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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나눔

08

2008-Oct

북유럽의 교육2

작성자: 조그만씨 조회 수: 7635

'혼자 똑똑한 사람'을 키우지 않는다"
  [<프레시안> 창간 7주년 : '키워드로 읽는 북유럽'] 협동 (中)
  2008-10-03 오후 2:48:13
  핀란드 사람들은 술을 많이 마신다. 1인당 술 소비량이 세계 1위다. 그래서 알콜 중독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꼽히곤 한다. 날씨가 좋은 금요일 저녁이면, 술병을 들고 거리에 나선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5월 1일 노동절에는 도심 한복판에서 거창한 술판이 벌어진다. 대통령이 직접 나와서 시민과 함께 건배를 외친다.
  
  이렇게 술과 가까운 문화 탓인지, 고등학생들도 술을 많이 마신다. 한국에도 술을 마시는 고등학생이 종종 있지만, 핀란드에서는 공원 등 눈에 띄는 곳에서 마시는 학생들이 많다는 점이 다르다.
  
  핀란드, 공부하는 시간은 가장 적은데 학력은 1위
  
▲ 젊은이들이 주말 오후 헬싱키 시내 공원에 모여 앉아 있다. ⓒ프레시안

  술병을 들고 몰려다니는 고등학생들을 보며, 이 나라가 PISA(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OECD가 주관하는 국제학력조사)에서 종합 1등을 놓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물론, 청소년 시기에 술을 접하는 게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자유분방한 문화 속에서도 높은 학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부러운 일임에 분명하다.
  
  실제로 핀란드는 수업 시간이 세계에서 가장 짧다. 사교육도 거의 없다. OECD가 학생들이 학교 밖·가정에서 공부하는 시간을 조사한 결과 역시 최저 수준으로 나타났다.
  
  한국도 PISA 순위는 최상위권이다. 핀란드를 바짝 뒤쫓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핀란드와 달리 사교육이 활발하고, 학생들이 학교 밖·가정에서 공부하는 시간도 매우 긴 편이다.
  
  "수학 숙제 있으면 마음이 매우 무겁다"…한국 33.2%, 핀란드 6.7%
  
▲ 주말 오후, 헬싱키 시내 풍경. 젊은이들이 중앙역 근처 계단에 모여앉아 술을 마시고 있다. ⓒ프레시안

  그런데, 더 중요한 차이가 있다. 핀란드는 학력과 학습흥미·동기가 모두 높은 반면, 한국은 학습흥미·동기가 최하위권이다.
  
  2003년 PISA 수학 부문 결과를 보면, 한국은 홍콩과 핀란드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수학에 대한 흥미도와 학습 동기는 전체 41개 나라 가운데 각각 31위와 38위였다.
  
  당시 학습태도에 대한 조사 결과를 보면, "수학 숙제를 하려고 하면 마음이 매우 무거워진다"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한 비율이 한국은 33.2%, 일본은 51.5%였다. 반면, 핀란드는 6.7%에 그쳤다. OECD 평균은 29.2%다.
  
  "수학 문제를 풀고 있으면 안절부절 못한다"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한국 학생들은 44.3%가 "그렇다"라고 답했다. 일본 학생들은 42.1%로 비슷했다. 핀란드는 15%, OECD 평균은 29.0%였다. 학습흥미·동기에 관한 답변에서 한국과 일본이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 교육제도 및 문화가 비슷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합은 2분지엔의 초뿔말이다?"…'염불 외기'가 수학 교육을 대신한 사회
  
  수학 문제 앞에서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어린 학생들만이 아니다. 어른들도 당연한 일로 받아들인다. 어른들 역시 그렇게 공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학 공부는 군 복무만큼이나 괴로운 일이라는 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이런 사정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글이 있다.
  
  "'위편삼절(韋編三絶)'이라는 말이 있다. 공자가 주역(周易)을 어찌나 즐겨 읽었는지 책을 엮은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닳아 끊어졌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 기자의 위편삼절은'수학의 정석(定石)'이었다. 읽고 풀고 베개 삼아 베고 자다 일어나 다시 읽고 풀다 보니 책이 걸레처럼 돼버렸다.
  
  그 과정이 반복되면 1000쪽 넘는 책 두 권이 거의 암기(暗記)된다. 문제의 관상(觀相)만 척 보고도 정답을 고를 지경이 되는 것이다. 그 덕에 입시 점수는 좋았지만 암기의 힘은 끈덕졌다. 요즘도 꿈속에서 기자를 시그마와 인테그랄 사이로 몰아넣고 진땀 흘리게 만드는 것이다."
  
  지난달 27일자 <조선일보> 기사 일부다. 문갑식 기자가 <수학의 정석> 시리즈 저자인 홍성대 상산학원 이사장을 인터뷰한 기사다.
  
  같은 지면에 문 기자가 쓴 글을 보면, 더 적나라한 이야기도 나온다.
  
  "1977년 겨울 서울 종로2가 뒷골목 학원가가 생각납니다. 중3 겨울방학 때 '기본수학의 정석'과 '고교기본영어'를 수강했습니다. 수학강사는 염불(念佛)처럼 공식을 외우게 했습니다. '말은 초뿔엔마일의 공차' '합은 2분지엔의 초뿔말이다'….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첫째는 수열의 말항(末項) 구하는 것, 두 번째는 수열의 합(合) 구하는 공식입니다. 수학 정석의 저자이자 상산고를 최고의 자립형사립고로 만든 홍성대 이사장과의 인터뷰를 앞두고 떠오른 31년 전 기억입니다."
  
  "수학의 본질은 자유"인데…"한국 학생들은 왜 가만히 있죠?"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가 한국남자들끼리는 재미있지만 외국에서는 통하지 않는 것처럼, 문제풀이 요령을 염불처럼 외운 이야기도 역시 '국내용'일 뿐이다.
  
  이처럼 엽기적인 방식으로 공부한 이야기를 북유럽 사회에 전하면, 한국에 대해 아주 이상한 인상을 심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핀란드 학생들이 "수학 숙제를 하려고 하면 매우 마음이 무거워진다"고 대답한 비율이 6.7%에 그친 데서도 눈치 챌 수 있는 사실이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만난 한 대학생은 "한국 학생들은 문제풀이 요령을 외우는 것으로 수학, 과학 공부를 대신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과장해서 이야기 한 것 아니냐고 되묻기도 했다.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하자, 그는 "학생들이 가만히 있느냐"라고 물었다. 재미도 없고, 쓸모도 없는 일을 강요하는데 저항이 생기지 않느냐는 질문이다. 대답할 말이 궁색했다.
  
  집합론을 창시한 수학자 칸토어는 "수학의 본질은 자유"라는 말을 남겼지만, 수학 교과서 첫 페이지에서 '집합'을 배우는 한국 학생들은 "수학의 본질은 고통"이라는 말에 더 공감하는 경우가 많다.
  
  "수학이라면 진저리를 치던 내가 수학과에 가리라고는…"
  
  그래서 한국에서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생이 북유럽으로 건너가면 깜짝 놀라는 경우가 자주 생긴다. 문 기자보다 세 살쯤 어린 스웨덴 교포가 겪은 일이다. 정혜영 <프레시안> 스웨덴 통신원의 남편인 그는 1980년대 초에 가족과 함께 스웨덴으로 건너갔다. 당시 한국에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그는 스웨덴에서도 고등학교에 다니게 됐다.
  
  스웨덴 사민주의가 낳은 성과가 절정을 구가하고 있을 당시, 그가 놀란 대목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 중 하나가 "수학이 재미있다"는 깨달음이었다. 수학이라면 진저리를 치던 그였다.
  
  뒤늦게 수학의 재미에 눈을 뜬 그는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다. 그는 "한국에 있을 때 내가 수학과에 가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스웨덴 방정식과 한국 방정식이 다를 리는 없다. 수학 교과서 속에 담긴 개념은 만국 공통이다. 단지, 가르치고 평가하는 방식이 조금씩 다를 뿐이다.
  
  시그마와 인테그랄 사이에서 진땀을 흘리는 악몽을 꾼다는 문갑식 기자도 스웨덴에서 청소년 시기를 보냈다면, 수학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을지 모를 일이다.
  
  "문제의 관상(觀相)만 척 보고도 정답을 고를 지경"을 '병리 현상'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오히려 권장하는 사회에서는, 학생들이 칸토어가 말한 '수학의 본질'로부터 계속 멀어지기만 할 뿐이다.
  
  수학 교과서 속 개념을 차분히 숙지할 여유 없이 문제 풀이 요령을 외우기에만 급급한 풍토에서는 "단지 논리적이어야 한다는 제약만 받을 뿐, 어떤 생각도 허용되는" 수학의 자유를 실감하기 어렵다. 또, 눈에 보이는 현실에 얽매이지 않는 추상적 사고를 제대로 경험하기도 힘들다.
  
  "□+□=10"과 "1+9=□"의 차이…"'생애 첫 지식 활동'을 어떻게 시작하나"
  
▲ 라또까르따노 학교 복도. 남는 공간에 책상과 의자, 직소퍼즐이 있다. 비는 시간에 아이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퍼즐을 맞추며 어울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다. ⓒ프레시안

  스웨덴 학교에서는 덧셈·뺄셈을 가르칠 때, "□+□=10. □에 각각 들어갈 숫자는?"과 같은 유형의 문제를 자주 출제한다. 아이들은 "1과 9, 2와 8,…9와 1" 등 여러 개의 답을 적는다.
  
  초보적인 산수를 배울 때부터 "문제의 답은 여러 개일 수 있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배어든다. 음수와 양수, 유리수와 무리수, 실수와 허수 등 수(數)에 대한 개념이 넓어질 때마다, 아이들은 어릴 적 접했던 문제의 답이 더 다양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 만났던 산수 문제의 답은 "1과 9, 2와 8,…9와 1"만 있는 게 아니라 "-79와 +89, 5.13과 4.87, 1+10i와 9-10i…" 등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1+9=□. □에 들어갈 숫자는?"과 같은 문제가 주를 이루는 한국, 일본 등과 다른 대목이다. '생애 첫 지식 활동'을 답이 하나인 문제로 시작하는 셈이다.
  
  산수를 익히는 것은 추상적 사고를 하는 첫발을 떼는 작업이다. 이전까지는 사과, 배, 엄마, 아빠 등의 낱말을 익히는 수준에 머무르던 아이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개념을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과, 배, 엄마, 아빠 등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지만 하나, 둘, 셋은 그렇지 않다. 숫자는 눈에 보이는 것들을 개념화하는 데 주로 쓰이지만, 실은 매우 추상적인 개념이다.
  
  이런 개념을 처음 익힐 때, 답이 하나뿐인 문제로 시작하는 것과 답이 무궁무진한 문제로 시작하는 것은 얼핏 사소해보이지만 실제로는 큰 차이다. 이런 차이가 훗날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로, 창의와 혁신을 장려하는 문화로 이어질 수 있다.
  
  평가가 교육의 목적으로 통하는 한국ㆍ일본
  
  한국, 일본 등에서는 왜 '답이 하나인 문제'로 산수를 가르칠까? 이 역시 '답이 여러 개인 질문' 이다. 콕 짚어서 답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답이 여러 개인 문제'로 산수를 가르치기 어려운 이유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대표적인 이유로 꼽을 수 있는 게, '평가'가 목적이 돼 버린 교육 문화다. 평가는 아이들이 개념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절차일 뿐이다. 그런데 평가 결과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회에서는, '평가 점수를 잘 받는 것'이 교육의 목표가 돼 버린다. 이렇게 되면, 답이 모호하거나 무수히 많은 문제는 내기 어렵다. 답이 선명한 문제, 그래서 평가 결과에 대해 이견을 제시하기 힘든 문제만 제시하게 된다. 하지만, 사회 문제와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방식은 무궁무진하다. 어른이 돼서 겪는 문제들은 대부분 답이 모호하거나 무수히 많은 문제들이라는 뜻이다. 답이 하나인 문제를 푸는 데만 능해서는 좋은 어른이 되기 어렵다.
  
  반면, 핀란드,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은 "평가는 수업이 제대로 진행됐는지 확인하는 절차일 뿐"이라는 입장에 충실한 편이다. 이곳 교사들이 교육에 대해 유난히 더 뚜렷한 신념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다. '학교에서 '등수'를 매기지 않는 문화' 때문이라는 게 교육 전문가들이 흔히 하는 설명이다.
  
  성적표에 '등수'가 없다
  
  핀란드와 스웨덴 모두 7세~15세까지의 의무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9학년제 기초학교(종합학교)가 의무 교육 기관이다. 단, 핀란드에서는 원하는 학생에 한해 10학년까지 다닐 수 있다. 스웨덴에서는 기초학교 8학년(한국의 중학교 2학년에 해당) 때 처음으로 성적표를 받는다. 핀란드에서는 1~2학년 때는 점수가 아닌 문장 표현으로 된 성적표를 받는다. 3학년 이상이 되면, 성적표에 평점이 나오기도 한다. 점수에 따른 평가를 실시할지 여부, 점수를 매기는 기준 등은 지방 교육위원회가 정한다.
  
  성적표에 점수가 기재돼 있다면, 당연히 '등수'도 매겨져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적어도 의무교육 기간 동안에는, '등수 매기기'가 엄격하게 금지돼 있다. 또 굳이 '등수'에 관심을 갖는 사람도 거의 없다. 평가의 성격 역시 다른 학생과 비교하기 위한 게 아니다.
  
  게다가 전국, 혹은 지역 단위의 일제고사도 금지돼 있다. 이미 폐지된 일제고사를 부활시킨 한국과 대조를 이루는 대목이다.
  
  정답이 없는 과제에 대한 주관적 평가
  
▲ 라또까르따노 학교에 딸린 운동장. 핀란드 학교는 대부분 규모가 작다. 넓은 공터에서 진행하는 수업은 인근 공원을 이용한다. ⓒ프레시안

  '등수'가 무의미한 문화는 수업 방식과도 관계가 있다. 북유럽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특정 주제에 대해 조사해서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를 아이들이 똑같이 푼 뒤, 정답을 택한 비율에 따라 점수를 매기는 방식에서는 객관적인 '등수'가 매겨질 수 있다.
  
  하지만, 보고서 작성처럼 뚜렷한 정답이 없는 과제에 대해 교사가 평가한 내용에 대해서는 등수가 큰 의미가 없다. 성적표에 기재되는 점수는 학생이 내놓은 결과물에 대한 교사의 주관적 판단일 뿐이다.
  
  학생, 학부모들도 이런 사실을 잘 이해하고 있다. 물론, 교사를 믿고 존중하는 문화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런 문화는 특히 핀란드에서 견고한 편이다. 스웨덴 등 다른 북유럽 국가에서는 교사에 대한 불신이 상대적으로 강해서 사회 문제로 꼽히기도 한다.
  
  개인별 평가가 아닌 팀별 평가…자기 점수만 챙기는 아이가 생기지 않도록
  
▲ 라또까르따노 학교 복도. 곳곳에 아이들을 위한 소꿉놀이 용품이 배치돼 있는 게 인상적이다. ⓒ프레시안

  그리고 북유럽 학교에서 가장 흔한 수업 방식은 팀(Team)을 이뤄 진행하는 협동 작업이다. 이 경우, 평가 역시 팀 단위로 이뤄진다. 팀에 속한 학생 개인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팀 전체에 대한 평가가 이뤄진다는 뜻이다.
  
  학력 수준이 높은 아이도 팀 성적이 나쁘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 따라서 팀 구성원은 혼자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애쓰는 게 아니라 팀 전체가 좋은 결과를 내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또, '혼자서만 똑똑한 사람'보다 팀워크(Teamwork)에 능한 사람이 기업과 정부에서 더 뛰어난 '경쟁력'을 발휘한다는 실용적인 고려도 작용했다. 자기 점수를 높이는데만 골몰하는 아이들이 생겨나는 것을 막기는 커녕, 오히려 부추기는 제도를 속속 도입하고 있는 한국 교육과 대조적이다.
  
  수업에서 협동 작업을 진행하는 팀은 학력 수준이 서로 다른 아이들로 구성된다. 교사는 각각의 팀이 학력과 성격 등 여러 면에서 최대한 다양한 아이들로 구성되도록 배려한다.
  
  학력 수준이 다른 아이들끼리 계속 대화하면서 개념을 터득한다
  
▲ "수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아이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게 학교와 교사의 역할이다." 수업에 뒤쳐진 아이들을 위한 별도 수업 장면. ⓒ프레시안

  기자가 헬싱키에 있는 라또까르따노 학교를 방문했을 당시, 5학년 교실에서는 과학 수업이 진행 중이었다. 교사가 던진 질문에 대해 아이들이 팀 단위로 토론하는 중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인터넷과 도서관을 이용해 미리 관련 자료를 찾아왔다. 서로 다른 자료를 갖고 있는 아이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며 답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했다.
  
  같은 팀 안에서도, 어떤 아이는 이미 관련 자료를 충분히 읽었다. 다른 아이는 자료 준비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서로 토론해서 함께 답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모든 아이가 앞에 나가서 팀이 찾아낸 답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팀 단위 토론이 시작되면, 처음에는 전혀 엉뚱한 이야기들이 쏟아진다. 교실은 시끄럽게 달아오르고, 교사는 가만히 지켜본다.
  
  이 과정에서 관련 개념을 먼저 깨닫는 아이가 나온다. 이 아이가 다른 팀 구성원에게 스스로 이해한 바를 설명한다. 아직 이해하지 못한 아이는 여전히 엉뚱한 질문을 퍼붓는다. 이런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먼저 이해한 아이도 설명을 계속 보완하고, 스스로 이해한 바를 되짚어 본다. 시간이 지나면서, 팀 구성원 대부분이 개념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서로 머리를 맞대고, 교사가 제시한 문제의 답을 찾는다.
  
  토론 과정에서 말귀를 못 알아듣는 아이도 주눅 드는 기색이 없다. 이해가 안 되면,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남보다 조금 먼저 깨달아서, 수업 내내 설명하는 역할을 맡았던 아이들은 대화하고 설득하는 능력을 키운다.
  
  토론에서 뒤쳐진 아이들, 그들을 위해 학교와 교사가 있는 것
  
▲ 라또까르따노 학교 사뚜 홍깔라 교장. ⓒ프레시안

  이런 설명을 듣고서, 궁금증이 일었다. 학습 속도가 유난히 더뎌서 팀에 기여하지 못하는 학생이 따돌림을 당하는 일은 없을까.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교사에게 물었더니, "그런 일은 없다"고 했다. '과연?' 그래서 이 학교 사뚜 홍깔라 교장에게 다시 물었다. 그의 대답을 요약하면 이렇다.
  
  "끝내 토론을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들도 종종 있다. 학교와 교사의 역할은 이런 아이들에게 필요하다. 수업에서 다루는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학교가 교육과정을 별도로 마련한다.
  
  아이들이 이런 과정을 이수하는 것에 대해 창피스러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학력이 낮다는 사실을 굳이 감추거나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오히려 학교와 교사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은 당연히 누려야할 권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문화는 학교와 사회에서 학력 차이에 따른 차별을 겪지 않기 때문에 유지될 수 있다."
  
  사뚜 홍깔라 교장은 이야기를 마치며 학교를 '바다에 떠 있는 작은 배(boat)'에 비유했다. 출렁이는 배 위에서는 한 명만 몸을 잘못 움직여도 배가 균형을 잃고 뒤집어진다. 수업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가 한 명만 생겨나도, 학교는 제 구실을 못하는 셈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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