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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리 주민을 위한 기도
2004.05.29 10:45

전도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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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2004  
친구관계를 통한 효과적인 전도  (freindship evangelism)
                          플로이드 맥클랑/ 예수전도단 번역

전도
단지 전도지나 말로 이루어지며 ‘이루어질 때까지 고군분투하며 하는 것’ ?  
우리의 전 삶을 포함하는 것이며 우리가 남들 앞에서 어떻게 살기로 작정하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신앙을 역동적으로 나누는 것 ;  드라마와 음악, 모임과 대화를 갖는 것, 정의를 위해 싸우고 구제하며 친구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주고 절망 중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것 아픈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억눌려 있는 사람을 위해 악과 대항하는 것도 전도입니다.

제 1장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처럼 나를 본받으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요 20:21)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이웃에게로 보내실 뿐만 아니라 마치 예수님께서 우리 입장이 되셔서 행하듯이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요 13:12~13)
예수님은 친구로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순종하셨습니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요 4:34)

제 2장  
오늘 전도할 것인가?
전도란 우리가 해야만 하는 어떤 활동이 아니라 우리의 인격 그 자체입니다. 우리의 삶과 매일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바로 우리가 참으로 믿고 있는 바를 증거 하는 것입니다. 결정해야 하는 갖가지 일들, 우리의 태도, 이웃을 대하는 방식, 우리가 하는 말 등 우리가 행하고 있는 것들 자체가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라는 것을 단순히 토요일 오후 전도지를 들고 거리로 나가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 생활에 담긴 보다 폭넓은 의미를 놓칠 수 있습니다. 다름 아니라 매일 매순간이 곧 전도라는 사실입니다.

제 3장
세 가지 전도의 원리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사역하신 것을 여러 각도에서 다양하게 기록하여 놓은 것입니다.
동일시
예수님은 범죄한 사람들을 마주 대하셨을 때, 업신여기시거나 판단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전도하는 사람의 삶과 그가 느끼는 감정 안으로 그냥 들어간다는 것 진정한 사랑과 존경심을 가지고 이들을 대한다면 이들의 생활을 감싸고 있던 벽들이 점차 허물어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경청하기
사랑과 지혜로 대하기
예를 들면 친구, 인정받는 것, 머물 집, 먹을 음식, 체면, 자존심 등이 더 절실하게 필요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먼저 이와 같은 필요를 채움으로써 친구가 되는 문을 열 수 있습니다.

제 4장
진리를 말하기
필요를 찾아 그리스도를 소개할 수 있는 적당한 기회를 얻기 위해 노력하며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셔서 영원한 진리를 증거 할 수 있도록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보통 대화의 폭이 좁기 때문에 불리하게 작용하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불신자들의 마음에 그리스도인들은 고지식하며 세상일에 대해서 약간은 무지하다는 인상을 심어줄 뿐만 아니라 공감대형성을 어렵게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보조를 같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능한 한 폭 넓게 탐독함으로써 세상사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말하는 것만 전도가 아닙니다. 말하는 것이 전도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는 하지만 우리가 하는 말보다도 그 뒤에 감춰진 동기와 말할 때의 태도가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능변이 아닌 진실성과 정직함이 사람의 마음을 감화시킵니다.

제 5장
인내하며 전도하기
반드시 요청되는 것입니다. 전도도 즉석에서 성공하기를 기대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요령이란 없습니다. 전도지가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전도 프로그램이 아무리 완벽하다 해도 주님께 인도할 사람과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걸리는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전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까지 수주, 수개월, 심지어 수년 동안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지 모릅니다.

제 6장
태도검토
- 자기비하가 아닌 겸손으로
관계를 맺는 데 지불해야 하는 대가는 치르지 않고 억지로 동의를 얻어내려고 마음먹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그런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사람을 지배하고 굴복시키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도를 하는 우리는 투사가 아니라 증인인 것입니다. 단호한 결단력과 구변으로 전도할 대상을 굴복시키기 위해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들의 결정 능력과 권리를 존중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에 호소하여 우리의 관심어린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합시다. 몇몇 공통된 관심사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훨씬 더 용이합니다. 상대방의 신념을 꺾기 위해 달려든다면 상대방으로 하여금 방어적인 입장을 취하도록 하는 부작용만 낳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공감대를 찾는 데는 명수였습니다.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행 17:22~23) 만약에 바울이 공격적으로 복음을 나누면서 청중들에 대하여 경의를 표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표현했다면 과연 그들 중 몇 명이 믿었을까 의문스럽습니다. 거만한 태도나 우리가 전도하려는 사람 위에 있으려고 하는 태도를 버리십시오. 우리의 성품으로 감화시켜 사람들을 제압하라거나 능란한 말솜씨로 현혹시키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어떤 것보다도 <겸손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 전도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 죄를 책망하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원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상대방의 죄를 책망하도록 허락하신 다든지 요구하기는 일이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 권리 밖의 일이며 성령의 사역을 침범하는 행위가 됩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 16:8) 우리가 언제나 명심해야 할 것은 전도할 때 우리의 임무가 다만 사람의 마음속에 복음의 씨를 뿌리는 것뿐이라는 것입니다.
- 허울 좋게 전하지 말라
허울 좋게 보임으로써 전도할 때 다른 사람도 허울 좋게 보임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주님을 떠나게 만들기도 쉽다는 사실을 언제나 명심합시다. 사람들이 진리와 사랑에 입각해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제 7장
영혼을 얻는다는 말
한 사람의 영혼을 얻는 것이 마치 우리의 특권이라도 되는 것같이 생각할 경우 도식화된 전도를 하는 ‘전도기술’이라는 것을 익히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듭니다. 우리가 증거 하는 것이 진리여야 합니다. 우리가 전도하는 사람이 초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영혼을 얻으려고’애써서는 안 됩니다. 대신에 예수님이 우리의 초점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어 놓으신 일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전도기술이라는 것은 때때로 대화를 짧게 하면서도 지혜롭게 해야 할 때 사용되는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한편 어떤 사람이 솔직하게 물어왔는데 대답할 말이 없다면 이것은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데 장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 꼭 대답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의 질문을 적어가지고 집에 돌아와서 답을 연구해서 찾도록 하십시오. 또는 더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에게 가서 물어보십시오.

제 8장
성공적인 전도란?
효과적인 전도를 하는 사역자가 되고자 한다면 먼저 시간을 들여서 주님과 함께 교제를 가져야 합니다. 최종적으로 전도의 결과를 가늠하시는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오히려 이웃에게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았으며 주위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더 관심이 많으십니다.
우리의 믿음을 어디서부터 나누어야 할지 알고 싶은 마음에 어떤 단계를 밟아야 하는지 도움을 받고 싶다면 :
1. 믿지 않는 친구 서너 명을 놓고 매일 정규적으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 친구들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 그 방법을 구하십시오, 또 어떻게 친구들의 삶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여쭤보십시오.
2. 당신이 기도하고 있는 사람들과 사회적인 친분을 맺으십시오.
3. 친구가 ‘절실하게 느끼는’ 필요를 파악하고 이에 응하도록 하십시오.
4. 기독교를 반대하는지 살펴보십시오. 이들의 물음에 응할 때마다 그에 따르는 많은 지식이 요구 되므로 실상 이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리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와 정직한 자세를 갖추고 물음에 대해 답변해야 합니다.
5.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어울려 지낼 수 있는 활동이나 모임에 친구들을 초대하시기 바랍니다.
회심은 일련의 과정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미 열매 맺을 준비가 다 된 밭’ 에 나가 일을 했을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돌밭에 나가 씨 뿌리는 일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추수 주인 되신 하나님의 지시대로 각자의 기능을 다하는 것입니다.

제 9장
가장 보편적인 질문 여섯 가지
물음에 대한 답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대하여 생각하는 바가 넓은지 알아보려고 일부러 물어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전도하는 것을 막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질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진정으로 진리를 갈망해서 묻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질문하는 동기를 분별함으로써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다룰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을 놓고 논쟁한다든지 고집스럽게 밀고 나가지 않는 것이 상책입니다. 딱딱하게 보이거나 정직하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공손하게 대함으로써 언제라도 이들의 마음속에 진리가 스며들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도록 합시다. 기독교가 다만 마음이 약한 사람들이나 교회 문을 기웃거리는 사람들만 위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1) 기독교 내에 있는 위선자들을 어떻게 보는가?
위선과 미성숙에는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또 우리가 옳고 그름을 분간할 수 있다면 우리는 또한 옳다고 여기는 것을 행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저지른 그릇된 일을 핑계로 우리도 또한 그릇된 일을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2) 예수님만이 하나님께 가는 유일한 길인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어떤 의미에서 기독교는 배타적인 종교이며 하나님께 가는 또 다른 ‘길’과의 병존의 가능성을 두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는 진리의 구도자로 자신을 설명했으며, 모하메드는 자신을 선지자로 여겼고, 공자는 현인이었습니다.
3) 선하신 하나님이라면 왜 사람들을 지옥에 보내는가?
천국은 바로 지금부터 시작되는 삶의 질을 말합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 17:3).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겔 33:11)
4)  왜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이 고난을 당하는가?
5) 왜 그리스도인들은 사회 불의에 관심을 쏟지 않는가?

제 11장
두려움을 극복하라.
- 거절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나눌 권리가 없겠습니까?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강압적으로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말하는 방식 때문에 거절당하는 것과 우리가 전하는 메시지 때문에 거절당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 우리의 체면이 깎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 우리의 체면을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쓰기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 다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입니다. 해를 입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최상의 방법을 두려움을 인정하고 고백하면서 주님에 대한 신뢰를 굳건히 하는 것
- 틀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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