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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선교

28

2010-Jun

『약할 때 기뻐하라』 서평

작성자: 박창수 IP ADRESS: *.179.34.254 조회 수: 2229

 

『약할 때 기뻐하라』 서평


박창수


마르바 던은 『약할 때 기뻐하라』에서 요한계시록의 4가지 연구 관점에 대해, 요한계시록을 쓰게 된 역사적 상황, 요한계시록을 쓴 목적, 요한계시록의 다양한 양식, 그리고 하나님 중심을 강조한다. 그리고 던은 요한계시록의 3가지 신학적 요지에 대해, 하나님의 궁극적 승리, 반대하는 마귀 세력, 그 결과 악에 맞선 성도들의 싸움을 제시한다. 또한 던은 이 싸움에 대한 최선의 태도에 대해, 성도들이 자신의 약함을 깨닫고 자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전적으로 의지해야 하며, 그래서 성도들은 세상과 달리, 자신의 고통과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가치 있게 여겨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 서평의 본론에서는 던의 이 책이 갖고 있는 장점들과 단점들을 몇 가지로 나누어 기술하고자 한다.


1. 장점


이 책에는 몇 가지 좋은 점들이 있는데, 그 장점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던은 요한계시록에 대한 해석의 문제에 대해 바람직한 제안들을 한다. 먼저 던은 요한계시록을 해석할 때, ‘문자 그대로의’(literalistic) 해석을 하지 말고, ‘본문에 충실한’(literal) 해석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상징, 은유 등의 예술적 도구를 영감 넘치게 사용해서 그 의미와 신비를 강조하고 있는 훌륭한 문학 작품이라는 사실을 잊은 것인 데 반하여, 후자는 성경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거기서 말하는 것이 진정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 삶을 진리로 인도할 수 있는 권위가 있음을 믿는 것이다(마르바 던, 65쪽). 그래서 요한계시록의 많은 장면들은 ‘시각적 실재’(visual reality)가 아니라, ‘상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마르바 던, 65-66쪽).


그리고 던은 요한계시록을 해석할 때, ‘변증법적 긴장’을 유지할 것을 권고한다. “두 가지가 서로 모순되어 보이지만 그 둘 사이에 있는 어떤 진리의 총체를 보존하는 데 그 둘이 다 필요한 경우, 그 둘은 변증법적 긴장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마르바 던, 75-76쪽). 그 예는 예수님이 참 하나님인 동시에 참 인간이라는 역설이다(마르바 던, 76쪽).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너무나 많은 변증법적 요인들이 긴장 관계를 이룰 수밖에 없다(마르바 던, 75쪽). 진리와 사랑의 결합이 그 한 예인데, 이 둘이 우리 안에서 균형을 이루어야만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교회, 곧 사랑을 행하면서 진리에 충실하고, 진리에 충실하면서 사랑을 행하는 교회가 될 수 있다(마르바 던, 76쪽).


둘째, 던은 ‘약함의 신학’을 제안한다. 먼저 던은 고린도후서 12장 가운데 바울이 육체의 가시로 인한 고통에 대해 말하는 본문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따라서 그 구절은 이렇게 번역될 수 있다. “이는 약함 속에서 능력이 끝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바울의 다음 문장이 논리적으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나는 오히려 더 크게 기뻐하며 내 약함을 자랑할 것이다. 내 안에 그리스도의 능력(끝이 난 내 자신의 미약한 능력이 아니라)이 거하게(장막을 치게) 하기 위해서다!”


“약함 속에서 능력이 끝나게 되었다”는 번역은 가시 같은 고통의 시간에 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족한지를 더 명확하게 강조한다. 우리가 자신의 미약한 능력을 포기하고 약함 속에서 그것이 끝나게 하면, 그때 하나님의 은혜가 더 완전하게 우리 위에서,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해서 역사하실 수 있다. 우리가 자신의 능력으로 뭔가 할 수 있는 한, 우리는 자신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결코 완전하게 깨달을 수 없다. 그러나 약함 때문에 자신이 하려는 일을 할 수 없을 때, 우리는 더 이상 자신의 미약한 능력으로 싸우지 않게 된다. 그때 그리스도는 우리를 아버지의 뜻에 맞출 수 있게 되고 우리는 성령의 손에 맡겨진 그릇이 된다.”(마르바 던, 179-180쪽).


그리고 던은, 예수께서 성육신하여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안에 장막을 치셨고(요 1:14),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에 우리 안에 완전히 장막을 치시듯(계 7:15),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약함 속에서 우리 위에 장막을 치신다고 역설한다(마르바 던, 181쪽). 이어서 다음과 같이 약함의 신학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이 성경의 진리는 이기는 것, 최고가 되는 것, 자기만족, 최고 권력을 강조하는 이 시대의 모든 소리들을 완전히 거부한다. 너무나 놀랍게도 하나님이 우리 안에 장막을 치실 수 있게 하는 것은 우리의 지격이나 능력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약함 속에 있다. 우리의 제한 속에서, 우리가 고통과 큰 시련을 겪고 있을 때, 우리는 그분의 임재를 가장 잘 경험할 수 있다.”(마르바 던, 181쪽). 

  

셋째, 던은 ‘종말론적 윤리’를 강조한다. 먼저 던은 마지막 때가 언제인지 알려고 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지 말고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사는 데 초점을 맞추라고 강조한다.


“역사적인 그리고 작품상의 문맥을 벗어나 이 말씀을 읽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생각한 휴거의 다양한 측면들을 논쟁하며 아까운 시간을 소비하기도 한다. 예수께서 이미 여러 번(예를 들면, 눅 17:23, 21:8) 마지막 때를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좇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구체적으로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어떻게 끝날지, 그리스도가 언제 어떻게 오실지, 우리가 어떻게 이 세상을 벗어나 그분과 함께 있게 될지 전혀 알지 못하는 우리로서는 그러한 것들을 추측하지 않는 편이 훨씬 낫다. 오히려 그리스도가 그 시기 동안에 우리에게 주신 메시지-회개하라, 깨어 있으라, 전파하라, 공의와 자비를 행하라, 하나님과 겸손히 동행하라-에 집중해야 한다.”(마르바 던, 133쪽).


그리고 던은 계 2:14에서, 우상의 제물을 먹는 문제에 대해 깊고 넓게 적용한다. “더 신중하게 살자는 것, 우리가 고기를 먹는 것(삶의 모든 경제적 측면)이 (모든 종류의 정치적·경제적) 우상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지 스스로 물어보며 살자는 것이다.”(마르바 던, 106쪽).


또한 던은 요한계시록의 종말론적 경제 윤리에 대해 중요한 언급들을 한다. 던은 계 2:18-29에 대한 적용에서, 미국의 잘못을 예리하게 비판한다.


“미국은 줄곤 제국주의적 입장에 있었고 다른 나라의 유익을 고려하지 않았다. 제3세계의 경제 성장을 촉진시키는 대신 그들의 것을 강탈했다.”(마르바 던, 118쪽).


그리고 던은 계 3:14-22에 대한 적용에서, 근본적이면서도 급진적인 기독교 경제 윤리를 제안한다.


“부자는 더 부유하게 되고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하게 된다. 돈을 사용하는 방법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첫 발자국을 내딛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주 흥미로운 상상을 해보게 만든다. 만약 모든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우리가 정말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돈을 쌓아 두려는 성향이 증가하는 것을 가로막고서 “내 몫은 여기까지고 그 이상은 안돼”라고 말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마르바 던, 142쪽).


또한 던은 계 5:1-14에 대한 해석에서, 승리가 희생을 통해 온다는 진리를 힘주어 강조한다.


“승리자, 사자, 이새의 뿌리라는 칭호와 그것이 어린 양 안에서 실제로 성취된다는 사실 사이의 극명한 대조 때문에 우리는 신약성경 전체와 특히 요한계시록에서 보이는 중요한 주제를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승리가 희생을 통해 온다는 사실이다.”(마르바 던, 159쪽).


던은 이 진리를 교회에 적용한다. 던의 다음과 같은 언급은 교회가 실천해야 할 종말론적 윤리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승리는 희생을 통해 얻어진다. 교회가 이것을 올바로 이해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가장 멋진 교회 건물을 바라는 대신 집 없는 이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고 배고픈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곳을 열망한다면? 가난하고 아무 것도 갖지 못한 이들에게 기술을 가르치고 그들의 건강 관리와 구직을 돕기 위해 교회 공동체가 더 깊이 동참할 수 있다면?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이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그들의 토지와 잠재력을 지켜줄 수 있다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슬럼가, 빈민촌, 소외계층, 공허한 부유층, 신체적·정신적 장애인들에게 하나님 나라가 임할 수 있도록 진정으로 그 이웃들의 상황 속에 동참한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마르바 던, 160쪽).


그리고 던은 계 6:15-17에서, 하나님의 낯과 어린 양의 진노를 피하여 숨고자 하는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그 묘사에는 세상 모든 강한 자-임금, 고관, 장군, 부자, 세도가, 자유인-들이 포함되어 있다. 종이라는 단어만 유일하게 낮은 자를 나타낸다. 그 목록은 모든 신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노 앞에서 도망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단어들의 비율이 지적하는 것은, 강한 자들의 권세와 부는 그들이 하나님을 향하게 하기 보다는 자신을 의지하게 할 여지가 더 많다는 사실이다.”(마르바 던, 171쪽).


또한 던은 계 17-18장에 대한 해석과 적용에서, 기독교인들의 개인적·집단적 맘몬 숭배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히브리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의 부의 숭배에 대해 맹렬히 경고했다. 예수님도 동일하셨다. 공관복음의 말씀 가운데 약 6분의 1이 맘몬의 위험과 관계된 문제다. 여기 요한계시록에서는 물질의 유혹은 세상을 파멸케 하는 원인이며, 그 유혹 중에서도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맘몬의 유혹이라는 이 모든 경고들이 정점에 이른다.”(마르바 던, 260쪽).


이어서 던은 음녀 바벨론이 성도들의 피와 예수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해 있다는 본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그 의미를 역사화하고 사회화한다. “중남미의 여러 순교자들을 생각해 보라. 자신의 신앙을 따라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 속에서 사역한 그들은, 그것 때문에 체포되고 고문당하고 암살됐다.”(마르바 던, 262쪽). 그리고 던은 계 21:8의 둘째 사망의 해를 받게 될 사람들의 목록에 대해,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경고에 담긴 모든 영역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마르바 던, 285쪽). “우리는 집합된 죄 목록들을 통해, 우리의 윤리 영역 가운데 사소한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마르바 던, 285쪽).


그래서 던은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본문 말씀이 우리에게 촉구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현재 어떻게 통치하고 계시는지에 주목함으로써 매일의 삶에서 그 나라의 뜻대로 살기 위해 더 신중하라는 것이다.”(마르바 던, 288쪽). 던에 의하면 “우리의 윤리는 구원과 영생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자라야 할 필수적인 영역이다.”(마르바 던, 295쪽).


2. 단점


던의 요한계시록 해석에는 몇 가지 문제점들이 있다. 그것들은 이 책의 단점인데 다음과 같다. 첫째, 던은 계 1:7의 예수님의 오심에 대해, 그리스도의 재림이라고 해석한다(마르바 던, 61-63쪽). 그러나 이 본문에서 예수님의 오심은 “초림과 재림 사이에 일어나는 상시적 오심”(이필찬, 59쪽)이다. 그리고 이 본문에서 땅의 모든 족속들의 슬픔은 회개를 위한 거룩한 슬픔이며, 이런 회개의 역사는 예수님의 초림부터 재림까지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다(이필찬, 59쪽). 또한 이 본문에 대해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는 번역은 원어에 충실하게 “구름과 함께 오시리라”로 수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이필찬, 57쪽).


둘째, 던은 계 1:19에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에 대해, 각각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해석한다(마르바 던, 72쪽). 그러나 이런 해석은 과도한 단순화의 오류이다.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은 모두 동일한 내용으로 같은 의미를 세 번 반복한 것으로서, 이는 구속사적 성취를 강조할 뿐만 아니라 묵시문학적인 삼중적 표현 형식을 구성하기 위한 것이다(이필찬, 99-102쪽).


셋째, 던은 계 1:20에서, ‘일곱 교회의 사자’에 대해, “아마 그 교회의 사자란 각 지역의 영적 지도자를 의미했을 것”(마르바 던, 72쪽)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일곱 교회의 사자는 ‘교회를 대표하는 천상적 존재’로서, 이는 교회 공동체의 천상적 성격을 드러냄으로써, 교회 공동체가 천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한다(이필찬, 105-106쪽).


넷째, 던은 계 2:17에서, ‘감추인 만나’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석한다(마르바 던, 108-109쪽). 그러나 감추인 만나는 유대 전승을 고려할 때, 마지막 날에 주어지는 메시아적 축제와 연결되어 하늘의 영원한 축복을 의미한다(이필찬, 149쪽).


다섯째, 던은 계 2:23에서,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에 대해, 죄 중에 잉태된 아이들이 사산되는 것으로 해석하면서, 간음으로 임신된 아기들의 낙태율이 대단히 높다는 사실만으로도 이것은 증명된다고 덧붙인다(마르바 던, 114쪽). 그러나 이 본문에서 그(녀)의 자녀(들)은 이세벨과의 친밀도를 극대화한 표현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는 표현과 대조되는데, 이들은 이세벨의 가르침에 완전히 몰입되어 있는 제자들 그룹으로서, 아예 회개하기를 거부한 자들이다(이필찬, 160쪽).


여섯째, 던은 계 4:1에서, ‘이 일 후’에 대해, 시간적 순서로 이해하여 ‘시험의 때 이후’, ‘세상의 고통이 지나간 이후’를 말한다고 해석한다(마르바 던, 149쪽). 그러나 ‘이 일 후’라는 번역은 ‘이 후’라고 교정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환상에 대해 시간적 순서가 아니라 논리적 순서로 이해하여, 시간적인 속성이 아니라 수사적인 표현기법으로 보아야 한다(이필찬, 239쪽).


일곱째, 던은 계 4:6에서,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에 대해, ‘얼음 같은 유리 바다’로 표현한다(마르바 던, 152쪽). 그러나 이 구절은 하늘 성전을 묘사하는 겔 1:22 ‘수정 같은 궁창’(이필찬, 254쪽)이라는 표현을 생각할 때, 얼음이 아니라 원문대로 수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덟째, 던은 계 6:2에서, ‘흰 말을 탄 자’, 곧 첫째 말 탄 자에 대해, 서두에서는 “나 역시 첫째 말 탄 자가 다른 세 말과 마찬가지로 악의 세력이라고 생각하게 되기는 했다”고 언급하지만, 곧 이어서 “나는 첫째 말에 탄 자가 그리스도라고 확신한다(인을 떼는 분이 어린 양이기는 하지만)”고 주장한다(마르바 던, 167쪽). 그러나 흰 말을 탄 자는 스가랴 1장과 6장의 배경을 고려할 때,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는 전령’으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이필찬, 321쪽).


아홉째, 던은 계 9:1에서, ‘무저갱의 열쇠를 받은,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에 대해, 계 8:10-11 ‘쑥이라는 이름을 가진 별’과 동일시한다(마르바 던, 208쪽). 그러나 무저갱의 열쇠를 받은,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은, 사 14:12-14를 구약 배경으로 고려할 때, 사탄이다(이필찬, 410쪽).


열째, 던은 계 11장에서, ‘두 증인’에 대해, 여러 해석을 언급하면서 가장 유력한 해석은 ‘모세와 엘리야’라고 주장한다(마르바 던, 219-220쪽). 그러나 이 본문에서 두 증인은 ‘교회 공동체 전체’를 상징한다(이필찬, 483쪽).


열한째, 던은 계 12장에서, ‘여자’에 대해, 마리아 혹은 하와라는 해석을 소개한 후에 마리아는 아니라고 언급하고 그쳐 버림으로써 모호한 채 남겨 둔다. 그러나 이 본문에서 여자는, ‘신약과 구약의 모든 하나님의 백성을 아우르는 교회 공동체’를 상징한다(이필찬, 531쪽).


참고 문헌


마르바 던 지음, 박규태·정소영 옮김, 『약할 때 기뻐하라』, 복 있는 사람, 2009.

이필찬 지음, 『요한계시록-내가 속히 오리라』, 이레서원,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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