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를 통한 농촌 선교를 모색한다.
1. 농촌 선교가 주는 느낌들
농촌 선교 혹은 농촌 복음화라는 단어처럼 농촌에서 사역하시는 많은 목회자들의 마음을 뜨겁게 달구었던 단어가 또 있을까? 갖가지 계기를 통해 농촌 사역자로 결단하고 농촌으로 내려와 이 땅의 곳곳에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오직 주만 바라보며 충성하고 계신 무수한 농촌의 목회자들, 이분들이 처음 농촌에 대한 부르심을 들으면서, 소외되고 가난한 이 땅, 우상과 미신으로 가득한 이 땅의 농촌을 복음의 땅으로 일구어 보겠다는 일념과 주를 위해서라면 '어디든지 가오리다'라는 믿음으로 농촌으로 내려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 중 대부분의 경우에는 3년에서 5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서 마치 '아이성' 전투에서 어이없이 패하고 주저앉아 망연자실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참담한 심정을 경험하게 된다. 그렇다고 이 땅의 농촌 목회자들에게 아간의 범죄와도 같은 잘못이 숨겨져 있다는 말은 아니다. 야심만만하게, 혹은 믿음으로 다가간 것에 비해 너무도 어이없는 좌절이 우리의 현실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농촌 선교, 농촌 복음화는 가나안으로 향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길목을 지키고 선 아이성처럼 이 땅의 복음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극복해야할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성육신 하신 예수님께서는 3년이라는 공생애의 대부분을 농촌이었던 갈릴리에서 사역하신다.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과 함께 온 갈릴리 지역을 순회전도 하시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신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라고 불렀고, 공생애가 끝나갈 무렵 체포되셨을 때는 '온 유대에서 가르치시고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여기까지 와서 백성을 소동케 하는 자'라고 사람들은 아우성쳤다. 그후 주님은 부활하신 후에 갈릴리에서 말씀을 배우고 훈련받은 제자들에게 이르시기를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도시선교)과 온 유대(민족 복음화)와 사마리아(유사 문화권 선교)와 땅 끝(세계선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농촌 선교는 민족 복음화와 세계선교를 시작하는 중요한 원점과도 같다. 그렇다면 이처럼 중요한 농촌선교에 대한 바른 대안은 없는 것일까? 농촌이 도시와는 다른 곳이라는 점을 유념하면서 농촌에 맞는 전도와 선교에 대해 생각해 보자.
2. 농촌은 마을이다.
근대를 지나 현대로 진행해 오는 역사의 과정에서 인류는 사상 유래가 없는 엄청난 변화를 맛보아야 했다. 그 거대한 변화 중에 하나가 바로 도시화다. 산업화가 진행되고 자본주의가 심화될수록 대부분의 농민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자신들의 문전옥답을 버리고 도시로 몰려들었다. 도시에는 농촌에서 볼 수 없었던 선진 문화와 편리함이 있었고, 또 자신의 가난한 신분을 탈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엿보였다. 그래서 지금도 제 3세계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변화는 도시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도시화에는 몇 가지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익명성'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회를 엿보며 찾아들어 도시가 형성되다 보니 도시에서는 이름이 별로 필요가 없다. 나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 내 이름을 불러 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익명성은 결국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주의적인 가치관을 심화시키고 윤리의 부재를 낳게 된다. 그래서 도시는 문명이 발달하고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번쩍인다 하더라도 그 속에서 인간미를 찾기는 힘들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익명성의 도시에 자리잡은 교회들은 도시 생활에서 시달리고 지친 영혼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위로하는데 설교가 치중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전도하는 것도 개인주의화된 문화환경에 맞게 개인전도법이 발달하게 된다.
도시화의 또 다른 특징은 다양성이라고 할 수 있다. 생산과 유통이 발달하면서 모든 면에서 선택의 폭이 넓어지게 되고 이것은 각 개인의 개성을 발견하고 강화할 수 있는 장점을 제공하였다. 이러한 도시의 다양성은 교회 내에서도 자리잡아 교인들의 욕구가 점차 다양화되고 있다. 그래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교인들의 필요에 적절하게 반응하는 교회들만 성장하는 현상을 쉽게 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농촌은 다르다. 농촌은 이러한 도시의 익명성이나 다양성을 쉽게 발견할 수 없다. 농촌은 마을이다. 가령 엊그제 우리 마을 김씨 할아버님의 생일날 아침에는 이장님이 방송을 하고 온 마을 사람들은 그 집으로 몰려가 축하하며 함께 조반을 나누었다. 농촌에서는 한 집안의 경사가 온 마을 잔치가 되고 장례식은 온 마을 사람들이 서로 돕고 위로하는 장소가 된다. 도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집단적인 문화의식이 아직도 깊게 남아 있는 곳이 바로 농촌인 것이다.
그리고 농촌은 근대화 이후 젊은 사람들이 대부분 도시로 떠나고 노인들만 남아 있다. 그러다 보니 농촌에서는 도시와 같은 급격한 변화를 찾아보기 힘들다. 젊은이들에 비해 노인들은 변화에 민감하지 못하고 오히려 변화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촌에서는 도시 교회들에서는 효과가 있는 프로그램들이 전혀 통하지 않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나 도시 교회에서 행하는 다양한 세미나들은 개인주의적인 도시 문화 형태에 맞는 것이지 집단적인 문화 형태를 고수하고 있는 농촌 마을에는 맞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리고성을 대하는 방법과 아이성을 대하는 방법이 달랐듯이 도시에서의 선교와 농촌에서의 선교는 엄연히 달라야 함에도 불구하고 불행하게도 우리는 농촌 현실에 맞는 선교방법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고 있다.
3. 마을에 맞는 선교법은 없을까?
하나님은 초월성과 내재성으로 만물과 관계하신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신 삶과 사역을 보면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분의 말씀은 서기관과 같지 않고 권세 있는 새 교훈이었고 그 분의 말씀 앞에서 귀신들이 항복하고 떠나갔다. 바람과 파도가 잠잠케 되고 각종 병든 자들이 주님의 말씀 앞에서 회복되기도 했다. 이런 모습은 하나님의 초월성에 근거한 카리스마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약하고 소외된 자들의 이웃이 되시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시며 죄인들과 식탁을 함께 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의 내재성에 근거한 코이노니아적인 사역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주님은 카리스마적인 선교법과 코이노니아적인 선교법으로 갈릴리의 소외된 이웃들을 섬기신 것이다.
주님은 이러한 두 가지 선교법을 통하여 궁극적으로는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원하셨다.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다스림이 온 만물 위에 임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창조질서가 회복되고 깨어진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선교의 목표였던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는 예수님의 선교는 오순절날 성령이 임하시면서 더욱 본격화되고 가속화된다. 그런데 선교의 주체이신 성령님을 통하여 이루어진 초대교회의 선교에서도 우리는 예수님의 두 가지 선교법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들이 개인이나 대중을 대상으로 카리스마적인 말씀과 이적으로 복음을 힘있게 증거 하였다. 이러한 카리스마적인 선교를 우리는 오순절날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하루에 3천명이나 회개하는 모습에서와 성령의 이끌림을 받은 빌립이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에게 복음을 증거 하는 모습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특히 바울 선교팀은 카리스마적인 선교의 대표적인 경우였다. 바울은 소아시아에 흩어져 있는 도시들을 중심으로 순회전도를 하면서 말씀과 이적으로 교회를 개척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 하였다. 이와 같은 카리스마적인 선교법은 개인주의가 발달한 도시에서 적합한 선교법이었다.
초대교회의 두 번째 선교방법은 삶을 통한 선교라고 할 수 있다.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님은 각 개인에게 성령의 충만함으로 말미암은 은사를 주셨을 뿐만 아니라 초대교회를 평안의 매는 줄로 하나가 되게 하셨다. 성령은 하나되게 하시는 분이셨다. 성령님은 사람들 사이의 막힌 담을 허시고 빈부와 귀천이 더 이상 사람들 사이를 가로막지 못하게 하셨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다. 초대교회 공동체는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교회와는 매우 다른 형태의 교회 공동체였다. 말씀과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교제와 더불어 기독교인들이 각기 받은 은사를 따라 형제를 섬기고 다 함께 모여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는 수평적인 코이노니아가 그들에게 있었다. 물론 지금과 같은 자본주의가 발달하지 않은 시대였다고 하지만 사람들에게 있는 본능적인 소유욕구가 성령님에 의해 다스려지면서 그들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않고 자신의 소유를 직접 나누는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는 나눔의 삶을 실천한 것이다. 더 나아가 초대교회 공동체는 이러한 나눔을 통해 형성된 사랑의 힘으로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들을 섬기는 대사회적인 사랑의 나눔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하였다. 이러한 성령 충만한 초대교회 교인들의 삶의 모습은 주변 사람들에게는 가히 혁명적인 모습으로 보여졌고 정직하고 진실한 그들의 사랑 넘치는 삶은 율법주의자들에 비해 비교우위로 평가되면서 온 백성들에게 칭찬을 받으며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들이 더하여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이와 같은 초대교회의 코이노니아 선교방법은 공동체를 통한 선교, 혹은 삶을 통한 선교라고 할 수 있다. 말씀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주변 사람들에게 복음의 영향력을 끼치면서 그 지역의 문화를 바꾸고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선교인 것이다.
그런데 마을인 농촌에서는 카리스마적인 선교보다는 코이노니아적인 선교가 더욱 효과가 있다. 왜냐하면 농촌은 마을이기 때문이다. 농민들에게는 논리적인 설명 이전에 삶으로 보여지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며 섬기고 나누는 삶의 모습을 보여줌으로 기독교인들이 착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시켜주게 되고 이를 통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열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우리 공동체 식구들은 작년부터 충북 보은군 산외면에서 공동체를 시작하였다. 우리는 공동체를 시작하면서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30년을 나사렛에서 목수라는 전문 직업을 가지고 사람들과 더불어 사시면서 사역을 준비하신 것처럼 한 3년 동안은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작정을 했다. 목사, 박사라는 타이틀도 다 내려놓고 그저 젊은 사람들이 농사를 짓기 위해 들어왔다는 말씀만 드리고 마을 주변에 있는 버려진 밭들을 빌려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대신에 아주 깍듯이 마을 사람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우리가 아는 것이라도 마을 어르신들에게 먼저 여쭈어 보면서 관계를 형성해갔다. 여름방학 때마다 대학생들이 농활팀으로 내려왔지만 그들에게도 예수의 '예'자도 말하지 못하게 당부하였다. 대신에 열심히 일을 하고 어르신들에게 인사만 열심히 하라고 부탁하였다. 올 봄에는 5년 된 낡은 트랙터를 한 대 구입하였는데 그래도 우리 마을에서는 유일한 트랙터였다. 그러자 마을 어르신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밭이며 논을 갈아달라고 부탁을 해서 부탁이 들어오는 대로 다 갈아 드렸다. 그리고 봄부터는 땅을 100여 평을 구입하여 집을 짓기 시작하였는데 마을 어르신들이 와서 돕기도 하고 할머님들은 떡이며 과일을 만들어 주시기도 했다. 집을 다 짓고 입주 예배를 드리는 날에는 온 마을 어르신들이 다 모여 함께 식탁의 교제를 나누었다. 그런데 지난 4월부터 마을 사람들에게서 교회를 지어달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직 1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어떤 분들은 '큰 십자가'를 보았는데 이것이 무슨 꿈이냐고 물어오기도 하신다. 혹은 누가 아프면 와서 기도해달라는 말씀도 하시고 주일 예배 때는 오시라고 말씀드리지도 않았는데 할머님들이 예배에 참석하기도 하신다. 아직 시작에 불과하지만 관계를 통한, 코이노니아 선교법이 농촌 마을에서 효과가 있다는 작은 확신들을 갖기 시작한다.
4. 농촌 공동체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우선 무엇보다도 목회자들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먼저 목사는 세상일을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포기하고 장막을 만들면서 선교하던 바울의 모습을 되새기면서 농민들과 더불어 사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팀을 형성해야 한다. 공동체의 최소 단위는 개인이 아니라 가정이라고 생각한다. 목회자 가정으로만 공동체는 시작하기 어렵다. 뜻이 맞는 사람들이 함께 하여야 한다. 시간을 두고 가정들이 모여 함께 말씀을 나누고 삶을 나누는 훈련이 되어야 한다. 3년간의 공생애를 통해 예수님께서 12명 혹은 120명의 사람들을 양육하시고 성령이 임하시면서 그들을 통해 초대교회가 형성되는 것처럼, 혹은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전도를 위해 사람들을 파송 하시면서 둘씩 짝지어 보내신 것처럼 공동체를 시작하면서 수평적인 나눔과 섬김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형성할 사람들을 확보해야 한다. 세 번째로는 성육신의 예수님을 배워야 한다. 아직도 농촌은 장유유서(長幼有序)의 문화가 남아 있는 곳이기 때문에 더욱 친절하고 겸손하며 공손해야 한다. 하나님이시면서도 사람이 되시는 예수님을 본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목수로 일하시던 주님처럼 공동체 식구들이 마을 주민들과 더불어 함께 노동해야 한다. 노동을 통해 마을 주민들이 경험하는 현실의 고통들을 공감하고 함께 탈출구를 찾아갈 때 농촌공동체는 그 마을 주민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다. 네 번째로 도시교회들과의 공동체성을 형성하는 것이 좋다. 도시의 사람들이 이들을 위해 중보 기도팀을 만들어 기도도 하고 가끔 와서 함께 교제를 나누기도 한다면 큰 위로가 된다. 또 가능하다면 도시의 교회가 농촌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땅이나 기계들을 사주고 농촌 공동체가 생산한 농산물들을 직거래해 줄 수 있다면 도시인들은 안전하고 값싼 먹거리를 제공받을 수 있고 농촌 공동체는 고립감을 극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농촌은 몇 채의 집들이 모인 부락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그 마을들 몇 개가 모여 리(里)와 면(面)을 형성하게 된다. 부락이 너무 작거나 산재해 있는 곳들은 현실적으로 교회를 개척하기에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조선을 지배하던 유교 문화가 퇴색한 이후 지금까지 농촌의 정신 세계는 무주공산과도 같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노리고 각종 사이비와 이단들이 비집고 들어오려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현실적인 고통과 자녀들과 떨어져 살아가는 외로움으로 소망 없이 살아가는 농민들에게 도시의 교회들이 헌신된 젊은 목회자들과 청년들을 팀으로 만들어 파송하고 교회가 그들을 후원한다면 농촌 선교가 보다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5. 농촌 공동체의 과제와 비전
선진화된 유럽에서는 복지정책이 잘 되어 있고 극단적인 개인주의의 병폐를 맛보았기 때문에 공동체를 시도하는 것이 비교적 쉬운 편이다. 하지만 집단주의에서 개인주의로 진행하는 중간 단계에 있고 복지정책이 완비되지 못한 한국에서 공동체를 시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단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의 이목 앞에서 성경적인 영성을 형성하는 것과 더불어 생존의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는 이중적 과제를 부여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냉전 체제가 종식되면서 운동권 출신의 사람들이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하면서 '공동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고 있다. 또한 불교계에서도 민중에게 다가가는 포교의 일환으로 공동체를 시도하고 있다. 유럽이나 구미에서 시작된 자연주의자들에 의한 '생태마을'의 형태로 다양한 공동체가 시도되고 있고, 개인주의에 식상한 사람들이 co-housing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형태의 공동체를 만들고 있다. 오순절날 성령님에 의해 시작된 공동체가 비기독교인들에 의해 다양한 형태로 시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농촌 공동체는 공동체를 형성하고 생존하는 것과 더불어 '기독교적인 공동체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분명한 자리매김을 해야할 과제도 부여받고 있다.
그리고 농촌 공동체들은 주변에 있는 농촌 교회들과 좋은 협력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함께 영성을 공유하면서 선한 영향력들을 주고받아야 한다. 이러한 영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그 지역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기 시작할 때 그 지역은 기독교적인 문화와 가치관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아직도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 구도가 지속되고 있는 한반도에서는 통일 이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적 삶의 형태를 뛰어넘는 제 3의 대안을 필요로 한다. 그런 면에서 사유와 공유가 조화를 이루고 개인과 집단이 조화를 이루는 기독교적인 농촌 공동체는 제 3의 대안으로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은 기독교 공동체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회복시키고 환경을 회복시키는 청지기로서의 삶을 통해 현대문화의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는 환경 문제에 대한 기독교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과제이면서 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농촌은 다종교 사회이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업에 종사하는 농촌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의 농촌은 소위 말하는 10/40창의 미전도 종족들이 살아가는 삶의 자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한국 농촌은 선교를 훈련하고 준비하는 최적의 장소라고 말 할 수 있다. 더욱이 농촌 공동체에서 농업을 통해 땅을 일구고 마을 주민들과 더불어 사는 삶을 훈련은 어느 선교 프로그램보다 실재적이고 효과적인 선교훈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갈릴리에서 시작한 예수님의 선교가 땅 끝까지 이르게 되는 비밀이 바로 한국의 농촌 공동체에 있다고 생각한다.
1. 농촌 선교가 주는 느낌들
농촌 선교 혹은 농촌 복음화라는 단어처럼 농촌에서 사역하시는 많은 목회자들의 마음을 뜨겁게 달구었던 단어가 또 있을까? 갖가지 계기를 통해 농촌 사역자로 결단하고 농촌으로 내려와 이 땅의 곳곳에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오직 주만 바라보며 충성하고 계신 무수한 농촌의 목회자들, 이분들이 처음 농촌에 대한 부르심을 들으면서, 소외되고 가난한 이 땅, 우상과 미신으로 가득한 이 땅의 농촌을 복음의 땅으로 일구어 보겠다는 일념과 주를 위해서라면 '어디든지 가오리다'라는 믿음으로 농촌으로 내려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 중 대부분의 경우에는 3년에서 5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서 마치 '아이성' 전투에서 어이없이 패하고 주저앉아 망연자실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참담한 심정을 경험하게 된다. 그렇다고 이 땅의 농촌 목회자들에게 아간의 범죄와도 같은 잘못이 숨겨져 있다는 말은 아니다. 야심만만하게, 혹은 믿음으로 다가간 것에 비해 너무도 어이없는 좌절이 우리의 현실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농촌 선교, 농촌 복음화는 가나안으로 향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길목을 지키고 선 아이성처럼 이 땅의 복음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극복해야할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성육신 하신 예수님께서는 3년이라는 공생애의 대부분을 농촌이었던 갈릴리에서 사역하신다.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과 함께 온 갈릴리 지역을 순회전도 하시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신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라고 불렀고, 공생애가 끝나갈 무렵 체포되셨을 때는 '온 유대에서 가르치시고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여기까지 와서 백성을 소동케 하는 자'라고 사람들은 아우성쳤다. 그후 주님은 부활하신 후에 갈릴리에서 말씀을 배우고 훈련받은 제자들에게 이르시기를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도시선교)과 온 유대(민족 복음화)와 사마리아(유사 문화권 선교)와 땅 끝(세계선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농촌 선교는 민족 복음화와 세계선교를 시작하는 중요한 원점과도 같다. 그렇다면 이처럼 중요한 농촌선교에 대한 바른 대안은 없는 것일까? 농촌이 도시와는 다른 곳이라는 점을 유념하면서 농촌에 맞는 전도와 선교에 대해 생각해 보자.
2. 농촌은 마을이다.
근대를 지나 현대로 진행해 오는 역사의 과정에서 인류는 사상 유래가 없는 엄청난 변화를 맛보아야 했다. 그 거대한 변화 중에 하나가 바로 도시화다. 산업화가 진행되고 자본주의가 심화될수록 대부분의 농민들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자신들의 문전옥답을 버리고 도시로 몰려들었다. 도시에는 농촌에서 볼 수 없었던 선진 문화와 편리함이 있었고, 또 자신의 가난한 신분을 탈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엿보였다. 그래서 지금도 제 3세계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변화는 도시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도시화에는 몇 가지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익명성'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회를 엿보며 찾아들어 도시가 형성되다 보니 도시에서는 이름이 별로 필요가 없다. 나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 내 이름을 불러 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익명성은 결국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주의적인 가치관을 심화시키고 윤리의 부재를 낳게 된다. 그래서 도시는 문명이 발달하고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번쩍인다 하더라도 그 속에서 인간미를 찾기는 힘들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익명성의 도시에 자리잡은 교회들은 도시 생활에서 시달리고 지친 영혼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위로하는데 설교가 치중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전도하는 것도 개인주의화된 문화환경에 맞게 개인전도법이 발달하게 된다.
도시화의 또 다른 특징은 다양성이라고 할 수 있다. 생산과 유통이 발달하면서 모든 면에서 선택의 폭이 넓어지게 되고 이것은 각 개인의 개성을 발견하고 강화할 수 있는 장점을 제공하였다. 이러한 도시의 다양성은 교회 내에서도 자리잡아 교인들의 욕구가 점차 다양화되고 있다. 그래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교인들의 필요에 적절하게 반응하는 교회들만 성장하는 현상을 쉽게 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농촌은 다르다. 농촌은 이러한 도시의 익명성이나 다양성을 쉽게 발견할 수 없다. 농촌은 마을이다. 가령 엊그제 우리 마을 김씨 할아버님의 생일날 아침에는 이장님이 방송을 하고 온 마을 사람들은 그 집으로 몰려가 축하하며 함께 조반을 나누었다. 농촌에서는 한 집안의 경사가 온 마을 잔치가 되고 장례식은 온 마을 사람들이 서로 돕고 위로하는 장소가 된다. 도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집단적인 문화의식이 아직도 깊게 남아 있는 곳이 바로 농촌인 것이다.
그리고 농촌은 근대화 이후 젊은 사람들이 대부분 도시로 떠나고 노인들만 남아 있다. 그러다 보니 농촌에서는 도시와 같은 급격한 변화를 찾아보기 힘들다. 젊은이들에 비해 노인들은 변화에 민감하지 못하고 오히려 변화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농촌에서는 도시 교회들에서는 효과가 있는 프로그램들이 전혀 통하지 않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나 도시 교회에서 행하는 다양한 세미나들은 개인주의적인 도시 문화 형태에 맞는 것이지 집단적인 문화 형태를 고수하고 있는 농촌 마을에는 맞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리고성을 대하는 방법과 아이성을 대하는 방법이 달랐듯이 도시에서의 선교와 농촌에서의 선교는 엄연히 달라야 함에도 불구하고 불행하게도 우리는 농촌 현실에 맞는 선교방법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고 있다.
3. 마을에 맞는 선교법은 없을까?
하나님은 초월성과 내재성으로 만물과 관계하신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신 삶과 사역을 보면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분의 말씀은 서기관과 같지 않고 권세 있는 새 교훈이었고 그 분의 말씀 앞에서 귀신들이 항복하고 떠나갔다. 바람과 파도가 잠잠케 되고 각종 병든 자들이 주님의 말씀 앞에서 회복되기도 했다. 이런 모습은 하나님의 초월성에 근거한 카리스마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약하고 소외된 자들의 이웃이 되시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시며 죄인들과 식탁을 함께 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의 내재성에 근거한 코이노니아적인 사역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주님은 카리스마적인 선교법과 코이노니아적인 선교법으로 갈릴리의 소외된 이웃들을 섬기신 것이다.
주님은 이러한 두 가지 선교법을 통하여 궁극적으로는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원하셨다.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다스림이 온 만물 위에 임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창조질서가 회복되고 깨어진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선교의 목표였던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는 예수님의 선교는 오순절날 성령이 임하시면서 더욱 본격화되고 가속화된다. 그런데 선교의 주체이신 성령님을 통하여 이루어진 초대교회의 선교에서도 우리는 예수님의 두 가지 선교법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들이 개인이나 대중을 대상으로 카리스마적인 말씀과 이적으로 복음을 힘있게 증거 하였다. 이러한 카리스마적인 선교를 우리는 오순절날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하루에 3천명이나 회개하는 모습에서와 성령의 이끌림을 받은 빌립이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내시에게 복음을 증거 하는 모습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특히 바울 선교팀은 카리스마적인 선교의 대표적인 경우였다. 바울은 소아시아에 흩어져 있는 도시들을 중심으로 순회전도를 하면서 말씀과 이적으로 교회를 개척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 하였다. 이와 같은 카리스마적인 선교법은 개인주의가 발달한 도시에서 적합한 선교법이었다.
초대교회의 두 번째 선교방법은 삶을 통한 선교라고 할 수 있다.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님은 각 개인에게 성령의 충만함으로 말미암은 은사를 주셨을 뿐만 아니라 초대교회를 평안의 매는 줄로 하나가 되게 하셨다. 성령은 하나되게 하시는 분이셨다. 성령님은 사람들 사이의 막힌 담을 허시고 빈부와 귀천이 더 이상 사람들 사이를 가로막지 못하게 하셨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다. 초대교회 공동체는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교회와는 매우 다른 형태의 교회 공동체였다. 말씀과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교제와 더불어 기독교인들이 각기 받은 은사를 따라 형제를 섬기고 다 함께 모여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는 수평적인 코이노니아가 그들에게 있었다. 물론 지금과 같은 자본주의가 발달하지 않은 시대였다고 하지만 사람들에게 있는 본능적인 소유욕구가 성령님에 의해 다스려지면서 그들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않고 자신의 소유를 직접 나누는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는 나눔의 삶을 실천한 것이다. 더 나아가 초대교회 공동체는 이러한 나눔을 통해 형성된 사랑의 힘으로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들을 섬기는 대사회적인 사랑의 나눔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는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하였다. 이러한 성령 충만한 초대교회 교인들의 삶의 모습은 주변 사람들에게는 가히 혁명적인 모습으로 보여졌고 정직하고 진실한 그들의 사랑 넘치는 삶은 율법주의자들에 비해 비교우위로 평가되면서 온 백성들에게 칭찬을 받으며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들이 더하여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이와 같은 초대교회의 코이노니아 선교방법은 공동체를 통한 선교, 혹은 삶을 통한 선교라고 할 수 있다. 말씀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주변 사람들에게 복음의 영향력을 끼치면서 그 지역의 문화를 바꾸고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선교인 것이다.
그런데 마을인 농촌에서는 카리스마적인 선교보다는 코이노니아적인 선교가 더욱 효과가 있다. 왜냐하면 농촌은 마을이기 때문이다. 농민들에게는 논리적인 설명 이전에 삶으로 보여지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며 섬기고 나누는 삶의 모습을 보여줌으로 기독교인들이 착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시켜주게 되고 이를 통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열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우리 공동체 식구들은 작년부터 충북 보은군 산외면에서 공동체를 시작하였다. 우리는 공동체를 시작하면서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30년을 나사렛에서 목수라는 전문 직업을 가지고 사람들과 더불어 사시면서 사역을 준비하신 것처럼 한 3년 동안은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작정을 했다. 목사, 박사라는 타이틀도 다 내려놓고 그저 젊은 사람들이 농사를 짓기 위해 들어왔다는 말씀만 드리고 마을 주변에 있는 버려진 밭들을 빌려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대신에 아주 깍듯이 마을 사람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우리가 아는 것이라도 마을 어르신들에게 먼저 여쭈어 보면서 관계를 형성해갔다. 여름방학 때마다 대학생들이 농활팀으로 내려왔지만 그들에게도 예수의 '예'자도 말하지 못하게 당부하였다. 대신에 열심히 일을 하고 어르신들에게 인사만 열심히 하라고 부탁하였다. 올 봄에는 5년 된 낡은 트랙터를 한 대 구입하였는데 그래도 우리 마을에서는 유일한 트랙터였다. 그러자 마을 어르신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밭이며 논을 갈아달라고 부탁을 해서 부탁이 들어오는 대로 다 갈아 드렸다. 그리고 봄부터는 땅을 100여 평을 구입하여 집을 짓기 시작하였는데 마을 어르신들이 와서 돕기도 하고 할머님들은 떡이며 과일을 만들어 주시기도 했다. 집을 다 짓고 입주 예배를 드리는 날에는 온 마을 어르신들이 다 모여 함께 식탁의 교제를 나누었다. 그런데 지난 4월부터 마을 사람들에게서 교회를 지어달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직 1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어떤 분들은 '큰 십자가'를 보았는데 이것이 무슨 꿈이냐고 물어오기도 하신다. 혹은 누가 아프면 와서 기도해달라는 말씀도 하시고 주일 예배 때는 오시라고 말씀드리지도 않았는데 할머님들이 예배에 참석하기도 하신다. 아직 시작에 불과하지만 관계를 통한, 코이노니아 선교법이 농촌 마을에서 효과가 있다는 작은 확신들을 갖기 시작한다.
4. 농촌 공동체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우선 무엇보다도 목회자들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먼저 목사는 세상일을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포기하고 장막을 만들면서 선교하던 바울의 모습을 되새기면서 농민들과 더불어 사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팀을 형성해야 한다. 공동체의 최소 단위는 개인이 아니라 가정이라고 생각한다. 목회자 가정으로만 공동체는 시작하기 어렵다. 뜻이 맞는 사람들이 함께 하여야 한다. 시간을 두고 가정들이 모여 함께 말씀을 나누고 삶을 나누는 훈련이 되어야 한다. 3년간의 공생애를 통해 예수님께서 12명 혹은 120명의 사람들을 양육하시고 성령이 임하시면서 그들을 통해 초대교회가 형성되는 것처럼, 혹은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전도를 위해 사람들을 파송 하시면서 둘씩 짝지어 보내신 것처럼 공동체를 시작하면서 수평적인 나눔과 섬김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형성할 사람들을 확보해야 한다. 세 번째로는 성육신의 예수님을 배워야 한다. 아직도 농촌은 장유유서(長幼有序)의 문화가 남아 있는 곳이기 때문에 더욱 친절하고 겸손하며 공손해야 한다. 하나님이시면서도 사람이 되시는 예수님을 본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목수로 일하시던 주님처럼 공동체 식구들이 마을 주민들과 더불어 함께 노동해야 한다. 노동을 통해 마을 주민들이 경험하는 현실의 고통들을 공감하고 함께 탈출구를 찾아갈 때 농촌공동체는 그 마을 주민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다. 네 번째로 도시교회들과의 공동체성을 형성하는 것이 좋다. 도시의 사람들이 이들을 위해 중보 기도팀을 만들어 기도도 하고 가끔 와서 함께 교제를 나누기도 한다면 큰 위로가 된다. 또 가능하다면 도시의 교회가 농촌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땅이나 기계들을 사주고 농촌 공동체가 생산한 농산물들을 직거래해 줄 수 있다면 도시인들은 안전하고 값싼 먹거리를 제공받을 수 있고 농촌 공동체는 고립감을 극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농촌은 몇 채의 집들이 모인 부락들이 모여 마을을 이루고 그 마을들 몇 개가 모여 리(里)와 면(面)을 형성하게 된다. 부락이 너무 작거나 산재해 있는 곳들은 현실적으로 교회를 개척하기에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조선을 지배하던 유교 문화가 퇴색한 이후 지금까지 농촌의 정신 세계는 무주공산과도 같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노리고 각종 사이비와 이단들이 비집고 들어오려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현실적인 고통과 자녀들과 떨어져 살아가는 외로움으로 소망 없이 살아가는 농민들에게 도시의 교회들이 헌신된 젊은 목회자들과 청년들을 팀으로 만들어 파송하고 교회가 그들을 후원한다면 농촌 선교가 보다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5. 농촌 공동체의 과제와 비전
선진화된 유럽에서는 복지정책이 잘 되어 있고 극단적인 개인주의의 병폐를 맛보았기 때문에 공동체를 시도하는 것이 비교적 쉬운 편이다. 하지만 집단주의에서 개인주의로 진행하는 중간 단계에 있고 복지정책이 완비되지 못한 한국에서 공동체를 시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단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의 이목 앞에서 성경적인 영성을 형성하는 것과 더불어 생존의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는 이중적 과제를 부여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냉전 체제가 종식되면서 운동권 출신의 사람들이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하면서 '공동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접근하고 있다. 또한 불교계에서도 민중에게 다가가는 포교의 일환으로 공동체를 시도하고 있다. 유럽이나 구미에서 시작된 자연주의자들에 의한 '생태마을'의 형태로 다양한 공동체가 시도되고 있고, 개인주의에 식상한 사람들이 co-housing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형태의 공동체를 만들고 있다. 오순절날 성령님에 의해 시작된 공동체가 비기독교인들에 의해 다양한 형태로 시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농촌 공동체는 공동체를 형성하고 생존하는 것과 더불어 '기독교적인 공동체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분명한 자리매김을 해야할 과제도 부여받고 있다.
그리고 농촌 공동체들은 주변에 있는 농촌 교회들과 좋은 협력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함께 영성을 공유하면서 선한 영향력들을 주고받아야 한다. 이러한 영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그 지역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기 시작할 때 그 지역은 기독교적인 문화와 가치관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아직도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 구도가 지속되고 있는 한반도에서는 통일 이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적 삶의 형태를 뛰어넘는 제 3의 대안을 필요로 한다. 그런 면에서 사유와 공유가 조화를 이루고 개인과 집단이 조화를 이루는 기독교적인 농촌 공동체는 제 3의 대안으로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은 기독교 공동체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회복시키고 환경을 회복시키는 청지기로서의 삶을 통해 현대문화의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는 환경 문제에 대한 기독교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과제이면서 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농촌은 다종교 사회이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업에 종사하는 농촌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의 농촌은 소위 말하는 10/40창의 미전도 종족들이 살아가는 삶의 자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한국 농촌은 선교를 훈련하고 준비하는 최적의 장소라고 말 할 수 있다. 더욱이 농촌 공동체에서 농업을 통해 땅을 일구고 마을 주민들과 더불어 사는 삶을 훈련은 어느 선교 프로그램보다 실재적이고 효과적인 선교훈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갈릴리에서 시작한 예수님의 선교가 땅 끝까지 이르게 되는 비밀이 바로 한국의 농촌 공동체에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