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 건축

건축물에서 사용하는 열에너지의 양이 전체 에너지 사용량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꽤 높다. 그런데 태양에너지를 적절하게 받아들이도록 건물을 설계하면 에너지 사용량을 크게 줄일 수 있다. 태양열 집열장치를 설치해서 건물을 난방하거나 온수를 만들지 않고 건물의 설계만으로 태양에너지를 받아들이는 것을 자연형 태양에너지 이용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이용기술은 이미 검증되어 있고, 많은 건물이 자연형으로 설계되어 조명과 내부 열에 태양에너지를 이용하고 있다. 빛이 비칠 때 채광창을 통해서 빛을 받아들여 전기조명이 필요없도록 설계하면 전기를 불필요하게 소비할 필요가 없고, 단열을 적절하게 한 상태에서 건물 안으로 들어온 태양에너지를 가능한 한 많이 축적할 수 있도록 건축하면 건물 내부에서 난방에 필요한 열이 크게 줄어든다. 열의 축적은 커다란 단열창을 통해서 태양에너지를 받아 집열 능력이 뛰어난 벽체나 바닥재가 이 열을 흡수하도록 하는 방식, 벽 자체의 단열재를 투명한 플라스틱이나 유리로 만든 것을 사용해서 벽에 태양에너지가 직접 흡수되도록 하는 방식 등 여러 가지가 나와 있고 실행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을 이용해서 건축한 건물 중에 널리 알려진 것은 애모리 로빈스가 설립한 유명한 로키마운틴 연구소이다. 이 연구소는 해수면으로부터 2200미터 위에 위치해 있지만 필요한 모든 난방에너지를 태양으로부터 얻는다. 건물은 철저하게 단열처리되어 있고, 태양빛은 가능한 한 많이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http://energyvision.org/file/태양%20건축/그림55%2D슐리어베르크.jpg

슐리어베르크 플러스에너지 하우스

http://energyvision.org/file/태양%20건축/그림56%2D헬리오트롭.jpg

헬리오트롭

http://energyvision.org/file/태양%20건축/그림57%2D졸라콤플렉스2.jpg

졸라콤플렉스 제로에너지 하우스

로키마운틴 연구소가 있는 곳은 외기 온도가 섭씨 영하 44도까지 내려가고 일년 중 52일만이 서리가 생기지 않는다. 일년의 대부분이 겨울이고 7월에만 잠깐 따뜻한 날씨가 있을 뿐이다. 햇빛은 자주 비치는 편이지만 구름이 낀 날이 30일 이상 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밖에서는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어도 건물 안에서는 바나나가 자라고, 오렌지가 열리고, 연못에서는 금붕어가 헤엄치고 있다. 오랑우탄이 노는 장소도 마련되어 있다. 3월과 4월에 낮이 점점 길어지면 열대 식물들이 개화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건물에는 전통적인 난방장치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 태양에너지를 자연형으로 이용하는 방식을 통해서 에너지를 조달하기 때문이다. 집열판이 구름이 끼었을 때 지상으로 오는 간접광(산란광)을 흡수할 수 있듯이 이 건물의 창문은 해가 비치지 않을 때도 간접광을 붙들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 창문의 단열 효과는 보통 창문 열두개를 합친 것과 같다. 창문은 가시광선의 4분의 3, 태양에너지의 절반을 안으로 들여보내지만, 열에너지는 거의 내보내지 않는다. 돌로 된 40cm의 벽과 지붕은 철저하게 단열재로 덮여 있어서 열손실이 최소화된다. 신선한 공기도 물론 건물 안으로 들어와야 하지만, 외부 공기는 열교환기를 통과하면서 나가는 공기가 남긴 열을 받아 데워져서 들어온다.

낮에 비치는 햇빛은 모든 방향으로부터 들어와서 건물 안에서 필요한 조명의 95%를 담당한다. 인공조명이 꼭 필요할 경우에는 초절전 램프가 켜져서 최소한의 전기를 소비한다. 조명은 낮에 햇빛이 들어오는 양에 따라 자동적으로 조정된다. 사람이 나가버리면 자동적으로 꺼진다. 냉장고와 냉동고는 모두 철저하게 단열처리되어 있기 때문에 보통 냉장고에 들어가는 전기의 8-15%밖에 소비하지 않는다. 세탁기, 건조기 등 다른 가전기기들도 모두 에너지를 최소한으로 소비하도록 제작된 것이다.

태양건축 방식의 건물 중에서 또하나 널리 알려진 것은 독일의 유명한 태양건축가 롤프 디쉬의 헬리오트롭(heliotrope)이다. 헬리오트롭은 처음에 독일 프라이부르크에 디쉬의 건축사무소 건물로 세워졌고, 그후 똑같은 건물이 유럽 이곳저곳에 들어섰다. 헬리오트롭이란 말은 해를 따라간다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디쉬는 자신의 건축물이 회전하면서 해가 비치는 쪽으로 향하도록 설계함으로써 태양에너지를 최대한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헬리오트롭은 외부지름 11미터의 3층짜리 원통형 집으로 건축재로도 나무와 같은 생태적인 것을 사용했다. 원통의 전면은 단열 유리로 이루어져 있고, 뒷면은 거의 완벽하게 단열재로 덮여 있는데, 겨울에는 햇빛을 최대한 받아들이기 위해 유리면이 남쪽을 향해서 태양을 보며 회전하고, 여름에는 반대로 뒤쪽의 벽면이 태양을 바라보며 돌아감으로써 난방과 냉방에 필요한 에너지를 거의 불필하게 만들었다. 지붕 위에는 태양광 발전기가 설치되어 있어 여기서 생산되는 전기가 헬리오트롭의 조명 등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한다.

독일과 스위스 등지의 유럽 국가에서는 자연형 태양건축물(패시브 하우스, passive house)이 널리 퍼지고 있다. 이 건축물은 에너지를 아주 적게 사용하는 특성을 가진 것으로, 태양에너지 이외의 전체 에너지 소비량이 제곱미터당 30kWh를 넘으면 안된다. 이 수치는 보통 건물의 10분의 1 정도밖에 안되기 때문에, 난방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해도 될 정도이다. 실제로 패시브 하우스에서는 난방을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난방을 어떻게 하지 않는가? 난방을 하지 않고 추운 겨울에 어떻게 견딜 수 있는가? 해가 비칠 때 가능한 한 많은 햇빛을 받아들이고, 내부의 열은 가능한 한 적게 밖으로 내보내도록 건물을 지으면 될 것이다. 반드시 남향으로 짓고 남쪽으로 커다란 창을 내어서 햇빛을 많이 받아들이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열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단열을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단열은 건물 전체를 빠짐없이 해야만 한다. 바닥, 지붕, 벽 그리고 창틀까지 단열을 하고, 유리도 단열 유리를 사용해야만 완벽한 단열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단열도 충분히 해야 한다. 유럽에서는 단열재로 보통 암면, 유리섬유, 셀룰로즈 등을 사용하고, 그밖에 목화솜, 양모, 야자열매 껍질 등도 간혹 사용되는데, 패시브 하우스에서는 이것들을 보통 30cm 두께로 덮는다. 이 정도를 덮어야만 내부의 열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차단할 수 있다. 창틀은 양쪽이 모두 나무로 되어 있거나 바깥쪽이 알루미늄, 안쪽이 나무로 되어 있는 것을 사용하는데, 가운데에 들어있는 단열재가 창틀을 통해서 빠져나가는 열을 최소화한다. 유리는 2중 유리가 아니라 3중 유리를 사용하고, 유리 사이에는 공기가 아니라 비활성기체인 아르곤이나 크세논이 들어 있다. 이렇게 아르곤이나 크세논을 채우는 이유는 이들 물질이 공기보다 열전도율이 낮고, 결로현상도 방지하기 때문이다. 패시브 하우스에서는 공기가 빠져나가는 틈이 없어야 한다. 공기를 통해서 열도 빠져나가기 때문에, 틈이 있으면 열이 달아나는 것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틈이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서 패시브하우스를 완공하면 밀폐 테스트를 한다. 건물의 창문과 문을 완전히 닫은 후에 그 속에 색이 있는 연기를 내뿜는 장치를 작동시켜서 연기가 빠져나오는지를 검사하는 것이다. 연기가 나오지 않으면 이 건물에는 패시브 하우스 인증이 주어진다.

http://energyvision.org/file/태양%20건축/그림58%2D3중창.jpg

삼중유리창

패시브 하우스는 창문을 닫으면 공기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자연적으로는 환기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추운겨울에 환기를 하기 위해 창을 열 수도 없다. 난방도 하지 않는데 찬바람이 들어오면 집안이 아주 추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패시브 하우스의 환기는 강제환기장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 장치는 단순하게 환풍기만 붙어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들어오는 공기와 나가는 공기가 열교환기를 통해 접촉해서 열회수가 이루어지도록 되어 있다. 들어오는 공기가 건물에서 나오는 공기로부터 열을 전해받아 어느 정도 데워진 상태에서 집안으로 공급되는 것이다. 열교환기 속을로 들어오는 공기도 영하의 아주 차가운 상태로 들어오지도 않는다. 영하의 공기가 들어오면 열교환기 속에서 나가는 공기 속의 수분이 응축하여 결로현상이 생긴다. 이것은 교환기를 상하게 만드는데, 이를 피하는 방법은 바깥의 차가운 공기를 먼저 땅 속에 묻혀진 관을 통과시켜서 땅속 온도와 비슷한 섭시 7도 정도로 데우는 것이다. 패시브 하우스에는 보통 이러한 지하 공기관이 설비되어 있다.

http://energyvision.org/file/태양%20건축/그림59%2D패시브하우스%2D환기장.jpg

패시브하우스 환기장치

패시브 하우스는 난방만 필요없는 것이 아니다. 냉방을 할 필요도 거의 없다. 단열재가 여름의 뜨거운 햇빛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콘크리트 집은 단열재를 수십 센티미터 덮지 않으면 더운 여름에는 냉방장치를 계속 돌려야만 내부 온도를 사람이 견딜 만한 정도로 낮출 수 있다. 콘크리트가 햇빛을 받아 뜨거워지면 복사되는 열이 내부를 밤에까지 뜨겁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터운 단열재는 햇빛의 열이 단열재 안쪽의 콘크리트까지 뚫고 들어가는 것을 막아준다. 벽에서 나오는 복사열을 막아주는 것이다. 이런 건물에서는 냉방이 필요없다. 창문을 열어서 공기가 통하도록 하거나 천장에 붙은 선풍기로 충분히 시원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패시브 하우스에서 단열을 철저하게 한다고 해서 건축비가 다른 건물에 비해 많이 드는 것도 아니다. 물론 처음에는 건축재료를 구하기가 어려웠고 건축가도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에 건축비가 많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건축재료도 표준화되었고 노하우도 쌓여서 건축비는 보통 건물보다 높아야 10% 정도 높을 뿐이다. 패시브 하우스를 지을 때는 단열재나 환기장치 등에는 비용이 더 든다. 그러나 난방장치 같은 데에는 비용이 들어가지 않는다. 이러한 것이 상쇄되어서 건축비가 많이 들지 않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생태건축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생태건축에 대한 일반인이나 건축가의 관심은 주로 소재에 놓여 있는 것 같다. 나무나 흙으로 집을 짓고 집이 숨쉬도록 만들고 한옥의 장점을 살리는 것 등이 생태건축에서 중요한 고려사항이 되고 있다. 에너지를 얼마나 적게 쓰도록 집을 짓는가는 중요한 고려사항이 아니다. 그런데 집을 아무리 생태적인 재료로 짓고 숨을 쉬게 만든다고 해도 짓고 난 후 수십년 동안 화석 에너지를 많이 때야만 난방이 된다고 하면, 이 집은 전체적으로 생태적인 집이 될 수 없다. 이 집에서 수십년간 화석에너지를 태울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가 기후변화를 조장하기 때문이다. 생태건축물은 지구생태계를 살리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태건축물이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아무리 생태적인 재료를 써서 집을 지었다고 해도 기후변화를 막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이 집은 생태적인 것이 될 수 없다. 생태건축물을 지을 때 가장 큰 고려사항이 되어야 할 것은 에너지 소비이다. 에너지 소비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건축물만이 기후변화를 억제함으로써 생태적이라는 호칭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