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2008-Apr
희년의 사람들-“기업은 사회와 종업원의 것” 유일한작성자: 박창수 IP ADRESS: *.236.97.18 조회 수: 2906
희년의 사람들-박창수 성서한국 경제분과 전문위원
“기업은 사회와 종업원의 것” - 유일한
유일한(1895~1971)은 (주)유한양행의 설립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는 단순한 기업가가 아니라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쓴 독립지사였고, 거의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희년(禧年)의 사람이었다.
유일한은 평양에서 가난한 기독교인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 부친은 기독교와 당시 민족 지도자들의 강연을 통해 조국의 현실과 개화사상에 눈떴는데, 부친의 적극적인 권유로 유일한은 10살밖에 안 되는 어린 나이에 가족을 떠나 미국으로 갔다. 그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을 참아내면서 그를 집에 맞아 돌보아 준 미국인 독신 자매 기독교인 가정의 도움을 받으며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면서 독립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고 4월에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직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는 서재필을 중심으로 한인 대표 150명이 제1차 한인총회를 개최했는데, 유일한은 이 총회에 참석하여 “한국 국민의 목적과 열망을 표명하는 결의문”을 작성하는 데 참여하였고 총회장에서 직접 낭독하기도 하였다. 이 총회에서 참석자들은 하루 세 번씩 조국의 독립을 위해 기도하기로 결의했는데, 참석자 중 기독교인들이 절대 다수를 이루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 그는 1942년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재미한인들로 구성된 무장부대 ‘맹호군’의 창설 주역으로 비밀리에 활동했다. 그리고 1945년에는 국토수복작전에 참여하여 준비했는데, 중국 충칭에 있던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함께 양면전을 전개하려고 했지만 해방이 갑자기 찾아오면서 불발로 끝나고 말았다. 그런데 유일한은 해방 후에 이와 같은 독립운동 사실을 결코 자랑하지 않았고, 죽을 때까지 스스로 밝히지 않았다.
유일한이 설립한 유한양행은 탈세하지 않고 당시 정치권의 갖은 회유와 핍박을 견디면서 정치자금을 끝내 건네지 않은 정직한 기업이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에는 매우 선진적으로 소유와 경영을 분리했고 회사 노동자들에게 액면가 10% 정도의 가격으로 주식을 골고루 나눠 주었는데 종업원지주제를 국내 최초로 실행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기업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와 종업원의 것이다”라는 기업 이념에 입각한 유일한의 기업경영철학은 다음과 같다. “정성껏 좋은 상품을 만들어 국가와 동포에 봉사하고, 정직 성실하고 양심적인 인재를 양성 배출하며, 기업 이익은 첫째는 기업을 키워 일자리를 만들고, 둘째는 정직하게 납세하며, 셋째는 그리고 남은 것은 기업을 키워 준 사회에 환원한다.”
유일한은 부동산 투기와 부동산 불로소득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회사 부지도 실수요가 아닌 한, 결코 투기(투자) 목적으로 매입하지 않았다. 한번은 개인 돈으로 한 건물을 사서 이용하다가 몇 년 후에 팔아서 큰 차익이 생긴 적이 있다. 유일한은 자기가 노력한 것이 없는데 큰돈이 생긴 것에 크게 당황해했다. 그는 그 돈을 사원들에게 모두 골고루 나눠주었는데, 부동산 불로소득에 대한 일종의 사회 환원이었다.
유일한은 재정적으로 어려운 학생들과 학자들을 많이 도왔다. 1971년에 유일한이 타계했을 때, 그가 남긴 유언장은 당시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아들에게는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앞으로는 자립해서 살아가거라’는 말만 남겼고, 손녀에게 대학 졸업 때까지 주라고 한 학자금과 딸에게 유한 동산으로 꾸며달라고 부탁하며 남긴 유한공고 안의 묘소 주변 땅 5천 평을 제외하고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였다. 소유 주식 14만 941주를 모두 ‘한국 사회 및 교육 원조 신탁 기금’에 기증한 것이다. 유일한은 생전에 이미 이 신탁 기금에 9만 6천 282주를 기증했었다. 유일한은 도합 23만 7천 223주나 되는 거의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것이다.
유일한은 희년(禧年)의 사람이었다. 희년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50년째 되는 해로서 품꾼으로 고용된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그들에게 생존과 진정한 자유의 터전인 땅과 집을 돌려주는 해이다(레위기 25장). 기업은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와 종업원의 것이라는 유일한의 기업이념은 곧 희년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희년 정신을 실천한 사람, 유일한. 그가 그립다.
출처: <플러스인생>(전 <신앙계>) 2008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