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지금 창 밖으로 하얀 눈이 소리 없이 계속 내리는 것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드디어 토론토로 돌아왔습니다. 첫 날은 Freezing rain이 내려 빙판이 된 길에 아무 생각 없이 나섰다 어처구니 없이 미끄러지며 양 무릎으로 토론토 땅을 확인 했습니다. 2년이라는 시간, 어제 잠이 들어 오늘 깬듯한 느낌이고 아무 것도 변한 것은 없는 듯이 보이는데 전철역을 착각해서 내리고 누군가 말하는 가게나 장소들이 전혀 생소하고 많은 조카들이 생겨난 것을 보면 분명 짧은 시간은 아니었나 봅니다.
감사한 것들은 ……
한 달간의 한국 체류 기간 동안 가족들과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음을 감사 드립니다. 세월은 어렸던 조카들과 연로하신 부모님께 많은 흔적을 남겨 놓았습니다. 특별히 부모님의 건강을 지켜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중간 경유지인 LA에서 비행기가 연착되어 낯선 시카고의 오헤어 공항을 거의 달려서 토론토로 오는 비행기를 탔을 망정 20시간의 짧지 않은 여정을 무사히 마치도록 지켜 주심을 감사 드립니다.
집으로 돌아온 것일지라도 내 집이 없기에 다시 여행자임을 실감하였습니다. 그러나 단 서너 달 간일지라도 머물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을 허락해주심을 감사 드립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영하 23도였던 날 아침 전철역을 향해 잠깐 걸어가는 동안 뺨이 터지는 것 같고 코 속에 고드름이 생기는 것을 느끼면서 토론토가 정말 추운 곳임을 다시 깨달았습니다. 그래도 밤엔 전기 장판이 필요 없고 방 안에서 장갑을 안 껴도 글을 쓸 수 있고 집 안에서 맨발이어도 코트를 더 입지 않아도 안 춥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결코 영하로는 떨어지지 않아도 동상에 걸리고 전기 장판 없이는 잘 수 없는 C시의 겨울과 자칫하면 얼어 죽을 수도 있는 바깥 기온이지만 집 안은 따뜻한 토론토의 겨울은 무척 다르지만 어쨌든 두 곳 다 춥다는 것입니다.
자유롭게 드리는 예배로 감사를 드립니다. 가슴이 후련하도록 찬양하고 함께 말씀을 듣는 예배에 이제 한동안 참여할 수 있음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어느 곳에 있든 예배가 그치지는 않았지만 밀알에서 함께 드리는 예배는 제게 더욱 특별한 감동입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
문득 주위를 돌아보니 사람들이 까만 머리에 작고 비교적 마른 체구들에서 어느새 다양한 머리 색과 훨씬 큰 키와 위압적인 덩치에 영어를 쓰는 사람들로 바뀌었습니다. 식당의 음식 양은 일 인분이 몇 사람이 넉넉히 나눠 먹을 만큼의 분량이고, 보통 자기가 주문한 것을 혼자 먹습니다. 제가 있던 곳은 한국처럼 여럿이 같이 먹습니다. 사람들은 어디서나 천천히 줄을 서있습니다. 눈을 돌리는 곳곳마다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들이 보입니다. 자전거는 아주 아주 드물게 보이고 길에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적은 지 차라리 적막하게 조차 보입니다. 불현듯 막 사람들을 비집고 허겁지겁 에컬레이터를 오르려는 저를 발견했을 때 저는 역문화충 격 (Reverse culture shock)을 실감하게 됩니다. 토큰도 네 개만 사겠다고 실랑이를 버리다 다섯 개를 사는 게 더 싸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자전거만 있으면 도시의 어디든 갈 수 있었는데 토론토에서는 차가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하고 있습니다.
어쩌다 해가 나는 회색의 하늘아래서 저는 파란 하늘과 빛나는 태양이 있는 곳으로 다시 환경을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어디를 가던지 늘 감사하게 되고 저를 겸손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아버지의 말씀이십니다.
저와 저의 개인교사는 “로마서”를 그곳 언어로 다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언어를 배우는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지역 언어가 아직도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그러면서 사투리가 심하고 가끔은 제가 오히려 톤을 가르쳐주기도 하는 이 개인 교사를 바꾸어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처음 그녀와 함께 공부를 시작하면서 제게 필요한 것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녀가 저와의 시간 동안 많이 아버지의 말씀에 노출될 수 있기를 소망했었고, 그녀를 친구로서 받아들이고 “사랑하자” 하였기에 그런 마음을 다 접고 목표했던 책 읽기를 다 마치고 종강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와 그녀의 딸에게 직접 구운 쿠키와 크리스마스 카드를 주며 몇 달간의 이별을 고하였습니다. 제가 떠나던 날은 평일이었고 짐도 얼마 되지 않기에 사람들에게 특별히 도움을 요청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저의 아파트가 5층에 엘리베이터가 없고 가방들은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습니다. 저를 도와주러 온 한 자매와 난감해 하고 있는데 저의 개인교사가 저를 배웅하려고 예상치 않게 찾아와 주었습니다. 그녀는 짐을 옮기는 것뿐 아니라 공항까지 따라와 큰 도움이 되어 주었습니다. 드디어 비행기가 이륙하고 저는 그녀가 비행기 속에서 읽으라고 전해주고 간 크리스마스를 꺼내어 읽었습니다. 카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 나에게 사랑에 대해 많이 이야기 해주어서 고맙다.” 저는 그녀가 제게 보여준 사랑 앞에서 말뿐인 사랑 일 수 있었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해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전 13:4 -7)
언젠가 그녀와 함께 읽었던 말씀입니다. 사랑은 인내라고 자신의 유익만을 구하지 않는 것이라 하신 말씀 덕분에 깜박 사랑을 잊고 그녀와의 관계를 깨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아직도 그녀는 구원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어렵고 힘든 순간에 그분의 말씀을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더 감사한 것은 발음이 무척 정확한 한 자매가 제게 찾아와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발음을 연습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기억해 주십시오.
1. 아버지께 더 가까이 나아가도록
2. 모든 것에 감사함으로 열심히 무릎 꿇도록
3. 모든 관계 안에 겸손과 지혜, 사랑을 더해 주시길
4. 현지에서 필요한 것들을 이곳에서 잘 준비할 수 있는 시간 되도록
5. 현지 친구들의 구원을 위해 – W, H, S, C등
저를 위해 서울에서 어렵게 시간을 내어준 친구들, 정말 불편한 시간임에도 기대치 못하게 마중을 나와준 친구들, 기꺼이 자신의 방을 나누어 쓰게 해준 방 친구, 반겨주시고 수고했다고 말씀해주시는 성도님들로 인하여 아버지께 더욱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늘 기억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날이 많이 춥습니다. 건강하세요.
2005년 1월
마르다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