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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노래
2004.05.07 21:30

고추 심습니다.

조회 수 2889 추천 수 22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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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중순부터 4월 한달을 정신없이 공동체 3호집 건축하다보니
정작 농부로서 해야할 중요한 일들을 뒷전으로 밀어두었었습니다.
내일 고추를 심는데 오늘에야 형제들의 도움을 받아 밭에 골을 만들고
비닐로 멀칭을 하였습니다.
한 형제가 웃으며 '학교 다닐 때 초치기 많이 하셨죠?'하시는데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형제들만 그런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밭도 저를 대하는 모습이 무뚝뚝한 표정인 것 같아
일을 하면서도 내내 미안한 마음으로
늘 하던 찬양도 읊조리지 않고 자중하였습니다.

여러가지 사정으로 몇 년째 묵은 밭을 올해 농사를 짓게 되었는데
돌도, 돌도 우째 이리 많은지 골을 만드는데 흙이 모이는 것이 아니라
돌들과 사기그릇 조각들만 잔뜩 모여 산을 이루기에
내일 고추 심을 일이 벌써부터 염려스럽습니다.

이 밭은 아주 오래전에 그릇을 굽던 가마터였던 것 같습니다.
어떤 책을 보내 삼국시대 때라고 하는데 백제였는지, 신라였는지......
도공의 피와 땀 못다이룬 꿈이 사금파리에 묻어 있는 듯하여
일을 하면서도 자꾸만 사금파리 조각을 만지작거렸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그릇을 만들던 그분처럼
저도 누군가를 위해 올해도 고추를 심습니다.

  • ?
    김낙중 2004.05.11 00:58
    강목사님, 오래 문안 여쭙지 못했어요. 제 고향이 경기도 광주 분원인데, 뒷동산에 사기 가마(백자를 굽던) 터가 있었지요. 거기에 고추밭 만들었더랬는데, 잘 안 되어 콩도 심어보고 그랬지요. 시대와 장소가 바뀌어 반복되는... 잔잔한 감동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