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을 갖춘 농사꾼은 아니지만 얼마 전부터는 예전보다 좀 더 많이 농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논에 모를 심고 좀 있으면 제초제를 쓰지 않은 고로 잔디밭처럼 피어오른 피(풀)를 솎아내야 합니다. 올해엔 좀 더 열심을 내었더니 벼가 자라고 알곡을 많이 맺어 고개를 떨군 모습에 무척 흐뭇합니다. 하지만 올 해엔 유난히도 태풍이 많이 불어와 일부는 허리가 휘어 기울어져 있습니다.
일기와 하늘의 기운에 많이 민감한 생활을 하면서 농업이 참 변수가 많고 의존적인 산업인지라 어려움이 많은 것을 절감합니다. 한편 그렇게 하늘을 의존해야 하기에 복이 있는 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하나님을 바라게 되니까요.
가나안 땅은 애굽과 달리 간조하여 나일강 같은 수원도 없이 하나님이 공급하셔야 농업을 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했습니다.
내가 스스로 자~알 살아가고 남을 의지하지 않고 운영하는 것이 훌륭해 보이는 것은 이 세상의 가치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이 하나님과 함께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분을 바라는 상태가 복이라고 선진들이 고백했습니다.
저는 믿음으로 사는 인생을 원하면서도 의존적인 삶을 싫어했습니다. 내가 약한 것도 싫고 남이 약해서 함께 사는 자들이 치우쳐야 하는 것도 힘겨웠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힘이 없는 자들, 규모 없는 자들, 약한 자들, 가난한 자들에 대해 참 많은 언급을 합니다. 더욱이 “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라고 하시는 죄인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를 생각하면 어쩌면 이 모든 자들이 나 때문에 그렇게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아니 그렇습니다.
항상 마음이 단단하고 교만한 나로 마음을 함께 하고(sympathy), 용납(acceptance), 자비(compassion), 긍휼(mercy), 친절(kindness), 인자(love)와 같은 하나님의 성품을 향하고 구하도록 하게하기 때문입니다.
따지고 보면 고마움을 느껴야 할 대상들이지요.
따지고 보면 결국은 나의 죄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마음을 낮추게 됩니다.
그래서 함께 더불어 사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요. 충만이 거하는 곳이라고 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너무 고맙고 정말 경배와 사랑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로 무엇에든지 참되며, 경건하며, 옳으며, 사랑과 칭찬과 덕을 향하도록 이끄십니다.
나의 인생을 붙잡으시기에 안전함을 느끼고 두려움과 염려를 던지게 하십니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 함께 가자고 초대하시는 주님
당신은 나의 참 신랑이요 영원한 사랑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