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02.
예수님은 우리의 목자요 다정한 친구이시지만, 사적 관계와 소유를 중요시하는 사람에게는 단호하시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당시 사회적 기득권자인 종교지도자들과 로마의 지배로부터 독립과 해방을 추구한 열심당원 양쪽 모두에게 불편했다. 땅에 있는 돌들도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게 하실 수 있다는 주님은 팔이 안으로 굽는 집단이기심을 도전하고 깨우신다.
내가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고 하시며 가장 가까운 가족관계에 칼을 들이대시겠다는 주님의 추상같은 메지지는 선뜻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진정 우리가 품어야 할 마음과 지녀야 할 생각을 일깨우신다. 아이들을 입양할 때 들었던 말씀은, “내가 네 자녀를 돌볼 테니 너는 내 자녀를 돌봐라. 내 자녀는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다” 하는 말씀이었다.
입양의 선택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감정적 거리가 같지 않아도 차별하지 않고 공평하게 대하는 것, 특히 더 약하고 외로운 쪽을 헤아리는 것, 그리고 우리 가족의 울타리에 들어오지 않은 이들을 결코 소홀히 여기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누가 고향을 물어도 ‘내 고향은 지구촌’이라고 답하게 되었다. 경계 짓고 대결하는 세상에서 예수님의 길은 나를 넓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