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는 위대하다’
친환경농업의 가장 힘든 부분 중 하나는 잡초제거를 누구나 손꼽을 것이다. 물론 각종 병충해며 퇴비준비 등도 그 순위를 다투겠지만 적어도 한여름 땡볕에 엉금엉금 기면서 풀매기란 영 죽을 맛이다. 예초기로 할 수도 있겠지만 기계라는 것이 한계가 있고 사람이 해야 할 구석은 언제든지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잡초를 제거했다고 해서 그것들이 사라진 것이라 생각하면 커다란 오산으로 다시 커가는 잡초를 볼라치면 초보농부들은 손을 들고 마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결국 잡초의 승리로 그의 논밭은 잡초 점령군에게 내주고 마는 것이다. 분명 엊그제 낫으로 풀들을 벤 것 같은데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그 자리에 버젓이 세력을 떨치고 있는 잡초의 생명력은 경탄할 만하다. 과학적 연구에 의하면 사람이나 초식동물들에게 먹힌 잡초들은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그 안에 있는 모든 역량을 뿌리로 보내어 뿌리로 하여금 미생물들이 좋아하는 물질들을 흙속으로 분비하게 한다. 그러면 뿌리 주변으로 미생물들이 모여들어 활발한 생리활동을 하게 된다. 그러는 와중 다시 뿌리에서는 미생물들을 죽이는 물질이 분비되어 미생물들이 만들어 놓은 흙속의 많은 양분과 아울러 죽은 미생물 자체의 영양소들을 흡수하므로 급속하게 성장하게 된다. 며칠 후에 가보면 눈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빠르게 성장한 잡초를 보게 된다. 독한 제초제를 살포해도 쉽게 죽지 않는 잡초는 사람이 가꾸는 식물들과는 다르게 강인하고 질긴 생명력을 상징한다. 지지난 달에 EBS TV는 창사특집 자연 다큐멘터리 '잡초'를 방송했다. 참으로 흥미로운 내용들을 보면서 때로는 그들의 생존전략에 감탄을 발하기도 했다.
봄에 뚝새풀은 농부가 논을 갈기 전 신속하게 자라나 씨앗을 만들어 간다. 농부가 잡초를 다 없애려고 트랙토로 로터리를 치면서 지나가는 순간, 때를 기다리던 뚝새풀은 트랙터 바퀴를 이용해 씨앗을 뿌린다. 성숙하지 않아도 발아할 수 있는 이 씨앗은 흙 속에서 기회를 엿보다가 추수가 끝나면 발아해 다시 땅을 점령해 나간다. 달맞이는 꽃이 피기 전에 이미 꽃가루를 암술에 붙이고 있다. 끈끈한 거미줄 같은 실에 붙은 꽃가루는 바람에 날리지 않고 꼭 붙어 있는데, 이것이 달맞이가 선택한 자화수분이다. 따라서 어느 곳에서도 다음 세대를 이을 수 있는 것이다. 때때로 잡초는 사람이나 동물을 이용하기도 한다. 날카로운 가시나 끈끈한 액으로 무장하고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이나 가축을 기다린다. 우리는 흔히 옷 등에 달라붙어 있는 가시나 풀 부스러기를 모르고 있다가 한참 후에 다른 곳으로 이동해 온 후 그것들을 제거한다고 야단인 경우가 있다. 바로 우리가 어느 사이엔가 그들의 번식전략에 동참한 것이다. 그 씨앗들은 이리저리 떨어진 그곳에서 때를 기다려 싹을 띠우고 다음 세대를 이어가는 것이다. 또한 잡초는 동물의 먹이가 되지만 강력한 소화액을 견뎌내고 배출된다. 동물은 잡초의 씨앗을 멀리 퍼뜨려 주는 이동수단이면서 거름도 남겨 준다. 씨앗은 새들의 먹잇감이지만 새의 배설물을 통해 멀리 이동해 국경을 넘기도 하고 바다를 건너기조차 한다고 한다. 이러한 잡초는 중금속 등으로 오염되고 병든 흙을 원상태로 되돌리는 자연의 치료사이기도 하다. 땅이 오염되고 척박할수록 억세고 질긴 잡초가 나타나 뿌리로 흙의 숨통을 열어 주며 태양에너지를 흙에 전해 주고, 땅 속 깊은 곳에서 양분을 끌어올리며 오염을 흡수, 제거한다.
우리는 잡초를 무시하거나 적으로 간주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잡초는 자연에서 그들 고유의 위치와 역할을 가지고 있다. 단지 제거만이 능사가 아니며 잘 관리한다면 그 유익이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