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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Feb
희년의 사람들-추양 한경직작성자: 박창수 IP ADRESS: *.39.227.146 조회 수: 3974
희년의 사람들-박창수 성서한국 경제분과 전문위원
추양(秋陽) 한경직
한경직 목사(1902~2000)는 한국 교회의 큰 어른이었다. 신사참배 묵인과 북진 통일 촉구, 그리고 광주시민을 학살한 신군부를 위한 공식적 축복 등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별개로, 그는 개인적으로는 재물에 대해 탐욕을 부리지 않고 일평생 청빈하게 살면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자신이 먼저 섬기는 삶을 살았다. 그의 호는 추양(秋陽)인데, 어릴 적 한 선생님이, “네가 있으면 가을 햇볕처럼 주변이 따뜻하게 되는 것 같다.”고 하여 훗날 ‘가을 햇볕’이란 뜻을 가진 호를 짓게 된 것이다. 이 글에서는 추양의 희년 정신 실천 이야기 한 토막을 나누고자 한다.
추양이 신의주 제2교회를 섬기고 있던 어느 날, 한 청년이 찾아 와서 교회 교구였던 한 빈민가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면서, 절박한 한 가정을 방문해 줄 것을 요청했다. 추양은 선뜻 내키지는 않았으나 마음에 찔림이 있어서 따라가게 되었다. 오두막집 안에서 40대 남자가 폐병으로 누워있었고, 열 살도 안 되어 보이는 작은 여자 아이가 불을 때고 있었다. 그 여자 아이는 철도 사고로 다리 한 쪽을 잃었는데, 이름은 김복순이었다. 사연을 물으니, 복순이 아버지는 농촌에서 농사를 짓다가 흉년이 들어서 먹고 살 수 없어서 신의주로 올라오게 되었고, 시장에서 지게 지는 일을 했는데, 그만 폐병에 걸려 일 년 전부터 앓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자 그 어머니가 결국 갓난아기를 업고 집을 나가버렸다고 했다. 청년의 말처럼 두 부녀는 자칫하면 굶어 죽을 수 있었다. 추양은 그 가정을 돕는 것을 교회에 제안하였고, 교회는 흔쾌히 받아들여 복순이 아버지의 치료를 위해 깨끗한 집을 마련해 주고 정기적으로 의사가 방문하여 진찰을 하게 해 주었고 양식도 주기로 하였다.
한 달 생활비를 털어서 고아 소녀의 의족을 맞추어 주다
추양이 복순이를 다시 만났을 때, 복순이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다 들어주시는지 물었다. 추양이 그렇다고 대답하자, 복순이는 자기 다리가 새로 생기도록 추양에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추양은 처음에 무척 난감했다. 그런데 복순이를 위해 기도하면서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것은 복순이를 위해 의족을 맞추어주는 것이었다. 다만 그 비용이 문제였다. 추양은 복순이가 특별히 자기에게 기도를 부탁한 것이기 때문에, 교회에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자기 돈으로 마련해 주는 것이 온당하다고 생각했다. 추양의 수입은 교회에서 받는 생활비가 전부였다. 추양은 그 달 생활비를 다 털어 복순이에게 의족을 맞추어 주었다. 결코 쉽지 않은 실천이다. 그런데 복순이가 의족을 보면서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그래서 자기도 하나님을 믿겠다고 이야기했다. 그 말에 추양은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집에서는 추양의 부인이 한 달 생활비가 없어 고생을 하였다. 그런 사정을 알게 된 교회에서 추양의 생활비를 돈으로 주지 않기로 결정했다. 돈으로 주면 다시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해 버릴 것이라며, 쌀과 생필품으로 주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추양은 그 후로는 생활비를 돈으로 받지 못했다.
복순이 아버지가 이듬해에 세상을 떠나자, 혼자 남은 복순이를 어떻게 도와야 할지 추양은 고민했다. 한 여전도사가 복순이를 맡아 기르겠다고 하여 그 집에 보냈는데, 한 달쯤 후에 복순이가 추양을 찾아와 울었다. 여전도사는 잘 해주었는데, 철없는 아이들이 못 살게 굴었던 것이다. 그래서 추양은 복순이를 위해 고아원을 세워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추양은 독지가들을 찾아 호소했고, 감동한 사람들의 성금을 모아 고아원을 열게 되었다. 3년 정도 지나 원생이 50명 정도로 늘어나 고아원이 비좁아지면서, 차제에 양로원까지 함께 지을 계획을 갖고 터를 알아보고 성금을 모았다. 결국 면소유지를 무료로 빌려서 건물을 짓고, 이웃을 돕는다는 뜻으로 그 이름을 ‘보린원(保隣院)’이라고 지었다.
자기 가족의 한 달 생활비를 털어서까지 한 쪽 다리가 없는 고아 소녀를 보살피고 책임지고자 한 추양의 진실한 사랑의 실천이 보린원 설립으로 이어졌다. 그 후 선명회(현 월드비전)와 홀트 양자회 등 고아들과 소외된 사람들을 섬기는 추양의 사역은 평생을 두고 지속되었다. 구약성경 레위기 25장의 희년법에 의하면, ‘근족(近族)의 토지 무르기’와 ‘근족의 사람 속량’ 규례는, 가까운 친족이 값을 대신 지불함으로써 가난한 친족이 토지와 자유를 회복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희년 정신은 한 마디로 자신의 재물을 희생해서 가난한 이웃의 고통스런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추양은 개인적으로 희년 정신을 실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이야기는 그의 호에 담긴 뜻처럼, 가을 햇볕과 같이 따뜻한 감동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출처: <플러스인생>(전 <신앙계>) 2008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