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글쎄요 저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당하는 여러가지 예상했던 혹은 예상치 못한 문제들을 풀기 위해
저는 공동체에 대해 형제자매들과 함께 교회론에 대한 공부를 해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와는 별도로 저는 이곳을 빌려 제가 생각했던 공동체, 제가 꿈꾸는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합니다.
우선 제일 먼저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성령님이 임하시면서 일어난 변화입니다.
오순절날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님이 주님의 약속대로 임하십니다.
성령님은 변화의 영이십니다. 사람들을 변화시키시고, 세상을 변화시키시기 위해 임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그분이 임하시면 어둠이 물러가고 빛이 임하게 됩니다. 고통이 떠나가며 평화가 찾아옵니다. 슬픔이 변하여 찬양이 되게 하십니다. 성령님은 변화의 영이십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교회 성도의 모습을 보면 성령님께서 임하시면서 두가지 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첫번째 변화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났습니다.
주님을 배반하고 떠났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하면서 다시금 모인 장소가 바로 마가의 다락방이었습니다. 거기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약속이 성취될 것을 소망하며 열 흘동안 전혀 기도에 힘썼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리고 때가 차매 홀연히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들리면서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자들의 머리 위에 임하십니다. 성령님께서 임하신 것입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서 사람들은 방언을 하기 시작하고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따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으로 담대히 복음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에게서 권능이 나타나면서 그들이 가는 곳마다 불신앙이 힘을 잃고, 질병이 치유되며 어둠의 결박들이 풀어지고 귀신들이 떠나가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변화된 초대교회 성도들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습니다. 증거하는 말들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에 눈뜨게 됩니다.
성령님은 사람들을 변화시키신 것입니다. 자기 중심적이고, 겁쟁이에 불과했던 제자들을 훌륭한 믿음의 용사들로 말입니다.
그리고 변화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성품을 증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성령님은 사람들에게 임하시고, 성령님으로 충만해진 사람들은 변화되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고 그분의 성품과 권능을 드러내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두번째 변화가 있습니다.
그것은 공동체의 변화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 갈릴리와 온 유대를 다니실 때도 제자들은 공동체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같은 전대로 그들의 필요를 해결하였습니다. 공동식탁에도 함께 참여하였습니다. 가룟 유다는 바로 이 전대를 찬 사람이었으며, 최후의 만찬은 바로 이 공동식탁의 마지막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 안에는 비교의식으로 인한 긴장이 흘렀고, 공치사로 인해 사람들 중에는 상처받는 사람도 생기게 됩니다. 끼리끼리 모이는 모습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느슨한 모습의 제자 공동체가 성령님을 경험하게 되면서 본질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제자들은 말씀과 기도에 전혀 힘쓰는 영적인 공동체성을 함께 누리게 됩니다. 말씀이 선포되고 가르침이 베풀어지는 자리에서는 진리 안에서의 자유가 그들 가운데 흐르게 되어 결박이 풀어지며 연약한 자들이 강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장소를 서로 공유하고, 시간을 공유하면서 그들은 모여 서로 떡을 떼고, 음식을 나눕니다. 정서적이고도 물질적인 거룩한 공유가 그들 안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성경은 제것을 조금도 제것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구절을 통해 그들 안에서 온전한 예수님의 주인되심이 실현되었으며 우리는 한 가족이며 한 지체라는 강한 공동체 의식이 싹이 트게 됩니다.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이들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눈을 돌리고 구제와 봉사에 힘쓰게 됩니다. 공동체 안에서는 거룩한 나눔이 있었고 섬김이 있었으며 이 나눔은 안에만 머물지 않고 밖으로 흘러 넘쳐 사회를 풍요롭게 하였고 사회의 연약함을 강하게 하는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이 구절들을 보면서 성령님께서는 공동체를 공동체되게 하사 천국의 거룩한 그림자로 사용하시고 계신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성령님께서는 사람을 변화시키셔서 하나님의 증인이 되게 하시고
공동체를 풍요롭게 하시고 변화시키셔서 하나님 나라의 표징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동체는 하나님과의 밀접한 관계 안에서만 존재이유가 성립합니다.
성령님께서 임재하시고 운행하실 때 그 기능을 발휘하게 됩니다.
대사회적인 봉사와 선교를 통해 공동체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적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한 사람, 성령님으로 충만한 공동체를 통해 주님은 믿지 못하여 사망길로 가는 자들에게 생명을 얻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으로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사모해야 합니다.
개인이 공동체가 모두 성령충만하기를 말입니다.
공동체는 그 조직이나 삶의 형태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성령님으로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그럴 때 공동체는 진정한 모습을 가지게 되고 그 사명을 바로 감당하게 되는 법입니다.
공동체를 하려는 이유는 공동체가 성령님께서 선택하신 가장 효과적인 선교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글쎄요 저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당하는 여러가지 예상했던 혹은 예상치 못한 문제들을 풀기 위해
저는 공동체에 대해 형제자매들과 함께 교회론에 대한 공부를 해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와는 별도로 저는 이곳을 빌려 제가 생각했던 공동체, 제가 꿈꾸는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합니다.
우선 제일 먼저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성령님이 임하시면서 일어난 변화입니다.
오순절날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님이 주님의 약속대로 임하십니다.
성령님은 변화의 영이십니다. 사람들을 변화시키시고, 세상을 변화시키시기 위해 임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그분이 임하시면 어둠이 물러가고 빛이 임하게 됩니다. 고통이 떠나가며 평화가 찾아옵니다. 슬픔이 변하여 찬양이 되게 하십니다. 성령님은 변화의 영이십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교회 성도의 모습을 보면 성령님께서 임하시면서 두가지 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첫번째 변화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났습니다.
주님을 배반하고 떠났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하면서 다시금 모인 장소가 바로 마가의 다락방이었습니다. 거기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약속이 성취될 것을 소망하며 열 흘동안 전혀 기도에 힘썼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리고 때가 차매 홀연히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들리면서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자들의 머리 위에 임하십니다. 성령님께서 임하신 것입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서 사람들은 방언을 하기 시작하고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따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으로 담대히 복음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에게서 권능이 나타나면서 그들이 가는 곳마다 불신앙이 힘을 잃고, 질병이 치유되며 어둠의 결박들이 풀어지고 귀신들이 떠나가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변화된 초대교회 성도들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습니다. 증거하는 말들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에 눈뜨게 됩니다.
성령님은 사람들을 변화시키신 것입니다. 자기 중심적이고, 겁쟁이에 불과했던 제자들을 훌륭한 믿음의 용사들로 말입니다.
그리고 변화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성품을 증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성령님은 사람들에게 임하시고, 성령님으로 충만해진 사람들은 변화되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고 그분의 성품과 권능을 드러내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두번째 변화가 있습니다.
그것은 공동체의 변화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 갈릴리와 온 유대를 다니실 때도 제자들은 공동체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같은 전대로 그들의 필요를 해결하였습니다. 공동식탁에도 함께 참여하였습니다. 가룟 유다는 바로 이 전대를 찬 사람이었으며, 최후의 만찬은 바로 이 공동식탁의 마지막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 안에는 비교의식으로 인한 긴장이 흘렀고, 공치사로 인해 사람들 중에는 상처받는 사람도 생기게 됩니다. 끼리끼리 모이는 모습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느슨한 모습의 제자 공동체가 성령님을 경험하게 되면서 본질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제자들은 말씀과 기도에 전혀 힘쓰는 영적인 공동체성을 함께 누리게 됩니다. 말씀이 선포되고 가르침이 베풀어지는 자리에서는 진리 안에서의 자유가 그들 가운데 흐르게 되어 결박이 풀어지며 연약한 자들이 강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장소를 서로 공유하고, 시간을 공유하면서 그들은 모여 서로 떡을 떼고, 음식을 나눕니다. 정서적이고도 물질적인 거룩한 공유가 그들 안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성경은 제것을 조금도 제것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구절을 통해 그들 안에서 온전한 예수님의 주인되심이 실현되었으며 우리는 한 가족이며 한 지체라는 강한 공동체 의식이 싹이 트게 됩니다.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이들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눈을 돌리고 구제와 봉사에 힘쓰게 됩니다. 공동체 안에서는 거룩한 나눔이 있었고 섬김이 있었으며 이 나눔은 안에만 머물지 않고 밖으로 흘러 넘쳐 사회를 풍요롭게 하였고 사회의 연약함을 강하게 하는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이 구절들을 보면서 성령님께서는 공동체를 공동체되게 하사 천국의 거룩한 그림자로 사용하시고 계신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성령님께서는 사람을 변화시키셔서 하나님의 증인이 되게 하시고
공동체를 풍요롭게 하시고 변화시키셔서 하나님 나라의 표징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동체는 하나님과의 밀접한 관계 안에서만 존재이유가 성립합니다.
성령님께서 임재하시고 운행하실 때 그 기능을 발휘하게 됩니다.
대사회적인 봉사와 선교를 통해 공동체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적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한 사람, 성령님으로 충만한 공동체를 통해 주님은 믿지 못하여 사망길로 가는 자들에게 생명을 얻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으로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사모해야 합니다.
개인이 공동체가 모두 성령충만하기를 말입니다.
공동체는 그 조직이나 삶의 형태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성령님으로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그럴 때 공동체는 진정한 모습을 가지게 되고 그 사명을 바로 감당하게 되는 법입니다.
공동체를 하려는 이유는 공동체가 성령님께서 선택하신 가장 효과적인 선교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