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검었던 바닷가에 얼마나 많은 손길들이 지나갔으면 거의 제 모습을 회복하고 있었다. 이른 새벽을 달려 도착한 태안군 소원면의 어느 해변은 그렇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함께 동행한 아이들과 옷과 장화 등을 준비하여 아직 손길이 필요한 절벽과 바위해변을 향해 긴 행렬에 동참했다. 원래의 색이 검었던 것으로 밖에는... 다만 구역질나게 하는 냄새만이 아니었던 것으로 착각을 일으키게 모든 것이 시커멓게 되어 있었다. 자갈을 모래를 저마다 닦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모래사이를 지나 안으로 스며들기 시작한 기름은 자갈과 모래를 파내고 닦고 다시 파내도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그 반복을 밀물이 들어오는 시각까지 계속했다. 토할 것 같은 그 역겨움과 다시 스며 나오는 기름을 보며 누구를 탓하여 하는가에 골몰하게 되었다. 크레인선체가 소속된 삼성 아니면 비용절검을 위해 한 겹의 유조선을 사용한 관계업체를 하지만 자조적인 한숨이 절로 남은 그 직접적인 원인이야 그들에게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과연 나는 그에 대한 일말의 책임도 없다고 장담할 수가 없었다. 왜인가? 간단명료하다. 나 역시 그 석유 소비자 중의 한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체적으로 석유가 흔히 자동차 또는 난방을 위한 것으로 그 역할을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먹는 쌀 한 톨에도 많은 부분이 석유에 의존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파종하기위해 논을 갈고 써레질 하는 것은 물론 추수하고 도정하여 우리 입으로 먹게끔 요리하는 과정도 바로 석유는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는 완전히 석유에 둘러싸여 있으며 이미 깊이 중독되어 있다. 석유가 제공하는 현대문명의 혜택을 우리는 맘껏 향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 축복의 이면은 존재하는 것이고 우리의 편리함을 향한 끝없는 욕심은 이번 태안 사고를 계속해서 만들어 낼 것이고 자연은 고스란히 그 결과물을 품어줄 것이다. 하지만 그 피해자인 자연 역시 그대로를 사람에게 드러내 놓는다. 이러한 일들은 단지 이번 기름유출에서 발생된 태안사건과 같이 확연히 드러나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곁에서 서서히 진행되면서 차곡차곡 우리의 무관심이 쌓여가면서 우리에게 되돌려 주는 결과물들이 있다. 그 중 요즘 가장 대두되고 있는 것이 지구 온난화일 것이다. 이 역시 석유등의 화석연료로 인한 것이 아닌가? 이 뿐인가? 산성비, 사막화, 생태계파괴, 오존층파괴 등은 조금은 거시적 환경문제이다. 하지만 최근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는 매일 매일 100가지 종류의 동식물을 멸종시키고, 여의도크기의 100배가 넘는 땅을 사막으로 만들고 있으며, 8600만 톤의 비옥한 땅을 침식시켜 파괴하고 있으며, 1억 톤의 온실가스(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다. 이것이 단지 먼 나라 다른 나라만의 이야기는 더 이상 아니다. 하지만 우리피부에 와 닿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안전한 의식주의 문제, 깨끗한 물과 공기, 환경호르몬, 발암물질들 등과 같은 조금은 우리의 일상에 가까이 와 있는 것들도 있다. 아동 10명중 3명은 아토피 관련 질병을 앓고 있으며 예전에는 없었던 소아암의 발병률은 급상승하고 있다는 보고가 연일 보도되고 있다. 많은 지식인들이 대통령의 공약중의 하나인 한반도운하 건설에 반대하는가도 이 환경의 문제가 바로 우리의 삶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며 더 나아가 다음 세대를 향한 최소한의 도리이기에 그런 것이다. 자연이 100만년에 걸쳐 만들어 놓은 석유를 우리세대는 무분별하게 단 100여 년 만에 다 소비하기에 이르렀다. 그래! 과학이 이 문제를 다시 해결하겠지 라는 낙관론도 있으며 과학계도 열심히 정진하고 있음을 물론 안다. 하지만 이 시대를 사는 우리는 너무도 무책임하다. 너무도 지독한 천민 이기주의에 빠져있다. 마치 이 세대에 모든 것을 끝장내고 싶은 듯 전혀 방향을 바꾸지 않고 마냥 절벽을 향해 치달리는 기곤차를 보는 듯하다. 나 역시 이것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알기에 답답하다. 이러한 답답함이 태안으로 향하게 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수많은 손길들도 답답함에 한 줌의 모래를 한 개의 자갈을 문지르며 자연에 대한 미안함으로 어루만진 것은 아닌지……. 요즘 방영되는 대부분의 다큐에서 이러한 문제를 자주 다루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환경적인 문제가 그렇듯이 우리가 사는 지구는 서로서로 연결이 되어 있는 유기적 공동체이기 때문이 아닐까? 즉 우리는 한 지구 안에 사는 운명공동체이다. 어느 날 갑자기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 우리에게 찾아오면 어떻게 될까? 모든 생명이 사라지고 단지 인간남이 남아 있다는 상상을 종종 해 본다. 그것은 비극이 아니라 표현할 수 없는 저주가 될 것이다. 차라리 사람만이 없어지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그런다. 우리가 이 지구를 지킬 수 있을까? 예전에는 독수리 오형제가 지구를 지켜주었었는데 지금은 우리가 모두 독수리의 형제들이 되어야 할 판이다. 그래서 너는 화장실 갔다 오면 등을 끄고 너는 청소할 때 청소기 대신 빗자루를 사용하고 당신은 샴푸 사용량을 줄이고, 모두 이면지를 제대로 사용하고 등등. 우리 모두가 지구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주변에 무수히 많다. 그렇게 행함으로 우리는 자연에 대한 우리 저마다의 소망을 나눌 수 있으며 자녀들에게 책임을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