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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Jun
자본주의와 개신교 윤리작성자: 박창수 IP ADRESS: *.123.189.21 조회 수: 2767
자본주의와 개신교 윤리
박창수
1. 들어가는 글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 출간된 이래, 개신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사이의 관계에 대한 논쟁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그 과정에서 “자본주의적 착취의 주범이 개신교”라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본 소고(小考)에서는 자본주의와 개신교 윤리의 관계를 탐구하기 위해, 먼저 자본주의 발전 과정과 기독교 국가들의 행태를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다음에 개신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었는지 알기 위해, 베버의 주장을 살펴보고, 이어서 막스 베버가 주목한 칼뱅주의의 원조인 칼뱅은 어떤 기독교 경제윤리를 주장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2. 자본주의 발전 과정과 소위 기독교 국가들의 행태
먼저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 공업 조직의 발전 단계를 개괄하면 다음과 같다.
“1. 가내 제도 또는 가족 제도: 판매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용하기 위해 가족 구성원들이 재화를 생산했다. 외부 시장에 공급하기 위해서 노동한 것은 아니었다. 중세 초기.
2. 길드 제도: 한두 명을 고용하는 독립적인 장인들이 작고 안정된 외부 시장에 공급하기 위해 재화를 생산했다. 노동하는 사람들은 원자재와 생산도구를 모두 소유했다. 그들은 자기의 노동을 판 것이 아니라 자기 노동의 생산물을 팔았다. 중세 내내.
3. 선대 제도: 길드 제도와 마찬가지로, 장인들이 조수들과 함께 자기 집에서 성장하는 외부 시장을 위해 생산했다. 길드 제도와 중요한 차이점은 이제는 장인들이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은 여전히 도구를 소유하고 있지만 그들과 소비자 사이에 끼어든 기업가에게 원자재를 의존했다. 그들은 이제 도급을 받는 임금 노동자에 불과했다. 16세기에서 18세기까지.
4. 공장 제도: 갈수록 확대되고 변동이 심한 시장을 위해 사용자의 건물에서 엄격한 감독을 받으며 생산한다. 노동자는 완전히 자립성을 상실했고 길드 제도에서처럼 원자재를 소유하지도 못하고, 선대 제도에서처럼 생산 도구를 소유하지도 못한다. 기계 사용이 늘어났기 때문에 기술 숙련도는 옛날만큼 중요하지 않다. 19세기부터 현재까지.”(리오 휴버먼, 147쪽).
이어서 역시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 자본주의 등장의 역사적 배경을 개괄하면 다음과 같다.
“영국에서는 1689년쯤에, 그 다음에 프랑스에서는 1789년 이후에, 시장의 자유를 위한 투쟁은 중간 계급의 승리로 끝났다. 프랑스 혁명이 봉건제에 치명타를 가했다는 점에서 1789년은 중세의 끝으로 기록될 만하다. 봉건 사회는 기도하는 사람들, 싸우는 사람들, 일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졌는데, 그 안에서 중간 계급 집단이 생겨났다. 중간 계급의 힘은 여러 해에 걸쳐서 점점 더 증대했다. 그들은 봉건제에 맞서 길고도 고된 투쟁을 전개했고, 특히 세 차례 결정적인 전투를 치렀다. 첫째는 종교개혁, 둘째는 영국 혁명, 셋째는 프랑스 혁명이었다. 18세기 말 그들은 마침내 낡은 봉건 질서를 파괴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력해졌다. 부르주아지는 봉건제 대신, 이윤 창출을 제1의 목적으로 하는 상품의 자유 교환에 기초한 전혀 다른 사회 체제가 등장했음을 알렸다.
우리는 그 체제를 자본주의라고 부른다.”(리오 휴버먼, 192-3쪽).
산업 자본주의를 가능케 한 자본의 축적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자본주의 생산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거액의 자본은 처음에, 열심히 일하고, 꼭 써야 할 곳에만 쓰고, 조금씩 저축을 늘린 검소한 사람들로부터 축적된 것이 아니다(리오 휴버먼, 199쪽).
“자본주의 시대가 개막하기 전에 자본은 주로 상업을 통해 축적됐다. 이때의 상업은 상품의 교환뿐 아니라 정복·해적질·약탈·수탈까지도 가리키는 신축성 있는 용어다.”(리오 휴버먼, 199쪽).
십자군 전쟁을 이용하여 베네치아를 비롯한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과 그들을 원조한 서유럽의 도시 상인들과 은행가들은 동방으로부터 흘러들어오는 부를 획득했다(리오 휴버먼, 199쪽). 존 A. 홉슨은 이탈리아의 동방무역에 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그 결과 훗날 서유럽 내에서 자본주의적 생산 방법이 발전하는 데 필요한 부를 축적하게 해 준 수익성 있는 무역의 기초가 일찍이 구축됐다.”(리오 휴버먼, 199-200쪽). 그러나 동방으로부터 들어오는 부 만으로는 자본주의 생산을 위한 필요를 충족시키기에는 충분치 못하였다. 충분한 양의 자본이 축적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부터였는데, 이에 대해 칼 마르크스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아메리카에서 금과 은의 발견, 원주민 말살과 노예화와 광산에 매장, 동인도에 대한 정복과 약탈의 시작, 아프리카를 상업적인 흑인 사냥터로 만든 것은 자본주의 생산 시대의 장밋빛 여명을 알리는 것이었다. 이런 목가적인 소행들이 시초 축적의 주된 동력이었다.”(리오 휴버먼, 200쪽).
라틴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은 가톨릭의 선교를 받으면서 동시에 광산에서 노역을 강요당했고 구타와 살인을 당했다.
“신세계의 원주민들이 땅에서 캐내 구세계로 실어 보낸 금과 은, 거기서 마침내는 상인들과 은행가들의 손에 들어가 버린 금과 은의 양은 얼마나 엄청났던가!(그리고 상인과 은행가의 손에 들어간 금이나 은은 놀지 않았다. 그것들은 신용 대출에 사용됐다. 그것들은 매뉴팩처 업자들에 대한 대출과 무역에 사용돼 더 많은 돈을 가져다 주었다. 요컨대 그것은 자본이었다.)”(리오 휴버먼, 200쪽).
한편 개신교의 경우, 네덜란드의 식민통치는 가톨릭의 스페인과 다르지 않았다. 자바 섬의 부총독이었던 T. S. 라플레스는 네덜란드의 식민 통치 역사가 “배신·뇌물·학살·비열함에 관한 가장 유별난 이야기들 가운데 하나”였다고 표현하면서, 1613년부터 1653년까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이윤은 해마다 약 64만 길더에 달한다고 추산했다(리오 휴버먼, 201쪽).
“네덜란드인들이 발을 들여놓는 곳마다 파괴와 학살이 뒤따랐다. 1750년에 자바의 바뉴왕기 주(州)에는 8만 명 이상의 주민이 있었는데, 1811년에는 겨우 1만 8,000명밖에 안 남았다. 얼마나 달콤한 상업인가!”(리오 휴버먼, 201쪽).
네덜란드는 17세기에 최강의 자본주의 국가가 되는 데 필요한 돈을 이런 식으로 축적했다(리오 휴버먼, 201쪽).
16-17세기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라틴 아메리카로부터 스페인을 거쳐 유럽 전역에 퍼진 엄청난 양의 은에 의한 인플레이션의 시대였다. 그런데 임금 상승이 물가 상승에 턱없이 못 미쳤기 때문에, 임금 노동자들은 심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예를 들어 15세기 말에 프랑스 노동자는 하루 임금으로 4.3킬로그램의 고기를 살 수 있었던 반면, 한 세기 후에는 겨우 1.8킬로그램밖에 살 수 없었고, 1610년에 영국 러틀랜드의 직공은, 1495년에는 10주 동안 일해서 받았던 것을 벌기 위해 43주를 노동해야 했다(리오 휴버먼, 132쪽).
영국에서는 인클로저와 가혹한 지대 인상 때문에, 촌락 전체가 버려졌고, 쫓겨난 주민들은 길거리에서 굶주리거나 구걸하거나 도둑질을 했다(리오 휴버먼, 138쪽). 그것을 막기 위해 국왕은 인클로저를 금지하는 법률들을 거듭해서 제정했지만, 그 지방의 지주가 동시에 그 지방의 재판관이었던 곳에서는 법률이 엄격하게 시행되지 않았다(리오 휴버먼, 139쪽). 토지를 잃고 쫓겨난 사람들은 자신의 노동력 외에는 생계 수단이 없었는데, 이들 중에서 바로 자본주의 공업에 필요한 임금 노동자들이 공급되었다. “16세기에서 18세기 사이에 중세의 독립 수공업자들은 차츰 사라져 가고, 그 대신 자본가이자 상인이자 중간상인인 기업가에 갈수록 종속된 임금 노동자가 나타났다.”(리오 휴버먼, 146쪽).
직물은 오랫동안 동방에 대한 유럽의 주요 수출품이었기 때문에, 중간 상인들은 늘어나는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도시의 길드 조합원뿐만 아니라 농촌의 주민들에게도 원자재를 대고 일감을 맡겼다(리오 휴버먼, 144쪽). 공업이 농촌 지역으로 확산되자, 인클로저와 가혹한 지대 인상으로 고통 받은 농민들 가운데 마을을 떠나지 않은 사람들이 직물 매뉴팩처를 통해 줄어든 수입을 보충했다(리오 휴버먼, 144쪽). 『로빈슨 크루소』의 작가 대니얼 디포는 1724년에 쓴 『영국 여행기』에서 이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매뉴팩처 작업장들 사이에는 고용된 사람들이 거주하는 작은 집들이 흩어져 있다. 그 곳에서 노동자와 그의 아내, 아이들이 언제나 숨 쉴 틈도 없이 실을 뽑고 베를 짜는 등의 일을 한다. 제일 어린 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놀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모든 사람이 자기 생활비를 번다. 네 살 넘은 아이는 거의 없지만, 그 어린 것들도 일손으로 쓰기에는 충분하다.”(리오 휴버먼, 144쪽).
3. 막스 베버의 견해: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자본주의와 자본주의적 경영은, 근대뿐 아니라 중국, 인도, 바빌론, 이집트, 고대 지중해, 중세 등 이미 지구상의 모든 문명화된 시대와 국가들에 존재했었다(막스 베버, 10쪽). 그러나 근대에 서양에서는 다른 어떤 곳에서도 나타난 적이 없었던 매우 다른 형태의 자본주의가 발전했는데, 그것은 바로 ‘자유로운 노동’의 합리적인 자본주의적 조직화였다(막스 베버, 12쪽). 시민이라는 개념, 부르주아의 개념, 그리고 프롤레타리아의 개념 모두 근대 서양 밖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막스 베버, 14쪽). 왜냐하면 근대 서양 밖에서는 ‘규칙적인 훈련 아래 있는 자유로운 노동의 합리적 조직화’가 존재하지 않았고, 나아가서 대규모 산업의 기업가와 자유임노동자 간의 근대적 갈등 역시 전적으로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막스 베버, 14쪽).
핵심적인 문제는 자유로운 노동의 합리적인 조직화를 갖춘 착실한 부르주아 자본주의의 기원이다(막스 베버, 14쪽). 문화사의 용어로 표현하면, 핵심 문제는 서구 부르주아 계급과 그 독특성의 기원에 대한 것이다(막스 베버, 14쪽). 경제적 합리주의의 발달은 일정한 유형의 실천적인 합리적 행위를 채택하는 인간들의 능력과 성향에 의해서도 결정되며, 이러한 유형들이 정신적 장애에 의해 방해받게 되면 합리적인 경제행위의 발전도 역시 심각한 내적 저항에 부딪히게 된다(막스 베버, 16-17쪽). 그런데 종교적인 힘들과 그것에 토대를 둔 윤리적인 의무의 관념 등은 과거에 항상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형성 요인 중의 하나였다(막스 베버, 17쪽). 그러므로 ‘일정한 종교적 관념이 경제적 정신 혹은 경제체계의 에토스의 발전에 미치는 영향의 문제’, 구체적으로는 금욕적인 프로테스탄티즘의 합리적 윤리와 근대적 경제생활의 정신 간의 연관성을 다루고자 한다(막스 베버, 17쪽).
여러 종파가 혼재하는 지방의 직업 통계에 의하면, 자본 소유자와 경영자층, 상급의 숙련 노동자층, 특히 높은 기술적, 또는 상인(商人)적 훈련을 받은, 근대적 기업의 구성원들이 인구 구성 비율에서 매우 현저한 프로테스탄트적 성격을 갖는다(막스 베버, 23쪽). 경제적으로 발전된 지역이 특별히 종교개혁을 받아들일 소지를 가졌던 이유를 질문할 때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종교개혁은 삶 전반에 대한 교회의 지배를 배제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존의 삶의 형식을 다른 형식으로 대체함을 뜻한다는 점이다(막스 베버, 24쪽). 16세기에 제네바와 스코틀랜드에서, 16세기에서 17세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네덜란드이 대부분에서, 그리고 17세기에 뉴잉글랜드에서, 또 한때는 영국 본토에서 세력을 얻은 칼뱅주의의 지배는, 개인에 대해 존재할 수 있는 교회의 통제 중 가장 견디기 힘든 형태였던 것으로 보인다(막스 베버, 25쪽). 그러나 종교개혁가들이 비난한 것은 삶에 대한 교회의 종교적 지배가 과다하다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다는 것이었다(막스 베버, 25쪽). 이런 나라들에서 경제적으로 상승하던 부르주아적 중산계급이 전대미문의 청교도적 전제(專制)를 받아들인 것에 그치지 않고 이것을 변호하고 발전시켰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막스 베버, 25쪽). 프로테스탄트가 경제적 합리주의를 향한 특수한 경향을 보였던 원인은, 외적인 역사적 상황에서가 아니라 내적인 특성에서 찾아져야 한다(막스 베버, 27쪽). 특히 칼뱅주의가 등장한 모든 곳에서 뛰어난 자본주의적 영리감각은 가장 강렬한 형태의 경건성과 함께 한 사람 내면에 그리고 한 집단 내부에 병존하였다(막스 베버, 29쪽). 자본주의 정신이 우선적으로 싸워야 했던 적수는 ‘전통주의’였다.
노동자의 경우, 전통주의는 성과급을 무력화시켰다. 성과급의 비율을 상향시키면 동일 시간 안의 노동성과는 증대되는 것이 아니라 감소하는 결과가 뚜렷이 나타났는데, 노동자는 성과급의 인상에 대해 하루 노동량을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감소시키는 반응을 보여 주었다(막스 베버, 43쪽). 그 이유는 종전처럼 같은 액수를 벌면 성경 말씀처럼 ‘그것에 만족해’ 버렸기 때문이다(막스 베버, 44쪽). 이것이 바로 전통주의적 태도의 한 사례인데, 그것은 곧 인간은 ‘그 본성상’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하지 않고 단지 자신이 살아온 대로 살고 그에 필요한 만큼만 벌려고 하는 태도이다(막스 베버, 44쪽). 근대 자본주의가 노동 강도의 제고를 통해 인간의 노동 생산성을 제고시키기 시작했던 모든 곳에서 자본주의는 이런 전자본주의적 경제노동의 동기가 갖는 무한히 끈질긴 저항에 부딪혔다(막스 베버, 44쪽). 성과급과 같이 높은 보수를 통한 ‘영리감각’에의 호소가 실패하면 이제 그와 정반대되는 수단이 시도될 가능성이 높은데, 곧 보수의 비율을 낮춤으로써 노동자가 기존의 수입의 유지하기 위해 보다 많이 일하게 만드는 것이다(막스 베버, 44쪽). 자본주의는 초기부터 이 방법을 항상 사용해 왔으며 수세기 동안 저임금이 생산적이라는 신조, 즉 저임금이 노동성과를 높인다는 신조, 나아가서 대중은 오직 빈곤한 경우에만 노동한다는 신조가 통용되어 왔는데, 이는 전적으로 초기 칼뱅주의의 정신 안에서 생각된 것이다(막스 베버, 44-45쪽). 그러나 저임금의 효과도 한계를 갖는데, 어떤 상황에서든 생리적으로 불충분한 임금은 노동성과를 감소시키고, 숙련된 노동이나 예컨대 비용이 많이 들고 파손되기 쉬운 기계의 사용, 또는 일반적으로 고도의 주의력과 창의력을 요구하는 생산물의 제조가 중요한 곳에서는 어디서든 저임금은 자본주의 발달의 지주로는 실패한다(막스 베버, 45쪽). 그 일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그 일을 절대적인 자기 목적-직업(소명)-으로 여기는 정신은 자연적으로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고임금이나 저임금을 통해 직접적으로 얻어지는 것도 아니며, 오직 길고도 지속적인 교육과정의 산물일 수 있다(막스 베버, 45-46쪽). 경건파 지방의 처녀들의 경우가 잘 보여주듯이, 노동을 자기 목적, 즉 자본주의가 요구하듯이 ‘직업(소명)’으로 파악하는 것은, 종교적 교육에 의해 주로 결과된 것으로서, 전통주의적 구습을 극복하는 최선의 수단이었다(막스 베버, 46쪽).
기업가의 경우, 직업으로서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정당한 이윤을 추구하려는 정신적 태도를, 잠정적으로 ‘근대 자본주의 정신’이라고 표현한다면, 그것은 역사적 이유가 있는 것인데, 왜냐하면 그런 정신적 태도는 근대의 자본주의 기업에서 그 가장 적합한 형태를 발견했고, 반면에 자본주의 기업은 그 정신에서 가장 적합한 정신적 추진력을 찾았기 때문이다(막스 베버, 48쪽).
“즉 선대업에 종사하는 어느 가족의 한 청년이 도시에서 농촌으로 내려와 자신의 필요에 맞는 직물공을 엄선하고, 그들의 의존성과 통제를 점차 강화시켜서 그들을 농민에서 노동자로 교육시키는 한편, 다른 면으로는 최종 구매자인 소매업자와 가능한 한 직접 접촉하여 판매를 손수 행하며, 고객을 직접 구하여 그들을 매년 규칙적으로 방문하여 특히 생산물의 품질을 전적으로 그들의 요구와 희망에 적응시키고, 그들의 「구미에 맞게」 하는 동시에 「박리다매」의 원칙을 실행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게 되자 그러한 「합리화」 과정에 수반하기 마련인 결과가 여기서도 즉시 나타났다. 즉 상승하지 못하는 자는 몰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치열한 경쟁이 시작되자 목가적 분위기는 붕괴하고, 상당한 재산이 모아져도 이자를 노리는 대부로 사용되지 않고 재차 사업에 투자되었다. 안락하고 쾌적한 옛 생활방식은 박정한 냉혹함에 굴복했다. 그 이유는 합리화 과정에 참여하여 성공한 사람들은 쓰지 않고 벌려고만 했기 때문이며 옛 방식을 고수한 사람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막스 베버, 50-51쪽).
이 경우 대부분 이러한 변혁을 야기했던 것은, 그 변혁에 관련되어 있는 새로운 정신, 곧 근대 자본주의 정신이었다(막스 베버, 51쪽). 근대 자본주의의 추진력에 대한 문제는, 바로 자본주의 정신의 발달에 대한 문제이다(막스 베버, 51쪽). 그러한 ‘새로운’ 방식의 기업가들이 냉정한 자제심을 잃지 않고 도덕적 경제적 파탄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비상하게 굳건한 성격을 필요로 했으며, 그러한 혁신 과정에 불가결한, 고객과 노동자의 신뢰를 제공해주며 무수한 저항의 극복을 위한 활력을 유지시켜 주고 무한히 집중적인 노동능력을 가능케 한 엄격하고도 단호한 ‘윤리적’ 자질이, 명석한 시야와 추진력 못지않게 필요했다(막스 베버, 51쪽). 경제생활에 이러한 새로운 정신을 관철시키는 데 결정적인 전환을 이룬 사람들은, 무모하고 파렴치한 투기업자나 경제적 모험가들 또는 단순한 부호가 아니라, 대체적으로 엄격한 시민적 관점과 원칙을 갖고, 냉정한 인생의 학교에서 자라나 신중하고도 과감하게 특히 ‘공정하고 성실하게’ 일에 몰두하는 사람들이었다(막스 베버, 52쪽). 자본주의 기업가의 ‘이념형’은 벼락부자와는 전혀 달리, 과시, 불필요한 낭비, 권력의 고의적 사용 등을 꺼리고, 자기 개인을 위해서는 자기 재산을 ‘조금도 사용치 않는’, 일종의 ‘금욕주의적 특징’을 갖는다(막스 베버, 53쪽).
“내세사상의 막강한 힘이 없었다면 그 당시 생활실천에 진지한 영향을 주던 윤리적 쇄신은 결코 작용할 수 없었을 것이다.”(막스 베버, 75쪽). 16세기와 17세기에 자본주의적으로 가장 발달한 문화국가인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에서 위대한 정치투쟁과 문화투쟁을 수행했던 것은 칼뱅주의였는데, 그 당시에 그리고 대체적으로 현재도 가장 특징적인 칼뱅주의의 교리는 ‘예정설’이다(막스 베버, 75-76쪽).
“물론 예정설이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가장 본질적인」 교리인지 아니면 「부차적인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한 역사적 현상의 본질적인 면에 대한 판단은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가치판단, 즉 신앙판단이다. ―그 현상 중 「관심을 끄는 면」이나 지속적으로 「가치있는 면」만이 본질적으로 여겨지는 것이 이 경우이다. 두 번째로는 그 현상이 다른 역사적 사건에 대해 갖는 「인과적」 중요성이 본질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경우인데,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역사적 인과구명이다. 이 책에서처럼 후자의 관점에서 출발하여 그 문화사적인 영향에 따라 그 교리에 어떤 중요성이 매겨질 수 있는가를 묻는다면 그 영향은 분명히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막스 베버, 76쪽).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단지 인간의 일부는 구원받고, 나머지는 저주받았다는 사실뿐이다. 이러한 운명의 결정에 인간의 공적이나 죄과가 함께 작용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영원한 과거부터 부동(不動)의 것인 신의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결정이 인간의 관여로 변경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으로, 이는 불가능한 생각이다.······신의 결정은 번복될 수 없으므로 신의 은총은 그 은총을 받은 자가 잃을 수 없고, 그 은총을 거부당한 자가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이론이 그 격앙된 비인간성을 통해 그 장엄한 결론에 몸을 맡긴 한 세대의 감정에 낳은 결과는 무엇보다도 전대미문의 개인적인 내적 고립감이었다. 종교개혁 시대의 인간들에게 결정적이었던 삶의 관심사, 즉 영원한 구원을 위하여 인간은 태초로부터 정해져 있는 운명을 향해 홀로 길을 가는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그를 도울 수 없다.”(막스 베버, 80쪽).
칼뱅주의자들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깊숙한 내면적 고립상태에서 수행했다(막스 베버, 82-83쪽). 그런데 하나님은 기독교도의 사회적 실행을 요구한다(막스 베버, 84쪽). 왜냐하면 하나님은 삶의 사회적 형성이 자신의 율법에 맞게 이루어져 그 형성이 자신의 목적에 일치하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막스 베버, 84쪽). 세상에서의 칼뱅주의자들의 사회적 노동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노동일 뿐이다(막스 베버, 84쪽). 그러므로 모든 사람의 현세적 삶에 봉사하는 직업노동도 역시 그러한 성격을 갖는다(막스 베버, 84쪽). 칼뱅주의가 종교적 사항에 있어 모든 결정권을 개인에게 일임함에도 불구하고 ‘개인’과 ‘윤리’ 간의 분열이 칼뱅주의에는 없었다(막스 베버, 85쪽).
내세(來世)가 보다 중요할 뿐 아니라 여러 면에서 현세적 삶의 모든 관심보다 훨씬 확실했던 시대에, 모든 신자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나는 선택되었는가? 선택되었다면 나는 그 선택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였다(막스 베버, 85쪽). 그러나 칼뱅 자신에게는 이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그는 자신을 ‘도구’로 여겼고 자신의 구원을 확신했다(막스 베버, 85쪽). 그래서 칼뱅은 무엇을 통해 개인은 자신의 구원을 확신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우리는 하나님의 결정에 대한 지식과 참된 신앙의 결과인 그리스도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신뢰에 만족해야 한다고 대답하였다(막스 베버, 85쪽). 칼뱅은 원칙적으로 타인의 행동을 보고 그가 선택되었는지 버림받았는지는 알 수 있다는 생각을 신의 비밀에 관여하려는 주제넘은 시도라고 하여 비난했다(막스 베버, 85-86쪽). 그러나 칼뱅을 추종했던 베자(Beza)와 같은 계승자들과 특히 광범한 층의 신자들에게는, 구원의 ‘인식’ 가능성이라는 의미에서 ‘구원의 확신’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고, 예정설이 확립된 곳에서는 어디서든지 ‘선택된 자’에 속함을 인식할 수 있는 확실한 표지의 존재 여부에 대한 질문이 곧 제기되었다(막스 베버, 86쪽). 그 문제에 대해 두 가지 상호 결부된 목회적 권고가 특징적으로 부각되었는데, 첫째는 자신을 선택된 자로 여기고 모든 의심을 악마의 유혹으로서 거절하라는 것이었고, 둘째는 자기 확신에 도달키 위해 가장 탁월한 수단으로 부단한 ‘직업노동’을 하라는 것이었다(막스 베버, 86-87쪽).
직업 노동만이 종교적 회의를 씻어 버리고 구원의 확실성을 제공한다는 것이다(막스 베버, 87쪽). 칼뱅주의자가 도대체 어떤 ‘열매’에 비추어 올바른 신앙을 확실하게 인식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봉사하는 기독교도의 생활방식이었다(막스 베버, 89쪽). 선행은 구원을 얻는 수단으로서는 절대적으로 부적절하지만, 선택의 표지로는 불가결한 것이다(막스 베버, 90쪽). 선행은 구원을 얻는 기술적 수단이 아니라, 구원에 대한 불안을 떨쳐 버리는 기술적 수단이다(막스 베버, 90쪽). 성도의 삶은 오로지 초월적 목적인 구원을 향해 있으며 오히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현세의 과정에서 철저히 합리화되고 오직 한 가지 관점, 곧 지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관점에서 지배된다(막스 베버, 92쪽). 지속적인 반성을 통해 인도된 삶만이 자연 상태의 극복으로 여겨질 수 있는데, 이런 합리화는 칼뱅주의 신앙에 특수한 금욕주의적 특징을 부여했다(막스 베버, 92쪽). 그리고 예정설에 기초하여 칼뱅주의는 그 발전과정에서 세속적 직업생활에서 신앙을 증명할 필요가 있다는 적극적인 직업사상을 추가했다(막스 베버, 95쪽).
‘목회의 실천’에서 나온 종교적 힘이 ‘민족성’을 결정적으로 형성했다(막스 베버, 123쪽). 그리고 영국 청교도주의가 직업 사상에 대한 가장 철저한 정초를 제공했는데 그 대표자는 리처드 박스터(Richard Baxter)였다(막스 베버, 123쪽). 박스터에 의하면, 부 자체는 커다란 위험이며 부에 대한 욕망은 끝이 없고, 부의 추구는 하나님의 나라가 갖는 엄청난 중요성에 비하자면 무의미할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위험한 것이었다(막스 베버, 124쪽). 화폐와 재물에 대한 추구를 죄악시하는 이런 태도는 청교도의 저술에서 공통적이고 매우 진지한 것이었다(막스 베버, 124-125쪽). 실질적으로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재산을 갖고 휴식하는 것, 부를 향락하여 태만과 정욕에 빠지는 것, 특히 ‘거룩한’ 삶에 대한 추구에서 이탈하는 것이었다(막스 베버, 125쪽). 재산이 죄악시된 것은 오직 그것이 이러한 안주의 위험을 수반하기 때문이었으며, 시간 낭비는 모든 죄 중에서 최고의 중죄로 간주되었다(막스 베버, 125쪽).
노동에 대해 박스터는 두 가지를 강조한다. 첫째, 노동은 오래전부터 인정된 금욕적 수단으로서, 특히 청교도주의가 ‘부정한 생활’이라는 개념아래 총괄시킨 모든 유혹에 대한 특수한 예방이다(막스 베버, 126쪽). 둘째, 노동은 하나님이 지정한 삶의 목적이며, 노동의욕의 결핍은 구원받지 못함의 징후이다(막스 베버, 126쪽). 박스터에 의하면, 부자도 일하지 않으면 먹지 말아야 한다(막스 베버, 127쪽). 그리고 그에 의하면, 확실한 직업이 없는 경우 인간의 노동은 불규칙한 우연적 노동에 불과하며, 현세적 금욕이 요구하는 체계적-방법적 성격이 결여되어 있다(막스 베버, 128쪽). 반면에 직업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에 규칙성을 부여한다(막스 베버, 128쪽). 노동 그 자체가 아니라 합리적 직업 노동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다(막스 베버, 129쪽). 청교도적인 직업사상에서는 직업적 금욕의 방법적 성격에 강조점이 있다(막스 베버, 129쪽). 어떤 직업의 효용성과 그에 대응하는 하나님의 만족은, 첫째로는 도덕적 척도에 따라, 둘째로는 생산되는 재화가 ‘전체’에 대해 갖는 중요성의 척도에 따라 평가되지만, 셋째로는 사경제적 수익성에 따라 평가되는데, 왜냐하면 청교도들이 삶의 구석구석에 역사하고 계시다고 본 하나님이 신자들 각자에게 하나의 이윤의 기회를 준다면 그것에는 하나님의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막스 베버, 129쪽). 그러므로 게으른 휴식과 죄 많은 삶의 향락에 대한 유혹과 안일하게 살기 위한 것으로서의 부의 추구는 위험시된 반면, 직업의무의 행사로서의 부의 추구는 도덕적으로 허용될 뿐만 아니라, 명령된 것이기까지 하였다(막스 베버, 130쪽).
“확고한 직업의 금욕적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 근대적인 전문직업을 윤리적으로 신성시했듯이, 이윤 기회에 대한 섭리적 해석은 기업가를 신성하게 만들었다. 영주의 고상한 방종과 벼락부자의 과시적 허세는 모두 금욕주의가 증오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정직하게 자수성가한 부르주아는 대단한 윤리적 평가를 받았다.”(막스 베버, 130쪽).
청교도주의는 합리적인 부르주아 경영과 노동의 합리적 조직화를 수행했다(막스 베버, 132쪽).
“인간은 신의 은총을 통해 그에게 주어진 재화의 관리인일 뿐이며 성서에 나오는 종처럼 단 한 푼의 위탁된 돈이라도 보고를 올려야 하며, 그 중의 얼마를 신의 영광이 아닌 자신의 향락을 목적으로 지출하는 것은 어느 정도 위험한 일이다.······자신에게 위탁된 재산에 대해 인간은 봉사하는 관리자로서 아니면 아예 「영리기계」로서 복종해야 할 의무를 갖는다는 사상이 삶을 냉혹한 무게로 짓누르고 있다. 재산이 커지면 커질수록―금욕적 생활태도가 시련을 이겨 내는 경우―신의 영광을 위해 그 재산이 감소되지 않도록 보존하고 부단한 노동을 통해 증대시켜야 한다는 책임감은 더욱더 무거워진다. 물론 이러한 생활방식의 발생도 근대적 자본주의 정신의 여러 많은 구성요소와 마찬가지로, 그 개별적인 연원들은 중세에까지 소급된다. 그러나 이 생활방식은 금욕적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에서 비로소 그 철저한 윤리적 토대를 발견했던 것이다. 이 생활방식이 자본주의의 발전에 대해 갖는 중요성은 자명한 것이다.”(막스 베버, 136쪽).
영리 추구와 소비 봉쇄는 자본 형성으로 이어졌다. 엄격한 칼뱅주의의 지배를 7년밖에 받지 않았던 네덜란드에서도, 종교적으로 독실한 사람들은 거대한 부에도 불구하고 매우 소박한 생활을 했기 때문에 막대한 자본 축적열이 일어났다(막스 베버, 138쪽). 17세기 영국의 중상주의 저술가들은 네덜란드의 자본력이 영국을 누른 사실의 원인을, 영국과는 달리 네덜란드에서는 새로 벌어들인 재산이 대체로 토지에 대한 투자와 봉건적 생활방식에의 이행 등을 통한 귀족화를 추구하지 않았고 따라서 자본주의적 이용의 기회를 가졌다는 데 두었다(막스 베버, 138쪽).
근대적 자본주의 정신, 그리고 직업 사상에 입각한 합리적 생활방식은 기독교적 금욕의 정신에서 탄생한 것이다(막스 베버, 144쪽). 이 금욕은 나름대로 기계적 생산의 기술적, 경제적 전제에 의존하는 근대적 경제 질서의 강력한 우주를 구축하는 데 일조했는데, 이 우주는 오늘날 이러한 동력기 안에서 태어나는 모든 사람의 생활양식을 압도적인 강제력으로 규정하고 있다(막스 베버, 145쪽).
“박스터의 견해에 따르면 외적인 재화에 대한 배려는 마치 「언제나 벗을 수 있는 얇은 겉옷」처럼 성도의 어깨에 놓여있어야 한다. 그러나 운명은 이 겉옷을 강철 같은 겉껍질로 만들어 버렸다. 금욕이 세계를 변혁시키고 세속에 작용하기 시작하자 이 세상의 외적인 재화는 역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인간에 대한 힘을 증대시켜 갔고, 마침내는 벗어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오늘날 이 정신은 그 겉껍질에서―영원히인지 아닌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사라져 버렸다.”(막스 베버, 145쪽).
“미래에 이 겉껍질 안에서 살 자가 누구인지, 이 엄청난 발전의 마지막에 전혀 새로운 예언자나 혹은 옛 정신과 이상의 강력한 부활이 있을지, 아니면―이 둘 다 아니고―일종의 발작적인 오만으로 장식된 기계화된 화석화가 있을지는 누구도 모른다. 만일 후자의 경우라면 물론 이 문화발전의 「최후의 인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말이 옳은 말이 될 것이다. 즉 「정신 없는 전문가, 가슴 없는 향락자 : 이 공허한 인간들은 인류가 전례 없는 단계에 도달했다고 생각할 것이다.」”(막스 베버, 145-146쪽).
4. 칼뱅의 기독교 경제윤리
칼뱅에 의하면, 물질적 재화는 하나님의 섭리의 도구이다(앙드레 비엘레, 54쪽). 하나님의 목적에 따르면, 인간들 사이의 부의 불평등한 분배는 절대로 임의적으로 어떤 사람들에게 더 호의를 베풀고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그런 식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이 불평등이 부자에게서 가난한 자들을 향해 끊임없는 재화의 재분배를 유발시키는 기능을 한다(앙드레 비엘레, 56쪽). 또 하나님의 목적에 따르면 부의 순환에는 사랑의 동기가 있다(앙드레 비엘레, 56쪽).
칼뱅에 의하면 부자는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경제적 사명을 갖고 있는데, 곧 부자는 가난한 이들이 더는 가난해지지 않고 부자들이 더는 부유해지지 않도록 자기보다 더 가난한 이들에게 자신의 부의 일부를 나누어 줄 책임을 가지고 있다(앙드레 비엘레, 56-57쪽). 반면에 가난한 사람도 감당해야 할 영적 사명이 있는데, 곧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의 편에서 부자가 자기의 재화를 떼어 나누어줌으로써 그 자신을 돈의 노예가 되는 것에서 자유롭게 할 기회를 제공하는 부자의 이웃이 되도록 예정되어 있다(앙드레 비엘레, 57쪽). 그러므로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구성된 사회는 재화의 상호유통이 이루어지는 사회여야 한다(앙드레 비엘레, 57쪽). 이 유통으로 경제적 불평등이 완전히 제거되지는 않겠지만 최소화하는 효과는 있다(앙드레 비엘레, 57쪽). 만일 부의 이러한 자유 순환을 차단하거나 방해하지 않는다면 사회는 인간 연대 의식에서 흘러나오는 계속적인 호혜성의 운동을 통해 상대적인 경제적 평등을 이루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앙드레 비엘레, 57쪽).
칼뱅은 이러한 부의 상호 유통이 사회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면서,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진 만나의 재분배를 예로 들었다(앙드레 비엘레, 57쪽). 이 재분배는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고후8:15)는 말씀에 잘 나타나 있다(앙드레 비엘레, 57쪽). 칼뱅은 부자를 ‘가난한 자의 봉사자’라고 불렀고, 가난한 자를 ‘하나님의 수취인’, ‘그리스도의 보좌’, ‘하나님의 대리자’라고 불렀다(앙드레 비엘레, 57-58쪽).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균형과 공평이 있기를 바라시는데, 곧 각 사람이 그의 자산의 정도에 따라 궁핍한 자와 나눔으로써 아무도 너무 많이 갖지 않고 아무도 너무 적게 갖지 않기를 원하신다.”(칼뱅; 앙드레 비엘레, 63쪽 재인용).
칼뱅은 다른 사람들에게 일을 주지 않고 자기의 재원을 자기만 움켜쥠으로서 공동체에 기여하지 않은 사람들의 과오를 경멸한다(앙드레 비엘레, 74쪽). 그는 게으름뱅이와 인간 공동체에는 아무런 공헌도 하지 않은 채 다른 사람들의 땀의 대가로 무위도식하며 살아가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들을 비난한다(앙드레 비엘레, 74쪽).
칼뱅에 의하면, 실업은 반드시 극복해야 할 사회적 병폐이며 가장 강도 높게 비난받아야 할 사회악인데, 그 이유는 한 인간의 노동권을 빼앗는 것은 그의 목숨을 앗아가는 행위나 다름없기 때문이다(앙드레 비엘레, 74쪽).
“기술공과 직공들의 경우 그들의 모든 수입원은 자기의 생계벌이를 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그들의 삶을 그들의 손에, 다시 말하면 그들의 노동에 맡긴 것이나 다름없다. 그들에게서 이 생계에 필요한 수단을 빼앗는다는 것은 그들의 목을 자르는 것이나 진배없는 행위다.”(칼뱅; 앙드레 비엘레, 75쪽 재인용).
칼뱅은 다른 사람의 노동을 남용하거나 착취하는 것도 범죄행위로 간주하였다. 칼뱅에 의하면, 하나님은 가난한 사람들을 고용하여 일하게 하고서는 그들의 노동에 충분히 보상하지 않는 부자들의 잔인함을 고치기를 원하신다(앙드레 비엘레, 75쪽).
“자기들에게 고용된 가난한 사람을 3일 만에 죽이고도 즐거워할 사람들도 있다. 그들에게 이익이 생기기만 하면 노동자들이 죽는 것쯤은 그들에게 문제가 안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대로 우리에게 고용된 노동자들이 노동을 계속할 수 있고 그들이 노동할 수 있음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도록 그들이 감당하기 벅찬 짐을 부과하지 않는 그런 인도적인 태도로 우리에게 고용된 노동자를 대우하라고 우리에게 선언하셨다”(칼뱅; 앙드레 비엘레, 75쪽 재인용).
복음은 인간의 노동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노동에 참여하게 한다고 칼뱅은 강조했다(앙드레 비엘레, 77쪽). 칼뱅은 인간의 노동에, 이전에는 전혀 갖지 못했던 영적 존엄성과 가치를 부여했는데, 이것이 칼뱅적 사회의 출현과 발달에 상당한 경제적 영향을 주게 되었다(앙드레 비엘레, 77쪽).
칼뱅에 의하면, 임금은 하나님의 은총의 표현이기 때문에 인간이 마음 내키는 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앙드레 비엘레, 78쪽). 자기에게 고용된 노동자에게 임금을 주는 행위는, 하나님께서 그 노동자가 살아갈 수 있도록 그에게 부여하신 것을 고용주가 그 이웃에게 단순히 전달해 주는 것일 뿐이다(앙드레 비엘레, 78쪽). 남에게 갈 임금의 일부나 전부를 체불하거나 지급하지 않는 것은 신성모독에 해당하는 죄로서, 이는 이웃에게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대한 죄악이다(앙드레 비엘레, 78쪽).
칼뱅에 의하면, 노동시장이 포화상태가 될 때 임금수준을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정상적 생계에 필요한 비용 이하로 떨어뜨리는 것은 완전히 불법적인 것이다(앙드레 비엘레, 79쪽).
“부자들이 종종 하는 것을 잘 보라.”(칼뱅; 앙드레 비엘레, 79쪽 재인용).
“그들은 고용되기를 바라는 가난한 사람들의 임금을 반으로 깎으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 부자는 가난한 실직자를 보고 ‘이 사람은 완전히 알거지구먼’ 하고 중얼거린다. ‘내가 빵 한 조각만 주어도 이 사람을 고용할 수 있을 거야, 왜냐하면 그는 싫더라도 내가 베푸는 자비에 매달릴 수밖에 없으니까. 임금의 반만 주어도 만족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겠지.’ 우리가 이런 모진 마음을 쓸 때 우리가 노동자의 임금을 체불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정말 잔인하게 가난한 사람을 착취하고 있는 셈이다.”(칼뱅; 앙드레 비엘레, 79쪽 재인용).
칼뱅은 급료에 관해 일어나는 분쟁을 막기 위해 임금계약제를 제안했고, 심지어 단체 계약까지 생각했으며 법정 중재 역할도 추천했다(앙드레 비엘레, 80쪽). 비록 칼뱅은 착취당한 자들의 폭동과 그들이 불법적인 폭력에 의지하는 것을 금지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종종 착취자들을 심판하고 응징하는 수단으로 노동자들의 불복종을 이용하신다고 단언했다(앙드레 비엘레, 80쪽). 칼뱅은 비폭력 저항과 파업을 반대하지 않았다(앙드레 비엘레, 80쪽).
5. 나오는 글
이상에서 자본주의와 개신교 윤리의 관계에 대해 탐구하였다.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피상적으로 이해하여 성급하게 “자본주의적 착취의 주범이 개신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본 소고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 주장은 소위 기독교 국가들이 보인 행태라는 역사적 측면에서는 부합하지만, 칼뱅의 기독교 경제윤리라는 사상적 측면에서는 부합하지 않는다. 소위 기독교 국가들은 자신들의 역사적 과오를 부끄러워해야 하고 참회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이 글에서는 칼뱅의 기독교 경제윤리만을 살펴보았을 뿐, 성경의 가르침은 고찰하지 않았지만, 성경은 칼뱅의 사상의 근원으로서 분명하게 자본주의적 착취의 주범이 개신교가 결코 될 수 없는 강력한 논증을 제공한다는 점을 마지막으로 강조하고자 한다.
참고문헌
리오 휴버먼 지음, 장상환 옮김,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도서출판 책벌레, 2008.
막스 베버 지음, 박성수 옮김,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문예출판사, 1996.
앙드레 비엘레 지음, 박성원 옮김, 『칼빈의 사회적 휴머니즘-칼빈의 경제신학』, 대한기독교서회,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