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의 호소(?)
“그대는 왜 촛불을 키게 하셨나요?” 석유가 동나고 전기가 끊여서 그러한가? 온 도시들이 밤만 되면 촛불이 켜지고 있다. 자신을 태워서는 다른 이들을 밝혀주는 것이 촛불의 본연의 일이건만 요즘 밤마다 밝히는 이 촛불의 행렬은 끝날 줄을 모른다. 아니 작은 불꽃들이 모이고 모여서 더 큰 불을 만들어가고 있다. 건조하던 지난 봄 우리 산골에는 작은 불씨라도 보고 또 다시 확인하라는 공무원들의 신신당부가 매일 이동차량을 이용하여 방송되었었다. 더군다나 속리산국립공원지역이라 일단 불이 나면 대형 산불로 번질 위험이 뻔 하기에 그러했다. 그런데 이 작은 불씨들이 연일 도시의 광장과 도로들을 채우고 있으니.... 어느새 큰 불이 되어서는 이제 갓 100일이 된 새 정권을 흔들고 있으니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작은 불씨였을 때 물대포로 완전히 진화했어야 했었나? 아니면 이들 또한 불조심에 대한 방송에 귀 기울이지 못한 실수인가?
예전에 한달 정도는 빵으로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리 좋은 음식점에 가서 먹어도 집에서 아내가 정성껏 차려주는 밥상에 비교할 수 없다. 바로 밥상의 문제인 것이다. 내 밥상을 다른 이에게 나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맡길 수는 없다. 그렇잖아도 사대적인 역사에 대한 알레르기가 많은 한민족인데 어찌 그들의 입맛에 맞춘 협상을 하고 나서 우리가 알아서 건강을 위하여 가려 먹으라 한다면 나라는 무슨 역할을 위하여 존재하는가?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적 역사와 일제에 대한 식민지적 이데올르기 그리고 이제는 미국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이 부끄럽다. 왜 이 민족에게는 이러한 아픔의 역사가 계속되어야 할까? 예전의 은혜를 망각하는 몰지각을 말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에 대한 깊은 감사와 태도가 있어야 함도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제는 먼저 서둘러 고개를 조아릴 시대는 아니다. 밥상을 서둘러 차리다 보면 반찬에 간이 맞지 않거나 밥이 설익어서 배탈이 나게 되는 것이다.
예전에 캐나다의 대단위 목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수백 수 천마리의 소들이 좁은 공간에서 배합사료에 의해서 급성장시켜 바로 옆에 있는 도축장으로 보내지는 동물농장이 아닌 동물공장으로 떠오른다. 그 괸리인들의 중점 사항은 어떻게 하면 빠른 시일안에 부드러운 고기를 생산하는가 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종 성장호르몬과 고영양 사료의 공급은 뻔 한 공식이 되는 것이다. 이 고영양 사료에 바로 각종 동물의 부산물이 들어가는 것이며 설사 그것이 같은 소의 것이 아닌 돼지 등의 타동물의 것이라도 초식동물에게는 문제가 발생되는 것이다. 얼마전 소에게 풀 대신에 단미사료만 공급함으로 위에 있는 미생물들의 조성이 달라져 출혈성 대장균이 많아져 그것에 오염된 육류 섭취시 식중독을 일으킨다는 보고가 있었다. 이와 같이 사람의 욕심에 의한 초식동물에 고기를 먹이면 광우병에 걸리게 되고 사람에게까지 전염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결국은 인간 욕심의 결과이다. 경제를 살리려면 바르게 살려야 한다. 단지 돈만 있으면 무엇하겠는가? 내 나라 내 민족 그리고 이 강산이 있어야 그 의미가 있는 것일 찐데......
청주의 철당간에서 열리는 촛불문화제에 아이들과 함께 참석했다. 저마다의 의견을 개진하기도 하고 노래를 듣기도 부르기도 하면서 저마다의 손에서 흔들리는 촛불은 바람에 연신 꺼지기도 잘 한다. 하지만 이 힘없는 불꽃들이 정부를 진퇴양난에 빠지게 하고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제일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길 수 있음을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싶었다. 그 작은 흔들림 하나하나가 이 한반도를 지켜 갈 것이다. 한 알의 밀알이 썩어지면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기에 오늘도 논에서 밭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바람아, 멈추어라! 촛불을 지켜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