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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나스쿨 자료실
2004.08.13 12:54

홈 스쿨을 하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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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스쿨을 하고자...

배경:
첫째로 남편이 바라는 일이었다.  그는  공동체에서 자녀 양육의 바람직한 형태로  홈 스쿨을 생각해왔다.  또한 이스라엘 키부츠에서 수년간 유학한 공동체의 한 형제님의 강한 바람이기도 하다.

둘째로 보은 산골에 들어가 살기로 결정하면서 큰 아이가 “보은 중학교에는 무서워 다니기 싫다”고 한 것이다. 실제로 시골 학교는 지적 수준에 있어서 또한 문제 학생들의 도시로부터 유입됨으로 인해 학생들의 분위기가 상당히 우려스럽다.

셋째로 기독교 홈 스쿨 세미나에 2003년 8월에 2-3시간 정도 기존 경험자들이 나와 토론하는 것을 참여한 후  2004년 1월9-10일에 1박2일로 참석하고 나서이다.

이유 및 동기:
   첫째로, 나에게 있는 이유로서 23세에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 지난 19년간 내게 있어온 가장 큰 어려움인 ‘성품’에 관한 것이다.  나와 하나님의 일대일의 관계 및 교제에 있어서는 많은 비밀과 깊이가 있어왔으나 수평적인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열매의 부분에 있어서 이미 굳혀진 나의 성격으로 인해 덕스럽지 못하고 나 자신도 아픔과 괴로움이 있었다.
즉 자기 중심적인 모습이다.   자기 자신이 늘 사고나 결정이나 행동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있다는 것이다. 특히l 시간 사용이나 자기 소유에 있어 더욱 표가 난다.  굳이 이기적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는 모습이다.  
또한 나에게는 아주 신경질적이고 예민하여 다른 주위 사람들을 긴장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모습이 있다.   이러한 모습은 나의 아버지에게도 동일하게 보이는 모습이다.
내게는 또한 말을 직선적으로 하여 다른 이들을 당혹하고 아프게 만드는 결점이 있다.  사실 의도적으로 그렇게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때로는 나 스스로 용납이 안 되는 타인의 실수에 대하여 소스라칠 정도로 심한 말을 내어 뱉을 때가 있다.  이로 인해 사회생활에 있어 손해를 많이 받아왔다.  후에 나는  나의 친정 가족들이 주고받는 말이 직선적이고 거친 것을 보게 되었다.
이러한 나의 성격은 예수님을 만나고 바른 그리스도인의 삶과 모습에 대하여 고민하기 전에는 별로 그다지 문제되지 않았다.  그리스도인으로 인식된 후에 나 자신 스스로에 대하여나 다른 이들이 내게 바라는 모습에 있어서나 인격적인 결함은 단순히 단점으로 그치지 않고 하나님에 대한 부정적 시각으로 또는 자신에 대한 자괴감으로 남게 되었다.  또한 성경의 많은 말씀이 본래 나의 본성과 너무 다른 것이 많아 지키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믿음 없음을 자책하였었다.        하지만 대부분 의과대학을 포함한 학창 시절 내내 그러한 모습이 남에 의해 비판을 받거나 지적을 받지 않았다.  왜냐면 늘 가장 중요한 공부하는 일이 산처럼 버티어 있었고 내게 있어서나 주위 사람들에 있어서나 그 일이 가장 중요시되어 왔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다 갖추지 못해도 가장 중요한 것(공부)을 성취하기만 하면 괜찮고 용납되어지는 그러한 인식과 분위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나 자신 또한 가까스로 늘 완수해야 할 산적한 과업을 해내느라 스스로 안간힘을 다 쓰며 벅차게 해왔던 터라 여유롭고 편안하지 못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는 새 사람이 되었으니 점도 없고 흠도 없는 거룩한 사람이 되었다’는 대단한 착각을 하여 이후 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내면의 갈등으로 인해 나는 더 많이 하나님 앞에 스스로 용납이 안 되는 이러한 자신을 끌어안고 자주 나아갔고 매어 달렸다.   그러나 몇 십년간 굳은 나의 성격이 금새  고쳐지고 좋아지지는 않았다.

헌데   얼굴이나 몸, 생활 습관 등이 나와 영 판박이인 큰 딸이 점점 자라며 비교적 달라졌다고 여겨 과거가 된 나의 옛 성격의 모습을 나타내곤 하였다.  상당 부분에 있어서 예수님의 모습을 닮지 못하여 괴로워 한 나의 성품과 흡사하였다.   유전적인 기질이 이렇게 흘러 내려오나 싶었다.  내가 싫어하고 버리고자 한 성격인지라 자연 나는 딸과  자주 부딪히게 되었다.  또한 싫은 내색을 하고 잔소리를 하게 되니  딸아이도 나와 소원한 사이가 되었다.  하여 큰 딸은 아빠에게 전적으로 맡길 수밖에 없었다.
나는  딸아이의  성격을 그대로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되는지, 아니면  성품이 좋은 아빠의 영향을 받고 어려서부터 예수님을 접하고 있으니 나와 같지 않게 변할 수 있는 것인지 매우 걱정스럽게 의아하며 고민해왔다.   하여 이 또한  자주 주 앞에 들고 나아가는 나의 기도 제목이 되었다.  점차 다소 여러 방면으로 애쓰고 시도 해왔던 터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해결의 열쇠가 주님께 있을 터인데 어찌되어갈지 마음 졸이며 지내왔다.


둘째로 지난 2년간 단국의대에서 의과대학생들을 접하고 가르치면서 ‘교육’에 대하여 느낀 점이다.
나름대로는 동기와 목적이 있어 보이지만 대부분 몸담고 있는 사회에서 상대적인 ‘생존’과 ‘성공’의 결승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상당히 수동적이며, 그저 넘치는 많은 의학 지식을  머리에 쑤셔 넣어야 되는 학업의 거대한 산 앞에  답습해서 자신을 맞추어 가느라 매여 있는 모습을 보았다.  나 또한 의과 대학 및 수련 과정에서 그런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 까지 내게 최대의 목표는 최고의 대학을 가서 날 사랑해주신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이었다.  목표를 달성한 이후 예수님을 만나기까지 4-5년의 기간에 나는 많은 굴곡과 자아의 혼란을 겪었다.  절대자를 만난 이후 나의 삶은 좌표를 갖고 활기를 띄었으나 상대적인 경쟁 사회- 의과 대학은 그야말로 상대적인 경쟁이 첨예하게 드러나는 곳이다.  오직 분배율에 따른 평가 점수를 받고 개개인 보다는 평균적인 원칙에 따른 가치체계가 있을 뿐이다 - 에서 잘 생존하고 내게 주어진 일을 잘 해내며 성공하는 것이 항상 더 가까이 있는 나의 삶의 과제였다.  
  의과 대학생에게 ‘왜’라는 질문이나 의문을 가질 여유는 부족하다 .  빨리 습득해서 잘 따라가는 것이 당장 눈앞에 있는 넘어야 할 산처럼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서 나의 , 그리고 지금의 많은 의사들의 현 주소를 보게 되면서 지난 2년간   ‘절대적 중심을 가지고 자발적인 동기와 열정을 가진 인간으로 교육할 수는 없는 것일까?’   라고 진지하게 자문해왔다.
또한  정작 사람을 대상으로 의술을 적용해야 되지만 의과대학생이나 의사에게 있어 보다 더 많이 고민하는 제목은 사람보다는 질병이다.  하여 자연 사람이나 관계보다는 일 중심이 되어버린다.  질병만 잘 고쳐 놓으면 환자들에게 인정을 받고 의사 본인도 보람과 자존감을 느끼게 된다.  이 막중한 일에 앞서 인격이나 성품, 사람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느냐는 그다지 큰 문제로 여겨지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어떻게 여기며 대하여야 하는가는 그저 직업적인 성공 차원에서 다뤄질 뿐이다.  실제로 나를 비롯하여 많은 전문가 의사들이 사회와 통합이 잘 안되고 독자적인 흐름으로 일관한다.  그리하여 자기만 아는 교만한 인간으로 보여 지고 실제로 자신에 대한 존재의 우월성으로 상당히 교만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대하여 배려나 예의를 갖추지 못한 비인격적인 모습을 보인다.


셋째로, 홈 스쿨 세미나에 참석하고 나서이다.
나는 세미나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소망하며 자녀를 그 일꾼으로 키우고자 애쓰는 겸손과 진리로 무장된 사람들을 보게 되었다.    이들은 지금의 학교를 통해 자녀를 양육할 때 이중적인 가치관으로 인해 그리고 생활의 일관성이 떨어짐으로 인해 통합된 양육이 어려움을 절감한 자들로 홈 스쿨의 방법으로 아이를 양육하고 있었다.
부모 된 자로서 그들은 자녀가 단지 이 사회에서 성공하기를 바라고 있지 않는다.   말 잘 듣고 착하며 말썽 피우지 않는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쓰임 받는 일꾼으로 키우고자 했다.  오직 양육의 목표가 경건한 자손(말라기2:15) 이었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부모를 ‘보이는 하나님’처럼 여기며 순종적이고 반짝이는 눈망울을 가진 아이들을 보았다.
그들은 학교를 다니며 일요일에는 주일 학교를 가는 때에 비해 홈 스쿨에서 하나님이 훨씬 가까이 계심을 느낀다고 하였으며 자발적인 동기와 적극적인 태도로 많은 질문을 하며 스스로 찾으면서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다고 하였다.
토론자들은 다양한 환경에서 각기 따로 홈 스쿨을 하고 있었으나 각 가정의 자녀들의 되어지는 모습에 대해 거의 비슷한 말을 하였다.  타인에게 인격적으로 대하며 배려하고 부모나 형제와 신뢰의 관계를 이루고와 대화의 선상에 이Y으며  자발적으로 집안일을 하는 등 여러 많은 아름다운 모습을 들을 수 있었다.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결과를 들으며 나는  홈 스쿨에 무엇인가가 있음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두 번째로 참여한 세미나에서 나는 성경적 근거 및 실제적인 홈 스쿨의 모습을 좀 더 접하게 되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은 자녀 양육의 권한과 최종적 책임을 부모에게 두신다.
자녀는 부모에게 속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하여 있고 부모는 자녀 양육에 대한 책임을 하나님께로부터 위임받아 잘 수행해야 한다.  즉 ‘하나님의 자녀’로 양육하는 일이 부모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부모는 하나님이 자녀에게 향하여 갖고 계신 뜻과  하나님의 방법으로 자녀를 길러야 할 의무가 있다.
그리스도인 부모라면 누구나 자녀들이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받는 하나님의 자녀로 크기를 바라고 목표로 하며 기도한다.  그런데 보다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뜻’과 ‘사람들의 인정’과의 사이에서 결연히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고 ‘하나님의 뜻’을 제 일로 앞세우는 믿음의 사람은 사실 흔치 않다.
나는 이러한 믿음이 결국 아이들 자신이 개별적으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지 부모가 가르치거나 물려주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강력하게 믿어왔다.
아이들 스스로 택하고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바른 뜻과 동기를 가지고 섬기는 것이 올바른 순서요 형태라고 생각했다.  하여 다만 그 때가 속히 오기를 기도해왔다.
헌데 세미나에서 나는  나의 생각이 틀림을 알게 됐다.
목표만이 아니라 방법에 있어서도 철저히 그리고 확실하게 성경에서 말씀하신대로 자녀를 양육하라고 명령하셨다는 것이다.   그것이 잘 이루어지는지  여부나, 부모가 동의하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것이었다.     일례로 나는 아이들이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야 하나님의 말씀을 제시하고 그대로 지키기를 요구하며 바랄 수 있다고 믿었었다.
하지만 성경은 아이가 제대로 된 믿음이 있거나 없거나를 떠나서 성경이 제시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를 즐거워하며 그의 뜻대로 살아가는 자녀’로 양육되어지는 것은  부모가 하나님의 방법과 말씀대로 살면서 동시에 실제로 세세한 생활의 현장에서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쳐 하나님이 바라시는 인간으로 키움으로써 비롯되는 것임을 여러 곳곳에서 보여준다. (신 6:7, 엡6:1, 잠22:6.......)
즉 말씀의 성실한 가르침과 방법의 적용 및 제시를 부모에게 위임하시고 명령하신 바가 성경에 쓰인 하나님의 자녀 양육에 대한 진리이다.
  이 사회에서도 꼭 필요한, 유익을 주는 사람이 되기를 목표한다.  ‘홍익인간’이 그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엔 자기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이 만족하고자 하는 동기가 숨겨있다.  봉사를 하여도, 희생을 하여도, 물질을 내 놓아도 자기 자신이 만족하고 보람을 얻으며 자신의 이름을 내고자 하는 게 대부분 깔려 있다.  하지만 이러한 봉사나 희생은 어떤 것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밀쳐내고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하여 꾀임을 받고 먹은 것이 선악과가 아닌가!  
하여 단순히 좋은 인간으로, 제 몫을 잘 해내는 사회에서 성공형의 인간으로 키우는 것은 홈 스쿨의 목적과는 전혀 다르다.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바를 찾아가며 그 기업을 성실하고 충성스럽게 감당하여 주신 달란트를 갑절로 남기는 자이다.  그러기까지 부모와 신뢰의 관계 속에서 부모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소하고 작은 일에 순종하는 자가 더 나아가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큰일을 맡으며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것이다.  이러한 것이 절대적 중심을 가지고 절대적인 인생의 목표와 동기를 가진 인간의 모습이다.
보이는 부모와 이웃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고 지키어 나가면 성품이 저절로 변하여 그리스도의 거룩하고 장성한 분량에 이를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성령의 9가지 열매는 강하게 원한다고 해서 혹은 열심히 고행하고 애썼다고 해서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그리스도 중심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면서 이루어지는 일종의 자연 열매가 아닌가! (요15:4,5)
본래 죄인 된 자를 불러내어 아름다운 기업을 맡기시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거룩한 성품에 이르게 이르시기를 원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 자신이다.  우리에게 성령 하나님을 주사 인간을 돕도록 하시는 그 분을 향하여 믿음과 충성을 다 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주실 선물이 위로부터 올 것임에 틀림이 없다.

하여 나는 의사로서 내게 주신 기업보다 부모로서 하나님의 자녀 양육이 더 막중한 책임으로 느끼며 감당해야 할 과제로 여기게 되었다. 모두가 다 소중한 기업이나 지금 이 때에 이 책임을 미루면 이 다음에 할 여건이 주어져도 때가 늦으리라는 강한 위기감을 느낀다. 울타리를 쳐 주는 것만으로는 매우 미흡하다고 여긴다.   때때로 아이들과 좋은 시간을 가지며 대화하고 또 언젠가는 성령 안에서 함께 기도할 날을 소망하는 것으로는 미약하다고 여긴다.
여러 방법이 있겠으나 아이들과 생활을 같이하며 접촉점이 많을수록 좋을 것 같다.  아니 늘 같이 있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  아이들이 눈에 더 많이 띄게 되니 간섭을 많이 하게 되고 긴장이 더 고조되지 않겠는가 하고 우려하지만 홈 스쿨의 전제는 부모가 하나님께 절대 복종이며 하나님의 방법대로 자녀를 훈육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찌 보면 부모의 훈련이 더 큰 비중이 되기도 한다.  하나님의 감찰하시는 눈이 실제로 부모를 보고 있는 아이들에게서 나타날 것이다. 실제로 나는 이러한 점에서 더 필요와 당위성을 느낀다.   과거 및 현재의 다소 많은 갈등이 믿음이 행함과 함께 있지 않으며, 말씀이 실제화 되어 있지 않음으로 인하지  않았나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내게 약속하신대로 우리 아이들을 사랑하시고 귀히 쓰실 것이다.    또한 1995년 둘째를 낳고 조리할 때에 아침 QT 시간에 내게 하신 말씀- ‘ 자녀 양육을 통해 너를 훈련 하겠다’- 을 이제까지 둘째의 성장 과정(무척이나 힘들게 영유아기를 거친 아이다)에 있었던 훈련에 그치지 않고 지금도 이루시고자 하신다.  
부모로서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직무유기 하고 싶지 않다.  바라기는 이전에 내가 생각했던 대로 우리 아이들이 나와 같이 언젠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한 후에 유전적이고 기질적인 성향 때문에 내가 가져왔던 동일한 갈등과 눈물을 갖게 하고 싶지 않다.  이 세상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적절하게 타협을 이룬 자로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용사로 절대적인 중심과 뜻을 가진 자로서 이 세상이 감당치 못할 자로 키우고 싶다.
어찌 보면 아직 한국에서는 시기상조라고 볼 수 있는 홈 스쿨을 시작하려 하면서 나는 아브라함이 떠났던 여정(journey)을 떠 올리고 있다.
‘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창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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