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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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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onacom.or.kr/sermon/2003_8_31.mp3마9:9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지나 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
마9:10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마9:11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마9: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있느니라
마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오늘 읽은 마태복음 말씀은 예수님이 세리 마태를 부르시고 그 집에서 세리들과 함께 식사하실 때 이를 지켜본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비난하자 예수께서 죄인을 불러 구원하러 오셨다고 말씀하신 부분입니다.

예수님 당시 세리들은 그 사회에서 죄인으로 따돌림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이라면 누구도 그들과 친구가 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세리 가운데 한 사람이 마태를 제자로 부르셨고, 그의 집에서 세리들과 함께 어울려 식사를 하신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그들을 더러운 죄인으로 취급하여 함께 식사는 물론이거니와 서로 얼굴을 마주하여 이야기조차 하지 않으려 했는데, 예수님은 그들과 어울려 밥상을 함께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리새인들의 비난에 대하여 떳떳하게 대답하셨던 것입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고 하시면서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그 당시 가장 천하게 여겼던 사람들과 어울려 그들의 친구가 되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을 낮추시면서 그들에게 다가가자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좋아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버림받은 사람들을 향하여 "수고하여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고 초청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귀한 신분을 가지신 분임에도 종의 형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기는 쉽지만 하나님의 아들이 천한 이 땅의 죄인들과 사귐을 갖는다는 것은 쉬운 일도 아니요 간단한 일도 아닙니다. 이것은 놀라운 은총이며 큰사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사귀어 친구가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을 사귀는 것은 그래도 비교적 간단한 편입니다. 그런데 자기보다 수준이 낮다고 생각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에서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몸이지만,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다"고 하면서 유대 사람들에게는 그들을 얻으려고 유대 사람과 같이 되었고,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율법 아래에 있지 않으면서도, 그 사람들을 얻으려고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과 같이 되었으며, 율법이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율법 안에서 사는 사람이지만, 역시 그 사람들을 얻으려고 율법이 없이 사는 사람과 같이 되었고, 믿음이 약한 사람들에게는 그들을 얻으려고 약한 사람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고전 9:19-22). 사도 바울은 자신의 자존심이나 체면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고 상황에 따라 자신을 낮추어 사람들과 어울렸고, 그래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에게 좋은 친구가 되면서 복음을 전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교회에 모이는 까닭은 단순하게 예배만을 드리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함께 모이는 것은 서로 사귐을 갖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좋은 친구로 만나고 서로의 기쁨과 아픔을 함께 나누는 일은 우리에게 있어 대단히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서로가 만나 마음 문을 열고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귀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가 메말라 극히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이기 때문에 좀처럼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할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현대 생활이 우리를 몹시 바쁘게 만들기 때문에 차분히 앉아 서로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나와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는 시간을 갖기 때문에 새로운 만남의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교회가 커지고 모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서로를 알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 관계는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고 그저 목례하고 스쳐 지나가는 관계로 머물고 말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들은 여러 가지 조직과 모임을 만들어 서로를 알고 사귈 수 있는 기회를 만듭니다. 이런 만남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좋은 친구 관계를 만들고 서로의 문제를 나누고 어려울 때 협력하여 큰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와 다른 사람과 사귐을 갖지 못한 채 혼자 예배를 드리는 것에 만족하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실상 우리가 교회 안에서 다른 사람을 적극적으로 만나고 사귀지 못한다면 밖에 나가서 전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전도는 전도지나 몇 마디 말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접근할 때 전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처럼 자신을 낮추고 겸손히 다른 사람과 만날 때 거기에 전도가 이루어지고 아름다운 만남이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만남과 좋은 친구가 됨 없이 사실상 전도는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내가 전도하고자 하는 사람과 좋은 이웃이 되고자 하는 마음 없이 아무리 좋은 말을 전하여도 그 사람을 감동시키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가 좋은 이웃, 좋은 친구를 만나기 어려운 까닭은 우리 속에 있는 자존심과 이기적인 생각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낮출 수 있는 겸손함이 우리에게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존심과 체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좀처럼 다른 사람들과 마음을 터놓고 만나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세리나 율법을 지키지 않는 죄인들보다 스스로 높고 고귀하다고 판단하는 교만 때문에 예수님처럼 갈릴리로 내려가 그 땅의 천한 백성들과 어울릴 수 없었습니다. 그들을 비난하고 그들을 깨우치려만 했지, 그들과 친구가 되어 그 삶과 문화를 이해하면서 그들에게 율법을 전하려는 노력은 전혀 기울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우리 속에 들어 있는 여러 가지 자존심, 그것이 지적인 것이든, 물질적인 것이든, 혹은 가문이나 전통에 의한 것이든 스스로를 다른 사람과 구별하여 높은 자리에 자신을 올려놓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으며, 결국 유아독존적인 삶에 만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삶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자신을 낮추어 종이 되시고, 오셔서 죄인들을 영접하시며 그들과 자리를 함께 하시고 그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처럼, 우리가 자신을 낮추며, 자기가 이제까지 가지고 있던 지식이나 재물이나 권력이나 명예를 다 비우고 겸손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 비로소 거기에 아름다운 인간관계가 맺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 안에 들어와 혼자서만 예배를 드리고 만족하는 것은 아직도 그 안에 자존심이 살아있고, 자기를 부인하지 못한 교만이 자리잡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적극적인 만남과 사귐이 중요한 것은 그것을 통해서 내 속에 있는 자존심과 교만과 이기심을 벗어버리는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치는 것은 사랑으로 서로 좋은 친구가 되고 이웃이 되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올바로 예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나 혼자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 즉 서로 사귐을 갖는 사람들이 함께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른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먼저 공동체를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함께 모인 사람들끼리 좋은 친구가 되어 서로를 존경하고 사랑할 때 거기에 좋은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거기에서 아름다운 참다운 예배가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바른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를 알기 위해서 자신이 교회 안에서 몇 사람이나 알고 만나며 사귀고 있는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몇 사람 되지 못함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예배는 드려도 그것이 과연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산 제사가 되었는지는 의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생활은 어쩌면 교회 안에서나 밖에서 좋은 친구, 좋은 이웃을 많이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하겠습니다. 좋은 이웃이 많을수록 전도를 많이 한 사람일 것이고, 좋은 친구가 많을수록 참다운 예배를 드린 사람일 것이며, 가난한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사람일수록 그는 겸손한 사람일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라고 우리가 고백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많은 사람에게 좋은 이웃, 좋은 친구가 될 것입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자신은 날마다 죽는다고 하였는데, 우리도 우리 속에 깃들인 교만과 이기심, 자존심과 체면을 날마다 부인하지 않고서는 올바른 신앙의 성장을 이룩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이제부터 하나씩 깨트려버리고 겸손한 마음, 가난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만나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자기 희생을 본받아 나의 교만과 자존심을 버리는 훈련을 쌓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 마음속에 한 가지 작정을 하십시오. 공동체 안에서,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새로운 친구를 한 사람 만들겠다는 작정을 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사귀고자 하는 사람을 한 사람 정하고 그 사람과의 친밀한 만남을 위해 기도하시면서 같이 인사를 나누고 식사를 같이 하기도 하며, 때로는 시간을 내어 함께 서로의 문제를 놓고 기도하기도 하는 계획을 짜서 그대로 실행하시기 바랍니다. 처음에는 의무감에서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진정한 사귐,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협력할 수 있는 관계가 될 때까지 힘쓰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는 사랑을 배우고 나누는 공동체입니다. 이 교회 안에 들어와서 사랑을 배우지 못하고 나누지 못한다면 무엇인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우리 속에 바리새적인 교만이나 남보다 내가 낫다는 잘못된 생각이 있다면 이를 속히 버려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멍에를 지고 온유와 겸손을 배우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자신의 벽을 헐고 나와 겸손함으로 이웃을 만나며, 사랑으로 사귐을 가지십시오. 그래야 이 공동체가 살고, 그래야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너무 두꺼운 자기의 벽 속에 갇혀서 나오기를 주저하였고, 자신이 무참하게 깨어질까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거듭남으로 우리 자신이 깨어지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회개하므로 하나님 앞에 용서받은 주의 자녀임을 기억할 때 사람들 앞에 나 자신이 드러나 깨어지는 것은 두려워할 것이 못됩니다. 오히려 자신을 들어내므로 자신의 변화를 확인하고 새로운 변화를 위해 노력해 가야 할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나 자신이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심으로 이웃과 막혔던 담을 헐고 겸손과 섬김으로 만나며, 그래서 좋은 이웃 좋은 친구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런 만남과 이런 사귐을 통해 이 공동체가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참다운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만남, 새로운 사귐이 이루어지므로 보다 활기에 넘친 신앙생활이 이루지시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태초에 말씀이(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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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2003년 7월 27일 오전 백부장의 믿음

  13. 2003년 7월 27일 오후 하나님의 요구

  14. 2003년 7월 20일--손을 내밀어

  15. 2003년 7월 13일 오전

  16. 2003년 7월 13일 오후

  17. 2003년 7월 6일 오전

  18. 2003년 7월 6일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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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2003년 6월 29일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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