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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선교

05

2013-Oct

안중근 의사의 식민지근대화론 비판과 평화 민족주의

작성자: 박창수 IP ADRESS: *.194.8.220 조회 수: 1990

안중근 의사의 식민지근대화론 비판과 평화 민족주의

박창수

 

: 이 글은 인터넷 언론들에 기고한 두 편의 글 식민지근대화론에 대한 안중근 의사의 비판평화 민족주의와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을 함께 묶으면서 보완하고 다듬은 것이다.

 

안중근 의사는 그 평전을 쓴 황재문 교수가 기술한 것처럼, 한마디로 성자이자, 영웅이며, 인간이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독실한 천주교 신앙이 깔려 있다. 안중근 의사는 19세에 입교한 후부터 32세에 순국하기까지 천주교 신앙을 따라 살았다. 안중근 의사가 남긴 유서들은 모두 천주교 신앙으로 가득 차 있다. 그 가운데 작은 아버지에게 보낸 유서에는 큰아버지께옵서는 아직 입교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듣고 참으로 유감된 마음을 견디기 어려운 바”, “마음과 몸을 다하여 속히 귀화하시기를 권유하여 마지 않습니다. 이것이 제가 이 세상을 떠남에 있어 일생의 권고임을 전해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그리고 도마라는 세례명을 가진 안중근 의사는 장남 분도를 신부가 되게 하라고 아내에게 유서를 남겼다. 그러나 분도는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이듬해에 불과 10살 정도의 어린 나이로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말았는데, 그 죽음에 대해 당시에 일제 밀정에 의한 독살 가능성이 강하게 제기되었다. 다음은 안중근 의사가 아내에게 남긴 유서이다.

 

“<분도 어머니에게 부치는 글>

장부 안도마 드림

 

예수를 찬미하오.

우리들은 이 이슬과도 같은 허무한 세상에서

천주의 안배로 배필이 되고 다시 주님의 명으로

이제 헤어지게 되었으나, 또 멀지 않아 주님의 은혜로

천당 영복의 땅에서 영원에 모이려 하오.

반드시 감정에 괴로워함이 없이 주님의 안배만을 믿고

신앙을 열심히 하고 어머님에게 효도를 다하고

두 동생과 화목하여 자식의 교육에 힘쓰며

세상에 처하여

심신을 평안히 하고 후세 영원의 즐거움을 바랄 뿐이오.

장남 분도를 신부가 되게 하려고

나는 마음을 결정하고 믿고 있으니

그리 알고 반드시 잊지 말고 특히 천주께 바치어

후세에 신부가 되게 하시오.

많고 많은 말은 후일 천당에서 기쁘고 즐겁게 만나보고

상세히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을 믿고 또 바랄 뿐이오.

 

1910년 경술 214”(김삼웅, 429-430).

 

예수 찬미와 내세 신앙이 잘 드러난 이 유서뿐만 아니라 안중근 의사의 많은 유묵들에도 독실한 천주교 신앙이 잘 나타나 있다. 극락(極樂), 천당지복 영원지락(天堂之福 永遠之樂, “천당의 복은 영원한 즐거움이다.”)이라는 휘호에 내세 신앙이 표현되어 있고, 경천(敬天), 천여불수 반수기앙이(天與不受 反受其殃耳, “만일 하늘이 주는 것을 받지 않으면, 돌이켜 화를 받게 될 따름이다.”)라는 휘호에는 천주교 신앙에 기초하여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고자 하는 의지가 드러나 있다. 유서와 유묵들에 잘 드러난 것처럼, 안중근 의사의 천주교 신앙에는 현세에 대한 책임과 내세에 대한 신앙이 공존하고 있었다.

 

사회적 책임을 감당하고자 한 기독교인들은 내세에 대한 신앙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 것이다. 제주 강정에서 벌어지는 불의에 맞서 온 몸으로 저항하다가 옥에 갇힌 송강호 박사의 통찰처럼 가난과 비난과 고난을 가리키는 삼난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목숨까지 걸어야 한다. 게다가 아무리 노력해도 변화가 보이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압제자들을 이길 수 없는 것이 아닐까 회의하게 되고, 더 나아가 의로운 사람들이라고 믿었던 동지들 안에서 심각한 불의까지 목도하게 되면, 의인의 가슴 한구석에서 절망이 스멀거리며 올라올 수밖에 없다. 바로 이 때 내세 신앙은 그 의인에게 무한한 위로와 격려, 완전한 의()의 나라와 그 승리에 대한 희망을 주는 확고한 근원이 된다. 안중근 의사가 그러했다. 내세에 대한 신앙과 현세에 대한 책임을 겸비한 안중근 의사의 천주교 신앙은, 안중근 부대의 국내 진공작전과 일본군 포로 생환, 하얼빈 의거와 동양평화론 등 안중근 의사의 언행과 사상에 모두 깔려 있는 중요한 토대이다. 안중근 의사처럼 내세 신앙과 현세 책임을 겸비하고 있는 한국 복음주의 개신교인들 가운데서 안중근 의사와 같은 인물이 나올 수는 없을까? 나는 이 기대를 가지고 이 글을 쓴다.

 

식민지근대화론에 대한 안중근 의사의 비판

 

최근에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뉴라이트 계열의 어느 고등학교 역사교과서는 식민지근대화론을 그 배경에 깔고 있다. 한국이 일제의 식민지가 됨으로써 근대화될 수 있었다는 이 식민지근대화론은 한마디로 일제강점기를 미화하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역사학계의 네 개 연구소가 공동으로 그 역사교과서를 비판하는 자료집을 제작하였다(한국역사연구회·역사문제연구소·민족문제연구소·역사학연구소, 뉴라이트 교과서검토(고등학교 한국사, 교학사), 2013910). 이 자료집에 의하면, 식민지근대화론이 그 역사교과서에 노골적으로 기술되지는 않았으나 교묘하게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괄호 안의 쪽수는 교과서의 것임).

 

(1) “(1930년대 명동 거리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나라의 도시 모습과 큰 차이가 없다. 이러한 명동 거리의 생활 모습은 당시 우리나라 사람에게 어떻게 다가왔을까?”(278).

(2) “식민도시의 발달”(280).

(3)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지속될수록 근대적 시간관념은 한국인에게 점차 수용되어 갔다.”(282).

(4) “이에 자급자족적 경제관념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283).

 

이 자료집은 그 역사교과서의 위 내용을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다.

 

(1) 편파 해석: 식민 통치를 긍정하고 미화할 여지가 큰 질문임.

(2) 왜곡: 발달, 발전이라는 긍정적 측면을 부각한 반면 토막민 등 한국인의 몰락상을 외면함.

(3) 왜곡: 근대적 시간관념의 수용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 지속 여부보다는 근대적 문물과 제도의 확산 여부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음.

(4) 오류: 마치 일제 강점기 이전까지 한국인들은 자급자족적 경제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썼음.

 

그런데 그 역사교과서는 인명 색인에서 안중근 의사를 누락했고, 본문에서도 안중근 의사에 대해 단 두 줄(실제로는 한 줄)로 기술하였다는 언론 기사를 읽고, 나는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 역사교과서를 비판한 위 자료집에 의하면, “V. 일제강점과 민족운동의 전개이란 한 개 단원에서만 이승만과 관련된 사진은 5장이나 나오는 반면 가장 대표적 민족운동 지사에 속하고 많은 국민의 존경을 받고 있는 안중근(단원), 윤봉길 사진은 아예 한 장도 나오지도 않는다. 대한 독립과 동양 평화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분을, 독립투사들의 희생에 큰 빚을 지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그것도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는 교과서가 이렇게 홀대해도 되는가? 그 역사교과서는 도대체 왜 안중근 의사를 이렇게 홀대하는가?

 

나는 안중근 의사를 신문한 조서를 읽고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뉴라이트의 식민지근대화론은 안중근 의사의 사상 및 행동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오히려 안중근 의사가 저격한 이토 히로부미야말로 뉴라이트의 식민지근대화론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이는 안중근 의사를 뤼순감옥에서 신문한 일본인 검사와 안중근 의사의 치열한 논쟁에 잘 담겨 있다. 당시 안중근 의사의 의거와 그 재판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본은 안중근 의사를 무지한 테러리스트로 몰아가서 그 의거를 폄하하기 위해 갖가지 비열하고 집요한 공작을 펼쳤다. 그 일환으로 일본인 검사는 작심하고 치밀하게 준비해서 안중근 의사를 공격했다. 이하에서 안응칠은 안중근 의사이고, 검찰관은 일본인 검사이다.

 

안응칠 이토가 한국을 보호한 실적은 조금도 없다.

검찰관 보호한 실적이 있는지 없는지 지금은 아직 모른다. 그건 이후에 나타나는 것이다. 즉 한국이 일본의 보호를 받게 된 이래로 식산공업은 발달하고 있고 위생, 교통 기타 내정도 점차로 완비되고 있다. 그러나 피고처럼 본국에 살지 않는 자는 그 혜택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모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안 그런가.

안응칠 위생, 교통의 완비 그리고 그 밖에 학교 등의 설립이 있었던 일은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는 모두 일본인을 위해 한 것이지, 한국을 위해 노력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검찰관 피고는 저 사기(史記)에도 나와 있는 것처럼, 역수(易水)의 형가(荊軻)가 진()나라의 시황을 죽이려고 갔던 것과 같은 비가강개(悲歌慷慨)의 무리이며, 세계의 대세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라고 생각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잘 생각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안응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은 상당히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검찰관 한국이 발전하고 있다는 것은 피고만의 생각이지, 실제로는 결코 그렇지 않다. 그대로 내버려 두면 진보하지 않기 때문에 일본이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피고는 이를 모르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는가.”(이기웅, 119-120).

 

이 신문 조서에 의하면, 일본인 검사는 집요하게 식민지근대화론을 펴고 있고, 이에 맞서 안중근 의사는 식민지근대화론의 허구성을 밝히고 있다. 일본인 검사는 이토 히로부미에 의해 한국이 일본의 보호를 받게 된 이래로 식산공업은 발달하고 있고 위생, 교통 기타 내정도 점차로 완비되고 있다.”면서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안중근 의사는 이는 모두 일본인을 위해 한 것이지, 한국을 위해 노력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그 허구성을 들어 식민지근대화론을 반박하고 있다. 그리고 안중근 의사는 한국은 상당히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그 의미는 전후문맥을 살펴보면, 일본의 소위 보호없이도 한국은 상당히 발전해 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한국은 스스로 발전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식민지근대화론을 부정한 것이다. 그러자 일본인 검사는 일본의 소위 보호없이 한국을 그대로 내버려 두면 진보하지 않기 때문에 일본이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강변하면서 이토 히로부미를 옹호하고 있다.

 

요컨대 이 논쟁에서 안중근 의사가 일본인 검사의 식민지근대화론을 논박한 핵심은 두 가지인데, 이는 모두 오늘날 식민지근대화론을 비판하는 학자들의 주요 논지와 동일하다. 안중근 의사의 말을 조금 바꾸어 표현하면, 첫째, 일본이 한국에서 추진한 소위 '근대화'는 일본인을 위해 한 것이지 한국을 위해 한 것이 아니다. 둘째, 일본의 식민지가 되지 않고도 한국은 스스로 근대화될 수 있다.

 

지금부터 100여 년 전에 뤼순감옥에서 일본인 검사가 안중근 의사를 공격하며 제기한 식민지근대화론이 지금 한국 사회에서 한국인 뉴라이트에 의해 재연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나는 아직 진정한 독립을 이루지 못한 이 나라의 비참한 현실을 다시 한 번 깨닫고 비탄에 잠기지 않을 수 없다. 안중근 의사의 숭고한 희생 앞에, 과연 무엇이 온당한 태도일까? 한국인 뉴라이트여, 순국 직전에 하얀 한복을 입은 안중근 의사의 빛나는 두 눈을 바라보라. 그리고 더 이상 식민지근대화론으로 일제강점기를 미화하지 말라!

 

동북아에 휘몰아칠 전운

 

지난 103, 동북아시아 정세에 큰 변동을 일으킬 수 있는 성명이 일본 도쿄에서 나왔다. 미국과 일본이 외교·국방장관 공동성명에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환영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집단적 자위권이란 군사동맹국이 공격을 받게 되면 그 동맹국들이 그 공격한 국가를 무력 반격할 수 있는 집단적 권리이다. 그런데 일본의 평화헌법 제9조에 의하면, 일본국민은 전쟁, 무력 위협 또는 무력 행사를 국제분쟁 해결 수단으로서는 영구히 포기하며, 이를 위해 육해공 전력의 보유를 인정하지 않으며, 국가의 교전권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 아베 정권은 이 평화헌법을 무력화하기 위해 지금까지 국내외 분위기를 조성해 왔고, 그 정점에 이번 미일 공동성명이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핵발전소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도 유사시 핵폭탄 제조에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요컨대 미국은 아베 정권의 평화헌법 무력화 시도를 공식적으로 인정해 줌으로써 일본에게 군사대국화의 길을 열어준 것이다.

 

나는 앞으로 수십 년 내에 동북아시아가 무력 충돌 내지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미국의 지원 아래 군사대국화의 길을 가려 할 것이다. 일본은 중국, 한국과 영토 분쟁을 겪고 벌이고 있는 섬들에 대해 결코 양보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이 궁극적으로 탐내는 것은 그 조그만 섬들이 아니라 그 섬들 주변의 드넓은 바다이다. 일본은 그 바다의 해양 자원과 해로를 확보하기 위해 서슴없이 해상 자위대를 파견할 것이다. 바다에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광대한 자원이 묻혀 있다. 예컨대 일본이 독도를 탐내는 이유 가운데 하나도 독도 주변 해역에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일명 불타는 얼음으로 알려진 엄청난 양의 메탄하이드레이트가 매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거에 석유를 중동에서 일본으로 운송하는 해로(海路)를 지키기 위해 일본이 진주만을 공습한 것은 그 해로에 일본 경제의 사활이 달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중국은 앞으로 그 내부에서 민주화 요구가 더 거세어질 것이며, 그와 더불어 소수 민족의 분리 독립 요구도 더 강해질 것이다. 중국 권력층은 이런 요구들을 억압하고 국가통합을 이루기 위해, 일본과 일전을 불사할 수 있다. 일본이 중국을 침공하여 벌인 과거사를 전혀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중국과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는 상대국이므로, 반일 감정만큼 중국 국민을 단결시킬 호재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일본을 군사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미국의 힘도 현저히 약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중국과 일본 모두 국가주의가 강화되어 갈 것이다. 평화를 염원하는 우리의 바램과 관계없이, 동북아시아의 정세는 평화의 반대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반도가 희생될 수도 있다. 과거 중국과 일본의 전쟁은, 태풍 때문에 실패로 끝난 원의 일본 침공을 제외하면 모두 세 번 일어났는데, 그 가운데 한반도를 전장으로 한 전쟁은 두 번이었다. 20세기에 중국 본토에서 벌어진 중일전쟁을 제외하고, 16세기 말에 일어난 명과 일본의 임진왜란, 19세기 말에 일어난 청과 일본의 청일전쟁은 모두 한반도에서 일어났다. 이 두 번의 전쟁은 모두 조선의 땅을 황폐하게 만들었고 조선 민중의 인명과 재산에 극심한 피해를 입혔다. 비록 일본이 직접 군대를 파견하지는 않았지만 후방에서 군수품을 미군에 공급함으로써 전후 일본 경제의 부흥에 활용한 한국 전쟁에서 중국과 미국의 전장도 바로 한반도였다.

 

그러므로 동북아시아의 평화는 바로 한반도에 사는 우리에게 사활이 걸린 문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여러 가지 대안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주의의 토양이 되는 민족주의를 제어하여, 전쟁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은 국가주의가 아니라 평화를 지향하는 민족주의로 승화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평화 민족주의

 

민족주의의 목표는 평화가 되어야 한다. 평화를 위한 민족주의, 그것을 나는 평화 민족주의’(‘nationalism for peace’ 또는 ‘peace-nationalism’)라 명명한다. 민족주의에 대해 한국의 진보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 모두 잘못 생각하는 것이 있다.

 

첫째, 민족주의에 대해 진보주의 일각에서, 그것을 구시대의 유물로 간주하고 아예 폐기하자는 주장이 있다. 민족주의를 버리는 것이 한국 사회에서 과연 바람직한가? 그리고 가능한가? 나는 민족주의를 폐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는. 한국사, 최소한 한국 근현대사를 공부한 사람은 민족주의가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 가치를 갖고 있는지 이해할 것이다. 또 민족주의가 얼마나 한국 사회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도 알 것이다. 민족주의는 미···4개 강국이 주도하는 동북아시아에서 한국이 외세를 극복하고 자주 독립을 이루기 위한 사상적 기초가 된다. 동시에 민족주의는 남과 북이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루기 위한 사상적 기초가 될 수밖에 없다. ‘민족주의 폐기론은 서구의 진보적 이론을 맹종하여, 서구와는 전혀 다른 역사를 갖고 있는 한국에 그대로 관철하려고 하는 사대주의적이고 몰역사적이며 비현실적인 주장에 불과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둘째, 민족주의를 옹호하는 또 다른 진보주의의 일각에서는, ‘진보적 민족주의를 주장하며, 그것을 북의 주체사상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러나 주체사상은 진보적 민족주의로 포장한 김일성주의에 불과하다. 문익환 목사가 평양에서 김일성 주석을 만나 자기 목숨을 걸고 진심으로 권고했던 것처럼, 주체사상도 인민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주체사상이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숭배하고 그 가문의 3대 세습을 옹호하는 이념이 되어서는 안 된다. 북은 오직 인민을 위한, 오직 인민에 의한, 오직 인민의 사회로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역사의 정방향이다.

 

셋째, 민족주의에 대해 보수주의 일각에서, 그것을 국가주의와 동일시하면서 파시즘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 자신을 ‘100% 대한민국이라고 말한 박근혜 대통령과 그녀를 추종하는 일간 베스트등 보수 우익에게서 유사 파시즘이 읽힌다. 이 유사 파시즘은 국가주의로 변질된 민족주의에 기생하고 있다. 이 유사 파시즘을 청산하는 길은 그 숙주를 없애는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기술한 것처럼 민족주의는 한국 사회에서 없앨 수 없다. 그럼 유사 파시즘의 숙주인 국가주의를 어떻게 없앨 것인가? 그것은 민족주의를 평화 민족주의로 승화시킴으로써 가능하다.

 

하얼빈 의거에 담긴 평화 사상

 

나는 평화 민족주의를 온 몸으로 살아낸 인물로 안중근 의사를 꼽는다.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로 비하하는 뉴라이트는 내 말에 수긍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안중근 의사는 동양평화, 나아가서는 세계평화를 소원하고 동시에 한국의 자주 독립을 염원한 평화 민족주의자였다.

 

안중근 의사의 평화 민족주의를 본격적으로 기술하기 전에, 뉴라이트의 왜곡된 사관을 바로잡기 위해 먼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에 대해 몇 가지 쓰고자 한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사건은 당대에 큰 충격을 주었다. 안중근 의사의 평전을 쓴 한 사람은 이렇게 기술한다.

 

이토의 죽음은 세계를 뒤흔들 만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1026일부터 114일까지 이 사건과 관련된 전보가 9만여 통이었다는 점은 그 충격의 강도를 짐작하게 한다. 특히 사건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대한제국 및 일본, 러시아, 중국 등에서는 더욱 큰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황재문, 293).

 

일본인 검사가 안중근 의사에게 피고가 믿는 천주교에서도 사람을 죽이는 것은 죄악일 것이라면서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처단을 비판하자, 안중근 의사는 성서에도 사람을 죽이는 것은 죄악이라고 했다면서, 바로 이어 그러나 남의 나라를 탈취하고 사람의 생명을 빼앗고자 하는 자가 있는데도 수수방관하는 것은 더 큰 죄악이므로, 나는 그 죄악을 제거한 것일 뿐이다라고 논박한다(이기웅, 194). 나는 안중근 의사에게서 히틀러를 암살하려 했던 개신교 목사 본회퍼를 본다. 안중근 의사의 말처럼, “사람을 죽이는 것은 죄악이지만, “남의 나라를 탈취하고 사람의 생명을 빼앗고자 하는 자가 있는데도 수수방관하는 것은 더 큰 죄악이 아닌가? 첫 신문조서에 의하면,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이유는 열다섯 가지이다. 그 가운데 중요한 몇 가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토는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 그의 지휘하에 조선의 왕비를 살해했다. 둘째, 지금으로부터 오 년 전 이토가 군대를 동원하여 체결한 5개조의 조약은 한국에 대단히 불리한 조약이었다. 셋째, 삼 년 전 이토가 체결한 12개조의 조약은 모두 한국에 있어서 군사상 매우 불리한 내용이었다. 넷째, 이토는 기어이 조선의 황제를 폐위시켰다. 다섯째, 한국의 군대는 이토에 의해 해산됐다. 여섯째, 이런 조약 체결에 대해 분노한 우리 국민들이 의병을 일으켰는데, 이토는 이에 대해 우리의 죄 없는 많은 양민들을 학살했다. 일곱째, 한국의 정치 및 그 밖의 권리들을 빼앗았다. (중략: 인용자) 열두째, 이토는 동양평화를 교란했다. 왜냐하면 일러전쟁(日露戰爭) 당시부터 동양평화 유지라는 명목하에, 한국 황제 폐위 등 당초의 선언과는 모두 반대되는 결과를 초래하여 한국의 이천만 국민 모두가 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열셋째, 한국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이토는 한국 보호라는 명목으로 한국정부의 일부 인사와 내통하여 한국에 불리한 정치를 하고 있다. (중략: 인용자) 열다섯째, 이토는 한국국민이 분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황제와 세계 각국에 한국은 별 일 없다고 속이고 있다.

이상의 죄목에 의해 나는 이토를 살해했다.”(이기웅, 34).

 

그 후 안중근 의사는 일본인 재판장 앞에서, 독립전쟁의 차원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음을 강조한다.

 

따라서 나는 삼 년간 도처에서 유세도 하고, 또 의병의 참모중장으로서 각지의 싸움에도 참가했다. 이번의 거사도 한국 독립전쟁의 하나로, 나는 의병의 참모중장으로서 한국을 위해 결행한 것이지 보통의 자객으로서 저지른 것이 아니다. 따라서 지금 나는 피고인이 아니라 적군에 의해 포로가 돼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이기웅, 280).

 

안중근 의사가 이 말을 한 배경에는 안 의사가 한국 독립전쟁 당시에 사로잡은 일본군 두 명을 죽이지 않고 살려서 돌려보낸 사실이 있다. 이 일 때문에 안중근 의사는 동지들로부터 매서운 비판과 소외를 감수해야 했다. 의병들은 안중근 의사에게 적은 우리 의병을 잡기만 하면 참혹하게 죽인다. 우리도 저놈들을 죽일 목적으로 싸우고 있는데, 잡은 놈들을 모두 보내준다면 우리의 목적은 무엇이냐고 질책했는데(김삼웅, 181), 이에 대해 안중근 의사는 이렇게 답변했다.

 

그렇지 않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적들이 그렇게 폭행을 자행하는 것은 하느님과 사람을 다 함께 분노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마저 저들과 같은 야만적인 행동을 해야만 하겠는가? 또 그대들은 일본의 4000만 인구를 모두 죽인 다음에 국권을 회복하려고 하는가?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 백번 모두 이길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약하고 적은 강하니 악전고투할 수밖에 없다. 그뿐 아니라 충성된 행동과 의로운 거사로 이토의 포악한 정략을 성토하여 열강의 호응을 얻어야 우리의 한을 풀고 국권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약한 것으로 강한 것을 물리치고, 어진 것으로 악한 것에 대적한다는 것이다. 그대들은 더이상 여러 말 하지 말아주기 바란다.”(김삼웅, 181-182).

 

바로 이 말에 생명 존중의 평화 사상이 깃들어 있다. 안중근 의사는 적국인 일본마저 품었고, 교전상대방인 일본군마저 그 생명을 불쌍히 여겨, 포로의 사살을 금하는 만국 공법에 따라, 일본군 포로를 살려 보낸 것이다. 일본군의 야만적 학살에 대해 하느님과 사람을 다 함께 분노케 하는 것이라는 말 속에, 독실한 천주교 신앙이 녹아 있다. 또한 안중근 의사는 일본인 재판장 앞에서, 동양 평화를 위해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음을 당당히 밝힌다. 조금 길지만 안중근 의사의 진술을 그대로 옮길 가치는 충분하다.

 

지금까지 이미 수차 말한 대로 나의 목적은 동양평화에 대한 문제에 있고, 일본 천황의 선전조칙과 같이 한국으로 하여금 독립을 공고히 하는 것은 내 평생의 목적이자 또한 평생의 일이다. 무릇 세상에는 작은 벌레라도 제 몸의 생명과 재산의 안고(安固)를 빌지 않는 것은 없다. 하물며 인간된 자는 더더욱 자신들을 위해서 온 힘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토가 통감으로서 하는 짓은 입으로는 평화를 위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이에 반하고 있다. 진정으로 그런 생각이 있었더라면, 한일 양국인 사이에 서로 격()하는 곳이 없고 한 나라 사람 같은 생각을 가지도록 온 힘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토는 통감으로서 한국에 온 이래로 한국 인민을 죽이고, 선제를 폐위시키고, 현 황제에 대해 자기 부하와 같이 압제하고, 인민을 파리 죽이듯이 죽였다.

원래 생명을 아끼는 것이 인정(人情)이지만, 영웅은 늘 신명을 던져 나라에 진충하도록 교훈하고 있다. 그러나 이토는 멋대로 다른 나라 사람을 죽이는 것을 영웅으로 알고, 한국의 평화를 어지럽게 하며 십수만의 인민을 죽였다. 하지만 나는 일본 천황의 선전조칙에 있는 것과 같이 동양의 평화를 유지하고 한국의 독립을 공고히 하여, 한일청(韓日淸) 세 나라가 동맹하여 평화를 부르짖고 팔천만 이상의 국민이 서로 화합하여 점차 개화의 영역으로 진보하며, 나아가서는 유럽과 세계 각국과 더불어 평화에 온 힘을 다하면, 시민은 안도하여 비로소 선전조칙에도 부응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토가 있어서는 동양평화가 유지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번 일을 결행한 것이다.

이상과 같이 이토는 통감으로 온 이래로 황제를 폐하고, 현 황제를 압제하며, 또 다수의 인민을 죽이는 등 더욱 한국을 피폐하게 했다. 그러고도 일본 천황이나 일본국민에게는, 한국은 일반적으로 일본의 보호에 복종하고 있다고 발표하여, 일본의 상하 인민을 속이고 한국과 일본과의 사이를 소격(疎隔)케 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기회를 기다려 없애 버리려고 하던 차에, 이번에 하얼빈에서 그 기회를 얻어 일찍부터의 목적에 의해 이토를 살해했던 것이다.”(이기웅, 283-284).

 

여기에서 안중근 의사의 동양 평화에 대한 열망은, 일제의 대동아공영권과 같이 동양이 일본의 지도 아래 하나로 뭉쳐서 구미 제국을 대적하자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서는 유럽과 세계 각국과 더불어 평화에 온 힘을 다하기를 바라는 마음, 곧 세계 평화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곧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은 동양만을 위한 닫힌 동양평화론이 아니라, 동서양을 막론하고 세계 평화로 가기 위한 열린 동양평화론이었다.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

 

안중근 의사는 미완성 유고인 동양평화론의 서문을 시작하면서,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옹호한다.

 

대저 합하면 성공하고 흩어지면 패망한다는 것은 만고에 분명히 정해져 있는 이치이다. 지금 세계는 동서로 나뉘어져 있고 인종도 각각 달라 서로 경쟁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의 이기利器(무기: 인용자) 연구 같은 것을 보더라도 농업이나 상업보다 대단하며 새 발명인 전기포電氣包, 비행선, 침수정浸水艇은 모두 사람을 상하게 하고 물을 해치는 기계이다.

청년들을 훈련하여 전쟁터로 몰아넣어 수많은 귀중한 생명들을 희생犧牲처럼 버리고 피가 냇물을 이루고 고기(시체: 인용자)가 질펀히 널려짐이 날마다 그치질 않는다.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상정이거늘 밝은 세계에 이 무슨 광경이란 말인가. 말과 생각이 이에 미치면 뼈가 시리고 마음이 서늘해진다.”(김삼웅, 336-337).

 

동양평화론은 안중근 의사의 죽음으로 집필이 중단되었기 때문에, 동양평화론만으로는 안중근 의사가 동양평화를 위해 어떤 구체적인 방안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알 수 없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안중근 의사가 히라이시 우지히토 고등법원장과 나눈 대화를 기록한 청취서를 통해 그 구체적 방안의 개요를 살펴보자. 다음은 그 가운데 일부이다.

 

새로운 정책은 여순을 개방하여 일본, 청국 그리고 한국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군항으로 만들어 세 나라의 대표를 파견하여 평화회의를 조직한 뒤 이를 공표하는 것이다. 이것은 일본이 야심이 없다는 것을 보이는 일이다. 여순은 일단 청국에 돌려주고 그것을 평화의 근거지로 삼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재정확보에 대해 말하면 여순에 동양평화회의를 조직하여 회원을 모집하고 회원 1명당 회비로 1원을 모금하는 것이다. 일본, 청국 그리고 (한국의: 인용자) 인민 수억이 이에 가입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은행을 설립하고 각국이 통용하는 화폐를 발행하면 신용이 생기므로 금융은 자연히 원만해질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곳에 평화회의 지부를 두고 은행의 지점도 병설하면 일본의 금융은 원만해지고 재정은 완전해질 것이다. 여순의 유지를 위해서 일본은 군함 5~6척만 계류해두면 된다. 이로써 여순을 돌려주기는 했지만 일본을 지키는 데는 걱정이 없다는 것을 다른 나라에 보여주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상의 방법으로 동양의 평화는 지켜지나 일본을 노리는 열강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무장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 청국 그리고 한국의 3국에서 각각 대표를 파견하여 다루게 한다. 세 나라의 청년들로 군단을 편성하고 이들에게는 2개국 이상의 어학을 배우게 하여 우방 또는 형제의 관념이 높아지도록 지도한다.”(김삼웅, 350-351).

 

이와 같은 안중근 의사의 방략에 대해, 안중근 의사의 평전을 쓴 한 역사가는 이렇게 평한다.

 

안중근은 동양평화를 위하여 한일청 3국 연합 화평회의를 개설하고 은행을 설립해 3국 공통화폐를 발행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오늘날 EU와 같은 지역경제 공동체를 제안한 것이다. 놀랄 만한 제안이고 선각적인 혜안이다.”(김삼웅, 352).

 

안중근 의사의 유묵과 유언

 

안중근 의사의 평화 민족주의는 안 의사의 유묵에서도 그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 안중근 의사는 약육강식 풍진시대(弱肉强食 風塵時代)”라는 유묵으로 당대의 동아시아 정세를 한마디로 표현했다. 검산도수 참운난식(劍山刀水 慘雲難息)”이라는 유묵은 칼 뫼와 칼 물, 참혹한 구름에 쉬기 어렵다.”는 뜻으로 당대 동아시아의 전쟁 상황을 비판적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백세청풍(百世淸風)”이라는 유묵은 정의로운 세계가 실현되기를 바랐던 안 의사의 염원이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김삼웅, 579). 이 외에 안중근 의사가 유묵으로 표현한 평화에 대한 열망을 살펴보자(이 유묵들과 그 해석은 김삼웅, 안중근 평전을 그대로 인용하거나 조금 수정했다).

 

동양대세사묘현 유지남아기안면 화국미성유강개 정략불개진가인

(東洋大勢思杳玄 有志男兒豈安眠 和局未成猶慷慨 政略不改眞可憐)

동양대세 생각하매 아득하고 어둡거니, 뜻 있는 사나이 편한 잠을 어이 자리.

평화시국 못 이룸이 이리도 슬픈지고. 정략(침략 전쟁)을 고치지 않으니 참 가엾도다.”

 

욕보동양 선개정계 시과실기 추회하급

(欲保東洋 先改政界 時過失機 追悔何及)

동양을 보호하려면 먼저 정계를 고쳐야 한다.

때를 놓쳐 실기하면 후회한들 무엇하리요

 

연년점검인간사 유유동풍불세정

(年年點檢人間事 唯有東風不世情)

해마다 세상일 헤아려 보니,

다만 동쪽 바람만이 세태와 인정을 따르지 않는구나.”

(일본을 동쪽 바람에 비유)

 

일출로소혜 정합운리 일영필측혜 불각기조

(日出露消兮 正合運理 日盈必昃 不覺其兆)

해가 뜨면 이슬이 사라지나니, 천지의 이치에 부합하도다.

해가 차면 반드시 기우나니, 그 징조를 깨닫지 못하는도다.”

(러시아를 이슬에, 일본을 해에 비유)

 

장탄일성 선조일본(長歎一聲 先弔日本)

큰 탄식 한 소리로 먼저 일본을 조상하노라.”

 

일한교의 선작소개(日韓交誼 善作紹介)

일본과 한국의 교의는 소개가 잘 되어야 한다.”

(통역 소노키에게 써 준 휘호)

 

통정명백광조세계(通情明白光照世界)

통정을 명백히 하면, 세계를 밝게 밝힐 것이다.”

 

인류사회대표중임(人類社會代表重任)

인류사회의 대표는 책임이 무겁다.”

 

마지막으로 안중근 의사의 유언을 기재한다. 이 유언에도 한국 독립동양 평화가 모두 담겨 있다.

 

“<동포에게 고함>

 

내가 한국 독립을 회복하고

동양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3년 동안을 해외에서 풍찬노숙하다가,

마침내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이곳에서 죽는다.

우리들 2000만 형제자매는 각각 스스로 분발하여

학문에 힘쓰고,

실업을 진흥하며, 나의 끼친 뜻을 이어

자유 독립을 회복한다면

죽는 자로서 유한이 없을 것이다.

(이것은 면회 온 안병찬 변호사를 통하여 동포에게 전한 것이다)”(김삼웅, 429-430).

 

동북아 평화를 위해 한국이 해야 할 일

 

안중근 의사의 평화 민족주의를 우리 시대에 적용하고 승화시키자! 그래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그리고 동북아 평화와 세계 평화를 이루어 내자!

 

미국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해준 같은 기자회견에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북한이 비핵화를 결심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적법한 협상에 나설 경우, 미국은 북한과 불가침조약에 서명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미국은 북한의 정권 교체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은 북한과 미국의 관계 개선을 방해하지 말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도와서 북한과 미국 사이에 북핵 포기와 불가침 조약이 동시에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 한국은 중국과 일본의 국가주의가 전쟁으로 치닫지 않고 중국과 일본이 동북아 평화와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평화 민족주의 철학을 중국과 일본에 제창하고 공급하여야 하고, 더 나아가 한국이 주도적으로 노력하여 6자회담 참가국들 모두가 참여하는 동북아 평화 체제까지 만들어내야 한다.

 

안중근 의사가 국제 분쟁 지역이었던 뤼순을 역발상으로 동양평화의 거점으로 제안했던 것처럼, 예컨대 세계적 분쟁 지역의 상징인 한반도 비무장 지대(DMZ)를 동북아 평화와 세계평화의 중심지로 만들어내자! 거기에서 6자회담 참가국 모두 군비를 축소하고 평화 체제를 만들어내는 평화 협정을 체결하자! 거기에서 칼을 쳐서 보습을, 창을 쳐서 낫을”(구약성서 이사야 24) 만들어 내자! 안중근 의사의 평화 민족주의를 승화시켜, 한국이 6자회담 참가국 모두의 평화 체제를 주도적으로 만들어 내자!

 

참고문헌

 

김삼웅, 안중근 평전, 시대의 창, 2009.

이기웅 옮겨 엮음, 안중근 전쟁, 끝나지 않았다, 열화당, 2010.

황재문, 안중근 평전, 한겨레출판(),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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