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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예수마을 월간 소식지 1999.8. 창간준비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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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로 사는 이유 1 >
공동체를 하겠다고 이곳 대원리로 들어 온지 벌써 일년하고도 반년이 지났다. 소리 소문도 없이 들어온다고 왔지만 알게 모르게 알려지면서 그간 많은 손님들이 이곳을 방문했다. 하지만 이제 막 시작한 것이다 보니 보여줄 것이라고는 거친 산과 밭 그리고 거기에서 자라고 있는 벌레 먹은 푸성귀들과 구릿빛으로 그을린 형제들의 땀흘리며 노동하는 모습뿐이었다. 공동체를 만드는 것은 결코 이상이나 꿈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과의 싸움이었다.
그런데 이런 현실과 싸우는 우리들에게 손님들이 흔히 하는 질문이 한가지 있는데 '왜 공동체로 살려고 하느냐'는 것이었다. 손님들은 가벼운 호기심으로 무심코 던지는 말일지 모르지만 사실 이 질문이야말로 우리들에게는 각자의 인생 항로를 전면수정 하게 한 가장 근원적인 질문이었다. 이곳에 내려와 함께 노동하는 형제들이 다들 남부러워 할만한 직장을 그만두고 한번도 해보지 않은 농사를 지으며 성경이 말씀하시는 공동체를 이루겠다는 결단을 하기까지는 남모르는 고통과 결단의 시간이 있었고 그 고통의 시간에 잠 못 이루며 고민하였던 가장 큰 주제가 바로 '왜 공동체로 살아야 하는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지면을 빌어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공동체로 살아야 하는 이유들과 우리 각자가 지금까지 고민하며 내렸던 해답들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아직 덜 익은 생각들도 많아 더 많은 시간과 고민과 공부가 필요하겠지만 이렇게 정리하면서 또한 우리의 고민들이 농익어 가리라 기대해 본다. 나아가 공동체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장이 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엮어나가고자 한다.
왜 공동체로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 앞에서 먼저 하나님에 대해 우리는 알아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만유 위에 계시며 만물보다 먼저 계신 분으로 모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알파요 오메가가 되신다. 뿐만 아니라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본받으라고 명령하시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것이 신앙의 가장 고귀한 목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에 대해 바른 이해를 가지게 될 때 우리는 왜 공동체로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에 대해 알게된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하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가르침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존재론적인 관점에서만 이해하다 보니 정작 성자 예수님께서 성육신 하신 이후 아버지와 나는 하나라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이 가르침은 무수한 우상의 소굴이었던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기억하고 구원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었다는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다.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하나님은 삼위로 일체가 되신 하나님이시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 그리고 성령 하나님이 계시지만 본질에 있어서 동일하신 분이시다. 이것은 신비이다. 그런데 이 신비에 대해 성 어거스틴은 삼위일체의 관계성으로 하나님의 공동체성을 파악하였다. 어거스틴은 한 분 하나님의 존재 안에는 세 가지 관계성이 있는데 이 관계성은 곧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과의 관계라고 말한다. 그리고 복음주의 신학 협회의 교리 선언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 일체이시고, 각 분은 피조된 인격이 아니시며, 본질적으로 한 분이시며, 능력과 영광이 동등하시다."
우리는 이 선언에서 삼위 하나님은 본질에 있어서 한 분이시며 하나님으로서의 능력과 영광은 동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가령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요단강에 서신 예수님과 하늘에 계신 하나님 그리고 성령으로 예수님 머리 위에 임하시던 성령으로 구분되지만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17:5)라는 예수님의 기도에서 삼위 하나님의 영화로우심이 동일함을 또한 알 수 있다. 초대 교회의 교부였던 터툴리안은 이러한 삼위일체의 신비에 대해 설명하기를 3명의 사람이 한 필지의 토지를 공동 구매하였을 때 그 토지의 소유권과 사용권은 3명에게 동일하다는 법적인 개념을 가지고 삼위 하나님의 동일성을 설명하였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로 계시지만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은 공유하는 거룩한 코이노니아로 존재하시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존재 방식은 하나님의 사역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가령 창조에 있어서도 삼위가 계시면서 함께 동역 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삼위 일체 하나님은 동일한 목적을 위해 함께 동역 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성부 하나님은 창세기 1:1을 통해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분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 그리고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을 마음에 계획하시고 또 그것을 존재하게 하셨다. 만물의 존재의 특성과 기원은 하나님으로 말미암는다.(약1:17 참조) 성령 하나님은 창세기 1:2에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들의 보호자, 감독자로 창조에 참여하신다. 성령 하나님은 하나님의 역사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 즉 우리들에게 지속적인 하나님의 개입이라는 축복을 주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성자 하나님은 태초에 계신 말씀이시다. 성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을 말씀이신 성자 하나님은 그대로 존재하게 하신다. 말씀은 성부 하나님의 집행자 이시며 수행자로 나타난다.
구원에 있어서도 삼위일체 하나님은 철저히 동역 하신다. 성부 하나님은 성자 하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성령 하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성자 하나님 위에 임하시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도우신다. 그리고 성자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를 지시므로 세상을 향한 거룩한 하나님의 구원을 성취하신다.
이와 같이 삼위일체 하나님은 삼위로 존재하시며 각 위격의 독립성을 가지시지만 또한 능력과 영광에 있어서 일체로 동일성을 가지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존재방식과 함께 동역하시는 모습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들이 이루어야 할 사회와 관계의 모범을 보여주신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공동체의 하나님이시다. 우리 하나님이 공동체의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우리도 공동체로 살아야하는 것이다.
오순절날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경험한 120명의 초대 교회는 이러한 모범에 충실한 공동체였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의 엄연한 차별이 있는 사회에 속한 자들이었음에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자 그들 안에는 다양성 속에서도 거룩한 일치를 이루게 된다. 그들은 한 분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믿음에서, 한 분 성자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구원의 은총에서, 그리고 동일한 성령으로 충만함을 입음으로 동일성을 소유하게 된다. 이러한 동일성 속에서도 각자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각기 다른 직임과 은사를 가지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경험한 후 성령이 임하시면서 초대교회는 그의 머리되신 예수님 안에서 거룩한 일치와 다양성을 소유하므로 하나님을 닮은 거룩한 사회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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