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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노래
2005.11.05 07:43

올해 고추 농사

조회 수 4290 추천 수 219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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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전부터 공동체 밭농사의 주 작목이 고추가 되었습니다. 싹을 틔우는 법이나 밭에 거름하는 방법, 미생물을 이용하여 작물과 땅을 이롭게 하는 법을 터득하여 고추농사를 지어 꽤 훌륭한 수입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올 봄에는 작년보다 거의 두 배에 해당되는 약 2천 평의 밭을 빌려 가을부터 밭을 만들고 거름을 충분히 하였습니다. 그리고 종자 고르는 일부터 싹을 틔우고, 포터에 가식하여 비닐하우스 안에서 모종을 기르는 일까지 온 식구들, 심지어 아이들까지 나서서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우리 마을은 초봄이나 늦가을이면 일교차가 너무 심해서 모종 기르는 일이 보통 까다로운 것이 아니거든요. 기도하고, 심혈을 기울여서 일까요 모종은 마을 어르신들이 다들 칭찬하고 부러워할 만큼 튼실하게 잘 자라주었습니다. 드디어 5월 초순에 농활 온 대학생들의 도움으로 사방으로 흩어져 있는 비탈진 밭마다 고추를 심었습니다. 그런데 내다심은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진드기들이 공동체 고추밭마다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마을 어르신들의 밭에도 진드기들이 달려들었지만 어르신들은 늘 해오던 방식으로 해충약 두서너 번으로 고민을 말끔히 해결하셨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은 농약을 사용하는 대신 진드기를 잡기 위해 각자가 듣고 배운 모든 방법을 총 동원해 보았습니다. 결국 마지막에 시도한 방법으로 진드기는 어렵게 퇴치시켰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 우리 고추밭의 고추들은 심각한 성장 장애를 일으킨 나머지 가을이 되어서는 우리가 예상한 양의 십분의 일도 안 되는 적은 양을 수확하였습니다. 다른 이웃들은 열심히 고추를 수확하고 말리는 동안 고추 농사를 지은 형제들이나 자매들의 얼굴은 누구하나 예외 없이 어둡고 우울했습니다. 이 문제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농약 가게에서 비싸지도 않은 농약 한 병 사다 물에 타서 남들 모르게 슬쩍 뿌려버릴 수도 있었겠지요. 그랬다면 적어도 돈은 벌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진드기가 다 없어지고 볼품없는 모습이지만 그래도 살아남은 고추밭에서 맛볼 수 있었던 그 기쁨과 감사, 마을 어르신들이 처음에는 약 뿌리지 않는다고 농부의 자세도 마음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욕을 하시다가 진드기가 사라진 밭을 보시며 함께 기뻐해주시고 대견해 하시던 그분들의 미소, 그 미소를 바라보시며 다, 하나님 은혜지요 라며 농부이신 하나님을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는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수입이 줄어들어 봄에 농사일을 거들어주던 아이들에게 약속한 선물들을 사 줄 수는 없게 되었지만 어른들이 밭에서 이른 아침부터 밤늦도록 진드기와 시름하던 모습이나 밭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눈물로 기도하던 부모의 모습을 지켜보았던 우리아이들은 어쩌면 돈으로 살 수 없는 더 크고 오래가는 선물을 이미 받았는지도 모릅니다.
  • ?
    노승욱 2005.12.20 08:46
    십분의 일밖에 수확하지 못한 고추가 왠지 하나님께 드리는 온전한 십일조처럼 느껴집니다. 하나님께서 나머지 십분의 구는 다른 방법으로 축복해주셨고 또 축복해주시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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