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낙관주의자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일상의 삶이야말로 값진 보화를 캐낼 현장임을 알아차립니다.
사람들은 늘 ‘대안 동경’을 가지고 삽니다.
저 건너편에서의 삶이 늘 좋아 보이기에 사람들은 ‘이곳’의 삶에 만족하지 못한 채 ‘저곳’만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산골 총각 하나가 나무를 하러 산에 갔다가 호랑이를 만났더랍니다.
그는 죽을 힘을 다하여 나무에 올라가 호랑이가 사라지기만을 기다렸지만,
배가 고팠던 호랑이는 떠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느 순간 나무 위에서 깜짝 졸던 그는 그만 나무에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호랑이 등 위로 말입니다.
호랑이도 역시 졸고 있었는데 느닷없는 충격에 놀란 호랑이는 죽을 힘을 다하여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총각도 호랑이 뒷덜미에 죽을둥살둥 매달렸습니다.
떨어지는 순간이 죽는 순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건너편 기슭에서 콩밭을 매고 있던 한 젊은이가 그 광경을 보고는
들고 있던 호미를 땅에 내동댕이치며 투덜거렸습니다.
“이런 제길, 어떤 놈은 팔자 좋아 호랑이를 타고 노는 데 난 이게 뭐람!”
우리 사는 꼴이 꼭 이렇습니다.
파랑새가 어딘가 다른 곳에 있을 것 같아 바깥을 떠돌다보니 다리는 아프고, 마음은 심란합니다.
하지만 파랑새는 가까이에 있습니다.
주님이 주신 삶의 자리, 그곳을 거룩한 곳으로 여기고 살면 인생이 한결 풍요로워집니다.
풀 한 포기, 들꽃 한 송이도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때로는 아옹다옹 하기도 하지만 지금 내 곁에 ‘그대’가 있다는 사실이 기적이요 은총임을 알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