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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Jun
『새로운 교회가 온다』 서평작성자: 박창수 IP ADRESS: *.179.34.254 조회 수: 3962
『새로운 교회가 온다』 서평
박창수
1. 논지
마이클 프로스트와 앨런 허쉬가 함께 지은 『새로운 교회가 온다』(지성근 옮김, IVP, 2009)는 한마디로 “새로이 등장하는 선교적 교회(the emerging missional church)를 위한 지침서”(12쪽)이다. 이 책의 논지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후기 크리스텐덤(기독교제국) 시대에 선교적 교회는, 1) 사람들을 끌어 모으려 하기보다는 ‘성육신적’으로 미(未)그리스도인들과 함께 거하면서 그 문화 속으로 들어갈 것이고, 2) 이원론적이 아니라 ‘메시아적’인 영성을 받아들여 세상을 거룩한 것과 속된 것으로 나누어 보지 않고 통합적으로 볼 것이며, 3) 위계적이 아니라 ‘사도적’인 리더십을 발전시킬 것이다.
2. 성찰
필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한국 교회를 깊이 성찰하게 되었다. 성찰하게 된 점들 가운데 인상적인 것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선교에 대한 강조이다. 두 저자는 선교적 교회는 교회의 본질을 선교를 위한 존재로 보기 때문에, 스스로를 목적이 아니라 과정으로 보고 또 제도가 아니라 운동으로 본다고 강조한다(131쪽). 한국 교회는 선교적 교회가 되어, 한국 사회 안의 반(反)기독교 문화 혹은 비(非)기독교 문화 속으로 적극적으로 들어가 선교적 사명을 수행해야 한다.
둘째, 동기와 의도에 대한 강조이다. 두 저자는 유대교의 ‘카바나’, 곧 “우리 행동 속에서 의도성의 수준을 극대화하기 위해 생각과 마음을 다스리고자 주의를 모으는 것”(236쪽)을 소개하면서, “성경적 윤리는 항상 신약의 가르침 속에서 동기와 의도의 요소를 강조하였지만, 우리는 이것을 기독교적 삶과 선교에 적용 가능하고 의미 있는 것으로 삼지 못하였다”(238쪽)고 지적한다. 한국 교회는 모든 면에서 동기와 의도를 무시하고 결과만을 갖고 따지는 비성경적인 세상의 조류에 휩쓸려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크게 우려된다. 교회의 삶과 선교에서 동기와 의도를 중시하는 성경적인 관점이 반드시 회복되어야 한다.
셋째, 상상력에 대한 강조이다. 두 저자는 “상상력은 하나님이 우리가 살기 원하는 세상을 꿈꾸도록 주신 능력이다”(335쪽)고 말하면서, 교회가 선교적 교회의 꿈을 꾸고 용기 있게 모험을 할 것을 강조한다. 필자는 한국 교회가 선교적 교회뿐만 아니라 희년 정신이 구현되는 ‘희년 교회’를 상상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용기를 갖고 모험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넷째, 설교 의존성에 대한 비판이다. 두 저자는 ‘맥루한 이론’을 인용하여 “설교는 회중으로 하여금 그 전달자에게 중독되게 만든다”(276쪽)면서, “우리는 설교라는 것을 만들었고”(277쪽), “다시 설교는 우리를 만들었다. 우리는 전적으로 설교 의존적이 되어버렸다”(277쪽)고 비판한다. 한국 교회는 지나치게 설교 의존적인 교회가 되어 버렸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배의 본질을 ‘설교 듣고 은혜 받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필자는 설교를 아예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필자의 주장은 그리스도인들이 지나치게 설교 의존적이 되지 않도록, 예배에서 설교가 갖는 의미와 더불어 한계도 고려하여 설교의 제자리를 찾아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섯째, 건물 중심성에 대한 비판이다. 두 저자는 “우리가 건물을 짓고, 그러고 나서 그 건물이 우리를 형성한다”(277쪽)는 통찰 깊은 비판을 하며, “건물은 그저 도구이며 우리는 항상 이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기독교는 자체 건물을 가지지 않았을 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 본질에 가장 효과적이었고 합당했다”(278쪽)고 강조한다. 한국 교회는 지나치게 건물을 중시하는 교회가 되어 버렸다. 대부분의 교회가 예배당 건축을 가장 중요한 과업으로 생각하고 있다. 막대한 재정이 건물에 사용된다. 그래서 정작 사용되어야 할 선교와 구제에 재정이 별로 지출되지 못한다. 한국 교회는 성경의 가르침대로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 성전임을 깊이 인식하고, 교회 재정을 건물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선교와 구제에 사용해야 한다.
이 외에도 필자는 이 책에 나오는 많은 그림들과 표들을 통해 선교적 교회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독자를 위해 이처럼 그림과 표를 통해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자 애쓴 두 저자의 노력은 인정받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 교회가 이 책의 논지처럼 선교적 교회, 곧 성육신적이고 메시아적이며 사도적인 교회로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