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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동영상
2003.08.17 17:26

예수님의 길(마8:23-34)

조회 수 2682 추천 수 2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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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버나움에서

8장에서 우리는 산상수훈을 마치신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상업이 발달하고 교통의 요지라서
풍요로왔던 가버나움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풍요로운 현실에 안주하며
하나님에 대해, 영적인 일에 대해 무관심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다가오셨으나
정작 주님을 만난 사람들은 문둥병자와
이방인 백부장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부요하고 풍요로와도 문제는 있는 법
비겁한 사람들은 날이 저물고 나서야 자신의 병든 식구들을 데리고
예수님께로 나아와 고침을 요구합니다.
몰려오기는 오지만 예수님, 하나님의 뜻에는 무관심하고
오로지 예수님이 가지신 권능에만 관심을 가지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치유와 고침에만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
그 무수한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 예수님은 얼마나
고독하셨을까요?
서기관 한 분이 어디로 가시든지 주님을 따른다고
담대히 말하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들도 거처가 있지만
인자는 머리둘 곳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무관심한 사람들이나
예수님을 따르려는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주님은 아셨기 때문이지요.
자기 땅에 오셨으나 아무도 영접하지 않는 무관심의 땅에서
주님은 군중 속의 고독에 깊이 절어 계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자기에게 나아온 모든 병든 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을
고쳐주셨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호의를 배푸는 자들에게 만이 아니라
냉냉한 사람들, 이용하려는 사람들에게까지도
주님은 긍휼과 자비의 손길을 내미신 것이지요.
이 일이 얼마나 피곤하셨는지
배를 타셨는데, 디베랴 호수에 풍랑이 일어
배가 부서지고, 난파할 위험에 빠졌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주님은 곤히 주무셨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죽음보다 깊은 잠

저는 격랑이 이는 바다에서 일엽편주 고물에 머리를 기대시고
곤히 주무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정말 이 분을 닮고 싶습니다.
아들을 보내셔서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를 따라
자신의 모든 것으로 생명을 다해 사람들을 섬기시다
지쳐 잠이드신 예수님의 모습을 말입니다.

자, 이제 성경은 우리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배에 탄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로 옮겨 주십니다.

제자들, 자신들의 배와 그물과 가족을 초개와 같이 버리고
주님을 따라나선 위대한 결단과 헌신의 사람들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성경은 이분들에 대해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향해,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라고 야단을 치십니다.
결단하고 헌신한 사람들인데 어떻게 믿음이 적다라고
말씀하실 수가 있을까요?
저는 주님의 말씀을 혼자 깊이 묵상하며
왜 이런 책망을 들었을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을 다시 한번 죽 읽어 보았습니다.
제자들, 헌신하고 결단은 하였지만
성령님을 경험하기 전까지의 제자들은
각자 자신의 의도와 목적이 있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집은 떠났고, 가족은 멀리했을지 모르지만
이분들은 자신의 마음에 숨겨진 야망과 자기중심적인
욕망은 차마 떨치지 못했던 것입니다.
부요하여 주님을 멀리 했던 가버나움 사람들에 비해
마음에 욕망과 야망으로 가득차서 예수님을 이용하려는 제자들은
하나도 더 나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주님을 따라서 배에 타기는 했지만
왜 탔는지, 어디로 가는지 전혀 관심도 없었습니다.
어쩌면 피곤한데 왜 이렇게 배를 타고 어쩌자는거야 라며
불평을 하는 사람도 있었겠지요.
풍랑이 일어 배라 전몰할 위기에 처해지자
디베랴 호수에 익숙했던 베드로와 요한과 같은 사람들을
타박하여 서로를 힐난하는 말들로 배는 떠들썩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님은 참으로 머리 둘 곳도 없으신
철저한 고독에 휩싸이셨던 분이셨습니다.

사람들은 왜 저렇게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배를 타서
우리까지 위험에 빠지게 했느냐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예수님은 바다 건너 저 멀리 공동묘지에서
돌로 제 몸을 치며 괴성을 질러대는 귀신들린
한 사람(혹은 두 사람)의 울부짖음을 들으신 것입니다.
어둠에 사로잡혀 신음하는 영혼을 보셨던 것입니다.
친척들마저 그의 소리에 귀를 틀어막는
아무도 가까이 하고 싶어하지 않는 그 사람을 위해
예수님은 죽음 보다 더 깊은 잠에 빠져드시면서도
배를 타셨던 것입니다.

생명을 얻게 하되 더 풍성히 얻게 하시려고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의 의도를 이루어드리기 위해
예수님은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 없이 드린 것입니다.

한 영혼을 위해 풍랑이는 바다를 가로지르는 배는
바로 공동체요 교회입니다.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함께 할 사람들을 모아
떠나는 배가 바로 공동체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계신 곳이 바로 배안 인 것입니다.
그럼으로 배는 당연히 풍랑을 만나게 됩니다.
거친 파도를 만나는 것도 당연합니다.
배는 바다에 있기 때문이지요
사단은 한 영혼이라도 빼앗기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까닭이지요.
그런데
내가 지금 왜 배를 타고 있는지
이 배를 타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모른다면
풍랑은 내 목숨을 위협하는 참으로 위험천만한 사건이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보고 계신 그곳을 바라보고
예수님이 피곤에도 불구하고 배를 타신 의도를 이해하면
풍랑은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닐 수 있습니다.

급히 깨우는 제자들의 울부짖음에 일어나신 예수님께서
바람과 파도를 향해 꾸짖으시자 꾸짖음이 끝나기도 전에
바다는 잔잔해 지고 맙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을 바라보고 계신가요?
여러분이 타신 배는 어디로 가고 있나요?

사람을 살리시려 영혼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
그분과 여러분은 동행하고 계신가요?


죽은 돼지들

다시 장면을 옮겨서 거라사로 가 보십시다.

거기서 귀신들려 고통하던 사람이 주님 앞으로 뛰어 나옵니다.
그런데 나오자 말자 그 사람의 입에서는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며
악다귀를 부리는 귀신의 소리가 나옵니다.
살고자 달려 나온 그 사람의 모습과
그 사람을 억누르고 지배하는 귀신의 모습이
혼합된 복잡한 모습의 한 사람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귀신은 그 사람을 죽이려고 작정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가'라는 단 한마디에 귀신들은
꼼짝 못하고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귀신들은 나가면서 조용히 나가지 않고
돼지떼에게로 들어가겠다고 말합니다.
주님은 그러라고 허락해 주셨습니다.
왜 돼지떼로 들어가려고 했을까요?
돼지 속이 편해서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돼지는 죽지 말아야했습니다.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입니다.
귀신들린 돼지떼는 금방 바다로 몰려 들어 몰사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돼지로 인해 돈을 벌던 사람들은
예수라는 분이 돼지를 죽이고 자신들의 부요를 축내는 사람으로 보게 됩니다.
혹시 그 다음으로 우리집 소와 양들도 다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겟지요.
그렇게 하여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예수님이 자기들의 마을에서
떠나달라고 말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귀신들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도록 꾀를 부린 것입니다.
그리고 무지한 사람들은 귀신으로부터 사람을 고치시고
자유케 하시는 예수님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죽은 돼지만 바라보며 예수님을 몰아내고 만 것입니다.

제자들은 풍랑만
거라사 사람들은 죽은 돼지만 바라봄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보고 계신가요?
어디를 바라보고 계신가요?
우리 공동체는 예수님의 몸이라고 말하면서
주님이 바라보시던 바다 건너편 거라사의 잃어버린 영혼을
함께 바라보고 있는가요?

주님의 마음을 본받아
오직 보내신 하나님의 의도를 이루기 위해
묵묵히 걸어가시던 주님처럼
사람들을 사랑하며 살기를 작정합시다.
주님의 남은 고난을 내 몸에 채우며
예수님이 못다가신 곳으로
우리의 인생을 움직여 주님의 사랑의 도구로
쓰임받는 저와 여러분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1. No Image 17Aug
    by 무익한 종
    2003/08/17 by 무익한 종
    Views 2682 

    예수님의 길(마8: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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