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09.
사위가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중증 환자로 병상에 누워 있는 사진을 딸이 보내왔다. 토론토에 사는 셋째딸이 너무도 약해져 있는 형부의 모습을 보고 많이 울고 회개했다고 한다. 형부의 처신에 대한 실망과 상처가 컸기에 상종하지 않은 채 꽤 세월이 흘렀는데, 남편과 함께 형부와 전화통화를 하며 서로 미안한 마음을 나누었단다. 약해지며 회복된다.
‘모든 죽음에는 구속(회복)의 의미가 있다’는 말이 기억난다. 더 이상 지켜야 할 것이 없는 상황에서 사람은 착하고 겸손한 마음이 된다. 젊고 나름 강함을 보여주고 싶었을 때에는 자존심도 부리고 결코 지지 않으려 했는데, 그 모든 것이 부질없음을 깨닫고 약함을 보여주며 진정 자신이 된다. 단절되었던 관계도 연결되고 불편했던 마음도 회복되는 평화가 있다.
우리는 강해져야 하는 것이 아니다. 갓난아기였을 때나 임종의 시간에 가장 취약한데, 그 중간에는 왜 강자가 되고 이기려 하거나 가면을 쓰는지, 왜 그리 방어기제가 작동하는지 돌아봐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강자가 되도록 부름 받지 않았다. 세상에서 자신을 방어하지 않는 약한 자이다. 하지만 강한 자들과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고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