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란과 무정란의 식별법이 있다. 육안으로 유정란과 무정란을 구별하는 방법으로 화씨100도로 2~3일 보온을 한 다음 밝은 전깃불에 비춰서 알 속에 생명의 실핏줄이 보이면 유정란이고 보이지 않으면 무정란이란다.
또 하나의 식별법은 손으로 알을 돌려 보아 잘 돌아가지 않는 것이 유정란이며 빙글빙글 잘 돌아가는 알이 무정란이란다. 생명이 있으면 잘 돌지 않으며 생명이 없으면 쉽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또한 소금물에 유정란을 넣으면 밑으로 가라앉지만 무정란은 수면으로 뜬단다. 생명력이 있는 유정란은 활동성이 있어서 가라앉지만 생명력이 없는 무정란은 생명력이 정지되어 물 위에 뜨게 된다는 것이다. 이 모든 실험 결과의 특징은 알 속에 생명이 있느냐 없느냐 이다.
유정란과 무정란의 차이는 물리적 공간과 시간은 같지만 실존적 공간과 시간은 다르다는 점일 것이다. 같은 공간을 차지하고 같은 시간 속에 존재하지만 무정란은 죽은 생명이요 유정란은 살아있는 생명인 것이다.
세상에는 유정란 곧 긍정의 알을 포란(抱卵) 하는 사람이 있고 무정란 즉 부정의 알을 포란 하는 사람이 있다. 누구든지 한 번 부정의 알을 포란 하게 되면 매사를 부정적으로만 보는 눈이 떠진다. 부정적인 생각에 점령을 당하게 되면 모든 것을 부정적인 사고로 보기 때문에 밝게 살지 못하고 캄캄한 터널 속에 갇혀서 어두운 밤길을 헤매게 된다.
하루에 똑같이 밥 세끼를 먹고 잠을 자고 일어나지만 감사하면서 자고 일어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평하면서 자고 일어나는 사람이 있다. 부활의 생명으로 숨쉬며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허무와 냉소로 숨을 쉬며 사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부정적인 사람의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데 자기도 부정하고 남도 부정하는 형, 자기는 긍정하고 남만 부정하는 형, 남은 긍정하고 자기만 부정하는 형이 그것이다. 남은 긍정하면서 자기는 부정하는 형은 항상 비교의식에 사로잡혀서 자기는 못낫고 남은 잘낫으며 자기는 조건이 나쁘고 다른 사람은 조건이 좋다는 선입관과 판단으로 자기를 스스로 찢고 짖밟으며 못살게 몰아간다.
자기는 긍정하되 남은 부정하는 형은 자기는 유독히 선하고 착하고 올바르고 정당하게 살고 있으며 타인은 유독히 악하고 올바르지 못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서 부당한 것만을 보고 찾아내고 비판하는 일에만 몰두하는 병자가 된다. 모든 사람은 장단점이 다 있는데도 말이다.
타인에 대해서만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은 스스로 말하기를 자기는 지안이 열려있어 모든 것을 잘 알고 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스스로 지적 맹인이 되어 있는 것이다. 타인의 허물과 실수는 잘 보이지만 자신의 실수나 잘못은 절대로 보지도 못하고 볼 수도 없는 영적 맹인인 것이다. 이를 두고 영적 소아증 병인(영적 외소증 병인)이라 할 수 있으리라. 모든 것을 부정적인 렌즈로 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고향의 형님이 꿩을 사육하면서 유정란은 부화시키지만 무정란은 가차없이 버린다고 하였다. 생명이 없는 것은 천일을 부화시켜도 생명을 탄생시킬 수 없기 때문이란다. 우리들의 생각이 무정란의 사고라면 일찍 버리는 것이 좋으리라. 천일을 기다려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정란의 생명으로 약동하여야 되리라. 유정란의 사고는 하나를 태동해도 생명이 되기 때문이다.
밥 먹고 화장실에 다닌다고 다 인간다운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은 부정적인 사람이 되고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은 긍정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다. 긍정적인 사람은 긍정적인 생명이 있으며 긍정적인 소망이 있어서 희망이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들이 아니라면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무정란적 사고가 아니라 유정란적 사고를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오늘도 내일도 생명의 병아리를 까고 희망의 병아리를 까야 할 것이다.
성령으로 변화된 삶 속에 긍정적인 믿음을 가진 긍정의 사람이 되자. 성령의 사람은 긍정의 사람이요, 성령의 사람은 거듭난 생명 안에 날마다 소망의 삶을 체험하게 된다. 유정란의 생각은 생명이요 무정란의 생각은 사망이다. 긍정적인 신앙은 생명을 낳고 부정적인 신앙은 사망을 낳는다. 유정란의 사고, 긍정적인 사고의 신앙으로 자신이 먼저 살아서 남도 살리고 나아가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창출해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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