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2009-Jan
농촌에 사는 도시인이 보는 한미FTA(고상환)작성자: 박창수 IP ADRESS: *.39.227.149 조회 수: 2186
농촌에 사는 도시인이 보는 한미FTA
고상환(교회개혁실천연대 집행위원장)
저는 경기도 화성 서부의 농촌지역에 살고 있습니다. 지역이 수도권에 위치한 관계로 그래도 넉넉한 생활을 하는 지역입니다. 또한 투기가 성행한 지역이라 토지거래 허가 등 제약을 받고 있는 지역입니다. 그래도 그동안의 땅 값이 올라 그런 대로 땅 몇 백 평만 소유하고 있으면 억대의 재산가라 말할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농촌지역의 현실은 생각보다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가장 큰 것은 젊은이와 아이들 인구가 노령인구보다 훨씬 적고 이들 또한 농업을 주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지역의 인구 가운데 다수는 주변 자동차 공장 및 이와 관련된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고 실질적으로 농촌사람이라고 보기는 힘들다는 것입니다. 또한 농민들도 공장에서 일하면서 틈틈이 농업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의 경우에도 취학어린이가 점점 적어져서 40명 정도의 한 반이 한 학년을 이루고 있으며, 주변에는 이보다 적은 학생을 가진 분교 규모의 학교가 대부분입니다. 또한 이들의 젊은 부모들도 농민보다는 회사원들이 많습니다.
또한 우리 지역의 많은 부동산의 주인들은 실질적으로 외지인들이 투기용 내지 투자용으로 사들인 것이 대부분이고 절대농지라 불리는 농지들만이 대개 지역주민의 것이거나 다른 곳에서 토지수용을 당하여 사둔 대토용지라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것도 많은 땅들이 외지인들의 명의 신탁 토지입니다. 또한 가격이 높거나 좋은 위치의 땅들은 외지인들의 소유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지 주민들은 자신의 땅 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땅을 대신하여 농사를 짓고 있는 셈입니다.
지난 건국 60여 년 동안 농촌은 정치권력에 의해 이용당해왔습니다. 해마다 관행처럼 내려지는 농업자금이라는 저리의 시혜가 결국 농민들을 빚더미로 몰았고, 특용작물 내지 특수작물 재배 등의 기치아래 쏟아지는 실험적 농업으로 많은 모험적인 농민들은 파산하거나 빚에 허덕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최근 불거진 직불금의 부당 수령 문제는 지극히 당연시하던 관행이므로 누구를 탓하기 어려울 정도의 윤리의식의 부재의 정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농민들은 채무 때문에 작던 크던 그 농협이라는 허울 좋은 은행에 담보 잡혀 있는 형편입니다.
한미FTA는 이런 농촌 현실에서 중환자실의 중환자의 산소마스크를 벗기는 일입니다. 최근 “타짜”라는 드라마에서 도박에 빠진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완벽하게 파산시키는 행위를 “산소마스크 뗀다”라고 하는 것처럼 이제 한미FTA는 그나마 빈사상태에 빠진 농촌에 산소마스크를 떼는 작업이라 볼 수 있습니다. 아무 방비 없이 열심히 농사만 짓던 사람들에게 닥칠 현실을 짐작도 못할 것입니다. 미국산 농산물에 대한 수입관세 철폐와 감면으로 밀려드는 미국산 농산물 앞에 우리 농산물의 경쟁력을 지키기 힘든 현실이 앞에 놓여 있습니다.
과연 농민들이 이것을 감당하리라고 보십니까? 제가 보기에는 어렵게 자식들 공부시키고 근근이 이어오던 농사의 마지막 봇물이 터지는 것이며, 이들의 산소마스크가 떼어지게 됩니다. 많은 농민들은 눈 더미 같이 불어난 빚더미 속에 허덕이게 될 것이고 많은 농민들은 생을 포기하거나 농업을 포기하고 제조업이나 서비스 산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될 것입니다. 혹자는 이런 상황이 농민들의 무지와 안일에서 비롯되었다고 비난할지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 배경에는 수십 년간 정권의 보호막 역할을 감당하게 하기 위하여 진통제만을 투약한 정권과 관료들에게 그 책임이 있습니다. 한미FTA 체결 전부터 농민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는 농민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임시방편적인 대책만 내놓았고 적당히 해서 소농들을 없애려는 정책만이 가득하였습니다. 그래서 땅 팔아먹고 그 땅의 소작농으로 살도록 한 것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지역은 남쪽 지역보다는 더 상황이 나을 것입니다. 남쪽의 현실은 더욱 처절합니다. 이제는 거대 기업농을 앞세운 자본가들의 논리가 식량에도 미칠 것이고 결국 삼성농장, 현대농장, 엘지농장이 줄줄이 생기기 않을까 걱정입니다.
부디 우리 하나님의 공의를 찾는 기독교인들부터 사고를 바꾸고 이 현실을 직시하기를 바랍니다. 사람 사는 세상 같은 농촌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한미FTA를 반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모한 한미FTA 국회비준이 통과하면 우리 지역의 농촌도 없어지고 이 지역의 자동차공장이 먹여 살릴 수도 있겠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을 것임을 우리는 압니다. 농촌에 사는 도시인인 제가 보기에도 지금의 상황은 너무 어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