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대학교 때 '죽음의 철학'이라는 강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사실 그땐 죽음이 무엇인지, 그리고 나와는 멀리 있는 주제인 듯 싶었지만
제가 좋아하는 장경철 교수님 수업이라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교수님은 믿지 않는 학생들에게도 죽음은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에 마음의 동의는 했지만 가슴에 썩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 서상원 어르신이 하나님 품에 안겨서이기도 하고, 친정아버지 생신 때문에 대전에 갔다가
요양병원에 계신 큰아버지를 뵙고 와서 더욱 그렇습니다.
83세이신 큰아버님은 치매 증세와 혼자 거동을 하지 못해 대소변을 다 받아야 하는데 큰어머님도 몸이 약해 수발을 다 하지 못하시니
요양병원에 계신 것입니다.
결혼 후 자주 뵙지 못해서인지 오랜만에 약한 모습으로 앉아 계신 큰아버지를 보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집에 가고 싶으시다고 눈물을 흘리시는데 예전의 강단 있는 그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싶으시다는 큰아버님. 제가 당신의 손을 잡으니 함께 꼭 잡습니다.
서상원 어르신도 그러셨습니다.
얼마 전에 병원에서 돌아와 잠시 집에 머무셨을 때
언니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 어르신의 손을 잡으니, 저의 손을 꼬옥 잡으셨습니다.
그래도 서상원 어르신은 지난 주에 세례를 받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큰아버님은 동생이 목사인데도, 큰어머님과 아들딸들이 다 교회에 가도 당신은 하나님을 믿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신앙은 개인의 고백이지만....
그런데 오늘 함께 간 아버지가 큰아버님을 위해 함께 기도하니 큰아버님께서 "아멘" 하셨습니다.
요즘은 병원에서 드리는 예배에 꼬박꼬박 참석하신다고 합니다.
큰아버님께서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서상원 어르신을 통해서 우리 큰아버님께도 영접기도를 하고, 세례를 받는 시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다음에 갔을 때 큰아버님 손을 잡고 함께 기도드리라 생각해봅니다.
물론 하루 빨리 다시 가봐야겠지요.
죽음 앞에선 대부분의 인간이 약해지는 것 같습니다.
물론 오히려 더 담대해지는 분도 있지만....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오시옵소서"라고 고백하지만
여태까지 저는 그 부분에서는 "주님, 아직은 안 돼요."라고 했습니다.
여러 가지 변명이 있겠지만요.
그러나 하나님의 때는 멀지 않음을 늘 상기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해봅니다.
저는 20대 후반에 함께 신앙생활하던 교회의 친한 오빠, 언니, 그리고 순원을 하나님께 먼저 보냈습니다.
뇌종양, 위암, 그리고 저의 순원이었던 혜신이는 병명조차 알 수 없이
근육이 마비되고, 움직일 수 없게 되면서 오랫동안 고생하다가 하나님 품에 안겼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죽음 앞에서 오히려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그들을 먼저 보내면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땅에 남겨두신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해 난 무엇을 해야 할까?
정말 열심히 살자, 아름다웠던 소풍 끝내는 날 하나님께 가서 부끄럼 없이 만나기를 바라며 열심히 살아야겠다
마음먹었는데 그후 1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듯 싶습니다.
아니, 오히려 세 아이들을 키우면서 뒷걸음질치는 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수없이 많습니다.
아직 제게 특별한 죽음의 철학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날 때가 가까이 왔다는 것, 준비되어야 한다는 것, 하루하루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냥그냥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게 주어진 모든 상황과 시간들 속에서 날마다 감사의 고백을 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건강하게 살다가 질병으로 고생하지 않고, 평안하게 하나님 앞에 갈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