌 선생은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우리 겨레의 역사는 한마디로 ‘고난의 역사’이나, 이 고난에 반드시 의미 있다고 갈파하였습니다. 우리 겨레는 주변강대국들에 의해 짓밟혀 마치 역사의 수레바퀴에 치여 한 길가에 내동댕이쳐진 버림받은 늙은 갈보(창녀)의 신세와 같지만 그 뱃속에 세계 평화를 가져올 왕자를 잉태하고 있다고 하였고, 그래서 우리 겨레를 ‘수난의 여왕’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우리의 사명은 이 수난의 여왕으로 하여금 왕자를 해산하게 하는 것, 바로 이 고난의 역사를 영광의 역사로 의미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성서 조선의 거친 꿈과 통일한국의 세계사적 사명


고통당하는 자본주의와 실패한 사회주의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세계 인류 앞에 이 양 체제를 극복하며 그 갈 길을 제시할 자격은 아무 민족에게나 주시는 것이 아니요, 바로 이 양 체제의 대립으로 쓰디 쓴 고난의 잔을 마셔야 했던 우리 겨레에게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세계 어느 나라가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서로 죽이고 죽는 고통 속에 통일을 고민하는 우리만큼 양 체제를 극복할 대안을 찾았습니까? 성서 조선의 거친 꿈을 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원리와 대안을 찾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극복하는 모델 국가로 통일 한국을 이루어 내고 인류의 살 길을 제시한다면 고난의 역사는 비로소 그 의미를 찾게 될 것입니다. 타고르의 시와 같이 동방의 타오르는 횃불 코리아가 하나님의 말씀 위에 통일한국을 건설하여 세계 인류의 나아갈 길을 환히 비추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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