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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소식지

22

2018-Sep

의성 목조건축에 도움주실분을 찾습니다.

작성자: jurinwon IP ADRESS: * 조회 수: 456

보나콤은 충북 보은과, 경북 의성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의성 보나콤에서 2018년 10월 부터 약 3개월간 주거용 주택과 창고를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목조주택을 직접 지어보시면서 배우기도 하시고 저희에게 도움을 주실 자원봉사자를 찾고 있습니다. 

참여 기간은 개인 사정에 따라 단기, 장기 모두 가능하오니 관심있으신 분은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담당자 : 장두환장로 010-5447-7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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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2011-Mar

1999년 8월 보은예수마을 소식지 - 공동체 소식

작성자: bona IP ADRESS: * 조회 수: 5142


 
  보은예수마을 월간 소식지 1999.8. 창간준비2호  
 
 ma.gif <공동체소식>

농사 이야기
채소 - 겨울 김장용 배추를 위해서 파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작년보다 더 많은 양을 해볼까 합니다. 농사는 풍년이나 흉년이나 모두 농민들에게 시름을 준다는데...
버섯 - 여름버섯 폐상을 6일에 고려대 학생과 함께 잘 마쳤습니다. 과정에서 성근 형제가 차에서 떨어져 머리를 다치는 사고가 있었지만, 고대 의료진의 정성어린 치료로 무 사 했답니다. 그리고 가을 버섯을 위해 준비 중입니다.
축산 - 요즘 소값이 작년에 비해 2.5배나 올랐습니다. 그래서 3000평정도 심은 사료용 옥수수를 일단 발효저장을 하고 지켜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선한 계획이 함께 하시길...


집 이야기
드디어 입주예배를 드렸습니다. 긴 시간동안의 공사를 마치고 7월 18일에 많은 분들의 참여가운데 드리는 예배는 저희 가족들에게는 가슴 뭉클한 시간이었습니다. 못 빼기로 도와주신 후원회, 직접 한달 동안 집짓기에 참여하신 서울 전 집사님, 청소 등 기타 많은 일로 도와주신 형제, 자매님들 모두에게 감사를 드리며, 무엇보다 지금까지 저희 공동체와 동행하시며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여름 사역
두란노 바이블 칼리지에서 주관한 보은지역 목회자, 사모, 남성 중직들을 위한 세미나가 7월 5-8일까지 있었습니다. 올 가을에도 후속 프로그램이 있을 예정입니다. 서울지역 IVF 형제.자매들의 여름 농활이 7월19-24일까지 4개 마을에서 15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성황리에 있었습니다. 8월 3-7일에는 고려대학교 의대 기독학생회와 교수님들이 내려와 산외면 주민들에게 무료 진료를 실시하였습니다. 국민일보 진료차량도 함께 왔었는데 약 520여명이 진료를 받았습니다.

여름 수련회
공동체 여름 수련회가 8월 15-17일 대원리 새집에서 열립니다. 공동체의 일치와 사랑의 교제가 이루어지길....



후원자가 되어 주십시오.
보은지역의 선교와 부흥을 위한 후원자가 되어주십시오.
여러분의 작은 정성이 모여 척박한 이 땅에 복음의 좋은 씨앗으로 뿌려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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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2011-Mar

1999년 8월 보은예수마을 소식지 - 가족소식

작성자: bona IP ADRESS: * 조회 수: 4810


 
  보은예수마을 월간 소식지 1999.8. 창간준비2호
 
 prim.gif<가족소식>

권영제, 이재진

희정이가 미국 대학교 견학을 위해 7월 26일에 출국하였습니다. 10박 11일간의 일정 동안 여러 미국 대학들을 견학하면서 도전을 받게 하려는 안산 고등학교 선생님들의 깊은 생각에 경의를 표합니다. 집사님 가정은 9월에 안산으로 이사를 하실 예정입니다.

조성근, 최양희
드디어 은샘이가 동생을 보았습니다. 그것도 여동생을 보았는데 부모님 곁에서 떨어질 줄 모르던 딱풀, 은샘이가 제법 의젓해져서 잘 놉니다. 아들에 딸까지 얻은 성근 형제는 이제 둘만 더 낳으면 된다고 손가락을 꼽고 있군요. 아무튼 출산하느라 애쓴 자매님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내드리며 아이와 산모가 주님의 은혜로 건강하시길 기도 드립니다.

노재복, 이성경
8월 3일부터 있는 전문인 선교사 수련회에 부부가 함께 참여하였습니다. 두 사람이 이번 수련회를 통해 분명한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찬양의 사람 우리 주찬이는 요즘도 싱글벙글 웃으며 계속 곡목을 바꾸어가면서 주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김용수, 이은경
지난 1학기에는 회인 중학교에 나가 컴퓨터를 가르쳤었는데 7월부터는 대원리 농사일에 전념하기로 했습니다. 은경 자매가 영적 무기력에서 탈출하여 단독자로 하나님의 존전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갈망합니다.

이호성, 나선옥
호성 형제의 새로운 임지가 쉽게 결정이 나지 않는군요. 형제가 너무 유능하다보니 서로 탐을 내나 봅니다. 신우는 지우가 태어나면서 훨씬 성숙한 모습으로 엄마 말씀도 잘 듣고 동생 지우도 잘 본다고 합니다. 여름이라 집이 더워서 힘들텐데 신우 엄니 화이팅!!

경양하, 최미경
이문동 집은 월세로 내놨다고 합니다. 가진자들의 횡포 앞에서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서민의 설움을 절실히 느낍니다. 형제와 자매를 주님께서 위로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주은이가 많이 컸죠 이제는 눈을 마주하며 웃기도 하고 혼자 서기도 합니다.

강동진, 정미진
얼마전 토플 시험을 쳤던 사라 자매의 성적이 나왔습니다. 처음 시험을 보았다는데 589점이라는 좋은 성적을 받았는데, 이건 순전히 주님의 은혜라고 자매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방학을 맞은 유은이와 희원이는 엄마와 떨어져 이곳 대원리에서 물고기도 잡고, 개구리도 잡으면서 신나게 놀고 있습니다.

조성철
온 마을 할머님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 오늘도 젊은 오빠는 온 마을을 누비며 마을 큰 머슴으로 어르신들을 섬깁니다. 엊그제는 여름 버섯을 폐상 했는데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 다른 사람들이 일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너무 잘 섬기더군요. 익산의 영미씨! 나 밤이면 외로워 얼른 시집와여....

장승애
함께 방을 쓰는 사람이 바뀌었다고 하는군요. 전에는 CCC출신 수간호사님이셨는데 이번에는 신참들이라는군요. 그래서 병원 생활도 가르치고 신앙생활도 가르쳐야 하는데 영 중량미달이라 힘들다는군요. 참 자매가 대전에 있는 모 대학 병원에 원서를 냈는데 얼른 오라고 성화랍니다. 자매가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나아가도록 기도해 주세요. 결혼 기도도 계속!!!

박창수
3개월간의 예수원 훈련을 끝내고 드디어 하산했습니다. 생활 한복을 입고 나타난 창수 형제의 눈빛이 유난히 더 맑아 보이더군요. 탈북자들과 조선족을 향한 형제의 긍휼히 여기는 마음과 민족을 향한 형제의 소망 위에 주님의 손길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강영진, 전위권, 김동욱
집 짓는 일이 마무리 된 다음 약속대로 강원도 바닷가로 놀러 갔습니다. 마침 강릉에서 군 목회를 하시는 배목사님이 놀러 오라고 전화가 왔었는데 기회를 놓칠새랴 바로 다음주에 올라갔었는데 신기하게도 놀러간 그날만 비가 오지 않아 다들 인종의 구분이 헷갈릴 정도로 새카맣게 타도록 신나게 놀다가 오셨습니다. 그런데 내려오는 날 비가 내리더라 시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참으로 놀랍더라고 자랑하시더군요.

신승만, 김소영
지금은 분가해서 부모님과 떨어져 살고 있어요. 산달이 얼마 남지 않아 힘들지만 여러분 우리 집에 놀러 오시면 맛있는 것 해 드릴 테니 자주 놀러 오세요. 형제가 다니는 힐튼 호텔 주인이 바뀌어 분위기가 달라지다 보니 적응하느라 힘듭니다. 기도해 주세요.

강동협
8월 말이면 제대하는데 제대하기 전에 결혼을 하고야 말겠다는 야무진 꿈을 품고 초조하게 지 내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 만나고 있는 자매가 한 명 있는데 열심히 탐색전을 펴고 있다나요? 아무튼 주 변 머리 더 없어지기 전에 얼른 좋은 자매와 행복한 가정을 꾸리게 되기를... 강 대위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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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2011-Mar

1999년 8월 보은예수마을 소식지 - 도라지

작성자: bona IP ADRESS: * 조회 수: 4530


 
  보은예수마을 월간 소식지 1999.8. 창간준비2호  
 
doraji.gif <꽃 이야기>

도라지 (platycoclon glaucum Nakai.)

어느 산골 마을에 도라지라는 소녀와 먼 친척 오빠가 살았습니다. 오빠는 공부를 위해 멀리 떠나야 했고, 오빠는 소녀에게 열 손가락을 보이며 10년만 공부하고 돌아온다고 약속하고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오빠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소녀는 오빠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독신으로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 소녀는 백발의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어느날 오빠가 떠났던 바다가 보고싶어서 오빠를 기다리던 뒷산으로 올라가 바다를 바라보며 "오빠! 지금이라도 돌아오셔요. 보고 싶어요." 라고 중얼거렸습니다. 그때 갑자기 등뒤에서 "도라지야."라고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고, 그 소리에 놀란 할머니는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할머니가 숨진 자리에 꽃이 피었고 이 꽃을 '도라지'꽃이라 불렀답니다.

'영원한 사랑'이라는 꽃말을 가진 도라지는 산채(山菜)라 하여 애호하였으며 맛있는 나물로 여겨왔습니다. 높이는 40-100센티미터 정도이고 뿌리가 굵으며 원줄기를 자르면 흰 유액이 나옵니다. 잎은 긴 계란형이고 끝은 뾰족하고 밑 부분이 넓으며 길이는 4-7센티 정도입니다. 꽃은 위를 향하고 꽃받침은 다섯 개로 갈라집니다. 그리고 다섯 개의 수술과 한 개의 암술이 있답니다. 또 10월이면 결실을 맺고, 복통. 지혈. 늑막염. 해소. 거담. 천식. 보익. 편도선염에 다른 약재와 함께 처방하면 좋답니다.

도라지는 식탁에서 뿐 아니라 도라지 타령과 함께 친숙함을 주는 여름의 대표적인 꽃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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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2011-Mar

1999년 8월 보은예수마을 소식지 - 연탄보일러와 사랑

작성자: bona IP ADRESS: * 조회 수: 4778


 
  보은예수마을 월간 소식지 1999.8. 창간준비2호  
   
home_2.gif <공동체 이야기>

연탄 보일러와 사랑


공동체에 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여기 보은에 내려온지도 어느덧 1년이 지나는 듯 합니다. 그러면서 지난 기억을 되살리며 지금의 모습을 비춰봅니다.

작년 4월 8일, 보은읍내에 있는 기와집에서 강 목사님과 첫날밤에 있었던 기억을 더듬어 봅니다. 수년동안 비어있던 집이다 보니 먼저 전화를 신청하고 집안을 정리해야 했습니다. 4월이었지만 날씨가 서늘해서 보일러에 물을 붓고 숯불로 연탄에 불을 지폈죠. 보일러는 너무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것이었고 물을 많이 채워야 방이 따뜻할 것이라 생각하고 붓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지 부어도 부어도 계속 들어가는 것입니다. 연탄은 불이 잘 붙어 달아오르더군요. 물을 한참 붓다가 보니 벽에서 물이 흘러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방바닥에 깔린 보일러에 연결된 파이프가 터진 것을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생각 끝에 방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자기로 하고 매트리스 두 개를 구입했습니다. 그렇게 첫날밤을 자연 물침대에서 보내게 된 것입니다. 춥긴 했지만 매트리스를 깔아서 그런지 편안한 밤을 보낼 수는 있었습니다.

지금 다시 그 때를 생각하니 공동체를 향한 저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좋은 깨달음이 있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방을 근본적으로 따뜻하게 하려면 방바닥을 깨야 한다는 것과 터진 파이프는 새것으로 깔고 다시 방바닥을 메워야 합니다. 그 다음에 물을 붓고 불을 지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생각하면서 정말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시는 깨달음은 무엇일까?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곳에서 문제를 찾을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부분의 잘못된 것을 찾아 해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저에게도 먼저 겉으로 보여지는 부분보다는 내면세계의 질서가 먼저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동체를 함께 세워 감에 있어서도 겉으로 보여지는 사업보다는 공동체 각 지체간의 관계 회복과 사랑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공동체로 모여 살기 위해 이곳 보은에 내려 온지 1년 6개월이 지난 오늘, 다시 한번 다짐해 봅니다.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하나님을 느끼며 호흡하며 살아보자고 ...
공동체 생활을 힘들어하는 아내에게 좋은 남편이 되어보자고 ...
귀여운 아들 동찬이, 딸 다정이에게 좋은 아빠가 되어보자고 ...
함께 공동체를 세워 가는 가족들에게 좋은 지체가 되어보자고 ...

지금도 대원리의 매미와 산새들의 맑은 소리는 대원리 온 하늘로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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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2011-Mar

1999년 8월 보은예수마을 소식지 - 공동체로 사는이유1

작성자: bona IP ADRESS: * 조회 수: 4607


 
  보은예수마을 월간 소식지 1999.8. 창간준비2호  
 
 home_1.gif<공동체로 사는 이유 1 >

공동체를 하겠다고 이곳 대원리로 들어 온지 벌써 일년하고도 반년이 지났다. 소리 소문도 없이 들어온다고 왔지만 알게 모르게 알려지면서 그간 많은 손님들이 이곳을 방문했다. 하지만 이제 막 시작한 것이다 보니 보여줄 것이라고는 거친 산과 밭 그리고 거기에서 자라고 있는 벌레 먹은 푸성귀들과 구릿빛으로 그을린 형제들의 땀흘리며 노동하는 모습뿐이었다. 공동체를 만드는 것은 결코 이상이나 꿈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과의 싸움이었다.

그런데 이런 현실과 싸우는 우리들에게 손님들이 흔히 하는 질문이 한가지 있는데 '왜 공동체로 살려고 하느냐'는 것이었다. 손님들은 가벼운 호기심으로 무심코 던지는 말일지 모르지만 사실 이 질문이야말로 우리들에게는 각자의 인생 항로를 전면수정 하게 한 가장 근원적인 질문이었다. 이곳에 내려와 함께 노동하는 형제들이 다들 남부러워 할만한 직장을 그만두고 한번도 해보지 않은 농사를 지으며 성경이 말씀하시는 공동체를 이루겠다는 결단을 하기까지는 남모르는 고통과 결단의 시간이 있었고 그 고통의 시간에 잠 못 이루며 고민하였던 가장 큰 주제가 바로 '왜 공동체로 살아야 하는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지면을 빌어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공동체로 살아야 하는 이유들과 우리 각자가 지금까지 고민하며 내렸던 해답들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아직 덜 익은 생각들도 많아 더 많은 시간과 고민과 공부가 필요하겠지만 이렇게 정리하면서 또한 우리의 고민들이 농익어 가리라 기대해 본다. 나아가 공동체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장이 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엮어나가고자 한다.

왜 공동체로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 앞에서 먼저 하나님에 대해 우리는 알아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만유 위에 계시며 만물보다 먼저 계신 분으로 모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알파요 오메가가 되신다. 뿐만 아니라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본받으라고 명령하시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것이 신앙의 가장 고귀한 목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에 대해 바른 이해를 가지게 될 때 우리는 왜 공동체로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에 대해 알게된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하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가르침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존재론적인 관점에서만 이해하다 보니 정작 성자 예수님께서 성육신 하신 이후 아버지와 나는 하나라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이 가르침은 무수한 우상의 소굴이었던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기억하고 구원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었다는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다.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하나님은 삼위로 일체가 되신 하나님이시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 그리고 성령 하나님이 계시지만 본질에 있어서 동일하신 분이시다. 이것은 신비이다. 그런데 이 신비에 대해 성 어거스틴은 삼위일체의 관계성으로 하나님의 공동체성을 파악하였다. 어거스틴은 한 분 하나님의 존재 안에는 세 가지 관계성이 있는데 이 관계성은 곧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과의 관계라고 말한다. 그리고 복음주의 신학 협회의 교리 선언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 일체이시고, 각 분은 피조된 인격이 아니시며, 본질적으로 한 분이시며, 능력과 영광이 동등하시다."

우리는 이 선언에서 삼위 하나님은 본질에 있어서 한 분이시며 하나님으로서의 능력과 영광은 동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가령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요단강에 서신 예수님과 하늘에 계신 하나님 그리고 성령으로 예수님 머리 위에 임하시던 성령으로 구분되지만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17:5)라는 예수님의 기도에서 삼위 하나님의 영화로우심이 동일함을 또한 알 수 있다. 초대 교회의 교부였던 터툴리안은 이러한 삼위일체의 신비에 대해 설명하기를 3명의 사람이 한 필지의 토지를 공동 구매하였을 때 그 토지의 소유권과 사용권은 3명에게 동일하다는 법적인 개념을 가지고 삼위 하나님의 동일성을 설명하였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로 계시지만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은 공유하는 거룩한 코이노니아로 존재하시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존재 방식은 하나님의 사역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가령 창조에 있어서도 삼위가 계시면서 함께 동역 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삼위 일체 하나님은 동일한 목적을 위해 함께 동역 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성부 하나님은 창세기 1:1을 통해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분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 그리고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을 마음에 계획하시고 또 그것을 존재하게 하셨다. 만물의 존재의 특성과 기원은 하나님으로 말미암는다.(약1:17 참조) 성령 하나님은 창세기 1:2에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들의 보호자, 감독자로 창조에 참여하신다. 성령 하나님은 하나님의 역사를 거룩하게 하시는 분. 즉 우리들에게 지속적인 하나님의 개입이라는 축복을 주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성자 하나님은 태초에 계신 말씀이시다. 성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을 말씀이신 성자 하나님은 그대로 존재하게 하신다. 말씀은 성부 하나님의 집행자 이시며 수행자로 나타난다.

구원에 있어서도 삼위일체 하나님은 철저히 동역 하신다. 성부 하나님은 성자 하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성령 하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성자 하나님 위에 임하시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도록 도우신다. 그리고 성자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를 지시므로 세상을 향한 거룩한 하나님의 구원을 성취하신다.

이와 같이 삼위일체 하나님은 삼위로 존재하시며 각 위격의 독립성을 가지시지만 또한 능력과 영광에 있어서 일체로 동일성을 가지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존재방식과 함께 동역하시는 모습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들이 이루어야 할 사회와 관계의 모범을 보여주신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공동체의 하나님이시다. 우리 하나님이 공동체의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우리도 공동체로 살아야하는 것이다.

오순절날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경험한 120명의 초대 교회는 이러한 모범에 충실한 공동체였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의 엄연한 차별이 있는 사회에 속한 자들이었음에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되자 그들 안에는 다양성 속에서도 거룩한 일치를 이루게 된다. 그들은 한 분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믿음에서, 한 분 성자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구원의 은총에서, 그리고 동일한 성령으로 충만함을 입음으로 동일성을 소유하게 된다. 이러한 동일성 속에서도 각자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각기 다른 직임과 은사를 가지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경험한 후 성령이 임하시면서 초대교회는 그의 머리되신 예수님 안에서 거룩한 일치와 다양성을 소유하므로 하나님을 닮은 거룩한 사회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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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2011-Mar

1999년 8월 보은예수마을 소식지 - 농활이야기

작성자: bona IP ADRESS: * 조회 수: 4462


 
  보은예수마을 월간 소식지 1999.8. 창간준비2호  
  an_grandfa.gif<IVF 농활이야기>

작년 여름부터 시작하여 가을,봄 농활에 이어 올 여름 농활까지 부지런히 마을을 방문하는 IVFer들의 모습에 이제는 마을 어르신들도 친근한 눈빛과 말씀들로 사랑을 표시하십니다. 올해는 150여명의 점은 일꾼들이 보은으로 내려왔는데 대원리에는 30명이 왔었습니다. 여름이 농한기인데다 마을이 워낙 작다보니 정작 하고 싶었던 농사일은 마음껏 하지는 못했지만 마을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일하고,풍물패를 앞세워 함께 놀면서 우리는 마을 어르신들의 마음이 열리고 그 열린 문으로 복음이 흘러 들어가는 것을 목도할 수 있었습니다.

... 사람이 되셨던 하나님 갈릴리 소외된 사람들을 만나시던 예수님의 모습을 묵상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섬김의 도가 무엇인지 사람들과 더불어 배웠고 개인적인 비젼을 발견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습니다.(연세 '95 박광호)

... 무기력증과 게으름이 극심한 성격이라 일이 부담스러웠는데... 대원리 주민들의 모습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노동 그 자체가 너무 기쁘고 고귀한 것임을 알려 주셨다.(이대 '98 장유리)

싸랑해요 대워리 주민 여러분 !!! 또 오면 모른 척 하지 마세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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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2011-Mar

1999년 8월 보은예수마을 소식지 - 도시의 영성

작성자: bona IP ADRESS: * 조회 수: 4398


 
  보은예수마을 월간 소식지 1999.8. 창간준비2호  
 
<도시의 영성>

성경이 기록된 시대가 농경 사회였다고 하지만 성경에는 많은 도시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등장하는 도시들은 거의 예외 없이 멸망의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요나의 선교지였 던 '저 큰 성 니느웨'(욘1:2)나 노아의 후손들이 세웠던 '바벨탑'(창11:9)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최초의 도시는 어디였을까요? 그것은 가인이 범죄 한 후 여호와 앞을 떠나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며 자기 아들의 이름을 따서 만든 성 에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에녹은 자연 발생적으로 만들어진 농경 부락이 아니라 사람의 의도에 의해서 설계되고 만들어졌으며, 성을 쌓아 외부의 침입을 막고 도시의 경계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가히 도시라고 부를 수 있는 최초의 곳입니다.
그런데 이 에녹은 몇 가지 점에서 지극히 불신앙적이면서도 인간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인이 범죄 한 후에 자신의 죄가 하나님 앞에 드러나고 죄책감으로 괴로워하자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표를 주셔서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당치 않게 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을 떠난 가인은 이러한 하나님의 보호의 표, 용서의 표를 믿지 못하고 하나님의 손이 아닌 자신의 손으로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을 보호하려는 보호본능으로 에녹성을 쌓았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초의 도시 에녹은 하나님의 도움과 보호를 거부하는 불신앙의 표현이었고, 하나님 없이 인간의 의지와 노력으로 살아가려는 인본주의의 표출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에녹을 형성하던 불신앙적인 영성은 역사를 흘러오면서 일반적인 도시들이 갖는 보편적 영성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 등장하는 도시들은 늘 멸망의 대상으로 표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을 괴롭히던 니느웨는 그 악독이 하나님 앞에 상달되었으며(욘1:2),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포로로 잡혀갈 때 바벨론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전 기구를 노획물로 가져가 보관한 장소 였던 시날(단1:2)은 바벨론의 도시 중의 하나였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바로 시날에서 난 아름다운 외투 한 벌이 아간의 마음을 빼앗아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땅 가나안으로 나아가던 이스라엘이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하게 만듭니다.(수7:21)

뿐만 아니라 당대 최고의 문화를 향유하던 바벨론은 음녀로 낙인찍혀 영원한 심판의 불이 타오를 것이라고 선지자들은 예언합니다. 온 땅에 물이 넉넉하고 하나님의 동산 같았던 소돔과 고모라성은 결국 유황과 불의 심판 앞에 멸망하고 맙니다.(창19:24,25) 그렇다면 예루살렘은 어떤가요. 예루살렘은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시였으며, 하나님의 성전이 있던 성이었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 역시 인간이 만든 도시라는 점에서 예외가 없었습니다. 거룩한 성전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아니라 인간의 탐욕과 불신으로 불타오르자, 예루살렘도 황무한 땅이 되고 맙니다.

이처럼 성경은 인위적인 도시를 철저하게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태초의 땅 에덴으로 회귀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하지만 이것도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성경은 어디에서도 우리에게 에덴으로 돌아갈 것을 권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지시하는 곳은 새 예루살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목자의 땅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선한 것이 날 수 없는 황량한 땅 나사렛에서 자라나셨고, 흑암에 앉은 백성들이 신음하던 갈릴리에서 사역을 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이 장차 왕으로 임하시어 다스릴 곳은 새 예루살렘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발길은 갈릴리 농촌에서 새 예루살렘이라는 도시로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은 인위적인 곳이 아니라는 점에서 예루살렘이나 다른 도시들과는 다릅니다. 그곳은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이며, 완전한 지혜와 사랑으로 이루어진 나라입니다. 하나님이 그곳에 계시기에 더 이상 '하나님을 알라'라는 말이 필요 없는 곳이 새 예루살렘이지요. 뿐만 아니라 새 예루살렘은 인간들이 스스로를 위해 다시 울 필요가 없고, 죽음이나 곡함이나 병드는 일이 더 이상 없기에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성을 쌓을 필요가 없는 곳입니다.(계21:1-4)

결국 성경의 역사는 농촌에서 도시로, 광야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거룩한 성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인본주의를 넘어 신본주의로, 불신을 넘어 믿음과 사랑의 땅으로 하나님의 역사는 흘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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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Mar

1999년 8월 보은예수마을 소식지 -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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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은예수마을 월간 소식지 1999.8. 창간준비2호  
 
<시>

아름다운 청년, 윤
- 서 림

끊임없이 싸우고 있네,
학처럼 길고 부드러운 그가 정말
지치지 않고 독수리처럼 싸우고 있네,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그의 내면
깊은 산 계곡처럼 살아 움직이네,
그의 얼굴, 계곡에 흐르는 가을 물처럼
맑게 찰랑찰랑 하네,
싸움에 지지 않으려고 끈질기게 기도하네,
밥 먹다가 강의 듣다가도 기도하네,
기도 막혀 가끔 그가 지치면
어항속 열목어들 법칙처럼 시들시들하네,
열목어 옆 벤자민도 축축 늘어지네,
벤자민 밑 어머니도 따라 골골거리네,
비싼 옷 일부러 사지 않는 그가
잘 빨아 입은 남방 같은 그가
지나가는 쪼글쪼글한 노인에게
용기내어 붕어빵 한 봉지 사주면,
도라지, 고사리 파는 좌판 노인에게
쑥스럽게 국화 한 다발 건네주면,
국화향기보다 더 깊은 그의 냄새만큼
이 동네 공기가 퐁퐁 부풀어 오르네,
공기속을 아이들이 퐁퐁 튀어 달리고
그 옆 지친 더러운 플라타너스도
발끝에 힘주어 물을 빨아 올리네,
플라타너스 밑 불쌍한 애완용 강아지도
반짝반짝 모처럼 털에 빛이 나네,
하늘 쳐다보며 속 깊이 감사하면
그의 눈빛 가을 하늘보다 깊어지고
멀리 떠나온 집의 공기도 살아나네,
열목어, 벤자민, 어머니도 파닥거리네,
내면에선 독수리 날개치며 싸우는데
그의 이마 학의 알처럼 빛나네.



최승호 1956년 경북 청도 출생
시인, 대구대학교 교수(국어교육학과) 서울 성광감리교회 집사
시집 「이서국으로 들어가다」,「유토피아 없이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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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Mar

1999년 8월 보은예수마을 소식지 - 보은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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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은예수마을 월간 소식지 1999.8. 창간준비2호  
 
<보은서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마14:19,20)


초봄에 씨를 뿌린 후 순한 봄바람과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곡식들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고 열매를 맺을 무렵이면 어김없이 무섭고도 심한 비바람이 불어와 곡식들을 뿌리째 흔들어 버립니다. 하지만 모진 비바람 속에서도 용케 버티고 살아남은 것은 마침내 가을의 풍성한 결실로 농부의 마음을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 비바람이 없다면야 더할 나위 없겠지만 오히려 비바람이 있기에 가을의 결실은 더욱 값지고 소중한 것으로 다가오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때로는 우리의 연약함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주님께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도 같은 고통의 심연 속으로 친히 우리를 인도하시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고통을 통하여 우리의 연약한 믿음의 뿌리들과 사랑의 줄기들이 더욱 강하고 단단해지도록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또 다른 은혜임을 깨닫게 됩니다. 고통을 통한 성숙, 고난을 통한 열매는 마침내 많은 이들을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 가득히 남을 거룩한 열매로 농부이신 주님의 손에 드려지게 되는 것이지요.

칠월의 하루하루는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한 나날들이었습니다. 초순에는 두란노 바이블 칼리지 팀이 내려와 이곳 보은의 목회자들과 사모님들 그리고 교회 지도자들을 위한 세미나를 개최하였습니다. 첫날에는 홍보가 제대로 안돼서 좀 어려움이 있었지만 둘째 날부터는 소문이 나면서 보은의 거의 대부분의 교회 목회자들과 사모님들이 참여하셨고 참여하신 분들마다 도전과 회복의 시간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사실 농촌 목회자들이 농촌에서 목회를 하시면서 겪는 고통 중의 하나가 도시에 비해서 재교육의 기회가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거리도 멀고 재정도 넉넉하지가 못하니 도회지에서 사흘이 멀다하고 열리는 각종 세미나들이 이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이와 같은 두란노의 세미나 사역은 이들에게 위로요 은혜요 하나님의 격려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칠월 하순에는 서울지역 IVF 학생들 150여명이 대원리를 비롯한 4개 마을로 들어와 농활을 하였습 니다. 학생들은 피사리에 잡초제거, 호별 방문과 마을 청소에 이르기까지 자기 일처럼 땀흘리며 늦은 밤까지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시던 마을 어르신들은 남의 집 귀한 자식들에게 험한 일시킨다고 안쓰러워 하시면서도 얼마나 흐뭇해 하시든지 마지막날 저녁 마을 잔치를 하는 날에는 온 마을 주민들이 다 모여 풍물패 소리에 맞추어 강강수월래를 하면서 신명나게 놀았습니다. 늦은 밤까지 장구소리와 꽹과리 소리가 온 마을에 울려 퍼졌고 잔치가 다 끝날 무렵에는 다 함께 하나님께 감사의 박수를 올려 드렸습니다. 그리고 8월 초순인 이번 주에는 고려대학교 의대 기독학생회가 산외면 전 주민들을 대상으로 무료 진료를 실시하고 있는 중입니다. 화요일에 도착하여 수요일에는 호별 방문으로 기초 검진을 실시하고 오늘과 내일은 서울에서 선생님들이 내려오셔서 진료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젊은 날에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잃어버린 주님의 양들을 찾고 어려운 이웃들을 섬기는 일을 위해 땀흘리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주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며 그분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이곳 대원리로 들어오면서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것 중의 하나가 약 3년 동안은 교회를 세우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전도를 3년간 보류하겠다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학생들도 작년과 올해 마을에 와서 열심히 일은 했지만 전도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성경에 나타난 우리 주님의 모습을 닮아보려는 취지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3년간 사역을 하시고 하늘로 돌아가신 단기 선교사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3년을 위해 30년을 사람으로 사람들과 더불어 사시면서 갈릴리에서 준비하십니다. 목수라는 전문적인 직업을 가지시고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30년은 못하더라도 한 3년은 말로 전도하지 말고 그냥 이들과 더불어 먼저 살아보리라 마음먹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때가 오면 이곳 보은에도 주님의 말씀이 흥왕케 되고, 주님의 의로운 해가 떠오르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그 날이 오면 주를 알지 못하던 자들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주님께 감사치도 않던 이들이 주님을 찬양하며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불신과 사망이 가득 찬 속리산 골짝 골짝에서 우리 주님을 찬양하며 그분의 이름을 높여드리는 소리가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그 거룩한 꿈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삶이, 우리 공동체의 모든 모습들이 주님의 손에 올려진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처럼 주님의 거룩한 생명의 도구로, 사랑의 도구로 쓰임 받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주후 1999. 8. 5 오후에
무익한 종 강동진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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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Mar

1999년 7월 보은예수마을 소식지 - 공동체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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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은예수마을 월간 소식지 1999.7. 창간준비1호  
 


<공동체소식> nutari.gif

버섯 이야기
지금 재배하는 버섯은 여름 느타리인데, 일명 '사주카'라는 품종입니다. 수확량이 많아서 일손이 부족할 때도 있었지만, 요즘은 전보다 한가해졌습니다. 그런데 그 값도 아래위 큰 폭으로 춤을 추기 때문에 여간 골칫거리가 아니기도 합니다. 공동체의 한 형제는 잠을 자면서도 버섯이 빵긋거린답니다. 버섯 귀신 물럿거라!

집 이야기
집이 하나님의 돌보심 가운데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내부 보일러 시공 작업과 외부 벽작업(일명, 사이딩 작업)을 마치고 내부 미관 공사를 하고 있답니다. 처음엔 될까 싶었던 집이 이젠 꽤 멋스러운 집으로 변신하고 있습니다. 목조주택에 잔손이 많이 간다고 들었는데, 정말이더군요. 그런데, 일하시던 한 형제가 작업 도중 타카못이 무릎에 박히는 사고가 났었습니다. 급하게 입원했는데 다행히 별 탈없이 며칠 누웠다가 퇴원했답니다. 아무쪼록 건축일 하시는 분들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또 좋은 일은 우리 팀에게 건축을 위탁하려는 몇 분이 계십니다. 그 일들이 잘 되었으면 좋겠네요.

대원리 방문이 있었습니다.
서울 DTS팀이 6월 12∼15일까지 현장학습으로 다녀갔습니다. 버섯일과 건축 일을 도와 주셔서 대원리 식구들은 무척 고마워 했답니다. 오신 분들 모두 주안에서 승리하시기를...

여름 사역
두란노팀의 보은지역 집회가 확정되었습니다. 7월 5∼8일까지 약 30명의 두란노 사역팀이 내려와서 보은지역의 목회자, 사모, 남성 중직들을 위한 세미나를 개최합니다. 이를 위해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IVF형제 자매들이 7월 19 - 24일까지 대원리로 농활을 오십니다.


지금까지 저희 공동체를 위해 도와주시고 기도해 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다음 호부터는 후원회 고정란을 두어 함께 삶을 나눴으면 합니다. 많은 관심과 기도 부탁 드립니다.
그리고 소식지는 저희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홈페이지 주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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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Mar

1999년 7월 보은예수마을 소식지 - 꽃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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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은예수마을 월간 소식지 1999.7. 창간준비1호  
 


1.gif <꽃 이야기>

털중나리(백합과;Lilium amambile PALIBIN) ♣
산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도중에 활짝 웃는 얼굴로 저를 유혹하는 꽃이 있었습니다. 털중나리더군요. 얼마나 예쁜지...

이 꽃은 털중나리, 털중나리 조선백합, 대백합이라고도 불리워집니다. 여러해살이풀로 주로 남부, 중부, 북부지방의 산지에서 자생하고, 6-8월에 황적색의 예쁜 꽃을 피우고 8월에 열매가 성숙되고 10월에 삭과(削科)합니다. 그리고 가지는 윗 부분이 약간 갈라지고 전체에 잔털이 있으며, 비늘줄기는 길이가 2.5-4cm입니다. 잎은 지름이 1.5-2.5cm이며 잎의 전체 모양은 달걀꼴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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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Mar

1999년 7월 보은예수마을 소식지 - 가족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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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은예수마을 월간 소식지 1999.7. 창간준비1호 <<<공동체자료실로 <<<이전소식 <<<다음소식
 


 daewonri.gif 

<가족소식>

권영제, 이재진 가족
안산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처음에는 적응하느라고 애를 쓰던(살까지 막 찌던) 희정이가 이제는 잘 적응하여 훌륭하게 학교 생활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슬러리 디칸다(폐수 전화기계)를 대만에 수출하는 일로 요즘 권집사님이 분주하십니다. 회사 직원들 사이의 관계 가운데 주님의 손길이 함께 하시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조성근, 최양희 가족
양희 자매의 출산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7월 중순에서 말 사이) 우리의 얄개 은샘이가 엄마를 가끔 괴롭힙니다. 남편은 대원리에, 아내와 아이는 천안에 거하는 이 시간들을 얼른 끝내기 위해서라도 집이 빨리 지어져야 하는데...성근 형제는 박사 과정 학기말 시험을 용감하게(?) 끝을 내고 이제는 농사일에만 전념할 수 있는 방학이라고 좋아하고 있군요...일이 그렇게도 조은감?(둘째아들 이름 예정)

노재복, 이성경 가족
온누리 교회 선교훈련을 통해 꼭 들어야 했던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좋은 만남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선교지를 향한 주님의 출발 사인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특별히 성경 자매의 어깨 통증을 위해 기도해 주시고, 하나님의 돌보심이 있기를---

김용수, 이은경 가족
지난 1학기에는 회인 중학교에 나가면서 컴퓨터를 가르쳤었는데, 7월부터는 컴퓨터에 대한 사역을 일시 접어두고 대원리 농사일에 전념하기로 했습니다. 은경 자매가 영적 무기력에서 탈출하여 단독자로 하나님의 존전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갈망합니다.

이호성, 나선옥 가족
호성 형제의 발령이 곧 날 것 같습니다. 이번 기회에 청주로 발령이 나서 공동체로 합류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신우는 군산 외갓집에 가고, 지우가 더 온순해진 까닭에 아이를 기르는 어려움에서 자매가 조금 쉼을 얻고 있습니다.

경양하, 최미경 가족
이문동 전셋집 문제가 난항을 겪고 있어 이제는 아예 마음을 비운 상태입니다. 안산의 피자 몰은 콜라 파동의 여파로 매출액이 영 바닥에서 헤매고 있구요. 자매의 금식과 기도가 주님께 상달되기를... 주님께서 도와주세요.

강동진, 정미진 가족
학교에 안가겠다고 억지를 부리던 유은이가 학교를 잘 다니고 있습니다. 희원이는 요즘도 잠에서 깰 때면 떼를 쓰지만... 지난번에 본 영어 시험 결과에 영 자신이 없어하는 미진자매에게 주님께서 언어의 지혜와 능력을 주시기를... 그리고 유은이가 하나님을 체험하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조성철 형제
버섯이 잘 나와도 걱정, 안나와도 걱정인 버섯맨! 아무래도 가을에는 익산에 있는 영미 자매와 혼인을 올려야 할 것 같다고 심각하게 고민중입니다. 빨리 결혼해서 아내가 해주는 밥을 먹어야 살이 찌겠지요.

장승애 자매
병원(청주 성모병원)에 근무하랴, 방송통신대학에서 공부하랴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예배에 잘 참석하지 못하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이번 여름에는 나두 결혼하고 싶어∼요∼.

박창수 형제
예수원에서 훈련받고 있는 중인데, 드디어 7월이면 훈련도 끝나고...여러분, 보고 싶어요.

강영진, 전위권, 김동욱 목조주택 팀
끝이 날 것 같지 않던 집짓는 일, 도면도 없이, 시방서도 없이 시작한 일이 거의 끝나가던 중 동욱 형제가 약간의 부상을 당했습니다. 무릎에 타카못이 박히는 사고였는데, 다행히 병원에서 못 빼고 며칠 치료 후에 퇴원하였습니다. 이 집 다 지어진 후에 다음 집을 짓기 원합니다. 지금 몇 분이 집 지어주기를 원하고 있는데, 다른 분들도 나무집 짓고 싶으시면 연락 주세요. 저렴한 비용과 성실 시공, 튼튼함과 내구성은 말 할 것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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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Mar

1999년 7월 보은예수마을 소식지 - 공동체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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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은예수마을 월간 소식지 1999.7. 창간준비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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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이야기> 공동체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

이스라엘 유학 시절, 그 유명한 키부츠 공동체를 약 반 년 정도 경험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4년이 넘게 그 유명한 유대인들을 경험하면서 그들과 선의의 경쟁도 해보았습니다. 저는 스스로가 평범하다고 생각했지만, 머리 똑똑한 그들에게 지지는 않았습니다(웬 교만?). 하지만 가끔씩 너무 똑똑한 이스라엘인을 대할 때면 내 자신의 실력에 대한 막연한 한계를 느낀적도 있었는데, 저는 그러한 상대를 경험하면서 나의 교육의 근본 방향이 잘못되었음을 깊이 깨닫기도 하였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시작되는 유대인의 교육방향은 나의 것과는 확실히 달랐으며, 그 내용은 두말할 나위가 없이 훌륭스러웠습니다.

우리나라와 같은 시기에 정부가 세워지고 발전해 왔지만, 현재 세계를 이끌고 있는 인재들의 대부분이 유대인이라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겐 우리와 틀린 것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됩니다. 특히 그들 중에서도 뛰어난 사람들의 대부분이 유아기부터 성경을 배우고 외우고 실천하며 성장한 사람들이며, 그 기초가 하나님의 말씀을 반석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게 되었을 때의 한탄스러움이란... 제 스스로가 그리스도인이라면서 이 쉽고도 쉬운 사실을 소홀히 했음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를 깨닫고 저의 다음 세대에게는 나와같이 그 기회를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현재의 우리 나라 교육과는 다른 하나님 중심의 참된 인성 교육을 시키고 싶었기에, 한 알의 밀알이 되고자 이 공동체에 과감히 뛰어든 것입니다.

우리 공동체는 지금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힘들고 절망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활기넘치는 꿈이 있습니다. 건전한 토지 공동체의 조성, 대안학교, 농업 기술학교, 선교와 구제 등등의 밝은 미래가 있기에 지금은 묵묵히 내 자신을 한 줌 거름으로 썩히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저를 비웃고 미쳤다고 할 것입니다. 부모님도 동네에서 부끄러워 이야기도 못 내놓고, 물어보면 여긴 거북스러우신가 봅니다. 하지만 자명한 사실은, 썩어지는 거름이 있기에 건강하고 풍성한 결실이 맺힌다는 것입니다.

농부들은 쉽게 수확하려고 화학비료며 제초제 그리고 농약을 마구 쓰고 있습니다. 결국에 이런 인스턴트식 행위들이 경작의 근본인 토양을 망가뜨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의 교육 행태와 똑같습니다. 모두들 규격에 맞는 엘리트로 만들려고 난리를 치고 있으니... 그리하여 우리의 자녀들은 정서적으로 건강하지도 풍성하지도 못하며, 이처럼 시들시들한 꿈나무들의 열매를 먹는 이 사회와 민족 또한 결코 건강할 수가 없습니다. 인물은 결코 문화적 중앙지대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언제나 역사의 획을 그었던 사람들은 주변부의, 변두리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저의 후손에게 먼저 흙과 나무와 돌과 생명들을 체험시키고, 이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가르치고 싶습니다. 앞으로 세 살인 아들(조은샘)과 곧 나올 딸(조은솔?)을 생각할 때마다 나의 의지는 더욱 불타오릅니다.

요사이 우리의 얄개 은샘이는 동생을 보려고 그러는지 무척이나 엄마를 괴롭히고 있답니다. 그 한 방법이 이상한 굼식 투쟁입니다. 밥은 도통 먹지 않고 다른 군것질만 하려고 듭니다. 어제는 "엄마, 전화 걸어! 나아, 짜장며언 먹을래애..." 마음 약한 제 아내는 전화를 걸고 말았답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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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Mar

1999년 7월 보은예수마을 소식지 - 예수님과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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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은예수마을 월간 소식지 1999.7. 창간준비1호  
 
<예수님과 돈> 복음서가 말하는 '예수님과 재물'

공동체 신학 공동체는 공동체 신학이 있어야 합니다. 소위 말하는 까다롭고 딱딱한 의미의 신학이 아닌, 실제적인 신학 말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더불어 살아갈 때에 야기되는 많은 일들을 적절히 해소해 나가려면, 그리고 세상에 대하여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변증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히 입각한 공동체 신학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공동체 신학은 주로 쓰임새 있는 공동체 관련 책자들의 내용을 소개하거나, 공동체 지체들, 혹은 공동체에 관련된 사람들의 글을 통하여 계속해서 성수시켜 나가고자 합니다. 먼저, 이번 호에는 공동체 대표이신 강동진 목사님의 글을 게재합니다.


유사 이래로 재물은 사람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사무치게 하는 영향력이 있어 왔습니다. 그것은 주로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세상 자체의 탈선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이처럼, 재물이 정당하게 쓰임받지 못할 때, 그것은 사탄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는 사실을 많은 영성가들은 지적해왔습니다. 이에 우리는 '돈'으로 대표되는 재물의 문제에 대한 예수님의 입장과 가르침을 살펴보면서, 성경적인 경제 윤리의 뿌리가 무엇이며,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경제 윤리가 오늘을 사는 현대인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탐구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의 말씀들과 행적들을 살피면서 물질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다.

이 사상은 예수님의 세계관의 중요한 일부였습니다. 구약의 전통을 이어받은 예수님은 이 세상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음을 믿고 선포하셨습니다. 공중의 새도, 들의 백합화도 하나님의 공급하심에 의해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마6:26,28).여기에 인간도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생명 자체도 하나님께로 말미암을 뿐 아니라, 이 지상에서 영위되는 인간의 삶도 역시 하나님의 공급하심에 의존하기 마련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의존적인 인간에 대하여 하나님은 무엇이 그들에게 필요한지를 아시며, 또한 그것을 공급해 주시기를 즐기십니다(마6:32-33).

주님에게서 인간을 청지기로 보는 사고는 특히 누가복음 안에 있는 비유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불의한 종의 비유'(눅16:1-9)와 그것에 덧붙여진 말씀들(눅16:10-13)이 그 예입니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12절의 말씀입니다.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이 말씀에는 '남의 것'과 '너희의 것'이 대조되어 있습니다. 무엇이 남의 것이고 무엇이 내 것인가? 앞뒤의 맥락에 비추어 보면 이 지상에서 가지는 것은 모두 남의 것이며, 하늘의 보화가 진정한 나의 소유가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지상의 재물은 누구의 것입니까? 비유에 비추어 본다면 그것은 주인, 즉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정한 기간 동안에 인간에게 맡겨 준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을 엿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본문은 '세금에 대한 질문'(마22:15-22, 막12:13-17, 눅20:20-26)입니다. 이 이야기의 초점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는 마지막의 선포에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정치적인 영역과 종교적인 영역은 결코 분리될 수 없었습니다. 이 세상을 황제가 다스리는 영역과 하나님이 다스리는 영역으로 나눈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있습니다. 모든 유대인의 바램은 하루 속히 로마의 철권이 깨어지고 하나님의 다스림이 회복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림과 황제의 다스림이 결코 병행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황제에게 속한 것이라고는 있을 수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가이사의 것'이라는 말은 '가이사가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되어져야 합니다. 가이사가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실제로는 그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대답은 피상적으로 질문하는 사람들이 펴놓은 올무를 피하면서, 내용적으로는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힌 매우 외교적인 표현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 대답에서 예수님이 의도한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요? 즉 '가이사가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가이사에게 주어라. 그러나 정말 가이사의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 아닌가? 가이사 조차도? 그러니 (모든) 하나님의 것을 (온전히) 하나님에게 돌리라.' 이렇게 본다면 이 말씀은 정교분리와는 전혀 다른 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이사의 것이 있다는 착각을 암시적으로 부인하면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사고에 있어서는 하나님의 소유가 아닌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에 의해 맡겨진 것이라는 예수님의 사상은 물질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달란트, 므나의 비유'(마25:14-30, 눅19:11-27)에서처럼 주어진 사명에 적용되기도 하며, '포도원의 소작인 비유'(마21:33-6, 막12:1-12, 눅20:9-19)에서처럼 하나님의 선택과 그 책임에 적용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생각에 있어서 인간의 모든 영역, 곧 그의 생명, 사명, 물질 등 모든 것은 예외없이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이것을 누가는 '청지기(Oikonomos)라는 특별한 용어를 사용하여 더욱 명료하게 표현하였던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왔다면 인간의 마땅한 태도는 당연히 선한 관리인의 태도일 것입니다. 인자가 도래하기 이전까지 인간이 선한 관리인으로 성실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은 복음서 도처에서 발견되는 생각입니다. 이로써 앞에서 지적한 비유들의 초점은 신실한 관리에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사명이든, 재물이든, 생명이든간에 주인이 되찾을 때까지 신실하게 관리하는 것이 인간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2. 재물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

그렇다면 모든 것이 하나님이 맡겨주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재물을 어떻게 대해야 하겠습니까? 이 문제에 대하여 예수님은 어떤 가르침을 주셨는지를 알아보도록 합시다.

1) 예수님이 그의 지상 사역 동안 가난한 사람들과 연대하셨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당시의 사회, 경제적인 상황과 종교적인 상황은 서로 맞물려서,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스스로 죄인으로 생각하도록 몰아 세웠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물질적인 가난이 그들로 하여금 종교적인 의무를 수행하지 못하도록 하였기 때문입니다(예를 들어, 정기적인 희생제물을 드리지 못하는 등). 그래서 그들은 '가난한 심령', 즉 죄책감을 가지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대하여 더 간절히 바랄 수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축복은 바로 이와 같은 가난한 자들에게 먼저 임할 것이라고 선포하셨고, 이러한 예수님의 하나님나라 복음에 대하여 가난한 사람들은 훨씬 더 열렬히 응답하였던 것입니다.

2) 예수님은 가난한 삶을 사셨습니다. 그가 마지막 남긴 것은 겉옷 뿐이었고 그것마저도 숨지시기 전에 남의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마27:35, 눅23:25).

3) 예수님께서는 재물에 대한 전적인 포기를 자주 가르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도 가난한 삶을 요청하셨습니다.

4) 재산에 대한 포기의 요청과 함께 자주 지적되는 것은 부의 위험성입니다. 부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는 이미 구약 성경에서부터 자주 등장하는 주제였습니다. 이 주제는 특히 예언서에서 자주 나타납니다(사1:22-23, 3:14-16, 58:6-7, 암2:6-7, 4:1, 5:10-12).
예언자들은 불의한 부의 축적, 부의 이기적인 사용, 부에서 기인되는 교만, 부로부터 초래되는 타락 등을 문제삼았던 것입니다.

'두 주인에 대한 비유'(마6:24, 눅16:13)에서 주님은 하나님과 맘몬을 겸하여 섬길 수가 없다고 하셨는데, 여기서 맘몬은 돈, 재산 등을 가리키는 말로서 어원으로 보면 '믿는다'는 말과 관계가 있습니다. 즉 맘몬을 섬기는 것은 종교적인 충성을 요청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전인격적인 신뢰를 요청하는데, 그것은 오직 하나의 대상만을 향해야 합니다. 그 믿음을 맘몬과 하나님 양자에게 함께 둘 수 없는 것입니다. 어느 하나만을 선택해야 합니다. 어리석은 부자처럼 많은 사람들은 맘몬에게 참된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믿고 섬깁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맘몬을 향한 믿음은 속임을 당하는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참된 생명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물질적인 부는 이렇듯 인간을 노예화시키고 헛된 희망을 가지게 합니다. 하나님께 가야할 믿음과 복종을 가로채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의 위험성입니다. 뿐만 아니라, 부는 인간을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눅6:24)라고 선언하십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눅16:19-31)에서 예수님께서 지적하시는 또 하나의 부에 대한 경고는 부자가 거지인 나사로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은 호의호식하면서 지냈습니다. 부를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사용했다는 데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5) 예수님은 금욕주의자도 아니셨고 금욕주의를 가르치지도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일행은 가룟 유다가 관리하는 얼마 정도의 재산을 갖고 있었으며, 예수님께서는 부자들의 초청에도 기꺼이 응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은 돈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예수님의 말씀속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의 근거들 몇 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다스림 아래에서 삽니다.
에 대한 집착은 따라서 예수님의 복음에 대한 불신의 증거입니다.

둘째,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을 하나님이 맡기신 것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대하여 청지기입니다.

셋째, 그리스도인은 재물을 절대화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칫 경제를 절대화하기 쉬운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기독교인들은 '이방인'입니다.

넷째, 그리스도인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책임을 외면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차적인 관심을 저버리는 일입니다.

다섯째,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전념하거나 그것을 지원할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질은 이 과정을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물질로 부터의 자유함은 영적인 평안과 깊이를 더해준다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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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7월 보은예수마을 소식지 - 그 누구도 외딴섬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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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은예수마을 월간 소식지 1999.7. 창간준비1호  
 
<시> 그 누구도 외딴섬이 아니다

그 누구도 외딴섬이 아니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자신이 외딴섬이라서 시를 쓴다.
피할 수 없는 외딴섬이라서,
그 속의 심연 때문에 글을 쓴다.
심연이 내지르는 비릿한 검은 절규,
외딴섬이 부르짖는 그의 시는
여전히 무채색이다.
그 누구도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아무도 외딴섬이 아니다.

전에는 내가 여전히 외딴섬이었을 때
스스로 외딴섬이 아니려고
대륙에 붙어 보려고
안간힘으로 글을 썼다.
비린내 나는 시를.

그 누구도 외딴섬이 아니다.

전에는 내가 티끌처럼 날려가버리지 않으려고 매달려보려고
발버둥치며 글을 썼다.
우울하게 몸속 기름을 태웠다.
내가 존재하기 위해
눈먼 말들을 덧없이 토해냈다.
미치지 않으려고 미친 듯 발악했다.

그제나 이제나 여전히
그 누구도 외딴섬이 아니다.

이제는 내가 존재하므로 글을 쓴다.
내가 우주보다도 귀하기에 글을 쓴다.
더 이상 외딴섬이 아니기에
대륙의 중심부에 붙어있기에 쓴다.
안간힘으로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중심의 팔이 나를 붙잡아 주기에 글을 쓴다.
그 누구도 뗄 수 없는
그 팔의 힘 때문에 쓴다.

그 누구도 외딴섬이 아니다.

티끌조차도 꿈이 있고
지렁이와 개미까지도
하나 되고자 하는 꿈이 있기에
글을 쓴다.
여전히 이제나 저제나
그 누구도 그 무엇도
포기되지 않았기에
글을 쓴다.



*하덕규의 노래 「누구도 외딴섬이 아니다」에서 인용.

서림 최승호 1956년 경북 청도 출생
시인, 대구대학교 교수(국어교육학과) 서울 성광감리교회 집사
시집 「이서국으로 들어가다」,「유토피아 없이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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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7월 보은예수마을 소식지 - 보은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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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은예수마을 월간 소식지 1999.7. 창간준비1호  
 
<보은서신>

백지 위에 그려지는 그림들


망초가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유월 하늘 아래로 바람을 따라 감꽃이 흩날리고, 봄에 뿌린 농부의 땀방울은 푸르른 푸성귀들로 자라나고 있습니다. 어우러진 비 갠 하늘엔 영롱한 별빛과 계곡을 지나는 맑은 물이 벌써 여름을 향해 흐르고 있습니다. 무엇하나 머물지 않고, 누구하나 지체하지 않고, 각기 주님이 허락하신 제 길을 따라 하염없이 흐르면서도 순간 순간의 모습들은 본디를 창조하신 주님을 찬양하며 주님의 위대하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소리지르지 않아도, 꾸미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의 각기 제 모습들이 곧 주를 향한 찬양이고 노래인 것을 보며, 인생의 자랑이 무엇이며 인생의 영화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더불어, 미물로 여겨지며 하찮게 여기던 저 작은 풀벌레들에게서, 말없이 바람에 흩날리는 이름 없는 들풀들에게서 하나님의 섭리에 순응하는 순종의 아름다운 자세와 덕을 배웁니다.


이곳 낯선 대원리를 서성거리기 시작한지 벌써 1년하고도 6개월이 지났군요. 거할 곳도 없어서 매일처럼 차를 타고 들락거리며 조심스러워하던 시간도 지나고, 이제는 스스럼없이 마을 어르신들과 농담도 주고받고, 마주칠 때마다 환한 웃음으로 서로를 반가워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십 수년을 묵혀 두었던 밭들을 빌려 고구마와 콩을 심었던 작년, 그 밭에다가 올해에는 갖은 푸성귀를 심어 끼니를 도움 받고, 10년을 임대해서 버섯사를 만든 곳에서는 느타리버섯들이 잘 자라며 공동체의 중요한 수입원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지난 3월부터 시작한 집 짓는 일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어, 얼마 안 있으면 입주 예배를 드리게 될 것 같습니다. 아파트 모델 하우스를 철거하며 나오는 나무들을 싼값이 사다가 집을 짓기 시작했죠. 귀동냥, 눈 동냥으로 설계도면도 얻고, 집 짓는 방법들도 직접 책을 보고 공부를 해가며 손수 짓기 시작한데다, 예산을 가지고 시작한 일도 아니어서 시공 기간은 예상보다 훨씬 더 길어져 이제야 완공을 앞두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집을 지어 가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집은 홀로 짓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함께 힘을 합하여 여러 가지 재료를 가지고 만드는 것입니다. 공동체라는 것이 결국 주님이 거하시는 집이라면, 참다운 공동체는 지금 우리 손으로 지어져가고 있는 우리 집처럼 각기 다른 은사와 경험을 가진 자들이 모여 만들어 가는 것이겠지요.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공동체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 결코 말처럼 쉽지만은 않습디다. 각자가 여태껏 살아오며 터득한 삶의 방식이 다르다보니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고, 품어온 삶의 내용들이 다른 관계로 감정을 표출하는 방법들마저 다르다보니 자주 의견다툼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긴 나무는 톱으로 잘라야 하고, 두꺼운 나무는 대패로 깎아서 조화를 이루어야 집이 지어지듯이, 민첩한 사람과 신중한 사람이 서로 다듬어지면서 공동체는 지어져 간다고 생각하며, 다투더라도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얼마 전 세례 요한을 묵상하던 중, '내 뒤에 오실 그분의 길을 예비하는 자'로서의 분명한 자기 인식을 가지고, 제사장의 자제라는 기득권과 젊음의 특권을 내려놓고, 보다 영원한 사명을 향하여 힘있게 살아가다 마침내 때가 다하고 사명을 다하매, 주저함 없이 꽃잎처럼 붉은 피를 뿌리며 사라지던 아름다운 청년 요한을 보았습니다. 그의 삶이 비단 예수님의 오실 길을 예비한 자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내 뒤에 올 분, 내 뒤에 올 미래, 내 뒤에 올 다음 세대를 바라보면서 살던 사람이라는 것이 더욱 가슴을 뛰게 만듭니다. 하루 벌어 하루 살아가기에도 빠듯한 인생살이라는데, 청년 요한은 외세의 지배를 받는 제 민족의 장래, 죄악과 전쟁으로 점철된 인류를 바라보며, 뒤에 오실 자를 예비하는 거룩한 열정으로 발버둥치며 고통 하는 겨레의 가슴 가슴에 살아있는 소망을 심어준 것이었습니다. 바라옵기는, 지어져가는 우리 집이 우리만 머물고 쉬는 집이 아니기를 저희 식구들은 소망합니다. 만들어져가는 우리 공동체가 이 땅에 지상 낙원을 이루어 우리들끼리 희희낙락하며 살 곳이 아니라, 요한처럼은 못하더라도 내 뒤에 오실, 우리 뒤에 오실 그분의 길을 예비하며, 우리 뒤에 올 민족의 장래를 준비하고,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그런 삶의 모습을 갖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소서 내 님이여
뒤에 오실 님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따라
뒤를 향한 우리의 몸짓을 따라
오소서, 내 사랑이여
이 어둠의 자락 사이로 임하사
이 땅을 새롭게 하시고
신음하는 내 겨레의 멍든 가슴마다 소망의 웃음이 번져나게 하소서.
마라나타...



주후 1999. 6. 28 늦은 저녁에
무익한 종 강동진 목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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