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산천 돌고돌아 ‘1만㎞ 대장정’
한반도 북녘에서 남녘으로 넘어오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멀어야 500㎞ 남짓, 차량을 이용하면 5시간이면 닿을 곳을 1년 넘게 산을 넘고 강을 건너야 했다.
27일 동남아 한 국가에서 입국한 탈북자 200여명은 생사가 경각에 달리는 위기는 물론 때론 극한상황까지 내몰리는 인간적인 모멸감을 감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이 북한을 탈출해 동남아 제3국 국경까지 당도하는 데 소요된 기간은 통상 3~4개월.
물론 도중에 중국 공안당국에 체포, 구금되지 않았을 경우에 그렇다. 압록강이나 두만강을 건넌 뒤 곧바로 옌지(延吉)나 투먼(圖們), 룽징(龍井) 등 중국동포 밀집지역 내 은신장소를 찾아 중국내 활동에 필요한 위조신분증을 만들었다. 절반 이상은 중국 내에서 1년 이상 머물면서 탈출비용을 마련하거나, 브로커 등과 접촉한 것으로 전해졌다.
탈북자 지원단체 등과 선이 닿을 경우 ‘실경비’ 명목으로 통상 3백만원 안팎의 돈을 건넸지만 개중에는 전문 브로커에게 최고 1천만원까지 ‘사례비’를 주기로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원단체 관계자 또는 브로커들의 안내를 받으며 최근 각광을 받는 남방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통상 1주일 가까이 이용해야 하는 열차 안에서도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종종 있곤 하는 불심검문에 걸릴 경우 한국행 꿈은 일순간 사라지기 때문이다. 중국 남서부 난닝(南寧)에 도착한 뒤 동남아 제3국 국경을 넘었다.
이때부터 지린(吉林)성 등 중국 동북 3성에서 이곳까지 인솔했던 안내인들은 손을 떼고 정부가 현지 교민 등을 통해 위탁관리하는 안전가옥으로 넘겨졌다.
한국행이 용이한 인접국 집결지로 세번째 국경을 넘기까지 외출이 금지되는 사실상의 수용생활을 해야 했다.
문제는 여기서 불거졌다. 인접국 내 집결지의 탈북자들이 한국으로 빠져나가지 못해 적정 수용 규모(200여명)에 육박하면서 적체되기 시작했고, 이들까지 연쇄적으로 발이 묶인 것이다.
통상 2층으로 된 남방가옥의 좁은 방마다 4~5명씩 갇혀 지내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폭력사태가 벌어지는 등 갖가지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탈북자는 민간 지원단체나 우리 정부가 위탁 경영하는 보호시설을 무단 이탈해 다른 지방까지 옮겨가 말썽을 부린 것으로 전해졌다. 앞날에 대한 불안감이 원인이었다.
하지만 지난 5월부터 우리 정부가 직접 협상에 나서고 “곧 비행기를 띄운다” “한꺼번에 한국 간다”는 말이 전해지면서 분위기는 다소 진정되기 시작했다고 현지의 한 관계자는 말했다.
정부는 6월 말부터 한 도시의 보호시설 4~5곳에 이들을 집결시켰고, 그 과정에 소문을 들은 탈북자들이 대거 몰려들어 숫자가 불어났다.
이들 중 1진 200여명이 천신만고 끝에 서울에서 날아온 전세기에 몸을 실은 것은 오전 1시쯤(현지시간).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1년여 만에 처음으로 안도의 한숨을 쉰 순간이었다.
〈김진호기자 jh@kyunghyang.com〉 입력: 2004년 07월 27일 18:1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