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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노래
2003.05.02 21:49

고장난 트랙터

조회 수 4605 추천 수 31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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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대원리에 막 내려온 그해 봄에
없던 돈을 긁어모아 남들이 타다가 버리는
폐차직전의 중고 트랙터를 한대 구입하였습니다.
지금보다 농사를 더 모를 때였고
정부가 말하는 대로 기계농, 심경다비라는 말에만
익숙해 있을 때였으니 기계는 반드시 필요하리라 생각한 까닭이였지요.
그런데 구입할 때는 몫돈이 들어갔지만
구입하고 보니 우리 마을에서는 유일한 트랙터였습니다.
하여, 마을의 연로하신 어르신들은
우리와 조금씩 친해지기 시작하면서
다들 찾아오셔서는 논을 갈아줄 수 있느냐
밭을 갈아 줄 수 있느냐시며 부탁을 하셨습니다.
처음에 이 기계는 주로 용수 형제가 운전을 하였는데
대원리 논과 밭을 참 '수'도 없이 불려 다니며
유'용'하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우리 보기에는 고물이고 낡아 별로 쓸모 없어 보이는 기계였지만
그래도 우리 마을에서는 정말 효자노릇을 톡톡히 한 것이지요.

그런데 이것이 이제는 정말 노쇄했나 봅니다.
3년전부터는 겨울을 지나고 봄이 되기 전에
미리 기계를 손보기 위해 이곳저곳을 훓어보다 보면
여기저기 성한 곳이 하나 없을 정도로
관이 터지고, 오일이 세고, 볼트와 너트가 헐렁거리기 시작하더군요.
가다가 서기도 하고,,,,

급기야 올해는 시동을 처음 건 후에 텃밭과
전집사님이 고추농사 짓기 위해 빌린 7백평 밭을 한번 갈고 난 후에
다시 논으로 들어가기는 했는데
거기서 엔진이 이상이 오면서 거의 폭파진전까지 가고 말았습니다.

사람이나 기계나 피조물인 까닭에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것이 진리인가 봅니다.
텃밭 한쪽 귀퉁이에 옮겨져 초라하게 멈추어 서 있는
트랙터를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 못하는 저 기계라 할지라도 저 것이 없었으면
그나마 지금까지 어떻게 농사를 지었겠으며
마을 어르신들과의 관계를 이렇게 친밀히 하는데 또 얼마나
유용하게 사용되었는지....
저 말못하는 트랙터, 톱 한자루, 낫, 호미......
이 모든 것들이 지금 우리의 현재를 이루는 중요한 밑거름이었나니
결코 내 힘으로 공동체를 이루는 것도 아니고
인생을 내 뜻이나 내 힘만으로 사는 것이 아님을
절감합니다.

비 내리는 흐린 하늘 아래 우두커니 서 있는 트랙터
제 할일을 묵묵히 온 힘을 다해 감당해준 고마움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를 표시하였습니다.
그리고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사
대지를 적시시고
언 땅을 녹이시며
보드라운 새싹이 피어오르도록 도우시는
주님의 손길에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봄의 정경을 보며
낡아 저만치 머물러  서 있는 트랙터를 보며
만물을 자상하신 손길로 다스리시는 주님의 손길에
깊고 낮은 목소리로 찬양을 올려 드립니다.

해 아래 새것이 없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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