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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Jun
칼뱅의 이자에 대한 윤리 사상작성자: 박창수 IP ADRESS: *.179.34.254 조회 수: 3066
칼뱅의 이자에 대한 윤리 사상
박창수
1. 들어가는 글
2010년 2월 한 50대 하청 노동자가 자살했다. 그는 유서에서 “저승 갈 노잣돈도 없다”고 절규했다. 그가 자살한 원인은 고리대 사채였다. “하청노동자조직위원회는 "주변 동료들은 고인이 결근도 없이 매일 아침 7시에 출근할 정도로 성실했다고 한다"라며 "한번 지기 시작한 빚으로 사채업자에게 많은 시달림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윤성효). 고리대 사채의 고통은 이 노동자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2000년대 들어서 한국 사회는 신용불량자 수가 급증하고 있다. 신용불량자 수는 2000년 말에 208만 명에서 2004년 말에 약 362만 명으로 증가하였는데, 그 중 3분의 1은 가난하고 소득이 적어서 빚을 갚을 수 없는 ‘생계형 신용불량자’로 추산된다(이강국). 담보가 없어서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절박한 상황에서 고리대 사채를 쓰게 되고 그 결과 경제적으로 파탄나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1994년 전체 사망 원인의 9위였던 자살이 1998년 경제 위기 이후 급등하여 2004년에는 사망 원인 4위로 상승하였고, 한국은 2002년 OECD 국가 중 자살률 4위, 최근 자살증가율 1위이다(이강국). 이처럼 한편에서는 고리대 사채 때문에 피눈물을 흘려야 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반대편에서는 고리대로 이익을 보는 대형 대부업체들과 대부업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이익을 추구하는 대부업자들이 있다.
“지난해 대형 대부업체들의 이익이 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위기로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리지 못한 서민들이 급전마련을 위해 대부업자들을 많이 찾았기 때문이다.······1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자산 기준 7대 대부업체의 2009 회계연도 순이익은 3047억원으로 전년 대비 119.2% 급증했다. 7대 대부업체는 에이엔피파이낸셜(러시앤캐시), 산와대부(산와머니), 페닌슐라캐피탈, 그린씨엔에프, 웰컴크레디라인, 바로크레디트, 리드코프 등으로 전체 대출의 52.5%를 차지하고 있다.······한편 한나라당 이진복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대부업법 위반은 전년보다 3배가량 증가한 1만5127건에 달했다. 대부업법 위반은 2006년까지 500건대에 머물렀으나 2007년 3065건, 2008년 4872건 등으로 매년 급증하고 있다.”(박병률).
이와 같은 현실에 대해, 한국 교회는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가? 무관심과 무개입은 무책임일 뿐 교회의 바른 태도는 아닐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교회가 이자 문제에 대해 책임 있는 응답을 하기 위해서 한국 교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장로교회에 매우 큰 영향을 준 종교개혁자 칼뱅의 이자에 대한 윤리 사상을 고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먼저 칼뱅 당대의 사회 경제적 상황을 간단히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칼뱅의 경제 윤리, 성서와 중세 교회의 이자관, 칼뱅의 이자관을 차례로 고찰해 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나오는 글에서는 칼뱅의 이자에 대한 윤리 사상을 요약하고 그것이 한국 교회에 던지는 실천적 함의를 제시하고자 한다.
2. 칼뱅 당대의 사회 경제적 상황
칼뱅 시대의 사회 경제적 배경에 대해, 한 칼뱅 연구가는 “신대륙의 발견은 사실상 유럽에 금의 홍수를 가져다 주었고 그것으로 유럽에는 수많은 산업이 일어나게 되었으며 상업적 교류가 엄청나게 증가하게 되었다”(앙드레 비엘레, 51쪽)고 기술한다. 이어서 그는 칼뱅 시대의 사회 경제적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고대의 상업 구조와 체제로서는 이 엄청나게 증가해 버린 활동들을 더는 담아낼 수 없었고 그 방향을 제시해 줄 수도 없었다. 무절제한 자본주의가 생겨나게 되었고 이러한 자본주의가 고대 도시 생산 중심지 외곽에서 급속하게 발달했다. 이 자본주의의 발달로 생계비의 수직적 앙등과 노임의 하락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것이 도시와 농촌 양쪽에 급격한 무산 계급(즉, 저임금 노동자 대중)이 생겨나게 된 원인이 되었다. 엄청난 자본의 축적과 증가가 이루어지는 반면 비참한 대중들이 그 어느 때보다 더욱 대량 생산되었다.”(앙드레 비엘레, 51쪽).
19세기 미국에서 헨리 조지가 씨름했던, ‘물질적 진보 가운데 빈곤의 심화’라는 상황은, 칼뱅이 살던 16세기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진보와 빈곤이 동반되는 상황에서 칼뱅과 칼뱅주의자들은 “농민과 신비주의자의 눈으로 경제생활을 본 루터”(R. H. 토니, 121쪽)와 달리, “농민공동체의 가부장적 장점을 이상화하거나 상업과 금융에 있어서 자본제 기업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의혹을 품고 보려고 들지 않았다.”(R. H. 토니, 121쪽). 그리고 “칼뱅주의는 대체로 도회적 운동이었다.”(R. H. 토니, 121쪽).
3. 칼뱅의 경제 윤리
1)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정하신 목적에 따라 재화를 사용하는 경제생활
칼뱅의 경제관은 주로 주석과 서신 그리고 설교 등의 전 작품에 산발적으로 나타나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기독교강요』 3권 10장 “현세 생활과 그 보조 수단들을 사용하는 법”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장호광, 224-225쪽). 이 장에서 칼뱅은 “잘못된 엄격한 금욕과 잘못된 방종”(존 칼빈, 238쪽)을 모두 비판하면서 기독교인의 경제 윤리의 대원칙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정하신 목적에 따른 재화의 사용’이라고 제시한다.
“우리가 따를 원칙은 이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선물들을 창조하신 목적은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지, 우리를 멸망시키시려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정하신 그 목적에 따라서 하나님의 선물을 사용한다면, 그러한 사용은 방향이 바르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목적을 주시하는 사람이 가장 곧은 길을 걷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양식을 만드신 목적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하면, 하나님의 뜻은 필요한 것을 주실 뿐 아니라, 또한 즐겁고 유쾌하게 만드시려는 데 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을 것이다.”(존 칼빈, 240쪽).
2) 영생을 갈망하며 바르게 사는 경제생활
칼뱅은 “하늘로부터 받은 이런 각종 은혜를 무절제하게 사용하거나 재리를 탐할 것이 아니라”(존 칼빈, 241쪽)고 강조한다. 그리고 칼뱅은 “영생을 갈망하는 것도 우리의 외면적 생활을 바르게 결정한다”(존 칼빈, 242쪽)고 말하면서, 영생과 경제 윤리의 문제를 언급한다.
“그러나 가장 확실한 길은 현세에서의 삶을 멸시하고 하늘의 영생 불멸을 명상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두 가지 법칙이 나온다. 첫째는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같이 하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라는 바울의 교훈이다(고전 7:29-31). 둘째는 빈곤을 조용히 참고 견디며, 부유함을 절제하라는 것이다.”(존 칼빈, 242쪽).
3) 재화를 맡겨 주신 하나님 앞에서 셈해야 할 날을 잊지 않는 경제생활
칼뱅은 지상 물질 이용에 대한 성서의 지도 법칙을 말한다. “이 법칙에 의하면, 인자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질을 주시며 우리의 유익에 충당되도록 하셨을 때에, 그 물질은 우리에게 맡겨진 것으로 우리가 언젠가는 청산해야 한다고 명하셨다.”(존 칼빈, 243쪽).
“그러므로 우리는 “네 보던 일을 셈하라”(눅 16:2)는 말씀을 항상 귀에 들리게 하면서 일을 처리해야 한다. 동시에 우리는 이 셈을 누가 요구하시는가를 잊지 말아야 한다. 그는 곧 극기와 단정한 정신과 검소와 절제를 권장하시고 무절제와 자만과 허식과 허영을 극도로 싫어하시는 분이다.”(존 칼빈, 243쪽).
4) 사랑의 동기에 따라 부자로부터 빈자에게 끊임없이 재화를 재분배하는 경제생활
칼뱅에 의하면, 물질적 재화는 하나님의 섭리의 도구이다(앙드레 비엘레, 54쪽). 하나님의 목적에 따르면, 인간들 사이의 부의 불평등한 분배는 절대로 임의적으로 어떤 사람들에게 더 호의를 베풀고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그런 식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이 불평등이 부자에게서 가난한 자들을 향해 끊임없는 재화의 재분배를 유발시키는 기능을 한다(앙드레 비엘레, 56쪽). 또 하나님의 목적에 따르면 부의 순환에는 사랑의 동기가 있다(앙드레 비엘레, 56쪽).
칼뱅에 의하면, 부자는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경제적 사명을 갖고 있는데, 곧 부자는 가난한 이들이 더는 가난해지지 않고 부자들이 더는 부유해지지 않도록 자기보다 더 가난한 이들에게 자신의 부의 일부를 나누어 줄 책임을 가지고 있다(앙드레 비엘레, 56-57쪽). 반면에 가난한 사람도 감당해야 할 영적 사명이 있는데, 곧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의 편에서 부자가 자기의 재화를 떼어 나누어줌으로써 그 자신을 돈의 노예가 되는 것에서 자유롭게 할 기회를 제공하는 부자의 이웃이 되도록 예정되어 있다(앙드레 비엘레, 57쪽). 그러므로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구성된 사회는 재화의 상호유통이 이루어지는 사회여야 한다(앙드레 비엘레, 57쪽). 이 유통으로 경제적 불평등이 완전히 제거되지는 않겠지만 최소화하는 효과는 있다(앙드레 비엘레, 57쪽). 만일 부의 이러한 자유 순환을 차단하거나 방해하지 않는다면 사회는 인간 연대 의식에서 흘러나오는 계속적인 호혜성의 운동을 통해 상대적인 경제적 평등을 이루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앙드레 비엘레, 57쪽).
칼뱅은 이러한 부의 상호 유통이 사회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면서,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진 만나의 재분배를 예로 들었다(앙드레 비엘레, 57쪽). 이 재분배는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고후8:15)는 말씀에 잘 나타나 있다(앙드레 비엘레, 57쪽). 칼뱅은 부자를 ‘가난한 자의 봉사자’라고 불렀고, 가난한 자를 ‘하나님의 수취인’, ‘그리스도의 보좌’, ‘하나님의 대리자’라고 불렀다(앙드레 비엘레, 57-58쪽). 칼뱅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균형과 공평이 있기를 바라시는데, 곧 각 사람이 그의 자산의 정도에 따라 궁핍한 자와 나눔으로써 아무도 너무 많이 갖지 않고 아무도 너무 적게 갖지 않기를 원하신다.”(앙드레 비엘레, 63쪽).
5)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라는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경제생활
칼뱅의 경제 윤리는 한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과 직결된다. “칼빈의 경제윤리는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복종을 떠난 인간의 경제적 삶을 고려하지 않는다.”(장호광, 225쪽).
“칼빈의 경제관은 세속주의적 경제학과는 근본적으로 그 출발점과 목적을 달리하고 있다. 후자가 단순히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과학(a profit-oriented science)이라면, 전자는 봉사를 목적으로 하는 과학(a service-oriented science)으로서 그 중심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라는 보다 근본적이고 숭고한 계명이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칼빈의 경제윤리는 창조, 타락, 구속이라는 커다란 신학적 틀 속에서 그 참된 의미를 지닌다. 즉 인간의 경제활동은 물질세계와 관계된 하나님의 창조명령 수행이라는 하나님 앞에서의 청지기적 사명이 기초가 되나 그 수행자인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이웃을 자신의 탐욕으로 이용하는 경제적 불균형과 부정의가 초래되었다. 그리하여 그의 경제윤리는 구원론의 배경 속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경제생활에서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따라야 하는 성서적 원리들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그는 구원받은 그리스도 공동체의 유기체적 결속이라는 사회적 개념을 강조하는데, 그것은 물질에 있어서의 나눔과 직업에 있어서 공동체에 대한 봉사의 측면을 더욱 더 부각시킨다.”(한상화, 398-399쪽; 장호광, 225쪽에서 재인용).
6) 소명의 한계를 넘지 않는 경제생활
칼뱅의 경제 윤리 가운데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계급적 숙명론에 가까운 경제 윤리이다. 칼뱅은 각자가 자신의 소명의 한계를 넘지 말라고 권하면서 이것을 주장한다.
“끝으로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은 주께서는 우리 모든 사람이 모든 행동에서 각각 자기의 소명에 관심을 둘 것을 요구하신다는 것이다. 그것은 주께서 인간의 본성이 얼마나 큰 불안으로 타오르며, 얼마나 경박하고 방탕하며, 여러 가지 것을 한꺼번에 움켜잡으려는 야심이 얼마나 맹렬한가를 아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매하고 경솔한 우리가 만사를 혼란에 빠뜨리지 않도록 하시기 위해서, 각 사람에게 그 독특한 생활 양식에 따라 의무를 지정하셨다. 그리고 아무도 자기의 한계를 경솔히 벗어나지 않도록, 그 다양한 생활들을 소명이라고 부르셨다. 그러므로 각 개인에게는 주께서 지정하신 생활 방식이 있다.”(존 칼빈, 244쪽).
“소명의 한계를 넘는 것은 합당한 일이 아님을 알기 때문에 아무도 경솔하게 굴어서 소명이 허락하지 않은 일을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 미천한 처지에 있는 사람은 아무 불평 없이 자기의 생활을 해서, 하나님이 정해 주신 대열을 이탈하지 않을 것이다.······각자의 생활 양식에서 받는 불편과 근심과 권태와 불안에 대해서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지워주신 것이라고 믿을 때에, 모든 사람들은 그것을 참고 견딜 것이다. 여기서 또한 소명임을 알고 순종하면, 아무리 낮고 천한 일일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빛날 것이며 아주 귀한 것으로 인정받을 것이라는 유일한 위안이 생길 것이다.”(존 칼빈, 245쪽).
이와 같은 칼뱅의 소명론에서, 칼뱅이 소명에 대해 “아무리 낮고 천한 일일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빛날 것이며 아주 귀한 것으로 인정받을 것”이라고 말한 것은 옳다. 그러나 칼뱅이 “소명의 한계를 넘는 것은 합당한 일이 아님”을 주장하며, “미천한 처지에 있는 사람은 아무 불평 없이 자기의 생활”을 하라고 권한 것은 옳지 않다. 사도 바울은 고대 로마의 노예제 사회에서 노예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고했다.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자유할 수 있거든 차라리 사용하라”(고전 7:21). 사도 바울의 권고와 달리 계급적 숙명론에 가까운 칼뱅의 소명론은 그의 경제 윤리 가운데 크게 아쉬운 점이다.
4. 성서와 중세 교회의 이자관
1) 성서의 이자관: 가난한 이스라엘 사람에 대한 식량 및 종자 대부 시 이자 금지, 무역하는 비이스라엘 사람에 대한 상업 대부 시 이자 허용
구약 오경에는 이자 받지 않는 대부에 대한 세 가지 본문이 있다. 먼저 언약의 책이다(출 22:25).
“네가 만일 너와 함께 한 내 백성 중에서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어 주면 너는 그에게 채권자 같이 하지 말며 이자를 받지 말 것이며”
다음으로 신명기이다(신 23:19-20).
“네가 형제에게 꾸어주거든 이자를 받지 말지니 곧 돈의 이자, 식물의 이자, 이자를 낼 만한 모든 것의 이자를 받지 말 것이라 타국인에게 네가 꾸어주면 이자를 받아도 되거니와 네 형제에게 꾸어주거든 이자를 받지 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들어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
마지막으로 성결 법전이다(레 25:35-38).
“네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빈 손으로 네 곁에 있거든 너는 그를 도와 거류민이나 동거인처럼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하되 너는 그에게 이자를 받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여 네 형제로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할 것인즉 너는 그에게 이자를 위하여 돈을 꾸어 주지 말고 이익을 위하여 네 양식을 꾸어 주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며 또 가나안 땅을 너희에게 주려고 애굽 땅에서 너희를 인도하여 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위 세 본문 가운데 신명기에서는 이자가 외국인(‘노크리’, 곧 아마도 무역업자와 같이 나라를 지나가는 비이스라엘인으로서, 이는 ‘게르’, 곧 이스라엘에 정착하여 율법에서 종종 자비를 베풀어야 할 사람으로 언급되는 거류 외국인이 아님)으로부터는 받을 수 있다고 명백히 진술되고 있고, 다른 두 본문에서는 외국인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반면에, 이자 없이 대부받아야 하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라는 것이 명백히 진술되고 있다(Cyril Rodd, 145쪽). 곧 ‘가난한 이스라엘 사람에 대한 구제 대부’와 ‘무역하는 비이스라엘 사람에 대한 상업 대부’ 사이를 구분하여, 전자의 경우에는 이자를 받지 않고 후자의 경우에는 이자를 받는다고 요약할 수 있다. 여기에서 가난한 이스라엘 사람에 대한 구제 대부에는, 단지 먹기 위한 식량을 빌려주는 소비성 대부만 아니라 파종을 위한 종자를 빌려주는 사업성 대부도 포함될 것이다.
이와 같은 빈민 무이자 대부는 성서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먼저 그것은 영영히 요동치 않을 의인의 삶으로 노래된다.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 변리로 대금치 아니하 ··· 는 자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이다”(시 15:1,5).
또한 고리대업자의 재산은 구제하는 자를 통해 결국 가난한 자에게로 돌아갈 것이 교훈된다. “중한 변리로 자기 재산을 많아지게 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 불쌍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그 재산을 저축하는 것이니라.”(잠 28:8). 그리고 가난한 자에게 이자를 받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이자를 받지 않는 자에 대한 구원이 대조되며 선포된다.
“변을 위하여 꾸이거나 이식을 받거나 할진대 그가 살겠느냐 살지 못하리니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였은즉 정녕 죽을지라.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 손을 금하여 가난한 자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변이나 이식을 취하지 아니하여 내 규례를 지키며 내 율례를 행할찐대 이 사람은 그 아비의 죄악으로 인하여 죽지 아니하고 정녕 살겠고”(겔 18:13,17).
또한 빈민 무이자 대부는 포로 귀환 후 느헤미야의 개혁의 중요한 정책이었다(느5:1-13). 만약 빈자에게서 이자와 토지와 주택과 자녀를 취한 귀인과 민장을 꾸짖으며 당장 빈자에게 돌려주라고 명령한 느헤미야의 개혁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부자와 빈자로 나뉘어 사회 통합은 와해되었을 것이고, 침략 기회를 노리는 적대 세력에 의해 예루살렘 성벽은 재건되지 못했을 것이다. 빈민 무이자 대부법은, 희년의 토지·주택·자유 회복법과 더불어 이스라엘의 사회 통합과 영적 갱신을 위해 매우 중요한 법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구약 전반에 걸쳐 몇 가지 다른 형식의 문학(율법, 예언서, 시편, 그리고 지혜서)에서 발견되는 윤리적 요구들 중의 하나인, 돈이든 재화이든 관계없이 이자 받는 대부에 대한 만장일치의 전적인 거부가 특히 충격적인 이유는 고대 중동의 다른 모든 알려진 법전들이 이자 받는 대부의 실행을 수용하고 그것을 법제화하기 때문이다(Cyril Rodd, 142쪽). 고리대에 반대하는 종교적 감정은 수메르-바벨론 세계에서는 전혀 없었고, 수메르-바벨론 세계에서는 빌린 것에 대한 이자의 지급이 정상적이고 존중받을만한 것으로 간주되었고 율법과 계약에 전제되었던 것이다(Cyril Rodd, 143쪽).
2) 중세 교회의 이자관: 이자 금지 원칙과 예외 규정 및 교권주의자들의 이자 수취 관행
중세 교회는 원칙적으로는 이자를 금지했다. 중세 교회의 스콜라주의자들은 돈을 빌려주면서 이자를 받는 것을 다음 세 가지 이유로 정죄했다.
“(1) 성서에 의해 금지되었다고 믿기 때문에(출 22:25, 레 25:31, 신 23:18-20, 잠 28:8, 시 15:5, 렘 10:10, 겔 18:8, 눅 6:35). (2) 아리스토텔레스의 돈에 대한 견해 때문에. 돈은 무익한 것으로 돈은 돈을 낳지 못한다는 견해이다. 그 반대를 행하는 것은 부자연스럽고 자연법에 어긋난다고 생각했다. (3) 돈은 소비물에 해당하여 한번 쓰면 돌려받을 수 없는, 소비권만 행사할 수 있는 그러한 물질로 보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소비물질(res consumptible)과 비소비 물질(res non-consumptible)의 구분에 의거하여 돈은 소비물에 해당하여 한번 소비하면 그만인 물질로 보고, 후자는 집과 같이 소유권과 그것의 사용이 구분되어 있어, 그것을 빌려주어 사용에 대한 세를 받고도 후에 다시 돌려받을 수 있는 물건으로 보았다.”(한상화, 416-417쪽; 장호광, 306-307쪽에서 재인용).
그러나 이것은 예외 없는 규칙이 아니었다. 그 예외들 가운데는 오늘날 주류 경제학이 이자의 근거로 활용하는 ‘기회비용’이나 ‘위험보상’과 일맥상통하는 개념들도 엿보인다.
“(775년 니케아회의에서 이미 통과되었고 그 후에 여러 번에 걸쳐 교회 회의와 교황에 의해 새로이 규정된 바 있는) 이자를 붙여 돈을 대부하는 것을 금지한 것은 수세기를 통해 교회에 의해 강제로 시행되어 왔다. 그러나 이 규칙에는 많은 예외가 있었다. 이자를 붙인 대부는 위험과 변상의 책임을 동반하는 합자회사의 제도 아래서 허용되어 왔다. 대금업자는 심지어 빌려 준 돈이 잘못되어 자기에게 손해를 입히면 ‘interesse’, 즉 이자라는 명목으로 돈을 빌려 간 사람에게 배상을 요구할 권리가 있었다. 그 손실이 정확히 계산될 수 있는 경우 그에 상당하는 금액을 ‘damnum emergens’, 즉 명백한 벌금이라는 명목 하에 배상해야 한다. 실질적으로 이익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긴 대금업자는 (예를 들면, 빌려 준 돈으로 그에게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물건을 살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경우) 그 상실한 이익에 상당하는 금액을 ‘lucrum cessans’, 즉 그만둔 이익이라는 명목으로 강제 징수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만일 대출금이 예견되는 위험을 안고 있으면 대금업자는 ‘periculum sortis’, 즉 사태의 위험성에 따라서 담보를 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조건들은 합법적으로 이자를 요구할 수 있도록 대출금에 덧붙여진 명목들이었으며 군주들과 교회들이 장소와 환경에 따라 다소간의 융통성을 가지고 이 명목들을 허용했다. 교회는 이자를 받고 대부하는 것이 교회법상 금지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교묘하게 시행하여 일반화되었고 16세기에 들어서면서 급속하게 증가하게 되었다.”(앙드레 비엘레, 87-88쪽).
마지막 문장처럼 중세 교회는 이자 받는 대부 행위를 공식적으로는 금지했지만 교황과 주교는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과 달리 행동했다. 교회에 비판적인 한 역사가는 다음과 같이 교권주의자들의 위선을 고발한다.
“교회가 말한 것과 교회가 행한 것은 달랐다. 주교와 왕은 이자를 받는 것에 격노해 그것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었지만, 그들은 그 법을 맨 먼저 어긴 사람들에 속했다. 그들 자신이 이자를 붙여 돈을 빌리고 빌려 주었다. 다른 고리대금업자들을 탄압하고 있던 바로 그 순간에! 위험이 컸기 때문에 보통 고율의 이자를 요구한 소규모 대금업자였던 유대인들은 고리대금업자로서 미움받고 박해받고 어디서나 경멸당했다. 반면, 이탈리아 은행가들은 어마어마한 사업을 벌인 대규모 대금업자들이었다. 그리고 흔히 대출금에 대한 이자를 지급하지 않을 때, 채무자들을 정신적 형벌로 위협해 이자를 징수한 사람은 교황 자신이었다! 그러나 교회 자체가 가장 큰 죄인 중의 하나였는데도 교회는 계속 고리대금업자들을 규탄했다.”(리오 휴버먼, 59-60쪽).
교회는 비록 예외를 두긴 하였지만 이자 받는 대부, 특히 고리대를 금지했다. 그래서 교회의 가르침에 영향을 받아 국가는 고리대를 금지하는 법을 시행했다. 일례로 중세 영국의 ‘고리대금금지법’은 다음과 같다.
“그러나 경건한 가르침과 신앙을 외면하기 때문에 이 왕국의 욕심 많고 무자비하고 탐욕스러운 여러 사람들의 마음에 스며들 수 있는 ······ 가장 불쾌하고 혐오스러운 악덕인 고리대금은, 하느님이 말씀으로 완전히 금지한 것이므로 ······ 다음과 같이 ······ 법으로 정한다. ······ 어떠한 계급·계층·신분·지위에 속하는 사람이라도, 부도덕하거나 눈속임이거나 부정직한 어떠한 양도·술책·수단을 통해서든 ······ 원금 이상의 이득·이익·이자를 가지거나 받거나 바라는 어떤 종류의 고리대금을 위해서도 돈을 빌려 주거나 내주거나 양도하거나 선대해서는 안 된다. ······ 이를 위반하면 ······ 고리뿐 아니라 ······ 원금도 몰수하며 ····· 투옥한다.”(Tuder Economic Documents, vol. 2, 142쪽, Edited by R. H. Tawney and E. Power, 3 vols., Longmans, Green and Company, London, 1924; 리오 휴버먼, 56쪽 재인용).
그러나 16세기에 이자 대부는 급속하게 증가하면서 일반화되었다. 스페인과 영국 같은 국가들에서는 이자 대부가 법으로 허용되었다.
“스페인 군주 찰스 5세와 필립 2세는 신실한 가톨릭 신자였으면서도 12%를 넘지 않는 범위하에서의 이자는 합법적이라고 최초로 인정한 사람들이었다. 헨리 8세도 마찬가지로 1545년에 이자율을 10%로 정했다.”(앙드레 비엘레, 88쪽).
5. 칼뱅의 이자관
1) 칼뱅 당대 제네바의 이자 대부 관행
칼뱅의 이자관을 고찰하기 전에 먼저 칼뱅이 활동한 제네바의 이자 대부 관행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제네바는 칼뱅 이전부터 이자 대부를 시행하고 있었다.
“제네바에서도 종교개혁 이전에는 이자를 붙인 대부가 성행하고 있었다. 1387년 아데마르 파브리 공민법(les Franchises d’ Adhemar Fabri)에 의해 승인된 후 이자를 붙인 대부는 사보이 공작(le Duc de Savoie)에 의해 보호받았는데, 그는 이런 보호책으로 돈을 버는 데 조금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다. 이자율은 매우 변동이 심했다. 일반적으로 돈은 시장(역자 주: 시장은 물건의 교역을 위해 석 달마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모임이었음)이 서는 사이의 석 달간은 5%의 비율로 대부했는데, 정확히 연이율로 말하면 20%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교회의 금지령은 그대로 존속하고 있었다. 1532년에 파리대학은 이윤을 남기는 대부원리를 규탄한 바 있다.
16세기 초엽 제네바의 경제생활은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시장은 황폐화되었고 상인들과 은행가들은 그 자리를 돌보지 않았다. 사보이(Savoie)와의 전쟁으로 인한 혼란에다 종교개혁의 내분까지 겹치게 되었다. 당시의 공증인들의 비망록들을 보면 대부가 아주 드물었음을 보여 준다. 1527년에 대출금리는 5%였다. 그러나 종교개혁 난민들의 유입과 그들의 활동으로 인하여 제네바의 경제생활이 회복됨과 더불어 신용대출의 필요성이 다시금 제기되었다. 칼빈의 결정적인 복귀 이전인 1538년의 법정 이율을 5%로 정한 법은 1544년에도 여전히 같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었는데, 그 후에 15대 1의 비율, 즉 6.6%로 올려놓았다. 그러나 규제는 엄격했다. 그러나 칼빈에 따르면, 이런 법적 규제는 사실상 제네바 시에서 사업을 촉진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억제하는 꼴이 되었다.”(앙드레 비엘레, 88-89쪽).
2) 칼뱅의 이자 대부 교리 수립
“이자를 붙여 돈을 빌려 주는 교리”는 칼뱅에 의해 비로소 수립되었다(앙드레 비엘레, 89쪽). “이 교리는 신학사적으로 볼 때 혁명적인 것이었으며 경제생활에 큰 활력소가 되었다.”(앙드레 비엘레, 89쪽).
“전통에 매인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신념으로 칼빈은 그 문제에 대해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했다. 칼빈은 성서에 자문을 구하면서 동시에 어떤 실존적 현실에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적 교훈으로 적용해야 할 것인가를 찾아내기 위해 경제적 구조를 신중하게 분석했다. 우리의 종교 개혁자의 이 분석은 결국 현대 과학적 방법의 선구자였던 셈이다.”(앙드레 비엘레, 89쪽).
3) 성서 해석에 따른 칼뱅의 이자관: 고리대금에 대한 부정, 빈민 무이자 대부에 대한 긍정
먼저 칼뱅이 성서에서 발견한 것은 고리대금에 대한 부정이었다. 그리고 빈민 무이자 대부에 대한 긍정이었다.
“칼빈은 먼저 일반적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현실을 발견했다. 칼빈에 따르면 이런 이유로 성서는 고리대금과 그것의 모든 폐해를 비난한다. 다른 한편으로 성서는 우리의 이웃을 도와 준다는 관점에서 무이자 대부의 가치를 훨씬 더 강력하게 강조한다. 그런 무상의 대부는 참된 신앙의 표시이다. 그래서 성서는 가난한 자를 구제하기 위해 대부를 할 때 이자를 받는 것을 잘못이라고 선언하고 있다.”(앙드레 비엘레, 90쪽).
그런데 칼뱅에 의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자 받는 것을 금지하는 신명기 23장 20절은 그리스도인들과는 관계없는, 구약 이스라엘에 해당하는 국가법이다(장호광, 232쪽). 곧 이자에 대해서는 공의와 사랑의 원칙에 따라 판단해야지 구약의 특정한 시대에만 적용될 수 있는 특별한 진술에 의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장호광, 233쪽).
4) 경제 구조 분석에 따른 칼뱅의 이자관: 소비성 대부는 이자 금지, 생산성 대부는 이자 허용
다음으로 칼뱅은 경제 구조 분석에서 이자에 대한 관점을 신중하면서도 명확하게 제시한다. 칼뱅에 의하면, 이자를 받는 관례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최선이지만, 상행위의 경우 이자는 필연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무엇이 또 얼마나 허용될 수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장호광, 232쪽). 칼뱅은 이자에 대해 조심스럽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이자 거둬들이는 행위를 추천할 정도로 적극적 태도를 취하지 않으며 ‘이자’라는 단어가 사라질 수 있다면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자를 거둬들이는 행위가 공의와 형제적 공동체를 깨뜨릴 정도라면 이자가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하나님의 말씀 이외에 나는 더 이상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장호광, 233쪽).
칼뱅의 이자관에서 특징적인 것은 소비성 대부와 생산성 대부를 구분한다는 점이다. “칼빈은 성서가 이자나 고리대금을 말할 때 그것은 생산자금 대출(le pret de production)이라고 하는 당시의 비교적 새롭고 널리 퍼지고 있던 현상을 두고 하는 말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했다.”(앙드레 비엘레, 90쪽). 칼뱅에 의하면, “운전자본(un capital de travail)을 형성하기 위해 돈을 빌려 주는”(앙드레 비엘레, 90쪽) 경우 이자를 받는 것은 정당한 것이다.
“그러므로 칼빈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 아퀴나스가 제창하여 수세기 동안 금언처럼 여겨져 오던 ‘돈은 돈을 생산해 내지 못한다’고 하는 고대의 명제를 거부한다. 칼빈은 반대로 돈은 다른 상품들처럼 생산성이 있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러므로 이제 소비성자금대출(le pret à la consommation)에 관한 성서의 가르침을 생산자금대출(au pret à la production)에 적용하지 말자.”(앙드레 비엘레, 90-91쪽).
5) 죄의 현실 인식에 따른 칼뱅의 이자관: 이자 대부 규제
칼뱅은 인간이 죄로 오염되어 있는 현실을 항상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합법을 명목으로 대금업을 악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규제를 가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앙드레 비엘레, 91쪽). 칼뱅에 의하면, 곤궁한 사람을 돕는 데 쓰여야 할 돈을 이익 창출을 위해 굴리는 것은 탐욕이고, 법적으로 허용된다 하더라도 가난한 사람으로부터 이자를 받는 것은 부정한 짓이며, 채무자가 빌려간 돈을 통해 그 이자에 상당하는 돈을 벌지 못한 경우 이자를 받아서는 안 되고, 법정 이율을 넘어서는 어떤 이자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앙드레 비엘레, 91쪽).
칼뱅은 적정 이자율에 대해 일률적인 기준을 정하기를 거부하면서, 빌려주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자비에 영감을 받아 하나님 앞에서 빌리는 사람에 대해 갖는 책임감을 강조한다(앙드레 비엘레, 91쪽). 칼뱅은 당대의 경제학을 뛰어넘는 분석력으로 이자율은 생계비에 영향을 미치며 궁극적으로 대부분의 이자는 소비자가 지불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앙드레 비엘레, 92쪽).
이처럼 칼뱅의 이자관은 ‘이자 대부 금지 해제’와 ‘이자 대부 규제’라는 양 측면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특히 후자의 관점 때문에 칼뱅의 정신을 계승한 칼뱅주의자들의 경우, “제네바의 사업가들이 자기들의 돈을 10%의 법정 이율로 예치하려는 은행을 설립하려고 계획했을 때 테오도르 드 베즈(Theodore de Beze)가 이끄는 목사회는 이를 반대했다.”(앙드레 비엘레, 92쪽).
칼뱅과 칼뱅주의자들의 이자관을 요약하면, 금전 거래는 산업과 상업의 발전의 필요에 따라 공급될 수 있도록 쉽게 이루어져야 하지만 동시에 모든 합법적인 경제활동이 그렇듯이 이것도 반드시 통제되어야 하고 합리적인 제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앙드레 비엘레, 92쪽). 왜냐하면 사회생활이란 죄인인 인간이 모든 규제를 벗어나 자행하는 무절제 때문에 교란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앙드레 비엘레, 92쪽).
6) 칼뱅의 이자관의 배경: 당대 산업계급과 상업계급이 처한 환경의 실제적 필요에 대한 고려
칼뱅의 이자관을 보완하기 위해 한 역사가의 견해와 평가를 소개한다. 그에 의하면, 칼뱅과 칼뱅주의자들은 상업과 산업에 종사하는 계급들을 가르치면서, “자연스럽게 자본, 신용, 은행업, 대규모의 상업과 금융, 그리고 기타 기업생활의 실제적 사실들이 필요함을 솔직히 인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했다.”(R. H. 토니, 121쪽).
“이리하여 그들은 전통, 즉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을 넘어서는” 경제적 이해관계에 몰두하는 일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여기면서 중간상인을 기생충이라고, 고리대금업자를 도둑이라고 비난한 전통과 결별했다. 그들은 루터 같은 중세의 저술가가 ‘부당 이득’(turpe lucrum)이라고 비난해 마지않은 교역과 금융의 이윤을 노동자의 소득 및 지주의 지대와 똑같이 존중받을 수 있는 수준에 놓았다. 칼빈은 어떤 수신인(受信人)에게 이렇게 썼다. “기업으로부터의 소득이 토지소유로부터의 소득보다 커서는 안된다는 이유가 있는가? 상인의 이윤은 그 자신의 부지런함 이외의 어디에서 나오는가?” 그것은 부처의 말, 즉 상인들의 사기와 탐욕을 비난하면서도 중상주의적인 방향에서 양모공업의 발전을 꾀하라고 영국정부에 촉구한 바로 그 말의 정신과 크게 일치했다.”(R. H. 토니, 121-122쪽).
칼뱅과 칼뱅주의자들의 사상에서 “최우선적인 것은 산업계급과 상업계급의 환경이므로 그들은 그 환경의 실제적 필요와 타협”(R. H. 토니, 122쪽)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타협이라기보다는 실제적 필요에 대한 고려라고 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그것은 그들이 경제생활을 도덕화하라는 종교의 요구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도덕화하려고 관심을 갖는 생활은 상업문명의 주요한 특징들이 당연한 일로 여겨지는 생활이며 그들의 가르침은 이런 조건에 응용하기 위해 설계된다는 것을 뜻한다.”(R. H. 토니, 122쪽). 이런 관점에서 칼뱅의 이자에 대한 윤리 사상은 “사회적 조망의 변화에 비추어 해석되어야 한다.”(R. H. 토니, 123쪽).
“엄격하게 해석하면 다음과 같은 유명한 공언은 그 관대함보다는 오히려 그 엄격함에 의해 현대의 독자에게 강한 인상을 준다. 칼빈의 사후 한 세대에 영국의 어느 신학자는 이렇게 썼다. “칼빈은 약사가 독을 다루듯이 고리를 다룬다.” 이 변증은 정당했다. 왜냐하면 칼빈이 외콜람파디우스에게 보낸 편지도, 그가 같은 주제로 한 설교도 금융업자의 영업에 대해 하등의 지나친 관용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자가 합법적이 되려면 그것은 법정의 최고액을 초과하지 않아야 하며, 최고액이 정해진 때조차도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대부가 무상으로 행해져야 하며, 채무자는 채권자와 같은 이익을 얻어야 하고, 지나친 담보를 짜내서는 안 되며, 일시적인 편법으로서는 용서될 수 있는 것도 정규적인 직업으로 수행될 때는 비난받아야 하며, 그 어떤 인간도 이웃에게 손해를 끼치고 자신을 위해 경제적 이득을 낚아챌 수 없어야 한다. 이런 곤혹스런 덫에 의해 보호되는 고리를 묵인하는 것은 경건한 고리대금업자에게 미온적인 위안밖에 줄 수 없었다.
동시대인들은 칼빈이 다음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즉 채무자는 채권자에게 이윤(이것은 채권자의 자본으로 얻어졌다)의 적은 부분을 양보하라는 요구를 당연히 받아야 하지만, 이자의 착취는 “채권자가 채무자의 땀으로 부유해지고 채무자는 노동의 보상을 거두지 못함”을 의미한다면 잘못이라는 것이다. 이런 교리들은 금융업의 옹호라기보다는 그에 대한 공격으로 여겨졌을 시대들이 있었다. 고리의 이론에 대한 칼빈의 구체적인 기여는 두드러지게 독창적인 것이 아니었다.······칼빈이 빈민의 곤궁을 이용하여 짜낸 이자와 번영하는 상인이 사용한 자본을 갖고 번 이자간의 차이를 강조한 데 앞서 마요르(Georg Major, 1502~74. 독일의 루터파 신학자―역자)가 같은 것을 강조한 바 있었다. 부자들에 대한 대부의 적정이자율을 인정함에 있어서 그의 입장은 약간의 망설임이 있었지만 멜랑크톤이 이미 취한 입장과 똑같았다.”(R. H. 토니, 123-124쪽).
칼뱅은 자본을 하나의 분수령으로 보았다(R. H. 토니, 124쪽). 칼뱅은 “고리대금업의 윤리를 고리의 주제에 관한 특정의 교리에 호소하여 결정되는 문제로 다루지 않고 기독교공동체의 사회관계가 갖는 일반적인 문제(이것은 현존의 환경에 비추어 해결되어야만 한다)의 특별한 경우로 다룸으로써 논의가 진행되는 차원을 변화시킨 것이었다.”(R. H. 토니, 124쪽).
“이 주제에 관한 그의 논의에 있어서 의미심장한 특징은 그가 신용은 사회생활의 정상적이고도 불가피한 사건이라고 가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구약성서』와 교부들로부터 흔히 인용되는 구절들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조건들을 위한 착상에서 나온 것이라는 이유로 일축하고, 자본에 대한 이자 지불은 토지에 대한 지대 지불처럼 합리적이라고 주장하며, 그것이 자연의 정의(正義)와 황금률이 지시하는 양을 넘지 않도록 하는 책무를 개인의 양심에 던진다.”(R. H. 토니, 124쪽).
칼뱅에 의하면 영원한 것은 ‘이자를 받지 않는다’는 규칙이 아니라 ‘공정과 정의’이다(R. H. 토니, 124쪽). 그리고 칼뱅에 의하면 자본과 신용은 필수적이며, 금융업자는 사회의 유용한 구성원이다(R. H. 토니, 124쪽). 그래서 이율이 합리적이고 대부가 빈민에게 무상으로 행해진다면,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것은 인간사를 수행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며 그 밖의 다른 경제적 거래보다 더 착취적이지 않다(R. H. 토니, 124쪽).
6. 나오는 글
이상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칼뱅 당대의 사회 경제적 상황은 물질적 진보 가운데 빈곤이 심화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칼뱅은 기독교적 경제 윤리를 강조하였는데, 그 윤리에 따른 경제생활은 곧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정하신 목적에 따라 재화를 사용하는 경제생활이고, 영생을 갈망하며 바르게 사는 경제생활이며, 재화를 맡겨 주신 하나님 앞에서 셈해야 할 날을 잊지 않는 경제생활이고, 사랑의 동기에 따라 부자로부터 빈자에게 끊임없이 재화를 재분배하는 경제생활이며,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라는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경제생활이고, 소명의 한계를 넘지 않는 경제생활이다.
다음으로 성서의 이자관에 의하면, 가난한 이스라엘 사람에게 식량이나 종자를 대부해줄 때는 이자 받는 것을 금지하고, 무역하는 비이스라엘 사람에게 상업 대부를 해줄 때는 이자 받는 것을 허용한다. 그리고 중세 교회의 이자관에 의하면, 원칙적으로 이자를 금지하면서 예외 규정들을 허용하는데, 실제로 교권주의자들은 공식적으로는 이자를 금지하면서도 자신들은 실제로 이자를 받는 위선을 자행했다.
칼뱅 당대의 제네바는 이자 대부 관행이 이미 존재했고, 칼뱅은 이자 대부 교리를 수립했다. 이 글의 주제인 칼뱅의 이자에 대한 윤리 사상을 다음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성서 해석에 따른 칼뱅의 이자관은, 고리대금을 부정하고, 빈민 무이자 대부를 긍정한다. 둘째, 경제 구조 분석에 따른 칼뱅의 이자관은, 소비성 대부의 경우에는 이자를 금지하고, 생산성 대부의 경우는 이자를 허용한다. 셋째, 죄의 현실 인식에 따른 칼뱅의 이자관은, 이자 대부를 무한정 자유롭게 하지 않고 규제한다. 넷째, 칼뱅의 이자관은, 당대 산업계급과 상업계급이 처한 환경의 실제적 필요를 고려한 것이다.
이자 대부를 규제해야 한다는 칼뱅의 견해 가운데, “법적으로 허용된다 하더라도 가난한 사람으로부터 이자를 받는 것은 부정한 짓”이라는 언급은, 칼뱅이 빈민에 대해서는, 소비성 대부의 경우뿐만 아니라, 빈민의 생계형 소사업에 대한 생산성 대부의 경우에도, 이자 받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고 유추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가난한 사람에게 식량 대부(소비성 대부)나 종자 대부(생산성 대부)를 해 줄 때는 이자 받는 것을 금지한 성서의 법과 일맥상통한다. 이와 같은 성서와 칼뱅의 이자에 대한 윤리를 오늘날 적용한다면, 그것은 ‘빈민 무이자 소비성 대부’의 차원의 실천 방안들뿐만 아니라, ‘빈민 무이자 생산성 대부’의 차원의 ‘(빈민 무담보) 소액 대부’(Micro-Credit)로 적용 가능하다. 소액 대부의 경우, 이를 실천한 그라민 은행과 무하마드 유누스 총재는 200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고리대 사채 때문에 피눈물을 흘리며 죽어가고 있는 이 땅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빈민 무이자 대부를 소비성 차원과 생산성 차원 양 측면 모두에서 기독교인과 교회가 실천해야 한다. 특히 생산성 대부의 차원에서 소액 대부를 (‘안식년 채무 탕감법’을 적용하여, 일정기간 후에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탕감을 각오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개인적으로’ 가난한 성도와 이웃에 대해 소액 대부를 실행할 수 있다. 그리고 ‘지역 교회’ 내에 빈민소액대부위원회를 구성하여 소액 대부를 실행할 수 있다. 또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소액 대부를 실행하고 있는 ‘기존 기관’(신나는 조합이나 사회연대은행 등)에 기부하거나 출자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 교회가 연합하여 ‘기독교 은행’을 만들어, 한국 사회의 가난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북 동포와 중국 동포, 그리고 러시아 동포의 생계형 소사업을 위해 소액을 대부하여 통일을 구체적으로 준비할 수 있다. 기독교인과 교회가 이와 같은 빈민 무이자 대부와 관련된 실천들을 행하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의 은혜의 해’(눅 4:19)를 선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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