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에너지 고갈과 기후변화로부터 벗어나려면 두말할 필요없이 덴마크나 독일처럼 재생가능 에너지로 넘어가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에너지 전환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 지금까지와 같이 석유와 원자력을 계속 사용했으면 하고 생각하고,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미국은 이 길을 택한 것 같다. 우선 미국은 기후변화를 억제하기 위한 교토 협약에서 탈퇴했다. 이 조처는 화석에너지 이용을 줄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석유 의존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라크를 침공해서 석유를 확보함으로써 수십년은 에너지 걱정을 안해도 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한국도 이라크 파병을 결정함으로써 미국을 따라가고 있다. 한국의 에너지 기득권자들은 미국을 따르면 원자력과 화석연료를 계속 붙들고 갈 수 있는 길이 보일 것이라고 희망하는지 모른다. 석유가 모자라게 되어도 미국의 도움으로 중동의 석유를 얻어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러한 희망이 충족되지 않아도 큰일이지만, 충족된다 해도 좋을 것은 없다. 미국에의 의존이 더 심화될 것이고, 국제 상황에 따라 언제라도 석유공급이 끊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일인당 에너지 소비량은 일인당 국민소득이 한국의 3배나 되는 일본이나 독일보다 더 많다. 일인당 전기 소비량도 독일, 영국, 덴마크 등보다 더 많다. BP(영국석유)에서 2003년 7월에 발표한 세계 에너지통계에 따르면 2002년 한국의 일인당 연간 일차에너지 소비는 석유로 환산했을 때 4475kg이었다. 이것은 미국과 북구를 제외한 대부분의 선진국보다 많은 양이다. 산업에서 화학공업과 기계공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세계에서 높은 편에 속하는 독일이나 일본의 경우 2002년 일인당 연간 에너지 소비는 독일이 4015kg, 일본이 4029kg이었다. 다른 G7 국가들 중에서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도 각각 3720kg, 4384kg, 3068kg으로 모두 우리나라보다 낮았다.
한국의 일인당 연간 일차에너지 소비가 일본과 독일을 앞지른 것은 2001년의 일이었다. 이는 한국의 경우 에너지 소비가 해마다 크게 증가한 반면 일본이나 독일의 에너지 소비는 정체 상태이거나 조금씩 감소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에너지 소비가 앞으로도 이러한 추세로 증가하면 10년 후에는 한국의 일차에너지 소비가 OECD 국가 중에서 최고 수준에 도달할 것이다.
BP의 에너지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일인당 전기 소비도 OECD 국가 중에서 높은 편에 속한다. 한국전력이나 산업자원부에서는 해마다 에너지 통계를 발표할 때 일인당 소비량을 한국의 전기소비를 가늠하는 기준값으로 내놓는다. 그리고 전기 소비만을 비교하면 한국이 선진국보다 적게 전기를 쓴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소비통계를 가지고는 국가간 비교를 정확하게 하기 어렵다. BP뿐만 아니라 국제에너지기구(IEA)에서 내놓는 전기 통계가 모두 전기생산량을 기준으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통계를 내는 기준에 따라 기구마다 통계값이 다르게 나온다. 그러므로 전기소비에 관한 국가간 비교를 정확하게 하려면 하나의 기구에서 발표한 값만을 가지고 비교해야 한다.
2003년 BP 에너지통계에 따라 각 나라의 2002년 일인당 전기생산량을 계산하면, 한국은 7285kWh로 독일(7083kWh), 영국(6515kWh), 이탈리아(4984kWh)보다 더 높았다. 독일이나 영국 모두 주변 국가에 전기를 수출도 하고 수입도 하지만, 이들 국가의 수입과 수출이 거의 같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한국의 전기 소비가 이들 국가보다 더 높다는 것은 분명하다. 한국의 일인당 전기생산량(소비량)이 독일을 앞지른 것은 2002년에 와서이다. 2001년까지는 독일의 전기 생산량(소비량)이 한국보다 더 높았고, 그때보다 3년 전인 1998년 경에는 독일의 60% 수준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연간 전기소비 증가율은 거의 10% 가까이 되는 반면 독일은 정체 상태이기 때문에, 4년만에 독일의 전기소비량을 앞지른 것이다. 한국의 중화학공업 위주의 산업구조를 고려한다 해도, 한국인들이 소득에 비해서 전기를 너무 많이 쓰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